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2B 중심의 ERP, CRM 디자인에서 중요한 것들

학원 운영 업무를 위한 ERP 솔루션을 중심으로.

by 댕챱

어떤 것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걸 경험해봐야만 한다고 했던가. 서비스 디자인에서 말하는 'Cultural Probe'—사용자의 실제 환경에 들어가 그들의 경험을 관찰하고 이해하는 방법론—의 가치를 요즘 절절히 느끼고 있다. 현실적인 제약 때문에 늘 이 방법을 택할수만은 없지만, 직접 경험해보니 확실히 다르다.


현장에서 비즈니스 고객의 입장으로
여러 서비스들을 직접 써보기 전까지는 몰랐다.
'좋은 B2B 제품'이란 무엇인지를.

다음은 실제 사용자 입장에서 B2B 제품들을 써보기도 하고 실무를 하며 깨달은 내용들인데, 특히나 소규모 비즈니스, 비-디지털친화적인 곳들을 돕는 ERP 제품을 만들 때 유념해야 할 3가지에 대해 정리했다.




1. B2B 프로덕트의 UX는 최저 수준의 디지털 리터러시를 기준으로 잡는다.

개인 사용자를 겨냥한 앱의 경우, 자신이 원할 때 결제를 요구하는 단계가 아닌 이상 이것저것 클릭해보고, 탐험하며 살펴볼 기회가 있다. 하지만 B2B는 다르다. B2B 제품을 사용하는 고객들은 따로 학습에 투자할 시간이 없다. B2B 제품은 대개 업무시간 중, 업무를 위해 사용하는 제품들이기에, 그들의 업무시간이 곧 실전이자, 온보딩을 하는 시간이 된다. 따라서, B2B는 타겟유저의 관점에서 가장 이해하기 쉽고 빨리 찾을 수 있는, 단순한 UX를 띠고 있어야 한다.


근무중인 학원에서 실제로 발생한 일이다. 학생들의 출결 기록이 저장된 문서가 꼬였다. 히스토리 열람/복구 기능 유무는 물론 선임 조교와 실장님은 화면 상단 구석의 그 버튼을 찾지 못해 늦은 시간까지 데이터를 하나하나 직접 복구해야 했다. 찾지 못한 이유는 간단하다. 그 아이콘 버튼이 히스토리 열람 기능을 의미하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이는 디지털 리터러시가 낮은 비즈니스 고객이 여전히 존재하며, 수년간 사용해도 제대로 온보딩되지 않은 사용자가 있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2. UX는 익숙한 것에서부터, 패치 규모는 최대한 작게.

새로운 것을 배우는 건 더 많은 인지적 노력을 요하는 일이기에, 누구에게나 달갑지 않다. 그럼에도 개인 사용자를 대상으로 하는 제품의 경우, 여러 분석후기 영상을 보거나, 또는 여유시간에 직접 앱을 탐색하며 그 제품의 새로운 모습에 대해 자신의 페이스에 맞춰 익숙해질 시간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B2B는 그렇지 않다. B2B 제품은 대부분이 업무플로우 곳곳에 녹아들어 사용되거나 또는 그 플로우 자체가 되기에, 정말 작은 UX 또는 UI적 변화나 이슈가 생기기만 해도 전체 업무 플로우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온보딩이 정말 완벽하게 짜여져있다고 호언장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이상, 대대적인 규모의 UX개선은 지양해야 하며 가랑비에 옷이 젖듯, 아주 서서히 보수적인 개선 및 변화를 지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3. 높은 유연성으로 높은 자율성 보장하기

비즈니스 고객의 경우, 사내에 이미 정착된 업무 패턴이 있거나 운영을 위한 일부 규정들이 존재하는 경우가 있다. 또는 실시간으로 추가 미니 업무 플로우가 탄생하거나 소멸하기도 하며, 기존 플로우가 필요에 따라 잠시 변화하기도 한다. 즉, B2B 제품의 본질적 역할은 비즈니스 운영을 돕는 조력자이기에,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변수들을 최대한 커버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B2B 제품은 잘 짜여진 하나의 유기체가 아니라, 최소한의 단위로 사용자를 지원하며, 마치 뷔페에서 음식을 골라 담듯 파편화된 형태로 구성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업무를 더 간편화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기 위해 개인적으로 이런저런 다른 여러 ERP 솔루션들을 찾아봤지만 대부분 종합 구독을 전제로 한 '완전한 시스템'으로 보이는 경우가 다수였다. 기존에 사용중이던 SaaS 제품을 포함해 추가 기능들과 더불어 다른 경쟁사 솔루션들도 몇가지 직접 검색해보았으나, 그 기능 단위가 너무 커서 사용자로서 근본적 혜택을 보려면 1)오직 그 회사의 모든 제품을 종합구독하거나 2)자체 시스템을 개발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었다.


지금까지 최소 3군데 이상의 '학원'들을 경험해보면서 느낀건, 학원들은 각자의 플로우와 학습관리 시스템이 있고, 그건 대체로 학원마다 다르다. 하지만 그걸 완벽하게 감당해낼 수 있는 건 없었고, 결국 여러 업체의 서비스들을 짜깁기식으로 써오다보니, 업무 처리의 유연성과 신속성은 떨어지고, 데이터는 산재해있어 간단한 요청에도 조교업무를 위해 들여다보고 체크해야 하는 화면만 여러개였다. 학습관리 측면에서는 여러 데이터를 다양한 구성으로 한눈에 비교분석해야 하는 니즈도 있는데, 학원의 시스템과는 맞지 많아서, 오히려 학원의 시스템을 앱에 맞춰 갈아엎지 않는 한 매번 일분일초를 업무에 쫓기며 일해야 하는 상황이다.



현장이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세상에는 다양한 경우의 수가 존재한다. 그렇기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솔루션을 만들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B2B제품 고객의 입장에서, 오히려 툴이 기존 플로우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지 않으면서도 현장에서의 업무 플로우 자체를 더욱 간편화시켜줄 수 있을 때, B2B 제품의 초기 성공에 가까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즉, 큰 틀은 건드리지 않으면서 작은 pain point들을 해결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프로덕트를 만들어 파는 회사 입장도 모르지 않는다. 많은 서비스가 그러하듯, 한번 유치한 고객은 가급적 오랫동안 우리의 돈줄이 되어주는 것이 좋고, 그렇게 하려면 사용자가 쉽게 서비스를 떠나지 못하게 전략적으로 계속 가둬두는 것도 필요할지 모른다. 사악해보이지만, 직접 자기 제품을 팔아보면 결코 비난만 할 수는 없는 생각이다.


하지만 실제 B2B 고객으로서, 나는 그 많은 ERP 솔루션 업체들에게, 실무에서 필요한 걸 다시한번 명확히 전달하고 싶다. 많은 B2B 솔루션들이 '갖춰진 시스템'을 팔려고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필요한 건 '부분적 해결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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