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창작동화

박제들이 본 서울

by 겨울나무

서울의 중심가에 있는 어느 지하도입니다.


이 지하도에는 언제나 헤아릴 수조차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밀려가곤 하며 북적거리고 있었습니다.


지하도 양쪽으로는 의류와 식품을 비롯해서 갖가지 물건들을 파는 가게들이 복잡하게 줄을 지어 늘어서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얼른 행인들의 눈에 띄는 곳은 여러 종류의 새와 산 짐승들이 박제가 된 채 진열되어 팔려나가기를 기다리고 있는 가게였습니다.


박제들 중에는 보기만 해도 사납게 생긴 독수리가 있었습니다. 하늘을 주름 잡던 독수리는 날개를 활짝 편 채 소름이 끼칠 정도로 이글거리는 두 눈을 부릅뜬 채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무섭게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꾀꼬리는 귀엽고 예쁘게 생긴 입을 벌리고 노래하는 모습으로 손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까치는 금방이라도 '깍악 까약‘하고 소리로 짖어댈 것처럼 우는 시늉을 하며 금방이라도 날아갈 것 같은 모습으로 나무 위에 올라앉아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꿩은 길고도 아름답게 생긴 꼬리털을 자랑스럽게 늘어뜨리고 먹이를 쪼아먹는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산토끼는 가뜩이나 길고 큰 귀를 바짝 세우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엿듣기에 바쁩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박제들 중에서 가장 무서운 짐승은 호랑이였습니다.


호랑이는 이글거리는 눈을 부릅뜨고 날카로운 이를 드러낸 채 입을 딱 벌리고 금방이라도 지나가는 사람들을 집어삼킬 것만 같은 자세로 지나가는 행인들을 노려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참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한결같이 호랑이를 조금도 무서워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는 게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간혹 어떤 사람은 겁을 먹기는커녕 약을 올리기도 하였습니다.


“이놈도 한때는 산속의 왕 노릇을 하면서 눈에 뵈는 게 없었을 텐데 이놈 신세도 참 안 됐구나, 안 됐어!”


하고 호랑이가 귀엽다는 듯 겁도 없이 함부로 머리를 쓰다듬어 주기도 합니다.


그때마다 호랑이는 슬그머니 화가 나고 분통이 터져서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쳇! 옛날에 산에 있을 때만 해도 이런 버릇없는 놈을 만났다면 그저 한입에 집어삼키고 말았을 텐데, 어이구 이내 신세야!’


호랑이는 이를 득득 갈기만 할 뿐, 지금은 그 모두가 아무 소용없는 일이었습니다.


답답한 것은 호랑이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독수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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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같으면 하늘을 주름잡는 하늘의 황제라는 별명까지 들었던 독수리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쩔 수 없이 지나가는 사람들의 노리갯감이 되고 만 것입니다.


호랑이와 독수리가 이렇게 마음이 답답하면서도 울컥 화가 치미는 것은 그뿐만이 아닙니다.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다른 짐승들을 보고는 저마다 예쁘고 귀엽다는 표정을 지으며 감탄을 아끼지 않곤 하지만, 호랑이나 독수리에게는 욕을 퍼붓기가 일쑤였기 때문입니다.


"히야! 저 예쁜 꾀꼬리 좀 봐. 금방이라도 꾀꼴꾀꼴하며 곱고 아름다운 노래를 부를 것만 같은걸!“


“히야! 이 꿩의 꼬리털 좀 보라니까. 세상이 이렇게 멋질 수가 있을까!”


지나가던 사람들은 다른 짐승들을 볼 때마다 저마다 이렇게 한 마디씩 지껄이며 칭찬과 감탄을 하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호랑이나 독수리는 놀림을 받거나 욕만 먹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저 살기가 가득한 호랑이의 눈과 날카로운 이를 좀 보게, 얼마나 흉악하고 잔인하게 생겼나. 저런 못된 짐승이 세상이 있다니!“


“아암, 독수리는 또 어떻고. 저 징그럽고 끔찍하게 생긴 부리와 발톱 좀 보란 말이야. 저놈의 부리와 발톱으로 얼마나 많은 동물들을 잡아 먹었을까? 못된 놈의 짐승 같으니라고.”


