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언더워터(Under Water, 2020) - 해저 플랜트
플랜트 산업은 생산 설비의 건설을 위해 꼭 필요한 산업이지만, 이 산업에 종사하지 않는 분들에게는 낯설고 익숙하지 않은 분야입니다. 그래서, 영화의 소재로는 신선하게 다뤄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플랜트를 소재로 한 영화를 소개해 드리면서 영화 속 플랜트가 실제 플랜트와 유사한지, 아니면 우주를 다룬 SF영화처럼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는 신비한 소재로써 활용되었는지 비교해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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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언더워터 (Under Water, 2020)
오늘 소개해 드릴 영화는 작년 5월(미국에서는 1월)에 개봉한 윌리엄 유뱅크(William Eubank) 감독의 언더워터입니다.
영화 정보
감독: 윌리엄 유뱅크
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 제시카 헨윅, T.J. 밀러, 뱅상 카셀, 존 갤러거 주니어
장르: 액션, 스릴러
영화 내용
언더워터는 지휘통제센터인 케플러 스테이션이 심해 괴생명체의 습격을 받아 붕괴되면서 시작합니다. 기계 엔지니어인 주인공 노라가 선장을 비롯한 다른 동료들과 생존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높은 로벅 스테이션(Roebuck Station)으로 이동하면서 괴물의 습격이나 동료의 희생, 죽음 등 다양한 사건이 벌어지고 결국 시추선을 탈출하는 것이 영화의 전체 플롯입니다.
영화 속 해양플랜트
Tian Industries라는 가상의 회사가 소유한 이 해저플랜트는 연간 1400억 톤,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배럴/일’로 환산 시 하루에 26억 8천만 배럴을 생산하는 (원유의 밀도에 대한 영화 속 언급은 없었던 것 같아서 API 30 정도의 중질유라고 가정하고 계산했습니다. 계산이 잘못되었다면 지적해 주세요) 엄청난 생산 능력을 갖춘 플랜트입니다
게다가, 주인공들의 최종 목적지인 로벅 스테이션(Roebuck Station)은 해저 6.9마일, 에베레스트(8848m)를 거꾸로 박은 것보다 깊은 마리아나 해구(11035m)에 설치되어 있다고 설정되었습니다. 마리아나 해구는 제곱 인치당 8톤의 수압을 견뎌야 하는 극한의 환경이기 때문에 이 곳에 6000톤이 넘는 시추용 드릴 등의 설비가 설치되어 있다는 설정만으로 SF영화로 분류해도 될 것 같습니다.
영화에서 확인된 구조물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Kepler Station / 로벅 (Roebuck) 드릴의 지휘통제 센터 / 선원 316명
Deep Bore Access Tunnel / 깊이: 10.3km (5.4 miles)
Midway Station / 포세이돈 급 시추 설비 (bore site, 유정 위에 설치해서 뽑아낸 원유를 모니터링하고 제어하는 설비) / 깊이 10.5 km (6.5 miles)
Shepard Drill / 폐쇄된 탐사 유닛 / 깊이 10.8km (6.7 miles)
Roebuck Station / 트리톤 (Triton) 급 시추 설비 (bore site) / 깊이 11.1km (6.9 miles)
실제 해저플랜트는?
영화에 표현된 내용들의 사실 여부를 알아보기 전에 실제 해저 시추 설비들의 구조를 그림으로 간략하게 설명드리겠습니다. 해저에 매장된 석유를 시추하기 위한 해저 플랜트는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구성을 갖추고 있습니다.
크리스마스트리(XT): 상기 그림의 유정(well)에 설치되어 유정에서 나오는 생산물을 제어하는 밸브 뭉치입니다. 초기에 밸브의 설치 모양이 크리스마스트리처럼 생겼다고 붙여진 이름인데, 지금은 Subsea tree라고 많이 불립니다.
매니폴드(Manifold): 3~4개의 유정에서 생산된 생산물을 하나로 모아서 분리기와 펌프 압축기로 공급하는 시스템입니다. 해저 분리기(Subsea separator)가 같이 설치될 수도 있습니다.
해저 분리기(Subsea separator): 유정에서 70% 이상의 물이 포함된 기름, 가스 각종 이물질이 뒤섞여서 올라온 생산물을 다시 물과 가스와 기름으로 분리 처리해야 하는 해상플랜트 프로세스 시스템의 할 일을 해저 바닥에서 물과 기름과 가스로 분리하는 설비입니다.
해저 펌프(Subsea pump, 위 그림의 ESP(Electric Submersible Pump) Pumping Station): 해저 분리기에서 분리된 기름을 높은 압력으로 수면 상부의 해양플랜트로 이송합니다.
