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빛으로 잔뜩 찌푸린 하늘에서는 금방 함박눈이라도 퍼부을 것만 같은 날씨입니다.
아빠는 오늘도 이른 아침부터 분주하게 외출할 채비를 서두르고 있었습니다.
여느 때 같으면 허름한 작업복 차림으로 새벽같이 공사장 일을 나가면 그만인 아빠였지만 오늘은 그게 아닙니다. 오늘따라 아침 일찍 일어나 머리를 감고 말끔히 면도까지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소중히 간직해 두었던 양복을 꺼내 입고 넥타이까지 단정하게 매고 있습니다.
"아빠! 오늘도 또 어딜 가시려고요?”
지금까지 아빠가 움직이고 있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윤미가 궁금함을 참다 못해 물었습니다.
"응? 으응, 오늘도 어딜 좀 갔다가 올 때가 있단다.”
아빠는 약간 당황하는 기색이 되어 이렇게 얼버무리고 말았지만, 윤미는 그런 아빠가 더욱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한 달에 한두 번씩 아빠는 오늘처럼 정장을 하고 훌쩍 외출을 하곤 하였으니까요.
“아빠! 어딜 가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늘은 나도 좀 데리고 가면 안 돼요?”
윤미는 아빠가 허락하지 않을 것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이렇게 묻고는 아빠의 눈치를 살핍니다.
"안돼, 어른이 하는 일인데 그런 델 아이들이 따라다니면 못 쓴다니까.“
”…….“
그럴 때마다 아빠의 대답은 조금도 변함이 없이 무뚝뚝하기만 합니다.
“우리 윤미 착하지. 오늘은 어쩌면 해가 지기 전에 돌아올 테니까 집 좀 잘 보고 있으렴. 밥도 잘 챙겨먹고 응?”
윤미의 표정이 금방 시무룩해지자 아빠는 좀 안됐다고 생각했는지 이렇게 달래 주고는 부리나케 밖으로 나가버리고 말았습니다.
텅 빈 집에 혼자만 남게 된 윤미는 오늘따라 밀려오는 허전함과 쓸쓸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늘 혼자만 다니시는 걸 보면 아빤 분명히 나를 데리고 다니기가 싫은 모양이야!‘
윤미는 저도 모르게 쓸쓸한 마음에 어느새 두 눈에서는 눈물이 핑 돕니다.
지금 윤미는 아빠와 함께 단 두 식구가 외롭고 쓸쓸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윤미는 때때로 엄마가 있는 친구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부럽게 느껴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럴 때마다 윤미는 문득 기억조차 없는 엄마의 얼굴이 눈앞에 떠오르며 못견디게 그리워지곤 합니다. 가끔 궁금함을 견디다 못해 엄마에 대해 물어본 적도 한두 번이 아닙니다.
"아빠, 우리 엄마는 얼마나 예쁘셨어요? 그리고 마음씨는 어떠셨고요?”
"우리 윤미도 예쁘지만, 엄마는 윤미 못지않게 얼굴도 마음씨도 너무 예쁘고 고왔단다.“
그러나 아빠는 엄마의 이야기를 꺼내기만 하면 금방 바람 빠진 풍선처럼 맥이 빠진 표정으로 이렇게 대답하곤 하였습니다.
윤미는 아빠의 얘기를 들으면 들어볼수록 엄마에 대해 더욱 많은 것이 알고 싶고 궁금해지기만 합니다. 그래서 자꾸만 엄마에 대해 물어보곤 하였습니다.
"그럼 난 아빠보다 엄마를 더 많이 닮은 거예요?“
"닮은 정도가 아니라 윤미는 꼭 엄마의 모습을 빼닮았다고 동네 사람들이 너를 볼 때마다 그러지 않든?“
”아하, 그랬구나!“
윤미는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엄마의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엄마가 더욱 그립고 못 견디게 보고 싶어지곤 합니다.
“아빠!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어요.”
