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EPC(2)
지난 주에 이어서 해외 EPC 건설사에 대한 소개, 그 중 미국과 유럽 이외 지역의 EPC 건설사들에 대해 전달 드리려고 합니다.
전 세계 건설 업계에 대한 분석 데이터를 제공하는 미국의 ENR (Engineering News Record)에는 최근 들어 중국의 EPC 건설사들이 최상단에 위치합니다. 하지만, 공산당 정부가 떠먹여 주는 자국 건설 수요로 몸집만 키운, 덩치 큰 애송이 중국의 EPC 건설사들은 품질, 납기 등 실력에 대한 평판이 좋지 않고, 정부 지원 말고는 어느 부분을 배워야 할지 찾지 못하여 제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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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trofac – UAE (1981 ~ )
페트로팩은 1981년 미국 텍사스에서 모듈 (플랜트에 쓰이는 설비들을 구조물 내에 우겨 넣고 특정 기능을 하도록 만든, 설비들의 작은 집합) 제작업체로 출발했지만, EPC 사업은 UAE의 샤자 (Shajah)에서 엔지니어링 조직을 만들면서 시작했고, 프랑스 노르망디 해안 근처의 영국 왕실령 섬인 저지섬에 본사가 있는, 런던 주식 시장에 상장된 등기부가 혼란한 회사입니다. EPC 사업을 UAE에서 주도하기 때문에 본사의 위치를 UAE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많습니다.
다른 EPC 건설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늦게 시작했지만, 우리 나라가 수주를 하려고 뛰어드는 프로젝트 대부분에서 경쟁하고 있는 강력한 경쟁자 중 하나입니다.
EPC 사업의 본진이 중동 한복판에 위치해 있다는 것은 많은 이점이 있습니다. 우선, 지리적으로 Oil & Gas 산업의 메카인 중동과 북아프리카 시장에 매우 가깝고, 중동에 위치했기 때문에 세금을 내지 않고, 중동 내의 매우 강한 네트워크를 온전히 이용할 수 있습니다.
회사 및 프로젝트의 운영도 독특하면서 명확한 방침을 가지고 있습니다. 회사의 대표는 아랍인 (시리아 출신 영국 사업가)이며, 영업은 영국인이 하고, 실제 프로젝트 수행은 대부분 인도인이 진행하는 다국적 임직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건설공사는 다른 EPC 건설사와 다르게 현지 시공회사 (제네콘이라고 부릅니다)에 위임하는 방식으로 시공에 따르는 리스크를 현저하게 줄였습니다.
확고하고 독특한 방침으로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 사이에 오만, 카타르, 알제리, 이란, 쿠웨이트 등에 진출한 페트로팩은 빠른 시간 내에 급성장하여 2015년에는 사상 최대의 매출 (79억불)과 수주 잔고 (207억불)을 기록하면서 플랜트 업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2019년 기준 페트로팩의 매출은 55.3억불 (약 6조 4천억원), 수주 잔고는 74억불 (약 8조 6천억원)로 전 세계에 31개의 지사를 두고 11,500명이 일하고 있는 탄탄한 건설사입니다.
L&T – 인도 (Larson & Toubro, 1938 ~ )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였던 1938년, 덴마크 엔지니어인 Larson과 Toubro가 덴마크의 유제품 기기업체 지사를 인도에 설립하면서 시작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철공소, 조선수리소 등을 운영하며 전쟁에 동원되었다가 1950년부터 철강공장을 건설하면서 인도 최대의 시공업체가 되었습니다.
L&T는 육상 및 해상 플랜트와 연관된 많은 사업들을 모두 진행하고 있는 인도 최대의 건설/중공업 그룹 (L&T Construction, L&T Hydrocarbon, L&T Heavy Engineering, L&T Power, L&T E&A) 입니다. 육상 및 해상 플랜트의 EPC 사업 뿐만 아니라, 장치류를 제작하는 중공업, 발전소 설비 제작, 전기 분야 제조업 등 제조 능력까지 갖춘 대형 중공업/건설 그룹입니다.
예를 들어, 계열사 중 하나인 L&T Heavy Engineering은 세계 5대 장치류 제작업체 중 하나로 우리 나라의 두산중공업이나 현대중공업에 비빌 수 있는 수준으로 큰 회사이고, 다른 계열사인 L&T Power는 발전소의 주요 설비 (보일러, 터빈 등)을 직접 제작하고 원자력 발전소를 포함하여 전통에너지를 활용한 발전소의 EPC를 건설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2019년 기준 그룹 전체 매출은 2조 9천억 루피 (약 46조 3천억)으로 약 28,000명의 직원이 L&T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수주하는 프로젝트 중 70%가 인도 프로젝트로, 자국의 인프라 건설 붐에 의해 급속히 성장 중에 있는 건설사입니다.
