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겉과 속]
나라에서 두 번째 가라면 서운할 정도로 굉장히 큰 재벌 그룹이 있었습니다.
이 그룹이 매력이 있는 것은 다른 어느 회사들보다 월급도 많고 대우도 아주 좋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일이 많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일도 간단하고 훨씬 쉬운 편이었습니다.
그러기에 해마다 이른바 명문 대학을 졸업한 실력이 대단한 엘리트들이 이 그룹에 응시하기 위해 구름처럼 몰려들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그룹에 입사를 하기 위해서는 좀 특별한 데가 있었습니다. 대단한 실력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사람의 마음씨, 즉 인성을 더욱 중요하게 여기는 회사였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일단 이 그룹에 어렵게 합격을 했다 하더라도 눈곱만한 옳지 못한 행동 하나라도 그것이 발견되기만 하면 가차 없이 곧 쫓겨나야만 하는 것이 이 그룹의 특징이기도 하였습니다.
옳지 못한 행동이란 따지고 보면 어떻게 보면 그리 대수로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가령 남의 물건을 훔쳤을 경우에는 훔친 물건이 크든 작든 두말 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또한, 직원 사이에 예의에 벗어나거나 공연히 남의 기분을 언짢게 해주는 일이 발견만 되어도 곧 쫓겨나야 하는 매우 까다로운 회사이기도 하였습니다.
‘마음씨가 바르고 착한 사람들만 데리고 일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 일일까!’
이 그룹에서 가장 높은 회장님은 자나 깨나 늘 이런 생각만을 하는 좀 색다른 분이었습니다.
이 그룹의 회장님이 바라는 것은 실력보다는 우선 사람의 마음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정이 많고 정직하며 부지런한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사원들끼리 사소한 일로 남을 공연히 헐뜯거나 말다툼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랬다가는 인정사정없이 그룹에서 내쫓기게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기에 회장님의 성격은 어떻게 보면, 인정이 햇솜처럼 부드러워 보이면서 한편으로는 이 세상에서 가장 냉정하고 무서운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회장님의 성격이 이렇게 된 것은 분명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어느 해 겨울의 일이었습니다.
회장님은 느닷없이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던 직원들을 비상벨까지 울리면서 대강당으로 급히 모이도록 하였습니다.
“여러분을 이렇게 갑자기 모이시게 한 것은 그동안 열심히 우리 그룹을 위해 열심히 일해오셨기 때문에 그 감사함에 보답하기 위해 특별 휴가를 드리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제 내일부터 여러분에게 똑같이 열흘간의 휴가를 드릴 생각입니다. 그러니 편안한 마음으로 돌아오는 크리스마스와 설날까지 각자 마음껏 즐겁고 뜻있는 날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갑자기 휴가를 내주겟다는 회장님의 말에 사원들은 무슨 영문인지를 모르고 어리둥절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뜻밖의 휴가를 준다는 말에 직원들 모두가 활짝 밝아진 표정이 되어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우리 사장님 만만세!”
직원들이 이렇게 기분이 좋아져서 소리치자 회장님이 다시 천천히 말을 이어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자자! 여러분, 잠시 조용히 해주시고 잠깐 제 얘기를 좀 더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그 대신 이번 휴가 때에는 다른 때와 달리 숙제를 한 가지씩 내드리겠습니다. 숙제는 아주 간단한 것입니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 숙제란 다름이 아닌 열흘 동안의 휴가 기간에 남을 위해 선행을 반드시 한 가지 이상 해주시길 바랍니다.”
회장님의 설명을 들은 직원들은 그 숙제가 어떤 것인지 얼른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숙제 같은 게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숙제보다는 열흘간이나 쉬게 해준 회장님의 고마움에 대해 진실로 고마움을 느끼며 벌써부터 신바람이 났습니다.
그렇게 열흘간의 휴가는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직원들 모두가 건강한 몸으로 다시 출근하게 되었습니다.
열흘만에 직원들이 출근을 하자, 회장님은 다시 직원들을 한 사람씩 회장실로 불러들였습니다. 그리고는 휴가를 어떻게 보냈는지 꼬치꼬치 자세히 묻기 시작했습니다.
"그래, 김 부장은 이번 휴가를 어떻게 보내셨소?"
"예, 회장님 덕분에 아주 푹 쉬면서 즐거운 휴가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마음껏 쉴 수 있었다니 내가 오히려 고맙소. 그런데 내가 내준 숙제는 어떻게 해 보셨는지요?”
“예, 예, 물론입니다.”
