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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댕굴이 Jul 27. 2022

불행의 되새김질, 대기업 9년차가 살아가는 법

직장인의 하루

우리 모두에겐 꿈과 희망으로 가득 찼던 시절이 있었다.

앞으로 무슨 일을 하게 될까?
이 일을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그리고 나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질문만큼 열정도 많았던 신입사원 시절. 매일 주어지는 도전과제는 마치 게임과도 같았다. 도장깨기 하듯 자정까지 이어지는 야근도 군말 없이 해냈던 그 시절의 나에게 '일'은 곧 배움이자 성장이었다. 이 모든 것이 나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니 늦은 야근도, 잦은 보고도, 쌓여가는 미개봉 메일도 왠지 없으면 되려 아쉬운 것이던 때가 있었다.


이후, 회사의 사정으로 그 시절을 함께 했던 조직은 뿔뿔이 흩어졌다. 맡은 업무도, 함께 일할 사람도 바뀌었다.

새로 시작한 곳에서 모든 것이 새로웠지만 단 하나 다른 것이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신입'이 아니라는 것.

그 때문일까? 질문을 해도 흔쾌히 알려주는 이가 없었다. 분명한 건 누구도 드라마 속 못된 악역처럼 나를 음해하거나 괴롭힌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저 그들의 사소한 불친절과 무신경한 잡담들이 내게 불행으로 쌓여갔을 뿐.


그리고 주변 사람보다도 나를 숨 막히게 한 것은 내가 하는 일에서 의미도, 목적도, 보람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6년을 버티고 직무 전환을 요청했다.




5개월 만에 이뤄 낸 인사이동.

불행이 쌓여 있던 공간을 벗어나자 아침마다 숨 막힐 듯 조여오던 답답함도, 일요일마다 가슴을 짓누르던 우울함도 깨끗이 사라졌다.

하는 만큼 보이는 결과물은 보람과 성취감을 선물했고, 각자의 일에만 충실하는 개인주의적 조직 분위기 사내 인간관계에 대한 심적 압박감을 덜어주었다.


새로운 부서에 온 지 어느덧 일 년이 훌쩍 지났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행복한가?


우선, 회사에서 나는 꽤나 외롭다. 각자의 일에만 충실한다는 것은 곧 남의 일에는 일말의 관심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곳에선 주말에 삭발을 하고 와도 월요일 아침이면 고개도 들지 않고 '안녕하세요'하고 인사할 것만 같다.

예전 부서에서는 머리를 자른 뒤엔 회사 가기가 두배로 싫었는데, 그 이유는 앞머리만 조금 잘라도 머리스타일에 대한 개인별 평가부터 왜 잘랐는지에 대한 해명까지 마친 후에야 자리에 앉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오지랖 vs 개인주의 중 고르라면 여전히 후자를 선택할 것이다. 자리에 없는 동료 험담부터 재테크 성공담, 육아 고충 등 온갖 신변잡기 이야기들을 경청하는 척하는데 소중한 점심시간을 할애하는 것 보다야 조용히 보고 싶은 글을 보며 혼밥하는 것이 나으니까. 조금은 쓸쓸할지라도 과거의 불행을 떠올리면 밥맛이 달다. 분에 나는 외롭지만 행복하다.



외로움 외에도 아쉬운 것들 몇 가지 있다. 예전엔 어떤 자료를 보고해도 빨간펜질을 열 번쯤 당해야 통과를 했다.

여기서 빨간펜질이란 보고서의 내용이 아닌 보고서의 목차, 구성, 문장 등 형식적인 요소를 끊임없이 수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곳에선 보고를 하면 칭찬을 듣는다. 어느새 부서의 보고서 작성 에이스가 되어 있다. 보고서 프리패스의 기쁨과는 별개로, '혹시 실수나 오류가 있는데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것이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이 스칠 때가 있다. 프리패스 보고서에 주어진 권한만큼 무거워진 책임감, 혼자 판단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묵직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그럴 때면 능력 있는 상사를 만나 유의미한 피드백도 받고 싶고, 동료들의 경험과 조언도 듣고 싶다. 


지만 담당자의 고민을 무가치하게 만드는 빨간펜질 vs 담당자에 대한 무조건적 신뢰 중 고르라면 선택은  후자 것이다. 폄하됐던 능력이 이제라도 제 능력을 알아봐 주는 사람을 만나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그간 담당자로서 존중받지 못했던 세월들을 떠올리면 여전히 서글프다. 과거의 불행을 되새김질하현재의 아쉬움은 어느새 자취를 감춘다.


외로움도, 몇 가지 아쉬움도 이전의 상황과 비교하면 쉬이 감내할만한 것이 되는 것이다.




한동안 꽤나 속 썩였던 무언가가 특별한 계기로 사라지고 나면 그동안의 고통이나 불편을 깡그리 잊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다 잊고 있던 통증이나 불편이 다시 찾아오면 그제야 그것이 부재했던 순간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깨닫고 애타게 다시 고통의 해방을 기도하는 것이다.


고통이 다시 찾아오고 나서야 지나간 고통의 부재를 뒤늦게 추억하는 어리석음을 경계하기 위해

지금의 나는 과거의 불행을 되새김질함으로써 행복의 현재를 누린다. 


어쩌면 직장인의 연차는 감내할 수 있는 불행의 역치를 높여가는 과정이 아닐까? 지난 6년 덕분에 오늘의 외로움과 무료함에 감사하는 나처럼.


더 이상 무언가 더 나아지기보다는 더 나빠지지 않기만을 바오늘, 한 주, 일 년이 흘러간다.

참으로 행복한 직장생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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