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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댕굴이 Aug 08. 2022

직장인의 진짜 미라클 모닝

오늘 진짜 회사 가기 싫다


아무 이유 없이 이럴 때가 있다.

딱히 회사에서 스트레스받을 일이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닌데, 그냥 가기 싫은 날.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그렇다고 정말 가지 않을 배포는 없으면서 그냥 내뱉는 거다.  아기들이 이유 없이 칭얼대듯, 직장인의 의미 없는 투정.


직장인이 회사에 가지 않는 날은 정해져 있다.

1. 나라에서 쉬라고 한 날

2. 회사가 다 같이 쉬자고 하는 날

3. 내가 쉬겠다고 회사에게 허락 맡은 날


정하지 않은 날에 연차를 쓰기 위해서는 일단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뤄도 되는지 생각해야 하고, 그게 어렵다면 내 일을 하루만이라도 백업해 줄 사람을 정해야 하며, 그 사람에게 오늘 챙겨야 할 일을 설명해줘야 한다.

그러다 보면 '이러느니 그냥 출근하는 게 낫겠다'라는 생각을 하며 하루를 시작하게 다. 




아무튼 이렇게 오늘의 결론도 뻔히 예정되어 있지만, 그래도 가기 싫은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기에 그 기분을 털어내고자 남편에게 투정을 부렸다


"오늘 진짜 회사 가기 싫다."

               "나두"

"나 아파서 오늘 하루 다고 할까?"


평소대로라면 남편은 '그러든가'하고 답하고 나는 '못 그럴 줄 알고 그렇게 답하지?' 하며 익숙한 티키타카를 한 후, 남편이 나를 침대에서 일으켜했을 텐데.


이 날따라 나를 물끄러미 바보며 던진 남편의 한 마디는 꽤나 충격적이었

성실함에 반했었는데..

부연설명을 하자면, 남편과 나는 대학시절 같은 동아리에서 만나 각각 총무와 부회장으로서 한 학기 살림을 같이 꾸려나간 적이 있었고, 그때 남편이 나에게 고백하여 사귀게 되었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놀란 나는 몸을 일으켜 세우며 물었다.


"헐, 래서 이제 성실하지 않아서 슬퍼?"

                "조금?"


"그럼 앞으로는 성실하게 살까?"

               "아니. 그건 싫어."


"엥, 그럼 뭐야? 어쩌란 거?"

               "원래 성실했던 네가 변한 게 슬프단 거지. 세상이 널 이렇게 만든 것 같아서.


"..."

               "그렇다고 네가 계속 성실하게 것도 싫어. 너만 손해야."


나보다 더 성실하게 사는 남편과, '앞으로는 우리 조금 덜 성실하게 살자'는 이상한 다짐을 하며 날의 출근 준비를 시작했다.




학창시절 받았던 수십 개의 성적표 중 담임선생님의 코멘트가 기억나는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 받았던 성적표가 유일하다.

그 시절 성적표에는 학생의 장점과 단점에 대해 담임선생님이 의견을 적어주는 란이 있었는데, 나에 대해 이렇게 적혀 있었다.


- 장점 : 책임감이 하고 맡은 바를 성실히 수행함

- 단점 : 융통성이 부족함


이때 나는 융통성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처음 보는 뜻 모를 단어 생김새도 이상한데 단점이라고까지 적혀 있으니 불안했던 것 같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엄마에게 성적표를 내밀며 이게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엄마의 대답은 기억나질 않는데, 묘하게 납득하는 듯했던 엄마의 표정은 어렴풋이 기억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때로부터 이십여 년이 훌쩍 지난 지금, 일 년밖에 보지 않고도 나에 대해 꿰뚫었던 담임선생님의 통찰이 놀랍다.



직장생활 내내 나는 책임감이 투철했고, 맡은 바 성실했다(고 자부한다). 누가 알아주는 일인지를 따지기보다는 맡은 일이라면 그저 열심히 했다. 일을 잘 해내는 것만 생각했고 일의  과정을 그럴싸하게 보여주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  

문제를 만들지 않고 일을 해낸 사람보다는, 우당탕탕 문제를 일으켰지만 그걸 간신히 해결해 낸 사람이 더 고생하고 노력한 것처럼 비춰질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다.


업무 과정을 시시콜콜 말하며 나의 노고를 알아주길 은연중에 바라거나, 이미 끝난 일을 다시 끄집어내서 생색을 내는 것 나에겐 어쩐지 쿨하지 못한 일처럼 여겨졌다.


이제와 돌이켜보그것은 쿨함이 아닌, 융통성 없음이었.

융통성 없는 책임감과 성실함은 그 노력에 비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표를 받아 들곤 했다.




세상 누구보다 열심히 살자고 말하는 <미라클 모닝>과 부담감은 내려놓고 스스로에게 집중하며 편히 살자는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가 모두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세상이다.


성실함의 대가를 누리며 잘 사는 이가 부러운 사람은 <미라클 모닝>을 집어 들며 열심히 살고자 다짐하고, 성실함의 대가를 누리지 못해 억울한 사람은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라는 제목에서부터 위로를 받으며 책장을 넘긴다.


사실 미라클 모닝 수준으로 열심히 산 적도 없는데 괜히 성실하게 살았다며 억울하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으니 조금 민망하긴 하다. 렇지만 새벽 6시에 일어나 운동하고 영어공부하고 신문을 읽지 않는다고 해서 열심히 살지 않은 건 아니니까.


직장인의 미라클 모닝은 매일 아침 열심히 하든 안 하든 대가는 별반 다르지 않은 걸 알면서도, '그럼에도 결국 열심히 맡은 일에 임하고 있' 오늘의 아침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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