회장님의 질문에 김 부장은 흠짓 놀라는 기색이었으나 얼떨결에 틀림없이 숙제를 했다고 대답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웃에 가난한 마침 형편이 어려운 사람이 있어서 도와주게 되었다고 표정으로 그만 거짓말을 하고 말았습니다.
"아, 그러셨군요. 정말 좋은 일을 하셨소. 그밖에 또 다른 일은 없었소?“
"예, 없습니다.”
"김 부장! 내 부탁을 들어줘서 정말 고맙소, 자, 이건 그동안 수고한 대가로 특별히 드리는 보너스이니 아무 부담 말고 받아 주시오. 그 대신 다른 직원들한테는 절대로 이 봉투를 받았다는 것을 말하지 말고 꼭 비밀을 지켜주도록 하시오. 알겠소?“
회장님은 이렇게 말하기가 무섭게 곧 책상 서랍 속에 있던 봉투 하나를 김 부장에게 건네주었습니다. 그건 보나마나 봉투가 얄팍한 것으로 보아 수표임에 틀림없였습니다. 의외의 봉투까지 받은 김 부장은 양심에 찔려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아, 아닙니다. 회장님, 이, 이런 건 안 주셔도 괜찮습니다.”
"그러지 말고 회장의 성의라고 생각하고 어서 받아주시기 바라오.“
김 부장은 거짓말을 한 것이 은근히 양심에 찔려 차마 봉투를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회장님의 명령이라는 말에 별수 없이 봉투를 받아 손에 들고 수십 도 각도로 깍듯이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고 회장실을 나왔습니다.
김부장이 나가자 회장님은 금방 언짢아진 얼굴이 되어 낯을 찡그리며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습니다.
'허어,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다더니 저렇게 겉과 속이 다른 저런 사람을 몰라보고 부장 자리까지 주며 속았다니 내가 정신이 나가도 한참 나갔었지! 쯧쯧쯧…….‘
그다음으로 회장실에 들어온 것은 박 과장이었습니다.
"그래, 박 과장은 이번 휴가를 어떻게 보내셨소?"
회장님이 직원들이 하나씩 바뀌어 들어올 때마다 묻는 말은 마치 녹음기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처럼 판에 박은 듯 똑같은 말이었습니다.
”회장님 덕분에 아주 잘 보냈습니다.“
“잘 보내셨다니 정말 다행이오. 그럼 휴가를 보내는 동안 혹시 댁에서 무슨 일은 없었소?”
회장님의 물음에 박 과장 역시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며칠 전에 한창 집에서 쉬고 있을 때 노인 한분이 구걸을 하러왔던 일이 문득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때 노인은 조금만이라도 도와달라고 애걸을 하고 있었지만, 박과장은 귀찮다는 생각에 소리를 버럭 지르며 그냥 돌려보냈던 일이 떠올랐던 것입니다.
그러나 박 과장은 순간 배에 힘을 주고는 양쪽 손을 모아 서로 부비며 서슴없이 거짓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하! 예예, 있었습니다, 웬 노인 걸인 한 분이 저희 집 대문 앞에 와서 구걸을 하는 소리가 들리기에 따뜻하고 푸짐한 대접을 해서 보내드린 적이 딱 한 번 있었습니다. 그때 어찌나 불쌍하던지요. 헤헤…….”
박과장의 말에 회장은 매우 흥미롭다는 듯 다시 물었습니다.
“허어,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래서 어떻게 도와 드리게 되었단 말이오?”
박 과장은 내친김에 이번에는 더욱 번지르르하게 다시 거짓말을 늘어놓게 되었습니다.
“예, 아주 남루한 차림에 추위에 덜덜 떨고 있는 아주 불쌍한 노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곧 그 노인을 방으로 모셔다 몸을 녹여 드린 다음, 제가 입던 옷가지를 한 보따리 싸 드리고 돈까지 넉넉히 드려 보냈습니다.”
박과장의 얘기를 흐뭇한 표정으로 끝까지 듣고 난 사장님은 이번에도 슬그머니 얇은 봉투 하나를 꺼내더니 박 과장에게 내밀며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허어, 정말 좋은 일을 하셨군요. 그리고 내가 내준 숙제를 제대로 해주셨습니다. 정말 고맙소. 자, 이걸 받으시오. 그동안 좋은 일을 하신 대가로 내가 은밀히 드리는 것이니 그 대신 미리 뜯어보지 말고 꼭 댁에 가서 뜯어보도록 하시오. 그리고 절대로 다른 사람들한테는 봉투를 받았다는 것을 비밀로 해야 합니다. 아셨죠?”