"이상하다니, 뭐가?“
윤미의 느닷없는 물음에 아빠는 왠지 찔끔 놀란 표정으로 윤미를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그럼 엄마가 그렇게 예쁘다면서 왜 사진은 한 장도 집에 남은 게 없어요?”
“응, 그건……. 엄마의 사진이 없었던 게 아니란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이리저리 굴러다니다가 아마 잃어버린 모양이야.”
그리고 엄마의 사진이 한 장도 없는 것은 그나마 몇 장 있던 사진도 아빠가 몇 해 전에 불태워 버렸기 때문이라고 일러주었습니다.
'그 귀한 사진을 불태워 버리다니?'
그건 말도 되지 않는 이해할 수고 없는 일이었습니다. 윤미는 아빠의 말이 곧이곧대로 믿어지지를 않았습니다. 아빠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왠지 늘 석연치 않았습니다.
아빠의 말에 의하면 엄마는 윤미가 세 살 되던 해에 오빠가 갑자기 큰 교통사고를 당하여 그 자리에서 그만 하늘나라로 가고 말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엄마는 그 뒤로 오빠를 잃은 충격과 슬픔에 그만 정신마저 잃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엄마는 그 뒤부터 미친 사람처럼 이리저리 정신없이 헤매다가 병으로 그만 엄마마저 저세상으로 떠나가셨다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아빠는 윤미가 엄마에 대해 물어볼 때마다 몹시 괴로운 듯 짙은 그늘로 얼룩진 표정이 되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엄마와 오빠가 몹시 그리운 듯 정신 나간 사람처럼 멀거니 허공을 바라보곤 하였습니다.
윤미는 그런 아빠의 쓸쓸한 모습을 바라보며 다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습니다.
"아빠, 그런데 난 또 궁금한 것이 한 가지 있어.“
”궁금한 게 있다니, 뭐가 또 궁금한데?“
”으음, 왜 오빠의 산소는 있는데 엄마는 없는지 그게 궁금하거든.”
“그래? 엄마는 화장을 했기 때문이라고 몇 번 설명해 준 것 같은데 잊은 모양이구나.”
아빠는 왠지 그런 걸 묻고 있는 윤미가 못마땅하다는 듯, 그리고 조금은 언짢은 기색이 되어 대답했습니다.
"으음, 그럼 화장을 하면 제사도 안 지내는 건가?“
“허어 참, 점점 별걸 다 꼬치꼬치 묻고 있구나. 지금 우리 집 형편이 이렇게 어려우니까 제사를 지낼 수가 없어서 그런 거라니까.”
“……?!”
아빠는 귀찮다는 듯 이렇게 얼버무리고는 자리를 피하듯 밖으로 나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윤미는 아빠가 그러면 그럴수록 그건 아빠가 더욱 이상하다고 느껴지곤 하였습니다.
평소에 아빠는 그 누구보다 윤미에게 자상하게 잘 대해 줍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인정도 많고 훌륭한 아빠입니다. 그런 아빠가 마냥 자랑스럽기도 합니다.
그러나 좀 이상하게도 엄마의 얘기를 꺼내기만 하면 왠지 모르게 짜증을 내며 번번이 달라지는 아빠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처럼 윤미를 떼어 놓고 가끔 혼자 어디를 가는 걸 보면 도무지 아빠의 마음을 이해할 수도 없고 궁금하기가 그지없었습니다.
'가깝게 지내는 친척도 없다면서 어딜 그렇게 말끔하게 차려 입고 혼자 다녀오시는 것일까?‘
집을 떠난 아빠는 대부분 그날로 늦게 돌아오시곤 합니다. 어떤 때는 가끔 하룻밤을 자고 그다음 날 돌아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때는 으레 이웃집 정희 엄마가 와서 밥을 지어 주기도 하고, 윤미와 함께 잠을 자 주기도 하는 고마운 분입니다. 아빠가 미리 부탁을 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아빠는 으레 오늘처럼 밖에 볼일이 있어서 집을 비우거나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정희 엄마를 찾아가서 부탁을 하곤 합니다.
