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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emin Park Dec 05. 2017

8인의 배신자와
실리콘밸리의 짧은 역사

정보통치성, 스타트업의 합리성 (8)

스타트업의 공간, 실리콘밸리들

스타트업의 역사를 보려면 먼저 한 도시의 역사, 도시 구성의 역사를 이야기해야 한다. 실리콘밸리다. 실리콘밸리는 행정구역상의 명칭은 아니다. 대체로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 남쪽에서 산호세까지 이르는 지역을 말한다. 실리콘밸리는 시장 자유주의 통치성의 핵심 공간인 도시의 자격으로 스타트업을 구성한다. 동시에 스타트업은 그들의 수행을 통해 실리콘밸리를 스타트업의 공간으로 구성한다. 또한 정보통치성의 확산에 따라 실리콘밸리를 샌프란시스코로, 아일랜드로, 텔아비브로, 선전으로, 서울로 확장해간다. 그리고 이런 공간과 함께 스타트업과 그 수행도 확장된다.


출처: https://goo.gl/nY6npc


기원, 스탠퍼드 대학교

실리콘밸리의 기원은 스탠포드 대학교(Stanford University)이다. 1891년 철도 재벌 릴런드 스탠포드(Leland Stanford)가 MIT 등 동부명문대학교에 필적한 대학을 서부에도 만들자는 취지로 설립했다. 스탠포드는 많은 돈을 주고 동부의 우수한 교수진을 영입했는데, 그중 한 명이 실리콘밸리의 아버지로 불리는 전기공학과의 프레드릭 터먼(Frederick Terman) 교수였다. 당시 서부는 산업 기반이 취약했다. 1929년에는 대공황까지 닥쳐 일자리마저 부족해졌다. 때문에 터먼 교수는 졸업생들에게 창업을 적극 권유하고 사재를 털어 투자도 하는가 하면 판로를 개척해주기까지 했다. 그런 졸업생 중 하나가 1939년 HP를 창업한 윌리엄 휴렛(William Hewlett)과 데이비드 패커드(David Packard)이다. 1951년에는 스탠포드 재단이 혁신 창업가들을 지원하는 스탠포드 인더스트리얼 파크(Stanford Industrial Park)를 만들었다. 한편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군수산업과 연계된 전기, 전자, 통신사업이 발달하게 됐다 [1].


페어차일드 반도체와 8인의 배신자

1957년은 실리콘밸리의 원년으로 불릴 만하다. 이전까지 실리콘밸리는 여전히 농업 위주의 변두리 지역이었다. 세계 최초의 트랜지스터를 만들어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윌리엄 쇼클리(WilliamShockley)는 1956년 실리콘밸리에 쇼클리 반도체 연구소(Shockley Semiconductor Laboratory, SSL)를 설립했다. 그는 트랜지스터를 본격 생산하고자 자신의 명성을 바탕으로 학계의 젊고 유능한 박사들을 고용했다. 


그러나 쇼클리와 성격이나 연구 방향이 맞지 않았던 8명의 박사들이 연구소를 나와 1957년 페어차일드 반도체(Fairchild Semiconductor)를 설립했다. 이들은 훗날 8인의 배신자(traitorous eight)로 불린다. 

1957년에는 소련이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발사에 성공하면서 미국 정부가 미국 항공우주국 NASA를 설립하고 우주개발 경쟁에 나선다. 여기에는 고온에도 제대로 성능을 발휘할 수 있는 전자 부품이 필수적이었다. 페어차일드 반도체는 값싼 게르마늄 집적회로가 아닌, 값은 비싸지만 고온에도 안정적이었던 실리콘 직접회로를 개발해 세계 최초로 반도체 양산에 성공하면서 급성장했다. 


이후 페어차일드의 창업주와 직원들은 인텔과 AMD를 비롯해 30개 회사를 설립했다. 1970년대가 되자 샌프란시스코 남부 밸리 지역을 중심으로 실리콘 기반의 컴퓨터 칩 개발회사가 집중됐다. 이를 두고 1971년 돈 호플러라는 저널리스트가 이 지역을 실리콘밸리라고 이름 붙였다.


로버트 노이스, 실리콘밸리의 시장

페어차일드의 창업자와 투자자, 직원들은 수많은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을 만들거나 그들에 투자했으며 실리콘밸리의 문화를 만들어갔다. 대표적으로 ‘무어의 법칙(Moore’slaw)으로 유명한 고든 무어(Gordon Moore)와 직접회로(integrated circuit, IC)의 발명자인 로버트 노이스(RobertNoyce)는 1968년 인텔(Intel)을 창업했다. 제리 샌더스(Jerry Sanders)는 AMD를 만들어 인텔과 경쟁했다. 노이스는 스티브 잡스를 비롯한 수많은 혁신 창업가들의 멘토로 실리콘밸리의 시장(the Mayor of Silicon Valley)으로 불리기도 한다 [2]. 


페어차일드의 투자자인 아서 록(Author Rock)은 1961년 실리콘밸리 최초의 VC ‘데이비스 앤 록’(Davis & Rock)을 설립했다. 페어차일드의 창업자인 유진 클라이너(Eugene Kleiner)가 설립한 VC 클라이너 퍼킨스(Kleiner Perkins)와 페어차일드의 임원이던 돈 밸런타인(Don Valentine)이 설립한 VC 세콰이어 캐피털(Sequoia Capital)은 이후 썬 마이크로시스템즈, 넷스케이프, 아마존, 구글, 시스코, 시만텍, LinkedIn을 비롯한 수 백개의 회사에 투자했다 [3]. 실리콘밸리에서 페어차일드 창업자와 직원들이 투자하거나 설립한 회사는 2014년 상장사 기준 92개 총 2.1조 달러에 달하며, 비상장사를 포함할 경우 2000여 개에 달한다 [4]. 


보다 큰 그림에서 보면, 1950년대 이전까지 IT는 미국 동부 MIT와 IBM이 이끄는, 정부를 고객으로 하는 방위산업과 기업을 고객으로 하는 비즈니스용에 한정되어 있었다. 그 논리는 제조업의 논리에 가까웠다. 즉 대자본을 투입해 대규모 설비를 갖추고 상품을 세일즈 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1960년대 들어서 실리콘밸리가 부상함에 따라 IT는 보다 일반적인 형태로 일상 속에 파고들어오기 시작했다. 


      


[1] 이동휘(2015). <실리콘밸리 견문록>. 파주: 제이펍.

[2] https://en.wikipedia.org/wiki/Robert_Noyce

[3] http://news.mt.co.kr/mtview.php?no=2014122316427176799


[4] http://techneedle.com/archives/17745

* 이 글은 정보 공유를 목적으로 연구용으로 작성됐으며 투자 권유 등을 목적으로 쓴 글이 아닙니다. 모든 투자는 전적으로 투자자 자신의 판단과 책임에 따라 스스로 투자에 관한 의사결정을 하여야 하고, 그에 대한 결과는 투자자 본인에게 귀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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