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나 물건을 귀신도 모를 정도로 기가 막히게 잘 훔치는 재주를 가진 도둑이 있었습니다. 그런 재주를 가졌기에 세상의 돈이나 물건이 모두 그의 몫이었습니다.
그는 그런 도둑질로 인하여 한평생을 호의호식하면서 편안히, 그리고 여유롭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히야! 그 집 참 으리으리하고 굉장하구먼!”
“허어, 옛날 임금님이 살던 대궐보다 더 호화로운걸!”
도둑이 살고 있는 집은 너무나 으리으리하면서도 번쩍번쩍하여 그 집을 한번 본 사람들마다 입이 쩍 벌어지곤 하였습니다. 마치 대궐처럼 호화로웠습니다.
집만 그런게 게 아니었습니다. 집 주인인 도둑이 많은 월급을 주고 거느리고 있는 하인만 해도 무려 열 명이나 넘었습니다. 집을 지키는 일을 맡은 경호원, 청소부, 영양사, 정원사, 운전기사 등등…….
도둑은 이제 나이가 70이 넘은 노년의 신사였습니다.
적당하게 큰 키에 귀티가 줄줄 흐를 정도로 마음씨 좋게 잘생긴 중후한 얼굴, 누가 보아도 금방 첫눈에 반할 정도로 인상이 좋은 미남형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누구나 이 사람을 나쁜 도둑질을 할 사람이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기는 이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모두가 마찬가지였습니다. 도둑질이나 하며 먹고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우리 주인은 하는 일 없이 하고한 날 집에서 빈둥빈둥 놀고 있으면서도 웬 돈이 그렇게 많은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단 말이야.”
“아따 이 사람 걱정도 팔자구먼, 월급이나 꼬박꼬박 잘 받으면 그만이지 별걱정을 다하고 있네.”
“하긴 그래. 힘든 일을 시키는 것도 아니면서 월급을 그만큼 많이 주는 사람도 아마 없을 거야."
“아암, 그런 걸 생각하면 우리가 앞으로는 내일처럼 주인을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일을 해야 되지 않겠어?”
“물론이지. 그래야 하고 말고. 그나저나 웬 돈이 그렇게 그렇게 많은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단 말이야.”
이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항상 월급을 두둑이 주며 인자하게 생긴 주인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 고마움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주인의 말이라면 그 어떤 일도 서슴지 않고 몸과 마음을 바칠 각오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여봐라! 밖에 아무도 없느냐?”
어느 날 갑자기 안채에서 위엄있는 주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그러자 사방에 흩어져 있던 일하는 사람들이 삽시간에 안채로 모여들었습니다.
“주인 나으리, 무슨 분부이신지요?”
“내가 오늘은 어딜 좀 다녀올 데가 있으니 준비를 서둘러라!”
주인이 이렇게 말하며 거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자 거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하인 중의 하나가 신발장에 있던 구두를 꺼내더니 주인이 신기 좋게 공손히 주인 앞에 내려놓았습니다.
"예, 여기 구두를 대령했으니 어서 신으십시오. 주인 나으리.“
그다음에는 다른 사람 하나가 두 손으로 받쳐 들고 기다리고 있던 지팡이를 공손히 내밀었습니다.
"여기 단장이 있습니다. 나으리.“
하인들의 호위를 받으며 대문 밖으로 나오자 어느 틈에 준비됐는지 운전기사가 까만 색깔의 고급 승용차의 문을 열어젖힌 채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조심해서 타십시오, 주인 나으리.“
승용차의 뒷문을 열고 대기하고 있던 운전기사가 주인을 깍듯이 모셨습니다.
주인이 남산만큼이나 커진 배와 비대한 몸을 간신히 추스르며 차에 오르자 운전기사가 깍듯이 물었습니다.
"오늘은 어디로 모실깝쇼? 주인 나으리.”
“음, 지난번에 갔던 한의원으로……. 요즈음 날이 갈수록 자꾸만 온몸이 무거워지면서 여기저기 욱신거린단 말이야.”
주인은 목을 몇 번 뒤로 젖혀 보이면서 몹시 피로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이렇게 대꾸했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주인 나으리.“
운전기사가 차의 시동을 걸고 핸들을 잡는가 했더니 승용차는 소리도 없이 조용히 굴러가기 시작했습니다.
“다녀오십시오, 주인 나으리!”