그러기에 다른 짐승들도 모두 재수가 없어서 이곳에 오게 되긴 했지만, 특히 호랑이와 독수리는 이곳으로 오게 된 것이 후회 막심이었니다.


며칠 전의 일이었습니다.


오랫동안 박제를 만들기 위해 정성과 공을 들인 주인은 마침내 박제가 된 짐승들을 팔기 위해 박제들을 모두 차에 싣고 길을 떠났습니다.


"얘들아, 지금 주인이 우리들을 싣고 어디로 가고 있는 거지?”


"아마 우리들을 팔기 위해 서울로 가고 있는 거래.”


“그래? 히야! 신난다. 그럼 서울 구경 한번 실컷 하게 생겼잖아! 그러고 보니 우리들은 박제가 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는걸!.”


생전 서울 구경을 한 번도 못하고 산과 들, 그리고 하늘만 날던 짐승들이었습니다. 그런 박제들이었기에 이제야 서울 구경을 한번 해보게 되었다고 모두가 기뻐서 마음이 한껏 부풀었습니다.


그러나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박제들은 곧 너무나 실망하고 말았습니다.


서울 구경을 실컷 하기는 커녕 지하도로 끌려오자마자 꼼짝없이 숨이 막힐 것처럼 답답한 가게 안에 갇혀 지내야 하는 불쌍한 신세가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차라리 감옥보다 못한 곳이었습니다.


매일 눈만 뜨면 보이는 것은 미어지도록 쏟아져 몰려 다니는 사람들의 물결, 그리고 여기저기서 시끄럽게 떠들어 대는 장사꾼들의 외치는 소리만 들릴 뿐, 더이상 구경거리라고는 아무것도 볼 것이라곤 없었습니다.


박제들은 이제 그런 하루하루가 못 견디게 지겹고 답답하기만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답답한 지하도에 며칠 묵고 있는 동안 너무나 많은 것을 저절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서울 사람들은 모두 돈이 많고 잘 잘들 산다는 소릴 들었는데 이제 가만히 보니까 인정은 아주 메마른 것 같아.”


지금까지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던 산토끼가 느닷없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고 있었습니다.


산토끼가 중얼거리는 말을 들자 이번에는 꿩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습니다.


“그래? 그건 또 갑자기 무슨 소리니?”


“저길 좀 보란 말이야. 저렇게 매일 하루도 쉬지 않고 손을 벌리고 앉아 동냥을 하고 있는 할아버지를 보고도 도와주는 사람은 별로 볼 수가 없단 말이야.”


산토끼는 지하도 입구에 있는 계단 쪽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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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토끼가 가리키는 계단 중간쯤에는 몹시 늙고 헐벗은 걸인 하나가 차디찬 시멘트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손을 벌리고 있는 불쌍한 모습이 보였습니다.


"모두가 명품 옷으로 치장하고 있는 대로 멋을 부리며 돈을 물 쓰듯 하지만 굶주린 사람을 보고는 모두가 못 본 척 한단 말이야. 그런 걸 보면 돈은 많은지 모르겠지만, 인정은 몹시 메마른 것 같아서 하는 소리야.“


산토끼가 몹시 안 됐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중얼거리자 다른 김승들도 산토끼의 말이 옳다는 듯 아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박제들은 이 지하도에 며칠 묵고 있는 동안 너무나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있는 척하면서 겉만 번드르하게 사치를 내는 것도, 그리고 불쌍한 사람들을 보게 되면 아예 무시하고 외면을 해버리는 것도 돈이 많은 서울 사람들이라는 것을 직접 보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날만 밝으면 이른 새벽부터 늘 시끄럽게 북적거리며 공기가 탁한 곳, 그리고 인정이 마를 대로 마른 서울의 모습을 보고 박제들은 크게 실망한 나머지 곧 정이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박제들이 그렇게 실망한 표정으로 우울해하고 있을 바로 그때였습니다.


“엄마! 여기 좀 봐, 여기 아주 예쁜 새가 있단 말이야.”


엄마를 따라 지하도를 걸어가던 예쁜 여자아이 하나가 꾀꼬리를 보더니 신기한 듯 소리쳤습니다.


