[사랑, 그리고 선물]
제법 대단히 큰 회사의 회장님이 있었습니다.
회장님이 이처럼 큰 회사를 경영할 수 있게 된 것은 회장님의 근면성 때문이었습니다. 어떤 이려움에도 굽히지 않고 황소처럼 부지런히 일을 한 것이 운이 좋게도 맞아떨어졌던 것입니다.
회장님은 이제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우러러보지 않는 사람이 없을 성도로 그의 이름과 덕망이 높아졌습니다.
회사 안에서는 더욱더 그랬습니다. 회장님의 호령, 아니 헛기침 소리만 들어도 허리를 90도로 굽히고 굽실거리는 부하 직원들의 수효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회장님에게는 큰 걱정거리가 한가지 생겨서 골치를 앓고 있었습니다.
웬만한 일은 돈으로 모두 해결할 수 있는 세상이라고 하는데 이 일만큼은 그럴 수도 없는 일이어서 회장님의 시름은 더욱 깊어만 가고 있었습니다.
회장님이 이런 고민에 빠져 괴로워하는 것은 바로 부인의 병적인 습관 때문이었습니다.
"여보! 오늘도 퇴근하실 때는 제 마음에 꼭 드는 값진 선물을 사 오셔야 해요. 알았죠?“
부인은 회장님이 매일 아침 출근을 할 때마다 하루도 잊지 않고 이렇게 다그치듯 부탁을 하곤 하였습니다.
언제부터 그런 이상한 버릇이 생겼는지는 잘 모를 일입니다. 어쨌거나 회장님은 이제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매일처럼 이렇게 조르며 성화를 부리는 부인한테 완전히 지치고 말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장님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부인을 향해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퉁명스럽게 소리쳤습니다.
“도대체 어떤 선물이 마음에 드는 건지 분명히 말을 해야 사 오든지 말든지 할 게 아니오. 난 이제 더 이상 당신의 속마음을 도무지 모르겠소. 그러니 오늘부터는 당신이 직접 나가서 사 오든지 말든지 하란 말이오. 알아듣겠소!”
그러자 몹시 서운하다는 듯 부인 역시 조금도 지지 않고 마주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아니, 뭐라고요? 이제 보니 당신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벌써 식어버렸다 이 말이죠?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물건을 내가 직접 사 가지라니 그런 것도 선물이란 발예요, 뭐예욧!”
“어휴, 옛날에는 그렇게도 착하고 순박하기 그지없던 당신이 왜 이렇게 허영이 많은 이상한 사람으로 변했는지 난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구려.”
회장님은 못마땅하다는 듯 혀를 끌끌 차면서 이렇게 대꾸하고는 집을 나서고 말았습니다.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답답하면서도 피곤해서 더 이상 건딜 수 없는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얼마 전부터 지금까지 회장님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부인의 요구대로 값진 선물을 매일 사다 바쳤습니다. 돈은 얼마든지 여유가 있으니까 돈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러다가 언젠가는 제풀에 지치고 말겠지 하는 생각에 아무 말없이 계속 선물을 사다가 바쳐온 회장님이었습니다.
큼직한 황금두꺼비는 물론이요, 다이아몬드, 진주, 산호, 사파이어, 루비 등을 넣어 예쁘게 만든 값진 고급 반지들을 헤아릴 수도 없을 정도로 줄기차게 사다 바쳤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철이 바뀔 때마다 웬만한 사람들은 감히 쳐다볼 수도 없는 멋진 명품 옷을 외국에서까지 주문을 해다가 바친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아마 그렇게 부인을 위해 쓴 돈을 모은다면 고급 아파트 몇 채를 사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인은 어떻게 된 일인지 그때마다 흡족하지 못한 표정으로 또다시 다른 선물을 요구하곤 하였던 것입니다.
정말 기가 막힐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병도 그런 병이 없었습니다. 가끔 울화가 치밀어 주먹으로 가슴을 쳐보기도 하지만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돈을 가지고도 해결할 수 없는 부인의 마음속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세상에 고칠 수 없는 고약한 병이 들었다 해도 그렇게 고약한 병은 또 없을 것입니다.