JGC – 일본 (1928 ~ )
1928년, 일본에 정유공장을 건설하고 운영할 목적으로 일본휘발유회사를 설립하면서 시작하려 했으나, 정유 공장 건설이 실패하면서 미국의 UOP (Oil & Gas 관련 다양한 라이선스를 보유하고, EPC 건설사 들에게 라이선스를 공급하는 “을”이지만 “갑”을 마음대로 쥐고 흔들 수 있는 “슈퍼 을” 입니다..) 라이선스를 도입하여 설계 회사로 종목을 변경합니다.
1945년 일본 패망 후에는 일본의 플랜트 산업과 같이 성장하게 됩니다. 전후 복구사업과 정유공장 현대화사업에 참여하면서 일본 내 입지를 다지고, 설립 당시 실패했던 일본 최초의 정유공장도 1956년 건설에 성공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1960년에는 중남미 (페루, 아르헨티나) 정유공장 프로젝트를 수주하면서 일본 내 EPC 건설사 중에는 선두로 해외에 진출했습니다. 그 뒤로 탄력이 붙어서 1965년에는 염치도 없이 한국, 중국 동남아 건설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시장을 계속 확대하면서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전까지) 전성기를 맞게 됩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JGC는 역량을 갖춘 EPC 건설사입니다. LNG 카르텔의 주요 멤버로 LNG 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고, 저유가 기조를 보일 때는 일반적으로 대형 EPC 건설사가 진행하지 않는 소규모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위험을 회피는 능력도 갖추고 있습니다. 인건비를 낮추기 위해 필리핀에 엔지니어링센터를 두는 등 (우리 나라에도 지사가 있습니다) 외국인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사업 영역 확장을 위해 전사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2019년 기준 (2019년 4월 ~ 2020년 3월말) 매출은 4천8백억엔 (약 5조 3000억)이고 약 7500명의 직원이 JGC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강세를 보이는 LNG 시장에서도 지속적으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위기를 겪고 성장한 글로벌 EPC 건설사
2주에 걸쳐 설명 드린 글로벌 EPC 건설사들의 공통점은 대부분 폐업 수준의 위기를 겪었다는 점 입니다.
플루어는 1981년부터 1986년까지 연속으로 적자를 내다가 구조조정, 사업개편, 전문경영인 도입으로 기사회생 했고, 테크닙은 1984년 대규모 적자를 내면서 전체 인원의 20% 해고를 포함한 구조조정 노력에도 불구하고 당시 프랑스 정부의 지원으로 겨우 파산을 모면했습니다.
아시아 시장에서 실적이 좋았던 JGC도 우리 나라의 IMF 금융위기 당시, 1997~1998 연속 적자를 맞으면서 위기를 겪었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2010년까지 매출하락을 보이면서 어려움이 있었으나, 구조조정이나 돈 되는 프로젝트를 선택적으로 수주하는 능력꼼수을 보이며 위기를 빠져 나옵니다.
한국 플랜트 산업은 지금도 위기인 것 같습니다. 몇 년 전부터 한국 플랜트 산업의 분위기는 언제 해소될 지 모르는 “불황”과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불안감”입니다. 코로나로 더욱 심해졌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건설사를 비롯한 플랜트 유관 업체들은 기본 바탕이 강합니다. 높은 교육열 때문인지는 몰라도 엔지니어들의 역량은 세계 어디에 내놔도 꿀리지 않고, 한국인 종특상 사막 한가운데서도, 바다에 떠 있는 플랫폼 위에서도 누구보다 근면합니다. 손재주까지 좋아서 더 많은 현장 작업을 훨씬 뛰어난 품질로 짧은 시간 안에 마무리합니다.
저는 지금 우리나라 플랜트 산업이 더 큰 업적을 쌓기 전에 숨을 고르는 중이라고 생각합니다. 분명히 다시 잘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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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에는 글로벌 플랜트 업계가 코로나에 대응하여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즐거운 추석 연휴 되세요!
참고 사이트
http://annualreview.larsentoubro.com/download/Annual_Review_2019.pdf
https://www.jgc.com/en/ir/ir-library/assets/pdf/fy19_tanshin.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