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대신돌이 May 24. 2020

엄마 놀이터-콜라텍

#3. 가치 늙어가는 중입니다 


코로나 사태가 있기 전까지 엄마는 매주 콜라텍에 다녔다. 입장료 천원에 물품 보관료 500원, 밥값 5~6000원 해서 만원 한 장만 가지고 가면 아침 11시부터 문을 닫는 5시, 6시까지 하루 종일 놀 수 있다고 했다. 시간당 5천원에 냉동볶음밥을 7,8천원에 파는 키즈 카페에 비하면 가성비 갑이다. 설날에 엄마가 콜라텍에 간다길래 오늘도 영업을 하냐고 했더니 현충일만 쉬고 연중무휴라고 했다. 왠지 콜라텍 사장의 애국심이 느껴진다.


 아이들이 놀이터 갈 때 신나서 방방 뛰듯이 콜라텍 갈 때의 엄마 모습도 활기가 넘친다. 콜라텍에 가려고 꼼꼼히 화장을 하고 반짝이 옷에 귀걸이와 목걸이를 하고 굽이 7센티가 넘는 신발을 신는다. 엄마가 그렇게 꾸미고 밖에 나가면 70대 후반의 나이임에도 60대로 보기도 한다.


 홍대, 이태원, 성수가 젊은이들의 핫 플레이스라면 콜라텍이 있는 청량리, 장안동, 상봉동은 노인들의 핫 플레이스인 셈이다. 엄마가 저녁때가 되도록 안 들어와서 걱정돼 전화해 보면 늘 세 군데 중 한 군데에 있다고 말한다.

          

 엄마가 사교춤을 배운 건 40대 때다. 그러니 거의 40년 동안 춤을 춘 셈이다. 지금이야 사교춤이라고 대접 해주지만 7,80년대만 해도 춤을 배운다고 하면 바람난 여자 취급했다. 장바구니를 든 주부들이 대낮에 카바레에 놀러 와서 제비족에게 속아 가산을 탕진하고 이혼 당한 일도 부지기수였다. 그 때문에 한때 “사모님. 제비 한 마리 키우시죠!”라는 말이 유행 했었다.  


 내가 초등학생 때 우리 집은 비밀 춤 교습소였다. 단칸방에 살 때였는데 엄마는 동네 아줌마 몇 명을 모은 후 춤 선생을 우리 집으로 불렀다. 그 춤 선생은 엄마의 곗돈을 떼먹고 도망간 계주의 남편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제정신인가 싶다. 나 같으면 머리채를 잡고 흔들어도 모자랐을 텐데 말이다. 사실 대머리여서 잡을 머리채도 없다.

 교습이 있는 날이면 엄마는 우리에게 밖에 나가서 절대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소문나면 엄마가 순경한테 잡혀간다고 겁을 줬다.     


 동생과 나는 다락방 계단에 앉아서 춤 수업을 구경 했다. 띠리리리리링. 카세트에서 나오는 전자음악에 맞춰 춤 선생과 수강생들은 그 좁은 방을 뱅글뱅글 돌아다녔다. 지루박, 차차차,  맘보등 춤 종류도 다양했다. 솔직히 내가 보기엔 그 춤이 그 춤 같았다.  

 엄마는 그렇게 춤을 배운 후 일요일마다 카바레에 다녔다. 주중에는 직장에 다니고 주말에는 카바레에 다니니 엄마는 늘 집에 없었다. 아빠가 의처증이 생긴 게 아마 그때부터인 것 같다. 무능한 남편의 자격지심일 수도 있겠지만.

 나도 엄마가 그런 곳에 다니는 게 싫었다. 다른 엄마들은 자식을 위해 새벽 기도를 다니는데 우리 엄마는 왜 그런 유흥업소를 다니는지 원망스러웠다. 성인이 되어서도 창피한 건 마찬가지였다. 특히 친구네 집 근처에 대형 콜라텍이 생긴 후에는 친구가 콜라텍에서 나오는 엄마를 알아볼까봐 조마조마 했다. 요즘은 노인들이 건강을 위해 춤을 배운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콜라텍을 퇴폐업소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지금은 엄마가 콜라텍에라도 다니는 게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킬힐을 신고 뱅글뱅글 돌아도 무릎 쑤신단 말을 안 하니 건강하단 증거이고 그렇게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놀아서 그런지 그나마 우울증이 덜 한 것 같다.      


 얼마 전에 엄마가 친구와 통화하는 걸 우연히 들었다. 엄마는 친구가 콜라텍에서 아직도 인기가 많냐고 물었는지 “이젠 나이가 많아서 인기가 없어,” 라고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을 듣는데 가슴이 짠했다. 마음은 청춘인데 나이 때문에 인기가 떨어졌다니 상실감이 크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그런 한 편으론 언제까지 인기가 있길 바라는 건지 철없단 생각도 들었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데 영원히 꽃할매로 살 수는 없지 않은가!


 매일 콜라텍에 가는 엄마를 보고 동생과 농담 삼아 대화를 한 적이 있다.

 “그렇게 재밌나? 하루 종일 거기 가 있게?”

 “그러게. 시끄럽고 어두컴컴해서 싫을 것 같은데.”

 “우리도 가 볼래? 어떤 곳인가?”

 “우리 나이가 가도 되나?”

 “뭐래! 우리도 머지않았거든!”

 “그런가? 우리도 이제 거기 다닐 나인가.......”

 그렇게 말하는데 가슴 한켠이 허했다.         

  

 머지않은 미래 나도 엄마 나이가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나는 뭘 하고 있을까? 엄마처럼 춤도 못 추니 콜라텍도 못 가겠지? 무릎이 쑤시면 지금처럼 자전거도 못 타겠지? 노안이 오면 지금처럼 책도 못 읽겠지? 그럼 도대체 뭘 해야 하지? 그때를 위해 지금부터 건강을 챙겨야하나?


 나이 들수록 할 일이 있고 갈 곳이 있어야 한다. 내 발로 가서 내 손으로 뭔가를 한다는 것! 일생을 통틀어 정말 중요한 일이다.


이전 01화 우리 엄마는 매주 별다방에 간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