엄마는 여자아이가 이끄는 대로 박제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습니다.


"어머나! 정말 까치도 있고 꿩도 있네. 산토끼도 있고. 어머! 귀엽기도 해라.”


엄마와 같이 신기한 표정으로 박제들을 구경하던 여자아이가 이번에는 독수리와 호랑이가 서 있는 곳을 향해 다가왔습니다.


“에그머니나 무서워라! 엄마, 저건 사람을 잡아먹는 무서운 짐승들 아니야?”


여자아이는 사납게 생긴 독수리와 호랑이를 보자 기겁을 하고 놀란 표정이 되어 뒷걸음질을 치며 엄마의 품속을 파고들었습니다.


그러자 안심하라는 듯 엄마가 달래주고 있었습니다.


“아니야. 그렇게 놀랄 것 없어요. 저건 산 놈이 아니라 껍질만 가지고 만든 박제란다.”


엄마는 여자아이의 몸을 꼭 껴안으며 안심을 시켜주고 있었습니다.


“박제라고? 그게 뭔데?”


"짐승들의 뱃속에 있는 내장을 빼내고 솜 같은 것을 넣어서 살았을 때의 모습과 똑같게 만든 거란다. 그러니까 조금도 겁낼 필요 없다니까.”


엄마는 이렇게 달래주면서 안심을 하라는 듯 크게 벌리고 있는 호랑이의 입속에 손을 넣어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그 바람에 호랑이는 또다시 울컥 화가 치밀고 말았습니다.


“으응, 그럼 이것들은 모두 죽은 짐승이란 말이지?”

"그렇다니까.“


여자아이는 그제야 조금 안심이 된 듯 엄마와 함께 지하도의 계단을 올라가다가 무슨 생각에서인지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엄마, 참! 저기 앉아 계신 할아버지한테 돈 좀 드리고 올까?”


여자아이는 조금 전에 본 할아버지를 보자 매우 안됐다는 표정이 되어 찡그린 낯으로 엄마한테 물었습니다.

"그래? 너 할아버지 드릴 돈은 있는 거니?“


"여기 있잖아. 아까 장난감 사려고 가지고 나왔던 돈 말이야.“


여자아이는 손에 꼭 쥐고 있던 만 원짜리 한 장을 얼른 펴 보이며 대답했습니다.


”그래? 그럼 장난감은 어쩌려고?“


”장난감 같은 것은 이제 안 사도 괜찮아. 장난감보다는 배가 고픈 할아버지를 도와드리는 일이 더 급한 것 같은걸.“


”……!“


여자아이는 엄마의 대답을 들을 사이도 없이 성큼 뒤로 돌아가더니 만 원짜리 한 장을 할아버지의 손 위에 얼른 올려놓고는 되돌아왔습니다.


지금까지 그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산토끼가 이번에는 모처럼 흐뭇한 표정이 되어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서울 사람들 인심이 바짝 마른 줄로만 알았는데, 그나마 다행히 아직까지 아이들의 인심만은 아직 따뜻하게 살아있는 것 같은걸!”


마음이 푸근하고 흐뭇해진 것은 다른 박제들도 모두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호랑이와 독수리는 여전히 속이 있는 대로 부글부글 끓고 있었습니다.


“아니, 내가 죽은 호랑이라고? 그리고 감히 겁도 없이 내 입에 함부로 손을 넣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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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는 화가 나서 도무지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자신이 죽은 몸이란 것을 새삼 뒤늦게 깨닫게 되자 그만 맥이 탁 풀리고 말았습니다.


호랑이는 모든 것을 포기한 듯, 그리고 될 대로 되라는 듯 두 눈을 꼭 감아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다른 박제들도 모두 만사가 귀찮다는 듯 그리고 피곤이 쌓인 듯 덩달아 눈을 감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지나자 박제들은 어느새 깊은 잠에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아마 지금쯤 박제가 된 짐승들 모두가 신나는 꿈을 꾸고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마음껏 뛰놀며 즐겁게 지내던 그 옛날의 산과 들, 그리고 드높은 하늘을 향해 신바람이 나서 달려가고 있는 꿈을 말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