“안녕히 다녀오십시오!”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지금까지 차 앞에서 한 줄로 서 있던 사람들 모두가 90도 각도로 허리를 굽혀 공손히 인사를 하였습니다. 주인은 입을 꾹 다문 채 여유있는 표정으로 그들에게 손만 흔들어 보이고 있었습니다.
“요즈음 주인 나으리의 건강이 몰라보게 수척해지는 것 같아 은근히 걱정입니다.”
운전기사가 흔들리는 차 속에서 걱정스러운 듯 이렇게 입을 열었습니다.
"자네가 보이에도 그렇게 보이나? 침을 맞아도 별로 효과가 없는 것 같아.“
눈을 꾹 감은 채 이렇게 대답하고 있는 주인의 목소리는 전과 달리 기운이 쭉 빠진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따라 주인은 자신감마저 모두 잃은 듯 목소리조차 힘이 없고 쓸쓸해 보였습니다 .
눈을 감고 있는 주인의 눈에는 마냥 당당하기만 했던 지난 날의 행복한 일들이 뭉게구름처럼 눈앞에 선하게 떠올랐습니다.
'아아! 왜 사람들 모두가 왜 나이를 먹고 늙게 되면 죽게 되는 것일까! 언제까지나 죽지 않고 영원히 행복하게 살아갈 수는 없단 말인가!‘
주인은 이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엉뚱한 욕심이 생겼습니다. 갑자기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요즈음 날이 갈수록 자신의 건강이 약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부럽지 않았던 주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건강하고 튼튼했던 지난 날들이 새삼 그리워지곤 하였습니다.
일단 마음만 먹었다 하면 남이 가지고 있던 그 어떤 돈이나 재산을 귀신도 모를 정도로 감쪽같이 훔쳐내는 놀랄만한 재주를 가지고 있는 주인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돈만 많이 가지고 있다면 안 되는 일이 없는 살기 좋은 세상이라고만 굳게 믿어 왔던 주인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돈만 주면 마음껏 부릴 수 있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습니다. 필요한 물건도 얼마든지 구할 수가 있었으며 호의호식하면서 편한 세상을 즐겁게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돈이 많다 보니 누구나 굽신거리고 받들며 우러러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에 와서는 그게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건강만큼은 아무리 돈이 많아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뒤늦게야 절실히 깨달게 되었습니다.
돈많은 주인이 요즈음 건강이 차츰 나빠지기 시작한 것은 고혈압과 당뇨 등, 병이란 병은 모두 가지고 있는 이른바 종합병원이었습니다.
그러나 벌써 여러 해 동안 열심히 병원에 다니면서 치료를 받아보았지만 별로 차도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요즈음 언제부터인가는 유묭하다는 한의원으로 침을 맞으러 다니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처럼 동작이 날래고 번개처럼 빨랐던 주인의 몸은 이제 날이 갈수록 점점 뚱뚱해지면서 편안히 숨을 쉬기조차 힘이 들었습니다.
달리는 차에 앉아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주인이 갑자기 무슨 생각을 했는지 생기가 나서 눈을 번쩍 떴습니다. 그리고는 기사를 향해 좋은 생각이 난 듯 운전기사를 향해 큰소리로 입을 열었습니다.
"이봐, 차를 잠깐 멈추게나!“
그러자 소리 없이 미끄러지듯 달리던 차가 길가에 멈추었습니다.
기사가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어 주인에게 물었습니다.
”주인 나으리, 왜 그러십니까?“
"자네 혹시 알고 있나? 앞날을 훤히 내다본다는 어느 유명한 예언가 말일세.“
“얼마 전에 한동안 신문과 방송에 떠들썩했던 그 예언가 말씀입니까?“
“옳지, 그래 맞았어. 그곳으로 방향을 바꾸게나!”
"예, 알겠습니다.”
운전기사는 머리를 한번 갸웃거리더니 두 말없이 차를 돌리더니 다시 속력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세상 어떤 일이든지 척척 알아맞힌다는 유명한 예언가가 있는 곳은 도시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위치한 어느 여관방이었습니다.
한참 달린 뒤에 마침내 돋보기를 쓰고 여관방에 거만스럽게 버티고 앉아 있는 그 유명한 예언가 앞에 주인이 마주앉게 되었습니다.
“그래 자네는 무슨 일로 나를 찾아왔는고?”
예언가가 돋보기 너머로 도둑의 모습을 위 아래로 훑어보며 거만스럽게 물었습니다.
