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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신돌이 May 19. 2020

속 썩은 이-틀니

  #2. 가치 늙어가는 중입니다

                  

 “야 이게 빠졌다...”

엄마가 내민 손바닥엔 금니가 있었다. 일명 크라운 브릿지 3구. 번쩍거리는 금 껍데기 속에는 썩은 치아가 들어 있었다. 검푸르접접한 게 꼭 곰팡이 핀 밥알 같았다. 그걸 본 순간 얼굴이 찌푸려졌다. ‘더럽다’는 생각과 ‘귀찮은 일 생겼네’. 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 빠졌냐고 묻는다는 걸 나도 모르게 그만 “왜 빠진 건데?”라고 퉁을 놓았다.

 “내가 어떻게 알아? 갑자기 툭 떨어진 걸!”

 엄마도 빈정이 상했는지 툴툴거렸다. 가뜩이나 이가 빠져 심란한 사람한테 그렇게 말했으니 삐칠 만도 하다. 처음부터 괜찮냐고, 목으로 안 넘어가서 다행이라고 했어야 했다.       


속이 썩은 금니를 종이컵에 담아 치과로 갔다. 그냥 덩어리째 쑥 빠졌으니 당연히 다시 붙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사는 이가 다 썩어서 못 붙인다고 딱 잘라 말했다.

 “어머니. 진료기록 보니까 골다공증 약 드시고 계시네요. 그럼 임플란트 못해요. 틀니 하셔야 해요.”

 “틀니요?”

 엄마가 화들짝 놀라 되물었다.

 “임플란트 못해요?”

 “네. 골다공증 약 때문에 못해요.”

 그러면서 엄마가 해야 할 틀니 모형을 보여줬다. 옛날 소시지 색깔 잇몸에 가운데 쇠붙이가 붙어 있었다. 간호사가 틀니를 할 수 있는 시기와 비용을 설명하는데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저 틀니를 하고 있으면 뭘 먹어도 쇠 맛이 날 것 같았다.


 엄마는 집에 오는 내내 솜을 입에 문 상태에서도 투덜거렸다. 언제는 친절하고 꼼꼼하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던 내과 의사와 치과의사를 싸잡아 돌팔이라고 비난했다. 다음 날 내과에 가서는 골다공증 약을 끊고 왔다. 또 하루 종일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골다공증 약 먹고도 임플란트 한 사례자를 찾기에 바빴다. 결국 한 사람 찾아내서는 몹시 흥분해서 말했다.

 “연순 아줌마 친구도 골다공증 약 먹는데 임플란트 했다더라. 그 의사 서울대 나왔대. 내일 그 병원 갈 거야!”

 그 말을 듣는데 짜증이 확 났다. 내 나름대로 치과 다니는 친구를 통해 여기저기 알아보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엄마가 저렇게 말하니 마치 내가 아무 것도 안 하고 있는 불효자처럼 느껴졌다. 당장 죽을병도 아닌데 자식이 챙겨줄 때까지 기다려줄 순 없을까? 그래서 나도 모르게 그만 이렇게 쏘아 붙였다.  

“그럴 거면 엄마 혼자 다 알아서 해!”

 그렇게 말하고 밖으로 나오니 구두 수선 집에 붙어 있는 ‘금이빨 삽니다’라고 적힌 스티커가 눈에 띄었다. 평소엔 ‘별 걸 다 사네’ 하고 그냥 지나쳤는데 오늘은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나이가 들면 돈이 있어도 금니를 못 합니다.’ 라고 알려주는 것 같았다.


 한 달 후에 엄마랑 친구가 추천해준 치과에 가보기로 했다. 요즘 엄마는 틀니를 하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 중이다. 밥을 먹고 나면 바로바로 양치질을 하고 사탕이나 딱딱한 오징어는 입에 대지도 않는다. 엄마의 이 눈물겨운 노력이 좋은 결과로 나타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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