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은 무엇으로 사는가 (2)
스타트업은 자영업자도 아니지만, 대기업도 아니다.
우선 한국에서 모든 커리어의 최종점이라고 하는 치킨 집을 생각해보자. 그리고 치믈리에 콘테스트까지 열면서 그 생태계 중심에 서 있는 대한민국 치킨 집의 독과점 플랫폼인 배달의민족을 생각해보자. 둘 다 창업기업 또는 창업가인데, 치킨 집은 스타트업이 아니고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은 스타트업인 이유가 무엇일까? 치킨 집은 자영업자다. 보통 가게가 있는 좁은 지역 시장을 겨냥해 손익분기점을 맞추는 것을 목표로 한다. 가족이나 지인, 또는 지역 내 비숙련 인력을 고용하며, 기술 개발을 바탕으로 한계 비용을 절감하려는 노력도 기울이지 않는다. 그러나 우아한형제들은 궁극적으로 글로벌 시장을 겨냥하며 기하급수 성장을 목표로 한다. 전 세계 최고 인력을 고용하며, 기술력을 바탕으로 수백 명의 인력으로 월 1000만 건의 주문, 1.8조 원의 거래액을 처리한다.
스타트업은 딜레마를 갖고 있다. 한 마디로 스타트업은 작지만 작아서는 안 된다. 커져야 하지만 크게 행동해서는 안 된다. 즉,
규모 면에서는 스타트업은 창업한 지 얼마 안 되는 매우 작은 기업이다. 그러나 순식간에 기하급수적 성장을 하면서 조 단위의 기업가치를 평가받는 유니콘이 된다 [1].
시장 측면에서 보면 스타트업이 처음 겨냥하는 시장은 규모가 작은 틈새시장이다. 그러나 스타트업은 한 국가는 물론 때로는 세계적으로 시장지배적인 사업자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투자 측면에서는 스타트업은 매우 위험한 투자 대상으로 보인다. 스타트업은 성장하면서도 이익은커녕 막대한 적자를 감수할 경우가 많다. 자본금은 빠르게 소진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타트업은 적지 않은 자금을 수혈받는다.
자원 측면에서는 스타트업은 자금이나 인력이 몹시 부족한 상태에서 시작한다. 즉 혁신에 투입할 자원이 매우 적다. 그러나 그들은 거대 기업도 하지 못하는 파괴적 혁신을 주도한다.
이런 딜레마 속에서 스타트업은 다른 기업들과 스스로를 어떻게 구별 지을까. 스타트업의 차별화는 두 차원에서 이뤄진다. 하나는 기술 측면이다. 스타트업은 첨단 기술 기업이 아니다. 다음으로 기업 측면이다. 스타트업은 자영업자가 아니다. 동시에 대기업도 아니다. 즉 스타트업은 첨단 기술 기업이 아닌 기술기업이며 자영업자나 대기업이 아닌 기업이다.
첫째, 스타트업은 첨단 기술 기업이 아니다. 피터 드러커는 1985년 ‘기업가 정신’이라는 책에서 스타트업의 원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혁신 창업가(entrepreneur)의 개념을 설명한다. 그런데 그는 실리콘밸리를 평가절하한다. 그는 “실리콘밸리의 하이테크 기업가들은 여전히 19세기 방식으로 사업을 운영하고” 있으며 “커다란 흥분으로 출발해 급속히 팽창하고, 그 후 갑자기 흔들리고는 문을 닫는”다고 지적한다. 그는 “대부분의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여전히 혁신가라기보다는 발명가이며, 기업가라기보다는 투기꾼”이라고 지적한다. 요컨대 실리콘밸리의 기술혁신 기업은 기술 혁신에만 매달리고 시장 평가를 무시한다는 것이었다. 반면 “체계적이고 목적 지향적이며, 합리적으로 경영되는 기업가정신에 기초한 ‘로테크’는 그런 과업을 해내고 있다”고 강조한다 [2].
둘째, 스타트업은 자영업자가 아니다. 자영업자는 자영업자는 목표 시장이 사업장이 위치한 지역(local area)이며 기하급수적 성장이나 파괴적 혁신을 꿈꾸지 않는다. 자영업자는 보통 사업 자금을 대출 받아서 비교적 단기간에 손익분기점을 맞추는 것이 목표다. 고용은 개인이나 가족이 기업을 소유한 가족기업의 형태를 띤다 [3].
반면 스타트업은 성장을 중시한다. 따라서 투자를 유치하고, 정해진 기간 내에 투자금을 전부 소진하면서라도 성장을 추구한다. 성장할 수 있다면 상당한 규모의 적자를 내는 것도 감수하며, 투자 당시 정해놓은 마일스톤(milestone)을 달성하면 자본금이 고갈되어도 추가 투자로 사업을 확대할 수 있다 [4]. 스타트업은 틈새시장으로 시작하더라도 궁극적으로 파괴적 기술을 이용해 세계시장을 장악하고 파괴적 혁신을 추구한다. 가족이나 지인이 아니라 사업 단계별로 필요에 따라 최고의 전문 인력을 고용한다. 다양한 투자자의 자본을 유치하는 과정에서 창업자 외에도 지분에 따라 다양한 이들이 참여하는 지배구조가 만들어지고 이사회를 통해 중요한 의사결정이 이루어진다.
출처: Aultet(2013/2014, 재인용, 일부 수정)[4]
셋째, 스타트업은 대기업도 아니다. 경영 측면에서 거대기업의 고위 임원진 출신이 창업한 스타트업도 실패할 수 있다. 대기업 출신 인재를 영입하거나 대기업에 맞는 조언을 따랐을 때 오히려 경영이 악화되기도 한다. 즉 대기업에서 검증된 과학적 경영을 도입했는데도 스타트업이 실패한다 [5].
