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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향기 Aug 16. 2021

치매 말고 다른 이름이 있으면 좋겠어요

시골 요양병원의 일상


여기가 어딘지도 몰라, 영문도 모르고 잡혀 왔어! 배고파 죽겠어!



어르신은 소리를 질렀다. 밤과 낮이 없었다. 환청도 있었다. "저 여기 있어요. 왜 불러요? 여기 있어요! 내가 김순이(가명)예요!" 그러다 또 배고프다 하신다. "점심도 못 먹었어! 배고파 죽겠어! 먹을 거 좀 주세요. 지금 좀 주세요." 잘게 뜯은 닭고기 가슴살을 드시는 중에도 "배고파 죽겠어요!" 하신다.


지친 간병 선생님의 수면시간 확보를 위해 낮에는 침상을 옮긴다. 병실에서 간호 스테이션으로. 간호 선생님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지만 간병 선생님들 고생보다는 좀 낫다. 간호팀은 정해진 건 없지만 한 마디씩 대화도 나누고, 아주 조금씩 먹을 것을 챙겨 드린다. 지나가던 직원들도 뭐라도 거들고 간다. 어르신 발음은 또랑또랑하시다. "가지 말고 먹을 거 좀 주세요~"


지나가던 사람은 그래도 웃으며 도와줄 수 있다. 하루 중 일부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복도를 쩌렁쩌렁 울리는 고함 소리에 열흘 넘게 시달린 2층 사람들은 모두 지쳐 있다. 체념으로 견디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러다 모두 미치는 거 아냐...' 싶다가도 '차츰 나아지시겠지..' 하는 마음으로 또 견뎌 본다. 가끔 "하... 미치겠다..." 머리를 움켜쥐다가도, 아드님 생각이 나서 또 견뎌본다. "영문도 모르고 잡혀왔어.. 배고파 죽겠어..."를 반복하는 엄마를 아드님은 쓸쓸하게 바라보았다. "엄마 얼굴 좋아지셨다..." 한마디를 하셨다. 누구도 어쩔 수 없고,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누군가는 "늙으면 애가 된다 하잖아요. 애 키울 때랑 똑같아요. 애들은 소리 지르는 걸로 의사소통을 해요." 말했다. 그 말도 맞다 싶어서 또 견뎌진다. "저도 시부모님 7년이나 병원에 모셨어요." 7년 고생했다는 말 앞에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 싶어 또 견뎌진다. 백 사람이 거드는 말에 백 번이 견뎌지는 것 같다.


금쪽같은 내 새끼를 위해 척척 도와주시는 오은영 선생님 같은 분이 있었으면 좋겠다. 개가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라고 알려주는 강형욱 같은 분이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뭘 모르는 것이지, 뭘 잘못하는 건지, 뭘 고치면 되는지 알려주면 좋겠다. 웃으며 잘해보려 하지만 금세 웃음기가 싹 거두어지는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되는지.


정부에서는 지역사회 연계 시스템을 정착시키려 무진 애를 쓰고 있다. 치매가 와도 익숙한 생활환경 속에서 최소한의 자기를 유지하며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증의 어르신들은 병원에 모실 수밖에 없다. 가족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가족이 아닌 우리는 어르신과 심리적 거리가 있다. 기대하지도 않고 실망하지도 않는다. 내 엄마라면 미칠 것 같은 일상도 남이니까 이성적으로 견뎌진다. 내 엄마라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만큼 괴로울 테지만, 우리는 남이라서 일할 때는 일에 집중한다. 이 객관의 거리가 안전망이 되기도 한다. 


언젠가 엄마 생신날 울부짖는 따님이 있었다. "왜 안 죽고 이래. 왜 안 죽는 거야? 이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 무슨 미련이 남아서 안 죽는 거야?" 따님은 엄마를 오래 살려 둔다고 병원도 원망했다. 우리는 그 따님을 나무랄 수 없었다. 가족들은 병원 치료를 포기하고 요양원으로 엄마를 모셔갔다. 우는 따님을 묵묵히 배웅했다.


치매는 누구나 두려워하는 병이다. 치매 환자 중 단 한 명도 치매를 원한 사람은 없다. 내가 설마.. 내가 그럴 리가... 했을 것이다. 나의 모친도 저렇게는 안 살 거다 하셨지만 치매가 왔다. 


치매가 남의 일이 아니고, 우리 사회가 껴안아야 할 문제라면 치매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편견부터 벗었으면 좋겠다. 치매는 어리석을 치, 어리석을 매로 이루어진 단어다. 어리석어지는 병인 것이다. 다리를 다치면 걷지 못하듯이 치매에 걸리면 뇌질환 증세가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치매에 걸리지 않아도 인간은 어리석다. 기억해야 할 것을 잊고 살고, 해야 할 일을 못하고 산다. 어느 누구라도 남의 도움 없이는 살 수도 없다. 당연한 말이고 상식적인 말이지만 현장에서 목격하는 것은 항상 상식 밖의 일이었다.


어르신 한 분이 같은 방 어르신을 구박하셨다. 

"어디 치매 걸린 것들이.... 확,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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