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를 통해 평화와 평등을 얻는 법

타인을 통해 진정한 평화와 평등을 얻는 법.

by 이나

일방적 이해란 없다.



사람들을 만나고 서로 소통을 하는 과정과 방법은, 고민할 필요도 없고 어려울 것도 없이 서로의 마음을 들어주는 것이다. 말투가 어떠하고 어떤 단어를 써야 할지 고민할 필요도 없이, 진심 어린 마음으로 상대방의 말을 들어주면 된다. 해결해줄 필요도 없고 그저 옆에서 들어주고 같이 고민해주면 된다. 해결은 다른 곳에 있지 않다. 나의 마음을 공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감사함과 안정감을 느끼는 것. 그거 자체가 해결이다.


사람마다 순서의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나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마음을 먼저 듣고 이해하는 편이다. 그렇게 내가 먼저 양보를 한 다음에 내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내가 먼저 들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 상대는 이 세상에 분명히 존재한다.


오로지 자신의 이야기만 하려고 하고, 자신의 감정만을 풀어내고 또 위로받으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상대가 아무리 이야기를 들어주고 보듬어줘도 끝내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 그들(A)의 대화법은 보통 이러하다.



A :“나 몇 년째 입사 준비만 하고 있는데 너무 힘들고 서럽고 세상이 원망스럽다.. “

B :“많이 힘들겠다.. 나도 이 회사 준비만 2년 했잖아 고생 조금만 하면 언젠가 빛을 볼 거야!”

A : “정말 고마워.. 날 이해해주는 사람은 너밖에 없다! 나한테 합격 비결 좀 알려주면 안 돼?!”

B : “ 그 회사 서류는 이렇게 하면 되고 면접은 이렇게 하면 돼!"

A : “고마워! 나중에 꼭 내가 밥 사 줄게!” (라고 말하면 다행) (번역 : 내가 필요할 때 다시 부를게)


이 대화는 나의 기준에서 정말 잘못된 대화라고 생각한다. 먼저 마음을 털어놓는 A의 대화흐름에서는 오로지 자신밖에 없고 말을 들어주는 B는 전혀 없는 대화 맥락이다. A의 마음에서 시작해 A의 해결로만 끝이 난 대화이다. 이 대화가 정상적인 소통이 되려면 이렇게 되어야 한다.


A :“나 몇 년째 입사 준비만 하고 있는데 너무 힘들고 서럽고 세상이 원망스럽다.. “

B :“많이 힘들겠다.. 나도 이 회사 준비만 2년 했잖아 고생 조금만 하면 언젠가 빛을 볼 거야!”

A : “정말 고마워.. 날 이해해주는 사람은 너밖에 없다! 너도 많이 힘들었지?...

B : “좀 힘들었지! 그래도 내가 먼저 경험했으니 도움되는 거 있으면 알려줄게!"

A : “고마워! 필요한 부분 있으면 물어도 돼?”

B : “얼마든지!!”



이 두 대화에서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대충 읽어도 느낄 수 있다. 전혀 다른 대화방식, 대화흐름, 서로에 대한 존중과 이해의 유무의 차이이다. 자신의 힘듦을 먼저 말해도 된다. 하지만 소통의 과정에서 상대방의 힘듦 또한 이해하려는 마음으로 상대를 대해야 한다. 그렇지 못할 거면 상대와 대화하지 말고 혼자 일기장에 끄적이고 혼자 삭히면 된다. 그렇게 혼자 끙끙 앓다가 화병 나서 죽으면 된다.


놀랍게도 나는 이런 사람들을 머리로 이해는 한다. “마음이 너무 힘든 사람들이구나, 사람마다 마음의 정도는 다르니까.. 저렇게라도 스스로의 감정을 추스를 수 있다면 저럴 수 있지.. “라고 이해한다. 하지만 내 마음을 줄 만큼 애정이 가지는 않는다. 물론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서 나 자신을 먼저 생각하는 건 멋진 일 중 하나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타인이 섞여 있다면 그 순간만큼은 나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는 자세, 태도가 필요하다. 타인 또한 이기적으로 대한다면 그건 죽었으면 좋겠다.


이렇듯 타인을 대할 때는 항상 조심스럽게, 타인의 생각은 입장은 마음은 감성은 무엇인지 항상 고민하며 말을 해야한다. 정말로 어릴 때부터 보고 자라온 거리낌 없는 친구사이가 아니라면.


애석하지만 현대사회는 너무나 이기적이다. 세상이 점점 자신과 다른 것은 惡으로 치부하며, 뜯고 씹는다. 나의 테두리 안에서 나를 합리화하는 논리 속에서 나를 세뇌하고 타인을 깎아내리려고 온 에너지를 쏟는다. 그렇게 점점 자신과 맞는 것을 찾으며 <개인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런 이기적 개인주의 사회는 이상적인 개인주의가 아니다. 정말 합리적인 개인주의의 전제는 <상대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 이 되어야 한다. 모든것을 선과 악 둘중에 하나로만 생각하는 그들에겐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사회 평화의 전제는 평등이다. 그러나 그 평등이란 것이 실현되는 건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개인과 개인 간의 짧은 대화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것이 불평등인데 하물며 단체와 단체, 더 크게는 노인과 젊은이, 남과 여, 오른쪽과 왼쪽 등은 절대,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합의점을 찾을 수 없다. 아무리 유능한 지도자가 나와도 이들 사이에 평등점을 제시해줄 수 없다. 그저 냉전이 평생토록 지속시켜주면 아주 유능하고 다행인 것이다. 그게 <평화>는 아니지만 <평화처럼> 보이긴 한다. 적어도 내가 살아있는 이 100년동안 완전한 유토피아는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단 한 가지는 노력하면 된다. 그것은 개인과 개인이다. 개인과 개인 사이는 노력하면 평화가 찾아온다. 합리적인 개인주의가 무엇인지 생각하며, 타인에게 이해와 배려의 전제로 자신의 인생을 하나하나 만족으로 채워나가면 나는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 만큼은 평화롭고,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다.


공감능력이 아니라

공감 노력이다.


세상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불공평하다. 그래서 이 세상이 모두에게 <진짜> 평등한 건 불가능하다고 판단을 했고 그러기에 세상은 진정 평화롭기 어렵다고 판단을 했다. 하지만 내가 살아가는 나의 마음 나의 눈으로 나를 평화롭게 만들어 줄, 그리고 내가 평화롭게 만들어 줄 사람은 있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은 오로지 나의 마음속에 있는 사람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