주인은 그의 태도를 보고 좀 아니꼽기는 했지만 할 수 없이 겸손하게 대답하였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고명하신 선생님께 앞으로 저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여쭈어보기 위해 이렇게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주인의 관상을 이리저리 자세히 살펴보고 있던 예언가가 다시 거만스럽게 입을 열었습니다.
“보아하니 참 이렇게 편안한 팔자가 다 있나! 도대체 무얼 하는 사람이기에 그렇게 많은 재산을 모으게 되었지?”
예언가의 물음에 주인은 찔끔 놀라는 표정이 되어 굳어지면서 얼버무리며 대답하고 말았습니다.
"네, 그, 그냥 아무 하는 일도 없이 그냥 노, 놀고 있습니다.“
그러자 예언가는 갑자기 화를 벌컥 내면서 다시 물었습니다.
“뭐라고? 아무 하는 일도 없다면서 웬 돈과 재산이 그렇게 많은 거지? 그렇다면 혹시 부모님이 물려준 재산이란 말인가?”
"아, 아닙니다. 그게 아닙니다. 선생님! 딴 건 묻지 마시고 그저 저의 운명이나 좀 말씀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아니 뭐라고? 거 참 희한한 사람 다 보겠군. 좀 서운하게 들리겠지만 자네 운명은 앞으로 길어 봤자 고작 2년이란 말이야.“
”……!?“
예언가의 말에 순간 주인의 낯빛은 하얗다 못해 새파랗게 질려버린 채 입이 딱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만일 예언가의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까지 애써 모은 돈이나 재산이 너무나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억울하기도 하였습니다.
한동안 입을 쩍 벌린 채 정신을 잃고 어리둥절해 있던 주인이 정신이 좀 들었는지 다시 예언가를 향해 묻게 되었습니다.
“서, 선생님! 저는 앞으로 더도 말고 십 년만 더 살고 싶습니다. 무슨 방법이 좀 없을까요? 꼭 좀 도와주십시오.”
"허어, 보아하니 이 사람 욕심이 대단하군. 재산도 힘을 들이지 않고 모은 것 같은데 게다가 생명까지 더 연장하고 싶다 이 말씀이렷다?“
그렇지 않아도 건강이 안 좋은 주인은 입이 바작바작 타들어가는지 이번에는 혀로 입술을 축이고 나서 예언가에게 매달리고 있었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제발 어떻게 좀 살려주십시오.”
"그래, 그렇다면 자네가 더 살고 싶다는 가장 큰 이유가 도대체 뭐지? 어디 그걸 먼저 말해 보게나.”
예언가의 물음에 주인은 갑자기 고개를 떨어뜨리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도둑은 더 살아야 할 아무 이유도, 그리고 의미도 없다는 것을 이제야 겨우 뒤늦게 깨닫고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돈만 많으면 얼마든지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그렇게 생활을 해오고 있던 주인이었습니다.
그런데 2년 안에 죽는다는 말을 듣자 문득 이렇게 죽기는 너무나 허무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무슨 일이든 보람있는 있을 단 한번이라고 해보고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주인이 다시 눈물을 흘리며 입을 열었습니다. 주인의 얼굴 표정은 이제 뒤늦게나마 크게 뉘우치는 빛이 역력하였습니다.
"선생님, 제발 저에게 십 년이라도 더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 꼭 해보고 싶은 일이 있어서 그럽니다. 부탁입니다.“
“그럼 내가 시키는 대로 할 수 있다고 약속할 수 있겠나?”
“예, 말씀만 하십시오.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지 하겠습니다.”
“잘 생각했네. 자네가 더 오래 살 수 있는 방법은 다른 게 아니라네. 다만 지금부터라도 돈이 많다고 가만히 앉아서 너무 편안한 것만 바라지 말고 열심히 움직여 보게. 그렇게 열심히 뛰다 보면 자네의 목숨도 저절로 십 년, 아니 이십 년이나 삼십 년까지 연장될는지 모를 일이라네. 허허허…….”
예언가는 매우 만족하다는 듯 환해진 표정이 되어 큰소리로 웃어대고 있었습니다.
예언가의 그 말을 듣고 한껏 기분이 좋아진 주인은 갑자기 날아갈 것처럼 몸이 가벼워진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앓고 있던 병의 고통스러움도 잊은 채 갑자기 온몸에 날개를 단 듯 새로운 힘이 용솟음쳐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