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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난 쓴다.

#36. 혼자 살아가는 중입니다

by 대신돌이

내 꿈은 글먹(글써서 먹고살기)이다. 많이 안 벌어도 된다. 한 달에 딱 백만 원 정도? (꿈이 너무 큰가?) 난 호텔 뷔페를 가도 김밥이랑 떡볶이 먼저 먹는 분식파라 식비도 별로 안 든다. 옷도 한번 사면 기본적으로 4,5년은 넘게 입는다. 화장도 잘 안 해서 스킨, 로션, 선크림만 있으면 된다. 아, 맞다. 죽을 때까지 이사 안 가고 살 수 있는 내 방만 있다면 월 70만 원만 벌어도 좋겠다.


하지만 여태껏 내가 글 써서 번 돈은 2019년도 OO 동화제에서 입선 상금으로 받은 50만 원과 작년에 OO문학상 동화부문에 참가상(?)으로 받은 2만 원(?) 상당의 상품이 전부다. 두 작품 다 수상자가 너무 많아서 수상작품집에 실리지 못했다. 그래서 어디 가서 상 탔다고 말하지 않았다. 괜히 자랑질했다가 책 보여달라고 할까 봐서다.


솔직히 OO문학상은 기대가 컸다. 부대행사로 진행된 '멘토링 게시판'에 내가 올린 글이 뽑혀서 화상으로 멘토쌤의 지도를 받았다. 멘토쌤은 화상 채팅 내내 칭찬만 해줬다. 문장이 너무 깔끔하다, 글에서 착한 마음이 느껴져 너무 좋았다 등등. 태어나서 글 쓴 걸로 말칭찬받긴 처음이었다. 어깨가 저절로 올라갔다. 드디어 나도 본상의 기회가!


그랬는데 참가상을 받은 거다. 그것도 멘토링으로 뽑힌 글이 아니라 응모 편수 맞추려고 급하게 쓴 글이 받았다. 당황스러웠다. 멘토쌤은 왜 나를 뽑지 않았을까? 심사위원 명단을 찾아봤다. 멘토쌤의 이름이 없었다. 아, 이래서 내가 떨어졌구나. 멘토쌤이 심사위원이 아니여서... 운 없음을 탓했다. 내 필력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맨 처음 글짓기 상을 받은 건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그때는 이상하게 글짓기만 하면 상을 줬다. 담임이든 부모든 "너 글 잘 쓰는구나." "잘했다!" 같은 칭찬을 들은 기억은 없다. 그냥 상만 받았다. 그래서였을까? 상을 받아도 '나중에 작가가 돼야지!' 이런 생각은 하지 못했다.


중학교 1학년 때 학교 대표로 서울시 백일장 대회에 나갔다. 다른 반이었던 6학년 때 친구가 담임이 글짓기 잘하는 사람 추천하라고 해서 나를 추천했단다. 내가 학교 대표가 되다니, 뭐라도 된 것 같았다. 어린이대공원 잔디밭에 앉아서 글짓기를 했다.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6학년때처럼 그냥 썼다. 학교 대표로 나갔으니 못해도 참가상은 주겠지, 싶었다. 월요일 조회 때마다 단상에 올라가 상 받는 상상을 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고2 때였다. 점심시간에 반장이 오더니 문학쌤이 나를 찾는다고 교무실에 가보라고 했다. 내 이름도 모르는 쌤이 나를 찾는다니 깜짝 놀랐다. 교무실로 갔다. 문학쌤이 4교시 때 제출한 작문원고를 보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대뜸 한다는 소리가 "니가 OOO이야?"였다. 말투가 공격적이었다. 저절로 주눅이 들었다. 내가 OOO인 게 큰 잘못 같았다. 내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네."라고 하자 문학쌤이 턱을 치켜세우며 "가 봐."라고 했다. 도망치듯 교무실을 빠져나왔다. 기분이 나빴다. 날 일부러 부른 이유가 궁금했다. 설마 내가 쓴 글을 교지에 실으려고? 혼자만의 희망회로가 돌아갔다. 하지만 착각회로였다. 교지에 실린 건 내 글이 아니라 돌아가신 할머니를 기리며 쓴 내 단짝의 글이었다.


40대 초반이었다. 동네 마트에서 나오다 중학교 동창 OO을 만났다. 30년 만이었다. 무릎 나온 츄리닝에 모자까지 푹 눌러썼는데 날 단박에 알아봤다. 반가움보다 쪽팔린 게 먼저였다. 하필 이 꼬라지로 만나냐!

그런데 OO의 말이 더 충격적이었다.


"너 작가 됐어? 안 그래도 매년 신춘문예 찾아보고 내 이름으로 된 책이 나왔나 찾아봤는데..."

"아니, 내가 무슨..."


살면서 내가 들은 가장 웃픈 말이었다. 얜 왜 내가 작가가 됐을 거라 생각을 한 걸까? 중학교땐 글짓기상 한번받은 적이 없는데.

뭐 하냐고 묻길래 집에서 조카 본다고, 고로 백수라고 고백했다. OO이 자기는 중학교에 다니는 남매가 있다고 했다. 전화번호를 묻길래 알려는 줬다. OO도 나도 서로 연락 안 할 걸 안다. OO은 나한테 실망해서, 난 내 자신한테 절망해서...


OO을 만나고 며칠 동안 우울 속에서 지냈다. 내가 한없이 무능하고 한심스러웠다. 만약 내가 OO과 같은 고등학교를 다녔더라면 아니, 6학년 때 담임이 글솜씨가 있으니 작가가 되라고 알려줬더라면 고2 때 문학쌤이 문예창작과에 가보라고 진학지도를 해줬더라면, 누군가 나를 그렇게 도와줬더라면 나도 작가가 되지 않았을까?


그 날 난 7년 동안 써온 필사노트를 모두 찢어버렸다. 아무리 많은 책을 읽고 필사를 하고 습작을 해도 난 작가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꿈을 포기하고 나니 숨이 막혔다. 그동안의 내가 그냥 없어진 것 같았다. 난 살아 있는데, 꿈이 있어서 살아졌는데...


그래서 다시 쓰기로 했다. 다시 살기로 했다. 한번뿐인

인생인데 꿈은 이루고 죽어야지, 결심했다. 그리고 나를 30년동안 지지해준 OO의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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