“그나저나 도대체 이 일을 이떻게 해야 좋담!”
회장님은 요즈음 부인 때문에 좀처럼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회장님은 자나 깨나 늘 일그러진 표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전화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울리고 있었습니다. 비서실에서 온 전화였습니다.
"회장님! 비서실입니다. 친구 되시는 분으로부터 온 전화입니다.“
수화기에서는 뜻밖에도 반가운 친구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오! 박 회장 오랜만이야. 소문을 듣고 보니 요즈음 자네 제수 씨 때문에 걱정이 많다고 하더군."
”응, 그래, 그저 조금……. 그런데 어떻게 그런 일까지 김 사장이 ……?“
회장님은 창피한 마음에 금방 민망스러운 표정이 되어 얼버무려 대꾸하게 되었습니다.
전화를 건 사람은 회장님과는 학교에 다닐 때부터 매우 친하게 지내는 친구였습니다. 반가웠습니다.
”하하하……. 어떻게 알기는……. 자네가 누군가? 천하가 다 알고 있는 그 유명한 회장님이 아닌가?“
”어이 사람 참, 쓸데없는 소리 좀 그만하고 갑자기 전화를 건 용건부터 말해 보게 .“
”알았네. 사람도 차암, 그까짓 일을 가지고 무슨 걱정을 그렇게 하고 있나. 아무 걱정 말고 이제부터 내가 시키는 대로 해 보게나. 제수 씨 그 이상한 버릇이 쏙 들어가고 말 테니 말일쎄. 하하하…….“
”……!“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회장님의 표정이 활짝 밝아지면서 무릎을 쳤습니다.
”아하! 그런 방법이 있었군!“
그날 저녁이었습니다.
회장님의 부인의 휴대폰이 요란스럽게 울렸습니다. 회장님의 운전기사로부터 온 전화였습니다.
”사모님, 큰일 났습니다. 회장님이 퇴근하시다가 갑자기 혼수상태가 되셔서 쓰러지는 바람에 급히 병원에 입원을 시켜드렸습니다.“
”……?!“
오늘도 부인은 어떤 선물이 올까 하고 잔뜩 기대를 하고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입원을 했다는 소식에 깜짝 놀라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회장님은 기사의 말대로 여전히 정신을 잃은 채 꼼짝도 못하고 침대에 누워 있었습니다. 그 광경을 본 부인은 너무나 기가 막혀 말문이 막히고 말았습니다. 그러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의사 선생님을 향해 울먹이는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서, 선생님!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네? 무슨 일인지 아주 위독한가요?”
의사 선생님은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천천히 입을 열었습니다.
"네, 아주 위독한 상황입니다. 아마 회장님께서는 요즈음 집안에 큰 걱정거리가 있으셨던 것 같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 걱정거리가 없어지지 않는 한 지금 상태로는 일주일을 버티기가 어려울 것 으로 보입니다.”
“……?!“
일주일을 넘기기 어렵겠다는 말에 순간 부인의 얼굴색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하더니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곧 정신을 차리고 의사 선생님에게 매달리며 애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서, 선생님! 이게 모두 저 때문이었어요. 이제 제가 더 이상 괴롭히지 않을 테니 제발 목숨만 살려 주세요. 이제 저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값진 선물 한 가지가 있다면 오직 우리 남편의 건강이 다시 회복되어 옛날로 돌아가는 일, 바로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으흐흑---.”
부인은 이제 염치도 부끄러움도 없었습니다. 여전히 의사 선생님의 팔을 꽉 잡은 채 슬프게 흐느끼고 있었습니다.
침대에 죽은 듯이 누운 채 그런 부인의 모습을 실눈을 뜨고 몰래 지켜보고 있는 회장님의 입가에는 오랜만에 미소가 번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회장님의 표정을 슬그머니 바라본 의사 선생님도 이제야 됐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아마, 지금 회장님의 부인도 이제야 부질없는 사치와 꿈에서 깨어나 정말 이 세상에서 가장 참되고 값진 선물이 무엇인가를 뒤늦게나마 분명히 깨닫지 않았을까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