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혼자 살아가는 중입니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누구지? 무슨 일일까?
초조함에 얼른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혹시 000씨 아닌가요?”
아... 말투가 기억났다. 1년 전 사회복지사 교육에서 만난, 푸석푸석한 파마머리만큼이나 정신없던 여자다. 조별 활동 때 자기랑 거주지가 같다며 우리 조원들 번호를 다 받아갔다. 그런데 왜 나한테 전화를 했을까? 몇 달 전 지인으로부터 여자의 소식을 들었던 터라 그리 달갑지는 않았다.
"아, 쌤. 안녕하세요?"
나의 아는 척에 여자가 반가워했다. 올해 교육생 명단에 내 이름이 있길래 전화했단다. 난 여자가 아동 돌봄 교사를 또 지원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작년에 센터장과 특별 수업 보조 문제로 싸우고 두 달 만에 일을 그만뒀기 때문이다. 센터장이 수업 보조를 하라고 했더니 대학원까지 나온 내가 왜 남의 수업을 보조하냐며 못 하겠다고 했단다. 그 말을 듣고 어찌나 어이가 없던지, 이런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 아동 돌봄 일을 하면 안 된다고 지인과 뒷담화를 했었다.
여자는 내 근무지가 어딘지, 거기서 어떤 일을 했는지, 다른 조원들은 다 뭐하는지 꼬치꼬치 캐물었다. 나는 다른 이들은 모른다며 나와 관련된 것만 답하고 너는 어느 센터에서 근무했냐고 물었다. 하지만 여자는 말하고싶지 않다며 이미 알고 있는 지역구만 말하고 센터 이름은 알려주지 않았다. 살짝 당황했다.
‘아, 뭐지? 자기 얘긴 안 하네'
여자가 또 질문을 했다. 대답해 주고 나도 궁금한 걸 물었다. 여자가 또 즉답을 피했다. 상당히 불쾌했다.
“쌤은 쌤 궁금한 건 다 물어보고 내 질문엔 대답을 하나도 안 하네요.”
“그렇게까지 세세하게 말하고 싶지 않아요.”
'아, 그러셔! 그럼 나도 굳이!'
몇 마디 대꾸해 주고 약속 있다고 한 후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번호를 지울까, 하다가 이름을 '받지마'로 쓰고 저장했다.
여자는 교육 첫날부터 지각을 했다. 그래서 맨 뒷자리중 유일하게 비어있던 내 옆자리에 앉았다. 혼자 조용히 있고 싶었는데 여자가 수업시간 틈틈히 말을 시켰다.
"난 사회복지사 경력이 아주 많은데 넌 얼마냐?" "4개월." ".아, 그런데도 뽑혔어?" "응." "능력자네.""
'그런가?'
"몇 살인데?" "많아." "그래서 몇 살인데?" "그냥 많아."
'그렇게 궁금하면 니 나이부터 까던가.'
"아이가 몇 명이냐?" "둘"
말이 길어지는 게 싫어 조카 팔았다. 결혼 안 했다고 하면 "왜 여태 안 했냐? 그럼 뭐 먹고사냐? 엄마가 돈이 많니?" 등의 질문을 해댈게 뻔하기 때문이다. 고작 일주일 보고 말 여자에게 내 개인사를 세세히 말하기 싫었다.
"난 오리지널 싱글이야."
'예에?'
깜짝 놀랐다. 오리지널 싱글이라니, 무슨 음악앨범도 아니고. 돌싱이라는 오해를 많이 받았나? 그래서 오리지널을 붙여 한 번도 결혼 안 했다는 걸 강조하고 싶은 건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 나이에 돌싱이면 어떻고 싱글이면 어떤가? 가만 보니 너나 나나 안 간 게 아니라 못 간 거 같은데.
여자는 교육이 끝나면 오늘은 광화문 서점에 가고 내일은 독서모임에 갈 거라고 했다. 자기는 저녁시간을 오롯이 자기만을 위해 쓴다나. 그 말을 하는데 꼭 표정은 '넌 집에 가서 애들 밥 해야 되지?'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게 무슨 싱글만의 특권이라고. 결혼해도 충분히 할 수 있는데. 이래저래 특이한 여자란 생각이 들었다.
말이 너무 많아서 둘째 날은 살짝 거리를 뒀다. 질문을 해도 가장 최소한의 대답만 했다. 그래서 그런지 여자는 쉬는 시간에 옆 분단의 극 E 집단들과 수다를 떨었다. 쉬는 시간 내내 서 있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신나 보였다. 셋째 날엔 아예 그들 틈바구니로 자리를 옮겼다. 그 자리에 앉으려고 평소보다 일찍 온 것 같았다. 여자는 극E들에게 질문을 했다. 하지만 극E들은 자기 얘기를 더 많이 했다. 목청도 엄청 커서 여자 목소리가 작게 들렸다. 그래도 여자는 계속 말을 했다. 가만히 듣고만 있으면 불안한 것 같았다. 침묵도 대환데 왜 저렇게 좌불안석인가...여자가 안쓰러웠다. 외로워서 그런가? 나도 타인의 눈에 저렇게 비칠까봐 두려웠다.
오리지널 싱글(오싱)
원래 싱글(원싱)
돌아온 싱글(돌싱)
어떤 싱글이든 가장 중요한 건 홀로서기란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