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가치 늙어가는 중입니다
엄마가 노인성 난청 진단을 받은 건 두 달 전이다. 작년부터 초인종 소리를 못 듣기 시작하더니 언제부턴가 사람 말소리도 잘 못 알아들었다. 그래서 바로 옆에 가서 말을 하든지 아니면 큰 소리로 여러 번 말을 해야 겨우 알아들었다. 나이 들어서 못 듣는 건 당연한 건데 나는 그런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유독 내 말만 못 알아듣기 때문이다. 남친이랑 통화할 때나 친구랑 다른 친구 뒷담화 할 때는 어찌나 잘 속닥속닥 거리는지 정말 잘 안 들리는 게 맞나 의심스럽다. 특히 내가 자기가 실수한 걸 동생한테 고자질 할 때는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알아듣고는 째려본다. 완전히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이기적인 귀다. 그렇다보니 엄마랑 말을 할 때마다 톤이 높아지고 짜증을 내게 된다. 한번은 콜라텍 가서 스피커 앞에서 춤추지 말라고 했다. 시끄러운 곳에 너무 오래 있어서 귀가 더 안 좋아진 건 아닌가 싶어서다.
처음 난청 검사 받으러 가자고 했을 때 엄마는 싫다고 했다. 친구가 보청기를 했는데 하루 종일 귀에서 윙윙 바람 소리가 나서 머리가 아프다 했다면서 말이다.
“그거 해놓고 안 쓴다더라!”
“누가 당장 보청기 하래? 난청이 얼마나 심한 지 검사나 받자고!”
“보청기도 안할 건데 검사는 뭐 하러 받아?”
보청기가 무슨 늙음의 증거라도 되는지 엄마는 아주 질색 팔색 했다.
“난청 그냥 놔두면 치매 빨리 온대! 치매 걸리는 거 보다 보청기 하는 게 낫지 않아!”
“…….”
‘치매’라는 말에 겁이 났는지 엄마가 먼저 병원에 가자고 했다.
난청 검사는 약 20여 분간 진행됐다. 대기실에서 엄마를 기다리는 동안 한쪽에 진열된 보청기를 구경했다. 보청기하면 헤드 셋처럼 밖에서 다 보일 줄 알았는데 색깔도 알록달록하니 밝고 모양도 알싸한 게 예뻤다. 무선 이어폰이라 해도 믿을 것 같았다.
검사가 끝나고 진료실로 가서 의사와 상담을 했다. 의사는 검사결과를 보고 난청이 엄청 심하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보청기를 하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잘 안 들리는 건 나이 들면서 생기는 자연스런 현상이니 생활하는데 크게 불편하지 않으면 좀 지켜보자고 했다. 보청기를 해서 만족도가 높지 않으면 안 하는 게 낫다는 것이다. 의사의 말을 듣고 엄마는 안도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난 그렇지 못했다.
‘엄마보다 내가 더 불편한데…….’
지원금을 받을 수 있으면 일단 보청기를 해두는 게 어떨까 싶어 보청기 지원금을 받을 수 있냐고 물었다. 그러자 의사는 지원금 받을 수 있는 바로 아래 수치라고 했다. 그 말을 듣는데 기분이 묘했다. 엄마 청력이 지원금을 받을 만큼은 나쁘지 않다는 것인데 뭔가 손해 보는 느낌이랄까?
들어갈 때 마음 다르고 나올 때 마음 다르다고 병원을 나오면서 보청기 해야겠다는 생각을 접었다. 지원금도 못 받는데 괜히 장만 했다가 사용하지 않으면 돈만 아깝기 때문이다.
집에 오자마자 엄마는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나 오늘 이비인후과 가서 난청 검사 받았는데 말이야…….”
어쩌고저쩌고……. 한참을 그렇게 수다를 떨더니 내게 와서는 이렇게 말했다.
“야, 쌍둥이엄마는 보청기 하니까 너무 좋다더라. 새소리도 달리 들린다는데……”
참내, 우리 엄마는 귀가 잘 안 들리기도 하지만 귀도 참 얇지 싶다.
며칠 전 에어팟 프로 광고를 보던 엄마가 말했다.
“저거 보청기냐?”
“……?”
그 말을 듣는 순간 당황스러웠다. 에어팟 광고 속 춤추는 여자처럼 엄마가 에어팟 프로를 끼고 콜라텍에서 음악에 맞춰 두둠칫 춤을 추는 모습이 상상이 됐기 때문이다. 오우, 왠지 멋질 것 같기도 했다. 애플에서 노인을 위한 에어팟 프로 같은 보청기를 만드는 건 어떨까?
“왜, 보청기면 하게?”
“아니, 그냥…….”
말끝을 흐리는 걸 보니 싫지 않은 눈치다.
그 날 밤 조카가 문자를 보냈다.
이모, 나 생일 선물로 에어팟 사주라~.
응. 알았어.
답 문자를 보내고 나서 엄마를 떠올렸다.
‘보청기보다 싼데 엄마도 에어팟 하나 사줄까?’
귀에 에어팟 꽂은 할머니라니, 멋지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