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가치 늙어가는 중입니다
우리 엄마는 매주 별다방에 간다. 버거왕도 그녀의 단골 매장이다. 평일에 집에서 점심 먹기 싫으면 근처 분식집에 가서 사 먹는다. 빵도 동네에서 제일 비싼 제과점에서 산다. 주말엔 양평이나 이천에 가서 점심을 먹고 온다. 직장인인 내가 주말에 베개를 벗 삼아 TV 리모컨을 손에 끼고 사는 것과 정반대다.
물론 엄마가 돈 쓰는 게 무릎이 쑤셔 아무 데도 못 다니는 것보다 낫다. 요양병원에 누워 있는 것보단 돈이 훨씬 덜 든다. 하지만 가끔 엄마의 씀씀이에 화가 난다. 띠링하고 카드 사용 알림 문자가 올 때마다 확 짜증이 난다.
'또 어디서 뭘 쓰는 거야!'
낼 모레 오십인 미혼인 딸과 살면서 그 딸에게 물려줄 집도 통장도 없으면서 씀씀이를 줄여야겠다는 생각이 전혀 안 드는 걸까?
어제는 엄마랑 싸웠다. 자기 앞으로 나오는 연금 50만원을 몽땅 현금으로 찾아 달라는 것이다. 그동안은 30만원만 현금으로 찾아다 주고 내 명의의 체크카드를 줬다. 연말정산때 소득공제를 받아야 하니 카드를 많이 써야 한다면서 말이다. 처음엔 엄마도 별 불평이 없었다. 하지만 이중결제 되는 일이 종종 생기고 쇼핑몰이나 영화관에서 결제된 문자를 보고 거기에 간 거 맞냐고 확인 전화를 했더니 엄청 기분 나빠했다.
"내가 이 나이에 너한테 일일히 허락받고 돈 써야 돼?"
"그럼 이중결제 됐는데 그냥 냅 둬? 그리고 엄마가 영화관 갈 줄 내가 상상이나 했겠어!"
"왜 난 영화관 가면 안돼?"
"누가 안된대? 평소에 안 가던데 가서 카드 잃어버린 걸까봐 확인 전화한 거라고."
"암튼 나 카드 안 써! 잘못 쓸까봐 신경 쓰여!"
"그게 아니잖아. 내가 어디서 썼는지 다 아니까 기분 나쁜 거잖아, 지금!"
"그래, 니 돈 쓰는 거 같아 더럽고 치사하다!"
"뭐라고? 지금 니 돈 네 돈이 어딨어? 그게 딸한테 할 소리야?"
"니가 그런 생각 들게 안 했어?"
"아, 몰라. 더럽고 치사해도 그냥 카드 써. 나 소득공제 받아야 하니까!"
"후후......"
우리 엄마는 절약이라는 걸 모른다. 젊었을 때부터 그랬다. 남의 집 단칸방에 살면서도 쌀과 과일은 늘 최상품만 샀다. 절대 '떨이'는 사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집은 가난했다. 무능한 남편이 주는 돈은 쌀 사기도 모자랐다. 그래서 엄마가 돈을 벌기 시작했다. 인형공장에 나가고 아파트 청소 일을 했다. 그래도 돈은 늘 부족했다. '떨이'는 안 사도 됐지만 아이들 등록금은 밀리기 일쑤였다. 그런 형편이니 저축은 생각도 못했다. 엄마에게 저축이란 ' 다 쓰고 남는 돈이 있을 때 하는 것'이다. 그러니 60이 넘어서도 본인 명의의 통장 하나 없었다.
엄마가 본인 명의의 통장을 갖게 된 건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무능한 남편이 죽으면서 남긴 유족연금 덕분이었다.
우리 엄마는 자기 맘대로 돈을 써야 행복한 사람이다. 그런데 젊었을 때는 무능한 남편 때문에 늘 돈에 쪼들렸고 지금은 카드 사용처를 일일히 따지는 딸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한다.
"내가 살면 얼마나 산다고 이 나이에 니 잔소리를 들어야 해!"
물론 엄마 말이 틀린 건 아니다.
그래도...
그래도 말이다....
난 우리 엄마가 '아껴 쓰고 저축하는 알뜰한 할머니'가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