“네, 알겠습니다. 회장님! 가, 감사합니다.”
김 부장은 죄스러운 마음, 그리고 너무나 황송한 마음을 억누르며 봉투를 받아 속주머니에 넣고는 인사를 깍듯이 한 후 회장실을 물러 나왔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역시 우리 회장님은 내 말이라면 무조건 믿어 주신단 말이야. 핫하하…….’
박 과장은 저 혼자만 봉투를 받았다는 생각에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회장님과의 약속대로 봉투를 받은 사실만은 비밀을 지키기로 하였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박 과장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회장실을 들어갔다가 나온 직원들의 표정은 모두가 한결같이 환하고 밝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알고 보면 회장님은 직원 누구나에게 빠짐없이 칭찬의 말을 아끼지 않았으며 또한 누구에게나 빠짐없이 봉투를 하나씩 나누어 주는 일을 잊지 않았으니까요.
그리고 다음 사람, 또 다음 사람, 이렇게 계속 회장실을 부리나케 드나드는 동안 늦은 저녁때가 다 돼서야 직원들 모두를 한 사람씩 만나보게 되었습니다.
결국 직원들 중에는 좋은 일은 조금도 하지 않고 거짓말을 번드르르하게 하여 봉투를 받아간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와는 반대로 몇몇 사람들은 남을 돕거나 좋은 일을 하지 못한 사실을 그대로 회장님께 말씀드리고 용서를 빈 양심이 바른 직원들도 더러 끼어 있었습니다. 또 더러는 회장님과의 약속대로 정말 좋은 일을 한 사람도 드물게 있었습니다.
회장실에서 나온 직원들 중에는 궁금함을 참다 못해 다른 직원에게 서로 물어보기에 바빴습니다.
"여보게, 사장님께서 자네한테는 뭘 물어보시던가?"
“숙제를 했느냐구 물으시더군. 그럼 자네한테도 그렇게 물으시던가?"
”응, 물론이지. 그럼 다른 건 묻지 않으시던가?“
”응, 그래 그렇지! 혹시 휴가 동안에 걸인이 집에 온 적이 없었느냐고 물으시더군.“
그 이야기를 들은 직원은 순간 깜짝 놀라는 표정이 되어 다시 물었습니다.
"허어, 그래? 그래서 자넨 뭐라고 대답했나?“
“사실은 말야. 난 그게 양심에 찔려 못 견디겠단 말이야. 그런 사람이 딱 한 번 우리 집에 온 적은 있지만 귀찮아서 그냥 돌려보냈단 말이야. 그리고 회장님 앞에서는 거짓말을 했거든.”
“아니 뭐라고? 자네도 그랬었구먼. 사실은 나도 그게 지금까지 자꾸만 마음에 걸린단 말이야. 그리고 또 다른 일은 없었나?”
"다른 일이라니? 그건 또 무슨 말이지?“
"아, 아무것도 아닐쎄.“
”……?’
결국은 봉투 얘기를 물어볼까 하고 입이 근질근질하였지만 그것만큼은 비밀로 해달라는 회장님의 부탁 때문에 말을 끊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날 저녁이었습니다.
그날 직원들은 다른 날과 달리 저녁 늦게 퇴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퇴근하자마자 궁금함을 견디다 못해 곧장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봉투 속에 얼마나 많은 돈이 들어있는지 그게 몹시 궁금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는 집에 돌아오기가 무섭게 봉투부터 뜯어보게 되었습니다.
허걱!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요? 틀림없이 수표에 많은 돈이 적혀 있을 것으로만 믿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봉투 속에 있는 쪽지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내용의 쪽지는 오늘 회장님 앞에서 거짓말을 한 모든 사람들의 봉투 속에 똑같이 들어 있었습니다.
또 어떤 직원의 봉투 속에는 이런 글귀가 들어있었습니다.
'아니, 어떻게 내가 거짓말을 했다는 걸 아셨을까?‘
거짓말을 했던 직원들은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고 말았습니다.
열흘간의 특별 휴가를 준 회장님, 그는 걸인 차림으로 꾸미고 그동안 직원들의 집을 일일이 방문하였던 것입니다.
'믿을 수 없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더니 나 참 기가 막혀서 워언!’
그날 저녁, 회장님은 다시 새로운 직원을 뽑는 일에 대해 이런 걱정 저런 걱정으로 밤이 깊어 가는 줄도 모르고 고심에 고심을 되풀이하고 있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