사실 대기업에 적합한 경영 방식은 스타트업과 상극일지도 모른다. 이른바 혁신 기업의 딜레마(innovator’s dilemma)다 [6]. 이에 따르면 1등 대기업은 점진적 혁신에 최적화된 자원 배분 프로세스를 갖고 있다. 즉 초우량 기업은 1) 큰 시장에서 2) 주류 고객을 대상으로 3) 최고 성능의 4) 마진 큰 비싼 상품을 판매하는 5) 1위 기업의 6) 점진적 혁신에 최적화된 7) 자원배분 프로세스를 갖고 있다.
파괴적 혁신에는 아직 충분하지 않지만 스스로 최적의 자원 배분 프로세스를 찾아가는 스타트업 같은 조직이 낫다. 초우량 기업은 최대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게 하는 그 장점 때문에 적절한 가격으로 틈새시장에서 소수 고객의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는 파괴적 기술 개발에 소홀히 하게 된다. 그 결과 가장 뛰어난 기술로 시장을 선도해 온 거대기업이 거들떠보지도 않던 작은 스타트업에 패배하고 파괴적 혁신의 희생양이 된다.
혁신기업의 딜레마는 스타트업이 초우량기업보다도 파괴적 혁신에 오히려 더 유리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혁신을 위해서는 소규모 조직으로 에반젤리스트들의 소규모 시장을 대상으로 하는 최소 기능 상품(minimum viable product, MVP)으로 고유 가치 제안을 담은 BM 가설을 검증하고 스스로 자원을 배분해가는 스타트업 같은 조직이 낫다.
스타트업은 주류 시장이 아니라 틈새시장을 겨냥한다. 스타트업은 대기업처럼 첨단 기술을 갖고 있지도 않다. 엄밀히 말해 스타트업은 기술 혁신보다는 기술 기반 BM 혁신, 기술을 이용하더라도 저비용과 차별화를 달성한 가치 혁신을 추구한다. 스타트업은 적은 자원을 갖고 작은 시장에서 출발하지만 단시간에 대기업 못지않게 성장해 파괴적 혁신을 도모한다.
스타트업은 무엇보다 스스로 스타트업 생태계의 일원으로 인식하고 스타트업으로서 행동하는 사람들과 조직이다. 스타트업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가치를 찾고, 고객을 찾고, 고객이 요구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고, BM을 찾는 과정, 즉 정식 기업이 되는 과정으로서의 조직이다. 때문에 스타트업은 정적으로 정의해서는 안 된다. 스타트업은 기술 기반 혁신을 통해 가치 제안을 담은 BM 가설을 검증하는 실험 조직이다.
스타트업은 성공해야만 스타트업인 것은 아니다. 스타트업은 BM 가설 검증에 성공하기 전까지는 BM이 사실 없는 셈이다. 스타트업은 투자금 전부를 12개월에서 18개월 내에 BM 검증에 쏟아부어야 한다. 때문에 스타트업은 매 순간 완전 실패의 목전 앞에서 고군분투해야(do hard thing) 한다. 투자를 받지 않으면 몰라도 투자 라운드에 올라서는 스타트업은 매 순간 자기 인생 최대의 도전을 하게 된다. 스타트업에게 실패는 실패가 아니라 가설 검증 과정이다. 스타트업 수행의 핵심은 난전을 치르는 것이다. 상장이나 인수 합병을 통한 최종 엑싯(exit) 전의 스타트업에게 한계비용 절감, 기하급수 성장, 파괴적 혁신은 매일의 난전 끝에 오는 짧은 휴식, 난전의 결과로 얻은 작은 전리품 같은 것이다.
또한 스타트업의 고객, 시장, 상품, BM은 한 단계만 깊이 들어가면 모두 다르다. 심지어 같은 스타트업이라 도시기만 달라지면 모두 달라진다. 예컨대 스타트업이 성장해 틈새시장의 혁신 수용자에서 주류 시장의 일반 소비자로 목표를 변경하면서 거의 모든 것이 바뀔 수도 있다. 모든 스타트업이 대기업이 하지 않는 틈새시장에서 자신만의 상품과 BM로 자신만의 고객을 공략하며 결국 자신이 개척한 시장에서 독과점한다.
[1] 유효상(2016). <유니콘: 게임 체인저들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 서울: 클라우드나인.
[2] Drucker, P.(1985). Innovation and entrepreneurship. 이재규(역)(2004). <미래사회를 이끌어가는 기업가 정신>. 서울: 한국경제신문. 24-25쪽.
[3] Aulet, B.(2013). Disciplined entrepreneurship: 24 steps to a successful startup. 백승빈(역)(2014). <MIT 스타트업 바이블>. 서울: 비즈니스북스.
[4] Berkery, D.(2007). Raising Venture Capital for the Serious Entrepreneur. 이정석(역)(2013). <스타트업 펀딩>. 서울: e비즈북스.
[5] Blank, S. & Dorf, B.(2012). The Startup Owner's Manual: The Step-By-Step Guide for Building a Great Company. 김일영•박찬•김태형(역)(2014). <기업 창업가 매뉴얼>. 의왕: 에이콘.
[6] Christensen, C. M.(1997). The Innovator's Dilemma: When New Technologies Cause Great Firms to Fall. 이진원(역)(2009). <혁신 기업의 딜레마>. 서울: 세종서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