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혼자 살아가는 중입니다.
원룸을 얻었다. 동생이 세대주여서 세대분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자매끼리는 세대구성원이 될 수 없대서 그동안은 사촌집에 주소만 이전해 놨었다. 위장전입인 셈이다. 보통 이 나이엔 자녀 학군이나 아파트 청약 때문에 하는데 난 오갈 데 가 없어서 했다.
어찌저찌하여 대출을 받았다. 이번 달부턴 월급의 30%를 주거비로 써야 한다. rent poor인 셈이다. 더 비참했던 건 집주인은 우리 엄마랑 동갑이고 대리인으로 온 아들은 나랑 동갑이라는 것. 동시대를 살았건만 누구는 갓물주고, 누구는 전세그지라는 것. 등에 집을 지고 다니는 달팽이가 부러웠다.
처음 임장(?) 왔을 때만 해도 방이 깨끗해 보여서 2분 만에 계약을 했다. 하지만 짐 빠진 후에 가보니 너무 더러웠다. 인덕션과 싱크대엔 먼지덮개가, 냉동실엔 성에가, 냉장실엔 머리카락이 보관되어 있었다. 그중에 제일은 바닥재 틈 사이사이에 끼여 있던 손톱이었다. 더럽다 못해 소름이 끼쳤다. 그래도 내 첫 방(집?)인데... 눈에 띄었으니 망정이지 하마터면 얼굴도 모르는 사람 손톱을 깔고 잘 뻔했다. 이쑤시개로 일일이 파냈더니 총 일곱 개의 손톱이 나왔다. 설마 손가락이 일곱개?너무 섬뜩했다. '잡귀야 물러가라'고 바닥을 에탄올로 박박 닦은 후 성수를 뿌렸다. 이사 첫날부터 악몽 꿀까 봐 잠은 본가(?)에 가서 잤다.
이틀 후 잠은 집에서 자라는 동생의 제안을 거절하고 내 방에 왔다. 매달 이자도 내는데 뽕을 뽑아야지.
책을 보려고 했으나 낯설어선지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방문은 없고 현관문만 있어서 그런가, 집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밖에서 소리가 날 때마다 머리털이 쭈뼛쭈뼛 섰다. 당장이라도 누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올 것 같았다. 희한한 건 사람 목소리는 안 들리고 문소리와 물소리만 들린다는 거다. 다들 코딱지만 한 방에서 뭘 하는지, 궁금했다. 이 방에서 제일 시끄러운 건 160리터짜리 냉장고 모터 소리다. 자다가 깰 정도로 시끄럽다. 든 것도 없는데 그냥 코드를 빼 버릴까?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건 주식(宙食)이 아닐까, 싶다. 그중에 가장 중요한 건 주(宙). 집이 편안해야 맨밥을 먹어도 맛있을 거다. 그래서 난 집 가지고 장난치는 인간들이 제일 싫다.
내가 좋아하는 유은실 작가의 '순례주택'이란 책이 있다. 순례 씨는 때돈(때를 밀어 번 돈)을 벌어 순례주택을 지었다. 순례주택 세입자들은 미용사, 요양보호사, 직업을 알 수 없는 독신여성, 대학 시간강사들로 다들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다. 집주인 순례 씨는 그들에게 끊임없는 복지혜택을 준다. 집주인과 세입자 관계가 아니라 같이 살아가는 공동체 같다.
나도 떼돈 벌어서 순례주택 같은 집을 짓는 게 소원이다. 성실하고 착한 사람들만 살 수 있는 곳. 옥탑엔 북카페를 만들어서 입주민들의 힐링을 책임 지고 옥상에 텃밭을 만들어 입주민들과 같이 삼겹살 파티를 하고 싶다. 지하방엔 운동시설을 많들까? 생각만 해도 흐뭇하다.
근데 이 나이에 뭘 해서 떼돈을 벌지? 흐음...이번 주말엔 로또라도 사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