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상이 없는 한국
매년 여름 부산에서 개최되는 부산 국제 건축 워크숍에 2016년부터 시라큐스 대학을 대표해서 튜터로 참가해 오고 있다. 미국, 스페인, 오스트리아, 영국, 이탈리아, 일본, 중국, 몽골, 한국 등에서 모인 20명 정도의 튜터와 100명이 넘는 학생들이 부산의 낙후된 동네들을 재생하는 아이디어들을 구상하는 이 행사는 늘 나에게 많은 가르침을 준다.
부산은 서울과 차별되는 뭔가 특별한 것들이 많다. 서울이 미국의 동부 해안 (East Coast) 도시들을 떠올리게 한다면, 부산은 미국 서부 해안 (West Coast)을 연상시킨다. 날씨와 접근성 좋은 해안가도 그렇고 사람들의 패션과 스타일도 좀 더 과감하고 화려하다. 건축계에서도 개성 있는 젊은 건축가들(대표적으로 라라 그룹을 들 수 있다)을 주축으로 한 화려한 건축물들이 생겨나고 있다. 미국 서부의 건축이 화려한 형태와 재료와 색을 사용하는 디자인을 추구하고 사람들도 더 수용하듯이 (햇볕이 건축물의 형태를 더 부각한다) 부산의 새로운 건축들도 뭔가 재미있고 화려하며 개성이 넘친다.
부산에서 그러하듯 서울, 대구, 인천, 제주도 등 전국 각 도시에는 분명히 그들만의 색깔을 가지고 비전을 조금씩 현실화시키는 건축가들이 늘어나고 있다. 각 도시에 뿌리내리고 만들어 내는 건축물은 그 땅의 느낌과 그 사회의 문화와 사람들을 거울처럼 비춘다. 소득이 상승하고 삶의 질이 높아지면 그 끝에 건축의 질이 발전한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삶의 질이 높아지고 여유가 생기면 자신이 사는 집, 자신이 사는 동네에 대한 투자와 기대치도 올라가게 되고, 자연스럽게 더 질 좋은 건축물에 투자를 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뿐일까?
대중이 살아가는 건축물은 그 도시나 나라의 문화나 경제 수준을 판단하는 좋은 기준이 된다. 한국도 점점 더 정형화된 아파트를 떠나 개인의 색깔을 가진 주거들을 만들어 내고 있고 공공건물이나 상업건물들도 인테리어 만으로 개성을 만들어내는 영혼 없는 건물들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좋은 현상이다. 개인의 취향이 다양해지고 좋은 공간에 대한 투자가 가치 있다는 등 개성 있는 건축을 수용하는 마음 가짐은 한국 건축가들에게 너무나 큰 힘이 된다. 한국에서 자라고 교육받고 실무를 하고 있는 건축가가 진정으로 그 도시에 맞고 한국 사람에게 맞는 건축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 한국 건축가들의 실력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
나는 미국에 살면서도 치과, 병원, 미용실 등 전문가와 관련해서는 가능하면 한국 사람을 찾는다. 과장을 좀 보태서 90 퍼센트의 프로페셔널들이 최상급의 실력을 가진 한국 프로들과 10퍼센트 정도만이 최상급의 실력을 가진 미국 프로들 중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건축가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지역 건축가들이 미국 대도시의 건축가들과 실력이 비등하거나 더 낫다. 차이는 1프로 혹은 0.1프로의 건축가들 (스타 건축가)이 아직까지 탄생하지 않은 것이다. 아니 아직까지 발굴되지 않았다고 봐야 한다.
프리츠커상은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데 1979년부터 매년 한 건축가 혹은 건축가 파트너들한테 수여되는 상이다. 기준은 10년 동안 꾸준하게 특별한 색깔을 가진 양질의 건물을 구축해온 건축가에게 부여된다.
역대 프리츠커 상의 수상내역을 살펴보면 역대 수상 건축가 46명 중 2명 이상의 수상자를 배출한 나라는 미국 8, 일본 8, 스페인 4, 영국 4, 스위스 3, 독일 2, 프랑스 2, 이탈리아 2, 브라질 2, 포르투갈 2이다. 1명의 수상자를 배출한 나라는 중국, 인도, 덴마크, 칠레, 노르웨이, 멕시코, 호주, 오스트리아, 네덜란드가 있고 한국은 안타깝게도 0명이다. 물론 세계적인 스타 건축가한테 수여되는 경우도 많지만 지역 건축가에게 부여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안도 타다오, 류 니시자와, 카즈요 세지마, 등 8명의 일본의 수상자들 중 상당수는 해외 경험이 없는 지역 건축가 출신이다. 중국 최초의 수상자인 왕 슈도 국제무대에서 전혀 알려지지 않은 지역 건축가였다 (심사위원 중 한 명에 의해 발굴되었다).
우리나라의 위상이 높아지고 문화의 파워가 수직 상승하는 분위기 속에서 한국의 첫 프리츠커상 수상 건축가가 머지않아 탄생할 것을 장담한다. 그 건축가는 해외 경험의 유무와 전혀 관계가 없을 것이고 한국의 고유성, 한국 지역성을 강하게 내포하고 있어서 지금껏 본 건축과 색다름을 느끼는 작품들을 꾸준하게 해 온 건축가가 받을 것 임을 확신한다.
조만간 우리나라에서도 프리츠커상을 받는 건축가가 나오길 기다려 본다.
상단 이미지: Grandpa's Cool House, 아키텍케이(architect-K), Photograph: Yoon, Joonhw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