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리십니까? 과거입니다. 참고로 당신의 무전기는 수신만 가능합니다.
최근에 sns를 하다가 우연히 워너원의 "Beautiful", 방탄소년단의 "Run"을 듣게 되었다. 지금은 듣지 않지만 한때는 하루종일 그 노래만 들었을 정도로 푹 빠졌던 노래들이다. 익숙한 선율을 듣는 순간 왠지 로맨스 영화 속 가슴 아픈 이별을 한 것처럼 마음이 아릿해졌다. 불가피한 사정으로 이별한 전 애인을 겨울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기분이랄까. 노래와 함께 당시의 내 기억과 감정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어떤 노래를 많이 듣는다는 건 연애와 비슷하다. 나는 어느 노래에 꽂히면 그 노래만 듣는다. 한 노래만 주구장창 듣는다. 그러다가 점점 그 노래가 질리기 시작하고 나중에는 우연히 플레이리스트에서 재생되어도 넘겨버리는 노래가 된다. 그렇게 플레이리스트에서 잊혀지는 노래가 된다. 그렇게 잊은 노래를 몇 년 뒤 듣게 되었을 때의 느낌은 정말 묘하다. 이 반가우면서도 허전하고 익숙하면서도 낯선 느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모두가 한 번쯤은 느껴본 적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추억의 노래에 열광하고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이니까. 나는 떠올리면 눈물 나는 옛 애인은 없지만 그런 옛 노래들은 많다.
가을, 겨울에 발매되었던 "Beautiful"과 "Run"을 겨울 냄새가 어렴풋이 풍겨오는 이 계절에 듣게 되어 더 절묘했다. 이럴 때가 아닌데 시험 공부를 하다 말고 추억 여행에 빠지고 만다. 교복에 패딩을 입고 핫팩을 주머니에 넣은 채로 등교하던 시절. 학기 말 장기자랑 연습을 위해 책상을 양쪽으로 끝까지 밀어두고 가운데에서 춤을 췄다. 쉴 때는 창문 쪽 라디에이터 위로 올라가 롱패딩을 침낭 삼아 드러누웠다. 교실 가장자리, 양쪽으로 밀린 책상 위에서 젤리를 까 먹으며 수다를 떨던 그 날들. 그리고 그 당시엔 너무 촌스럽게만 보였던 노란색 체육복에 좋아하는 아이돌 이름을 매직으로 쓰며 친구들과 깔깔대던 때가 생각난다. 그 사소한 한 순간 순간들이 마구 생각난다. 그때의 공기 냄새마저 나는 것 같다. 창문에서 조금씩 새어 나오던 차가운 바깥 공기와 너무나 건조했던 천장 위 히터 바람, 여자아이들이 뿌리던 싸구려 복숭아 향수... 그러나 돌아갈 수 없다. 지금의 내 자신을 돌아보다가, 문득 그 시절이 너무 그리워졌다.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이 너무나 그리워졌다.
노래 하나에 설렐 수 있었고 미래에 대한 궁금함이 가득했던 그때. 하고 싶은 것도, 배우고 싶은 것도 많았다. 당시의 나에게 대학은 마법의 성이었다. 내가 알지 못하지만 재밌고 놀라운 것들로 가득한 곳이었다. 물론 마법의 성은 그냥 기계로 만들어진 성일 뿐이었다. 교수님은 마법 대신 궁금하지 않은 전공 지식을 퍼부어 주신다. 그리고 이 성을 나가면 마을에 내려가서 보통의 "대학 졸업자"들이 하는 대로 번듯한 직업을 가져야 한다. 이 이상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미래는 없다. 그런 와중에 옛 노래를 마주한 것이다. 나는 옛 노래 앞에서 부끄럽고 서럽다.
나는 앞으로 얼마나 많은 노래와 시절을 그리워하게 될까. 그 모든 시절들은 차곡차곡 쌓여서 매년 그리움의 크기는 커져만 갈 것이다. 나는 그 어떤 순간도 버리지 못하고 돌아갈 수 없는 순간들을 평생 지고 살아가며 자주 뒤돌아볼 것이다. 아직은 그 과거에 잠시 잠겨있는 것 이외의 다른 방도를 찾지 못했다. 이번 가을도 내가 흘려 보낸, 그러나 훗날 그리워할 기억이 될 것만 같다.
작가의 말:
가을날에 썼던 글을 겨울에 다시 읽어보니 감회가 새롭네요. 크리스마스에는 그리운 옛 캐롤을 들어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