아빠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정희 엄마는 옛날에 윤미 엄마와 같은 고향에서 친하게 지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정희 엄마는 윤미에게 마치 친엄마처럼 너무나 살갑게 잘 대해 주는 고마운 분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윤미는 어느 새 정희 엄마한테 정이 들어 마치 한 식구처럼 지내 오던 터였습니다.
'아빠는 왜 번번이 나를 떼어 놓고 도대체 어딜 그렇게 혼자만 다녀오시는 걸까?‘
아빠가 그렇게 집을 나간 뒤, 윤미는 방바닥에 혼자 주저앉아 한동안 초점 잃은 눈으로 허공을 멀거니 바라봅니다. 그리고 어느 새 기억조차 없는 엄마의 모습을 그려봅니다.
앗! 그러자 곱고 인자한 엄마의 모습이 어렴풋이 눈물 속에 어리며 나타납니다. 윤미는 그런 엄마를 붙잡고 엉엉 흐느껴 울면서 소리칩니다.
“엄마아! 난 이렇게 엄마가 보고 싶어 죽겠는데 엄마는 왜 나만 남겨 놓고 먼저 돌아가셨어요? 엄마 미워요, 미워. 으흐흑…….”
윤미는 마침내 방바닥에 엎드리고 어깨를 들먹이며 슬프게 흐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습니다.
멀고도 아늑하게 느껴지는 곳, 그리고 도무지 어딘지 분간을 할 수 없는 곳에서 상냥하고도 부드러운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 오고 있었습니다.
"윤미야! 그렇게 마음이 약해지면 못써! 엄마는 네가 오직 아빠만을 굳게 믿고 의지하며 씩씩하게 지내기를 바라는 것이 소원이란다. 윤미야, 엄마 말 알아듣겠니?“
그토록 그리워하던 엄마의 반가운 목소리를 들려오자 윤미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엄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정신을 바짝 차립니다.
그러나 어떻게 된 일인지 윤미가 정신을 바짝 차릴수록 인자하고 예쁜 엄마의 모습과 목소리는 점점 더 희미하게 멀어져 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안타까울 수가 없었습니다.
”엄마아~~~! 엄마아~~~!“
윤미는 마침내 목청껏 소리소리 지르며 엄마를 부릅니다. 그렇게 다시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는지 모를 일입니다.
이번에는 또다시 윤미의 귓가에 어떤 남자 어른의 굵은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기 시작합니다.
”……?”
윤미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그 목소리를 듣기 위해 다시 귀를 기울입니다.
“면목이 없습니다. 그동안 정희 어머니한테는 신세가 너무 많았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드려야 할지요. 이번에 윤미 엄마가 새사람이 되어 나올 수 있게 된 것은 그 모두가 정희 어머니 덕분입니다.”
“원, 별말씀을 다 하세요. 제가 해드린 게 뭐가 있다고 그러세요.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이번 일은 누가 뭐라 해도 그건 순전히 지난 10년 동안 꾸준히 병원을 드나들며 정성껏 간호를 하신 윤미 아빠의 지성 때문에 그런 기적이 일어난 거라니까요.”
”……?”
가만히 들어보니 그건 아빠의 목소리였습니다. 그리고 아빠의 목소리에 이어 그다음에는 귀에 익은 정희 엄마의 목소리임이 틀림없었습니다.
윤미는 살며시 눈을 뜨고 정신을 가다듬으며 방안을 두리번거렸습니다. 그러나 윤미는 여전히 갈피를 잡기가 어려웠습니다. 지금 방안에는 어느 새 집으로 돌아온 아빠와 정희 엄마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윤미는 아침에 아빠가 집을 나간 뒤부터 지금까지 저도 모르게 방바닥에 아무렇게나 누운 채 긴긴 저도 모르게 잠에 취해 있었던 게 틀림없습니다.