해저 압축기(Subsea compressor): 매니폴드에 설치된 해저 분리기에서 분리된 가스를 고압으로 압축해 수면 상부의 해양플랜트로 보내주는 역할을 합니다.
해저 수직관 및 배관(Riser and flowline): 해저의 유정에서 채굴한 원유를 해상의 플랫폼으로 이송하는 배관입니다.
PLET(PipeLine End Termination): 두 개 이상의 파이프 라인을 연결하는 지점
Jumper: 해저 구조물 사이의 연결부
해저케이블(Umbilical)
팩트체크
Q: 시추 설비는 원자력으로 구동되는 데, 가능한가? 현실적인가?
가능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1960년대에 원자력 추진 민간 상선이 만들어졌고, 소형 모듈형 원자로(SMR, Small Modular Reactor)도 다양한 분야에 활용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소형 원자로 관련 세계 최초로 인허가 기관으로부터 표준설계인가를 받았을 정도의 소형 원자로 기술의 선도 국가라고 합니다
Q: 에베레스트(8848m)를 거꾸로 박은 것보다 깊은 마리아나 해구(11035m)에서 시추가 가능할까?
모든 설비 및 자재를 제곱 인치 당 8톤의 수압을 견딜 수 있게 제작하고 설치해야 하는 기술적인 어려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민간인(?)인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딥워터 챌린저를 개발/제작해서 마리아나 해구를 탐험했으니까, 해저에 승무원들이 생활할 수 있는 LQ(Living Quarter)까지 갖춘, 본격적인 생산설비를 제작하고 설치하는 것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기술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해 보임에도 제가 ‘영화의 설정이 비현실적’이라고 느꼈던 이유는 채산성을 맞추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심해 유전 개발 비용 및 추출 비용이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지만, (참고: Offshore review Subsea market) 기후 변화로 입지를 잃어가고 있는 화석연료를, 게다가 일반적인 해저 유전보다 몇 배 이상 많은 비용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는 지구에서 가장 깊은 곳에 시추 시설을 건설한다는 발상이 극히 비현실적으로 보였습니다.
Q: 영화에 나온 것처럼 승무원이 실제로 수트를 입고 해저를 이동(승강기를 타고 내려가서 송유관을 따라 1600m를 걸어서 이동)하는 것이 가능할까?
해저 플랜트를 건설할 때는 구조물의 설치를 위해 잠수부가 투입될 수는 있겠지만, 영화처럼 수트를 입고 해저를 사람이 걸어서 이동한 사례는 아무리 찾아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해저에서 콘서트를 한 적은 있습니다. 콘서트는 Troll-A의 운영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노르웨이 국영 석유 기업인 스타토일(Statoil)이 개최했습니다. 노르웨이 Troll Gas Field에 설치된 천연가스 시추 플랫폼인 Troll-A는 4개의 거대한 콘크리트 원통형 다리로 상부 생산 플랫폼을 떠받친 형태인데, 전체 높이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프르의 페트로나스 타워보다 높은 472미터나 됩니다. 초대 가수인 케이티 멜루아(Katie Melua)는 콘크리트 기둥 하부, 해저 303 미터에서 노래하고 기네스북에 올랐습니다.
결말은?
영화를 보실 분들을 위해 흰색 글씨로 표시했습니다. 결말이 궁금하시면 아래를 드래그하시면 됩니다.
노라, 에밀리, 스미스(?)는 결국 로벅(Roebuck)에 도착했지만, 사용 가능한 탈출용 포트는 두 대 뿐입니다. 본인의 희생을 결심한 노라는 동료 2명을 탈출용 포트에 태워 보내고 괴생명체가 동료가 탄 탈출 포트를 쫓아가는 것을 보고 원자로를 강제로 멜트다운(Meltdown) 시킵니다. 동료를 살리기 위해 희생한 노라에 의해 괴생명체는 기지와 함께 폭파합니다.
시추 시설 사고 후 유일한 생존자 2명은 노라가 살려 보낸 동료 2명입니다. Tian Industries는 감시 카메라가 사고로 파괴되었다는 등의 이유로 시추 시설이 붕괴된 원인 및 상세한 상황에 대한 공개를 거부했고, 수많은 직원이 죽었지만 시추를 재개하면서 찝찝하게 끝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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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언더워터의 관람평에는 공포스럽다는 평가도 있는 것 같은데, 저는 스위트홈과 같은 크리처물에 익숙해서인지 독특한 스케일의 재난 스릴러로 봤습니다. 특히, 익숙한 플랜트가 다뤄져서 친근한 느낌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음 주에는 망작 오브 망작, 국내 영화 7광구를 준비해서 전달드리겠습니다.
좋은 한 주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