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점수가 내 것으로.
고3으로 진입하면서 공부에 크게 욕심내지 않았던 내게 꽤나 효과적이었던 학교의 관행이 있었다. 첫 수능 모이고사에서는 선생님이 감독을 들어는 오지만 감시는 하지 않는다. 과목별 시험 시간만 지킨다면 뭐든 다 해도 된다. 책을 뒤져봐도 되고 친구와 논의를 해도 된다. 감독으로 들어온 선생님은 우리에게 그렇게 해도 된다는 말씀은 하지 않으신다. 다만 눈을 감고 주무시는 척을 하시거나 시험 내내 책을 보신다던가 하는 방식이다.
지시하진 않지만 모의고사를 자유롭게(?) 푸는 것을 허용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딱 고3 첫 모의고사뿐이다. 그다음 시험에서 그런 짓을 하다간 복도로 끌려가 몽둥이찜질을 받을지도 모른다. 옛날엔 선생님의 회초리는 당연했다.
점수에 딱히 욕심이 있었던 것은 아닌데 그날은 그냥 친구랑 맞춰보면서 시험을 봤다. 그래서 맞은 점수는 내 생에 최고 득점의 모의고사 성적이었다.
참으로 이상한 게 그 점수는 가짜 점수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높은 점수를 내 점수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다음 달은 다행히도 난이도가 낮았던 달이라 첫 달보다 많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렇다 보니 가짜점수는 나에게 있어 가까운 목표가 되었다.
그렇게 몇 달을 보내다 수능 4개월 전쯤인가 모의고사가 정말 어렵게 나왔다. 점수가 많이 떨어졌는데 그 기준은 이미 가짜 점수였기 때문에 나에겐 충격적이었다. 갑자기 그래선 안된다는 생각을 했고 내가 가진 문제점들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수학과 영어는 나름 상위권이었고 국어와 사회 영역에서 점수가 나오질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2달간은 다른 공부는 미뤄두고 못하던 영역을 제대로 집중해서 공부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가장 못 맞았던 점수는 어쩌면 내가 가질 수 있는 평의 한 점수였는데 크게 떨어진 것 같은 위기감이 들었으니 말이다. 결과적으로 수능을 꽤나 잘 치렀단 생각이 든다. 가채점 때는 울상이었지만 그 해 수능이 꽤 어렵다는 평가를 받았으니 나쁜 점수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때는 경쟁 고등학교와 점수 차이를 내기 위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더 많은 학생들을 우리 고등학교로 유치하기 위한 것이다 하는 이야기. 하지만 난 그 혜택을 제대로 보았다. 그 가짜 점수를 내 것으로 알게 되었고 그걸 위해 열심히 했으니 말이다. 그것뿐만 아니라 선생님의 수업을 더 열심히 듣게 된 것도 한 몫했을 것이다.
이젠 그런 전통은 없겠지만, 혜택을 받은 나로선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이 든다.
때로는 그런 자기 암시를 통해 더 발전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면 좋은 교육 방식이 되지 않을까 했지만 그 이후론 그런 방법을 쓰거나 효과적으로 운영해 보진 못 했다.
뭐든 타이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