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꼭 사랑하고 싶은데

김춘수, 「제22번 悲歌」

by pdh

지금 꼭 사랑하고 싶은데

사랑하고 싶은데 너는

내 곁에 없다.

사랑은 동아줄을 타고 너를 찾아

하늘로 간다.

하늘 위에는 가도 가도 하늘이 있고

억만 개의 별이 있고

너는 없다. 네 그림자도 없고

발자국도 없다.

이제야 알겠구나

그것이 사랑인 것을,

- 김춘수, 「제22번 悲歌」 전문(<<쉰한 편의 비가>>, 현대문학, 2002)



우선 슬프다. 이 시를 읽고.

이제 다시 80대의 김춘수의 시를 보는 것은 다 흘러가버린 생명의 끝자락을 보는 것 같고,

그 끝자락의 짙고도 힘없는 그늘을 보는 것 같다.

김춘수의 마지막 시집이리라 생각했던 <<쉰한 편의 비가>>를 읽으면서,

(2004년 현대문학에서 유고 시집 <<달개비 꽃>>이 출간되었다)


나는 시인의 늙음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제22번 悲歌」. 이 시는 사랑에 대한 것이다.

사랑의 본질과 인간의 끝없는 그리움 혹은 욕망의 힘에 대한 것이다.

그것은 단순하면서도 선명하게, 소박하면서도 광대하게 그려져 있다.

시인은 지금 사랑하지만

곁에 없는 ‘너’를 찾아 우주를 향해 간다.

그것은 사실 시인 내면의 우주라고 할 수 있고

밤마다 그윽이 우리를 내려다보는 말 그대로의 우주라고도 할 수 있다.



하늘 위에는 가도 가도 하늘이 있고

억만 개의 별이 있고

너는 없다. 네 그림자도 없고

발자국도 없다


너를 찾아 떠난 한평생의 여정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너”가 없는 이 세상은, 이 우주는 그야말로 텅 빔이다.

막막함이다. 허무와 슬픔이다.

그러나 시인은 깨닫는다. “그것이 사랑인 것을”


난 여기서 놀라움을 느낀다.

80대에 이르러 깨닫게 된 사랑에 대한 직관적 통찰을!

사랑을 찾아 떠난 시인의 시선은

어느덧 자잘한 일상을 지나와,

가도 가도 하늘이 있는 하늘을 향해 끝없이 나아간다.

사랑을 찾아 오래도록 방황했던 시인의 마음에는 어느새 광대한 우주가 들어서 있다.

사랑에 대한 욕망이

그의 내면에 너무나도 커다란 성찰과 사색의 공간을 들어서게 한 것.

사랑에 대한, “너”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었다면,

시인의 마음이 이렇게 커질 리가 없을 터.

결국 자기 안에 들어선 이 거대한 우주가 바로 사랑이라는 것.


무색무취의 우주적 공간.


사랑이 거대하게 커지면, 색깔도 향기도 서서히 엷어질 터.

그리하여 그것은 우주적인 사랑이 되어 버릴 터.

막스 피카르트(Max Picard)는

일찍이 ‘침묵의 세계’를 역설한 바 있다.

우리가 늘 외면해 왔던 침묵!

‘너’와 ‘나’ 그리고 ‘그’ 사이에는 항상 침묵이 있다는 것.

‘침묵’은 이미 죽은 자들의 세계이거나,

우리 이성이 감지할 수 없는 제3자의 세계라는 것.


혹은 신의 세계일 수도 있는 것.

우리 곁에서는 이렇게 늘 침묵이 우리를 감싸고 있다는 것.

시인이 사랑을 찾아 헤매다

결국 당도하게 된 곳이 이러한 침묵의 세계는 아닐까?


‘너’를 찾아 떠나왔던 여행이

결국은 우리의 내면에 드넓은 우주를 열어주고

우주의 깊은 침묵까지 깨닫게 한 것은 아닐까?

삶은 결핍이다.

결핍을 채우고자 하는 욕망이 어느새 하늘 위의 하늘까지 뻗어 있다니.

우리 삶의 결핍을 채울 ‘너’라는 사랑! ‘너’라는 사랑이 참 눈물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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