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혼자 살아가는 중입니다
작은아버지가 죽었다. 그는 재산 문제로 큰아버지와 다투다 죽이겠다고 칼을 들이댄 인간이다. 그 일을 계기로 사촌고모를 제외한 모든 친척들이 그에게 등을 돌렸다. 작은엄마는 부부싸움만 하면 우리 집에 전화해 엄마에게 화풀이를 했다. 자기네 편을 안 들어준다는 게 그 이유였다.
유일하게 그의 부고소식을 전달받은 사람은 사촌고모였다. 하지만 그녀는 다리가 아프다는 이유로 장례식장에 가지 않았고 친척 그 누구에게도 그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 아무도 장례식장에 가지 않을 거란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필 그때 엄마가 고모에게 전화를 했다. 상대가 반기든 안 반기든 사돈의 팔촌까지 전화를 해 안부를 묻는 게 엄마의 하루 일과였다.
"OO아빠가 죽었단다."
'...'
대꾸하지 않았다. 하루 종일 전화통만 붙들고 있다가 알고 싶지 않는 소식이나 전하는 엄마가 싫었다.
"오늘 새벽에 죽었으니 모레가 발인이니까 내일은 장례식장에 가야되겠네."
하아. 이건 또 무슨 오지랖인가. 직접 연락받은 사람도 안 간다는데 연락도 받지 못하고 형수 대접도 못 받은 사람이 장례식장에 가겠다니, 성인군자가 따로 없었다.
“거길 왜 가는데?"
"어떻게 알고도 안 가니?"
"안 가면 어때서? 직접 연락도 못 받았으면서."
"걔들은 나한테 연락 못하지."
"그러니까! 거길 왜 가는데? 엄마가 지금 장례식장 찾아다닐 나이야?"
"그래도 들었는데 어떻게 안 가? 맘 불편하게.."
하아, 맘이 불편하단다. 결국엔 체면치레를 하겠다는 건가? 세상 아무 걱정 없는 사람 같았다. 속이 터졌다.
"마음이 불편하다고? 오십 먹은 딸이 시집도 못 가고 밥벌이도 못하는데 그건 맘이 안 불편해?"
"시집은 니가 안 간 거잖아!"
"못 간 거야. 안 간 게 아니라."
"너 시집 못 간 게 내 탓야?"
그래, 엄마 탓 아니다. 내 못난 탓이다. 하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사돈의 팔촌 안부까지 챙기는 사람이 혼자 늙어가는 딸의 안부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엄마에게 나는 남보다 못한 존재나 다름없었다.
'폭삭 삮았수다'의 애순엄마처럼 살다 보면 살아진다는 위로의 말을, 너는 푸지게 살라는 격려의 말을 해줄 순 없는 건가? 아니, 그냥 내 투정을 조용히 들어만 줄 순 없는 건가?
엄만 장례식장에 가서 그의 자식들과 부둥켜 안고 눈물을 흘렸단다. 그들에겐 좋은 큰엄마였을지 몰라도 내겐 한없이 나쁜 엄마다.
엄만 내 장례식에 오지 도 마. 나 때문에 울지도 마.
엄만 계속 그렇게 살아. 내가 계속 엄마 미워할 수 있게,
엄만 계속 그렇게 남 걱정만 하며 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