윤미는 다시 눈을 살며시 감더니 몰래 다음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어이구, 그런 말씀 마세요. 정희 어머니, 정말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전 이제는 아무 여한이 없습니다. 그저 우리 윤미와 함께 세 식구가 열심히 그리고 행복하게 살아갈 날만 남은 것 같습니다. 허허허…….”
오늘따라 아빠의 태도는 어느 때와 달라도 너무나 달라진 모습이었습니다. 다른 때 같으면 집에 돌아오기가 무섭게 어두운 표정으로 연신 한숨만 길게 쉬고 있어야 할 아빠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뭐가 그렇게 좋은지 연신 껄껄 웃으며 정희 엄마한테는 고맙다는 말을 벌써 몇 번이나 하고 있는지 모를 일입니다.
이번에는 아빠가 정신 나간 사람처럼 기분이 좋아서 연신 껄껄거리며 웃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정희 엄마가 다시 물었습니다.
“그럼 윤미 엄만 언제쯤 퇴원할 예정이세요?”
“돌아오는 토요일쯤에 퇴원을 할 예정입니다. 의사 선생님도 그러시더군요. 정신 이상으로 입원한 환자가 이렇게 완쾌되어 10년 만에 퇴원할 수 있다는 것은 기적적인 일이라고요. 허허허…….”
"암, 천만다행이고 말고요. 그런 병이 그렇게 낫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요? 이런 때 윤미 오빠도 살아서 돌아온다면 오죽이나 좋으련만…….”
"그야 더 말할 것도 없겠습니다만, 그보다 한 가지 큰 걱정은 지금까지 우리 윤미한테는 엄마가 저 세상 사람이 된 지 오래라고 감쪽같이 속여 왔는데 이제 와서 어떻게 이해를 시켜줘야 할지 그게 가장 큰 걱정입니다.“
거기까지 두 사람의 이야기를 몰래 엿듣고 있던 윤미는 더이상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리고는 아빠를 항해 갑자기 큰소리로 물었습니다.
“아빠! 우리 엄마가 살아 계시다는 게 정말이에요?”
"어이구, 깜짝이야. 너 어느새 우리가 하는 얘길 다 엿들은 모양이구나. 윤미야, 그동안 너를 속여서 미안하구나. 믿기가 좀 힘들겠지만 이제부터 아빠가 하는 얘길 잘 들어보렴.“
윤미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알 수 없는 설움에 복받쳐 아빠의 품을 파고들며 흐느낍니다.
“그만두세요. 이제 다 알고 있어요. 아빠는 그동안 엄마는 이 세상이 없는 사람이라고 나를 속여 온 거지? 그리고 정신 이상이 된 엄마의 모습을 보여 주지 않으려고 지금까지 아빠 혼자만 병원엘 다녀오곤 했던 거지? 아빠가 말하지 않아도 나도 이젠 다 알아요, 아빠, 으흐흑…….”
윤미는 마침내 어깨까지 들먹이며 흐느끼기 시작합니다. 아빠도 덩달아 눈시울을 적시며 몹시 사랑스럽다는 듯 그런 윤미의 등을 말없이 쓰다듬어주고 있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밖에서 갑자기 두런두런 지껄이는 사람들의 인기척이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그 소리에 웬일인가 하고 정희 엄마가 얼른 방문을 활짝 열고 내다봅니다.
"어머나! 어서들 오세요."
어느 틈에 소문을 들었는지 지금 밖에는 반가운 소식을 전해 들은 마을 사람들이 하나같이 밝은 표정으로 하나둘씩 모여들고 있었습니다.
활짝 열어 젖힌 방문을 통해 찬바람이 금세 방안 가득 채우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언제부터 내리기 시작했는지 잔뜩 찌푸렸던 하늘에서는 목화송이보다 더 크고 탐스러운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습니다.
윤미는 지금 그토록 추운 겨울 날씨였지만 갑자기 전혀 조금도 추운 줄을 모릅니다.
아마 지금 윤미는 아빠의 품에 안긴 채 목화송이보다 더 따뜻하고 포근한 엄마의 품을 벌써부터 온몸에 느끼고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