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이후 첫 직장 취업까지
출근하는 버스 안에서 갑자기 생각이 떠올랐다. 나의 인생을 정리하는 글을 써보자. 나의 인생.. 한쪽 방향으로는 나의 가정, 그리고 다른 방향으로 직장 이야기 이렇게 두 가지 방향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먼저 직장 이야기를 이렇게 적게 된다. 이 내용은 거창하게 말해서 자서전이라고 하기에는 뭐하고 그냥 나의 인생에 대한 성찰을 위한 나의 기록 정도로 정의하고 적어 나가고자 한다.
솔직히 대학시절 나는 취업에 대한 걱정은 거의 없이 지냈다. 워낙에 낙천적인 성격이기도 해서 아무 생각 없이 막연히 나의 미래는 찬란할 거라는 기대도 있었지만 1997년 IMF 외환위기가 터지기 전까지 내가 다닌 부산대학교 졸업생들은 서울지역 대학생들이 내려오지 않는 경남지역(창원, 구미, 거제 등) 도시의 대기업에 원서만 내면 5개 중 4개는 합격할 정도로 경제성장의 시기의 취업 특권을 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졸업시기는 1998년 2월 딱 IMF 외환위기가 터지고 우리나라 모두(기업이든지, 개인이든지, 하물려 국가도)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던 시기였다. 일단 기업들은 합격 통지를 했던 사람들까지 취소를 하면서 위기 경영을 선포한 시기였고 이제 대학에 적을 둘 수 없었던 나 또한 특별히 뭘 해야 할지 몰랐다. 대학원을 가기에는 집안 사정이 그리 넉넉하지 않았고 거의 10년간 사귀던 지금의 아내도 기다리고 있었다. 다만 공부를 더 하고 싶은 맘은 간절했다. 일단 대학 4학년 때 급 재미가 생긴 IT 기본 지식과 코딩에 대해 더 배우고 싶어 LG소프트 스쿨 6개월 과정을 등록하고 일단 사회 진출 완충기간을 가졌다. 그리고 그 사이 조금씩 사회도 외환위기의 충격에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는 듯싶다.
대학시절 산업공학이 전공인 나에게 그 학원의 기간의 교육은 참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향후 벤처에서 같이 일한 동료이자 친구를 만나는 시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의 기대와 다르게 그 학원에서 6개월 배웠다고 그걸 인정해주고 뽑아주는 곳이 있지 않았다. 그래서 여기저기 이력서를 내다가 일단 취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구미에 한 전자제품 공자에 취업을 했다.
3개월 정도 잠시 일했던 곳이기에 크게 무엇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한번 모든 사무직까지 불려 가서 TV 안테나 포장을 한 기억이 있는 걸 보면 각종 전자부품을 만드는 회사 아니었나 싶다. 첫 월급은 80만 원이었다. 구미에서 생활하기에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에게 회사 전산시스템도 관리할 수 있는 권한과 책임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업무시간 이후 이것저것 회사 시스템을 둘러보고 공부하고 있는데 우리 과의 과장님이 10년도 넘었는데도 월급이 120만원이었다.
그 금액을 본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현재 나의 월급으로 80만원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10년 후 나의 월급이 120만원은 도저히 아니지 않나" 10년 후 월급으로는 120만원은 도저히 지낼 수 있는 금액은 아니었다. 그래서 이 회사에서는 벗어나고 싶었다. 이제는 20년이 넘어서 무엇이 먼저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 시절 친구에게서 자신의 회사로 올 생각이 있는지 물어왔다. LG소프트 스쿨에서 같이 조별 활동을 하면서 친해진 친구였는데 그 시절 좋게 보았는지 나에게 제안을 해왔다.(사실 이 시기에는 자신감이 넘치는 시기여서 허세도 가득한 시점이라 소프트 스쿨 시절 엄청 잘난 척을 했을 것으로 지금 와서 보면 생각이 든다.) 그래서 구미 공장을 정리하고 서울 IT벤처회사에 다시 신입사원으로 입사를 했다. 그 시기가 1998년 8월이었나 보다 11월에 결혼을 하기로 아내와 이야기했는데 새로 들어간 회사에 어떻게 3개월 후 결혼해야 한다고 이야기해야 하나 고민했던 걸 보면 말이다.
그런데 나를 회사로 불렀던 친구 녀석이 나보다 하루 이전에 결혼 날짜를 잡았다. 개발자는 단둘인데 친구 부부네가 먼저 신혼여행을 떠나니 우리 부부는 결혼식만 광주에서 치르고 그 다음날 하루만 쉬고 나는 바로 출근을 했다. 한마디로 남들이 다 하는 신혼여행을 다녀오지 못하고 그다음 해 3월에 1주일 휴가를 내서 동해안 일주를 하려고 경주를 내려갔으나 대학 동기 녀석 집에서 하루 자고는 임신 3개월 중이었던 아내의 몸이 별로 안 좋다고 해서 그냥 광주에 가서 1주일간 푹 쉰 것이 신혼여행의 전부였다.
이 시기는 내 인생의 전성기이자 정말 힘든 시절이기도 했다. 기억의 왜곡도 있겠지만 신혼시절임에도 제대로 된 저녁 있는 삶은 구경하기도 힘든 시절이었다. 그저 주중에는 11시에 퇴근하면 잘 퇴근하는 날이었고 주말은 아직 5일제를 시행하기 이전이라서 토요일에 근무하면 6시 퇴근이 가장 빠른 퇴근의 경우였다.
그렇게 나의 공식적인 첫 직장은 나에게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