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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신돌이 Aug 19. 2020

셀프 장례식

#2. 혼자 살아가는 중입니다 


외할아버지는 돌아 가시 전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깍쟁이 같은 년.”

“뭐라구요, 아부지!”

엄마는 웃으며 눈을 흘겼다. 나는 옆에서 고개를 끄떡거렸다.

장례식장엔 사돈의 팔촌까지 왔다. 조문객들은 서로의 안부를 묻기에 바빴다. "아이고, 오랜만이다. 넌 결혼했니?" "너 가발사업을 한다며?" "이런 데라도 와야 얼굴을 보는구나!" 사람들은 서로의 안부를 묻길 바빴다. 외할아버지에 대해 묻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10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뇌졸중으로 쓰러져 5개월 넘게 식물인간 상태였다. 장례식에 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천만다행이라고 했다. “긴 병에 효자 없다.” “그동안 얼마나 고생이 많았니!” 69세, 결코 많은 나이가 아님에도 조문객들은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하기보다는 엄마와 우리 자매를 위로했다. 그때 깨달았다. 장례식은 고인을 위함이 아니라 유가족을 위한 거라고.   

   

7년 전 J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J는 죽기 전 가족들에게 올 사람도 없으니 장례식은 절대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그 때문인지 가족들은 J의 지인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나는 J 어머니의 배려로 장례식에 갈 수 있었다. 장례식장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웃고 있는 J 영정 사진이 보였다.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얘가 이렇게 일찍 죽을 애가 아닌데…….’ 내 말에 동의해 줄 누군가를 찾아봤지만 시커먼 조문객들 중에 아는 얼굴이 없었다. 그래서 더 슬펐다.  장례식 하지 말라고 유언을 한 J가 원망스러웠다. 나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J 언니를 붙잡고 엉엉 울었다.      


얼마 전 엄마 친구 분이 돌아가셨다. 일명 오자매 멤버 중 한 분이셨다. 그분의 딸이 문자로 부고를 알렸다. 엄마는 다른 멤버들과 통화를 할 뿐 장례식장에 가지 않았다. 코로나 때문이었다. “다들 안 간다고 해서.”라고 했다. 그분 딸은 하루에 몇 번씩 부고 문자를 두, 세 번씩 보냈다. 나는 친구들이 오지 않는 장례식장을 떠올렸다.  





                                                                                   

임대주택에 입주한 분이 자신이 죽어도 발견되지 않을까 봐 걱정되어 문 밖에 써 붙여 놓은 글

ⓒ박사라2017.12.18.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우연히 검색하다 보게 된 사진이다. 처음엔 잘못 본 줄 알고 몇 번을 보고 또 봤다. 글자 하나하나에 글쓴이의 간절함이 느껴졌다.     


고독사, 고립사. 결코 남의 얘기가 아니다. 가끔 죽은 지 몇 달 만에 시신이 발견됐다는 뉴스를 접할 때마다 ‘어쩌면 나도?’란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다. 죽음 자체보다 사후가 더 두렵다. 몸이 썩어 문드러질 때까지 아무도 모르면 어쩐다? 죽으면 바로 자연분해되는 약 같은 게 개발되면 좋겠다. 그럼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리지 않고 내 손으로 내 장례를 직접 치를 수 있을 텐데…….    

 

요즘 셀프 장례식이 늘고 있다고 한다. 생전에 상조회사에 장례나 매장 형식을 미리 정해놓는 다고 한다. 고령화와 1인 가구의 영향이란다. 좀 서글프긴 하지만 바람직한 현상 같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영화음악의 거장 엔니오 모리꼬네의 “엔니오 모리꼬네는 죽었다.”로 시작되는 셀프 부고가 화재가 됐었다. 장례식도 사망 당일 치러졌다고 한다. 작은 장례식을 치른 셈이다.  

    

나도 60대가 되면 셀프 장례식을 준비해야겠다. 수의는 입지 않고 죽으면 바로 화장장으로 가는 무빈소 장례를 하고 유골은 한강에 뿌려 달라(불법인가?)고 해야겠다.      


생전 장례식을 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영정사진도 찍고 유서도 써보는 거다. 그동안 고마웠던 사람이나 상처 줬던 사람에게 감사와 용서를 구하는 편지를 쓰는 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에게 편지를 쓴다. 너 참 바보처럼 살았구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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