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혼자 살아가는 중입니다
몇 해 전 일이다. 야구 모자 쓰고 백 팩 메고 길을 가고 있는데 지나가던 아저씨가 길을 물었다.
“학생 주민 센터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지?”
‘오잉, 학생?’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나에게 한 말이 맞나 싶어 아저씨를 빤히 쳐다봤다. 아저씨 표정을 보니 내게 한 말이 틀림없었다. 너무 기뻐서 입이 귀까지 찢어졌다. 나는 최대한 상냥한 목소리로 내비게이션급 길 안내를 해드렸다.
“전방 50미터 편의점 앞에서 우회전입니다… 30미터 부동산 앞에서 좌회전입니다.”
“고마워요, 학생.”
아저씨는 끝까지 나를 학생이라 불러주었다. 맘 같아선 주민 센터까지 직접 모셔다 드리고 싶었다.
‘아무쪼록 복 많이 받으세요.’
나는 멀어지는 아저씨 등에 대고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 후 “학생!”으로 불리는 일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학생은커녕 너도 나도 아줌마라 부른다. 심지어 중학생 조카도 아줌마라고 놀린다.
사실 30대까지만 해도 누가 “아줌마”라고 부르면 기분 나빠서 “아줌마 아닌 데요!” 하며 발끈하기 일쑤였다. 결혼도 안 했는데 아줌마로 불리는 게 좀 억울했다. 하지만 40대에 들면서는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는다. 뒤에서 누가 “아줌마!” 하고 소리치면 “네?”하며 돌아볼 정도다.
문제는 사람들이 비혼 아줌마와 기혼 아줌마를 구분하지 않는다는 거다. 대부분 이 나이면 결혼했거니, 하고 질문을 던진다. “애는 몇 살이에요?” “남편은 뭐 해요?” 등등. 그래서 “결혼 안 했는데요.”라고 하면 다들 토끼 눈을 하고 “아니, 왜요?”라고 되묻는다. 그러게요. 왜 여태 결혼도 못(안) 했을까요?
도서관 서평 수업에 다닐 때다. 강사와 수강생 모두 주부여서 그런지 무슨 책을 읽든 모든 대화가 육아와 결혼생활로 이어졌다. 처음엔 결혼 안 했다고 말할까, 고민하다가 그냥 조카가 내 애인 양 대화에 참여했다. 계속 만날 사람들이라면 모를까, 한 달에 4번 만나고 헤어질 사람들에게 구구절절 말하기 귀찮았다.
아는 동생이 오랜만에 전화를 해서는 자기 사촌 언니가 50대인데 얼마 전에 결혼했다며 나보고 진짜 결혼 안 할 거냐고 닦달을 했다. 그래서 내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내 신랑보다 새아버지 얻는 게 더 빠를 거라고 했다.
지금 내게 중요한 건 결혼이 아니라 취업이다. 그래서 요즘 자격증 공부 중이다. 하지만 합격 여부를 떠나 걱정부터 앞선다. 오만가지 자격증이 있어도 취직 못하는 청년들이 수두룩한데 경쟁력 없는 비혼 아줌마가 자격증 하나로 취업에 성공할 수 있을까, 싶다. 지금보다 딱 10년만 젊으면 좋으련만. 그럼 이것저것 도전해 볼 텐데……. 하긴, 30대에도 20대로 돌아갔으면 하고 바랐던 것 같다. 어쩌면 50대가 돼서도 “나, 40대로 돌아갈래!”를 외칠지도 모른다. 낼모레 팔십 인 울 엄마도 “10년만 젊었어도”란 말을 입버릇처럼 내뱉는다. 다시 60대로 돌아간다면 운전면허를 땄을 거라나. 인간은 이렇게 후회 속에 늙어가는 걸까?
‘남은 날 중에 오늘이 가장 젊다’란 말이 있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얼마나 남았을지 모르겠지만 이제부터라도 열심히 살아보련다.
전국의 모든 비혼 아줌마들 “빠이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