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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의 무게

#23. 혼자 살아가는 중입니다.

by 대신돌이

얼마 전, 아동복지 전문가 채용 면접을 봤다. 작년에도 한번 했던 일이라 괜찮을 줄 알았는데 심장이 벌렁거렸다.


안정액을 마셨다. 심장이 덜 나댔다. 그래도 목소리의 떨림까진 막을 수 없었다. 아무려나, 열심히 지껄였다.

절박했다. 통장잔고가 바닥나고 있었다.


면접관의 질문에 사실과, 거짓과 허풍을 섞어 너스레를 떨었다. 면접관이 좋아했다.

합격이군. 천만다행이었다.


내가 처음부터 면접을 잘 본 건 아니다. 내게 면접이란 교차로에서 벌거벗고 서 있는 것과 같다.


낯 가리고 소심하고 사회 경험 없는, 그냥 나이만 많은 나를 어떻게 설명하란 건지 망막했다. 당연히 면접에도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이 좋아서 지원했습니다. 아이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면접관의 질문에 단답형으로 대꾸했다. 그렇게 말해도 될 줄 알았다. 진심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단답형으론 그 어떤 진심도 전달할 수 없었다.


다른 지원자들은 달랐다. 그들은 나보다 경력도 많고 경제력도 있고 안전지기 남편도 있었다. 그럼에도 "하하 호호" 웃어가며 자신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려줬고 뽑아주시면 열심히 하겠노란, 간절함까지 보였다.


울고 싶었다.

나는 왜 이 모양인가, 자괴감이 들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면접에도 스토리텔링이 필요하다는 걸.



그다음은 키즈카페 매니저 채용 면접이었다. 태도를 바꿨다. 나 자신의 스토리텔러가 되어 면접관이 묻지도 않은 채용 후 '계획'까지 떠들었다. 거짓말이 할수록 늘었다.

면접관이 감격했다.

"어머, 벌써 그런 계획까지 세우셨어요?"

휴, 합격이군. 태도를 바꾸니 성공이 보였다.


마음의 여유가 생기자 다른 지원자의 대답이 귀에 들어왔다. 그는 40대 초반의 남자로 체구도 왜소한데 목소리마저 히마리가 없었다.

"지원한 동기가 뭔가요?"

"안전교육지도사 자격증이 있어서 아이들의 안전을 책임지기 위해 지원했습니다."

"채용된다면 어떤 프로그램을 진행하실 계획인가요?"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안전교육지도사 자격증이 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안전교육을 시키겠습니다."


옆에서 듣는데 안타까웠다. '안전교육지도사자격증'이 그의 전부인 것 같았다. 스펙도 없는데 스토리까지 없으니 간절함도 보이지 않았다. 예전의 나를 보는 것 같았다.


면접을 마치고 문을 나서는데 그가 "에이씨"하며 내 옆을 지나갔다. 그러고는 갈 곳을 잃었는지 이리 갔다, 저리 갔다 갈팡질팡 하더니 어디론가 가 버렸다.


그의 어깨 위엔 '가족'이 있었다.

감히 측량할 수 없는 삶의 무게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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