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빵도 위험할 수 있다.

호빵이랑 바닥 종이랑 구분이 가지 않았다.

by 대수니

찬바람이 불어오면 은근히 기다리게 되는 것이 있다. 따뜻한 길거리 간식들이다. 군고구마, 붕어빵, 계란빵 그리고 호빵. 이중에서도 나는 호빵을 가장 먼저 기다린다. 오며 가며 편의점에 호빵 사진이 붙었는지 살펴보다 첫날 꼭 사 먹곤 한다. 호빵을 기다리게 만드는 건 바로 추억이다. 추억의 음식은 제때 먹어줘야 예의다. (사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이미 호빵 하나를 해치웠다)


고등학교 2학년. 반에서 나는 똥손으로 유명했다. 3번 연속으로 교탁 앞자리를 뽑았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놀렸지만 난 사실 좋았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의외로 선생님들은 코앞을 크게 챙기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3번 정도 앉아보면 이런 틈새도 보인다. 6교시의 수학 시간이었다. 한창 먹성 좋을 때라 출출한 시간이다. 10분밖에 안 되는 쉬는 시간을 호빵 사 오는데 썼더니 먹을 시간이 없었다. 수업이 끝나면 호빵은 그저 차가운 밀가루 덩어리일 뿐이다. 호빵은 저렴한 간식이 결코 아니다. 지금도 그때도 삼각김밥 1개와 맞먹는 가격이다. 본전 생각이 나서 한입이라도 따뜻할 때 먹어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러다 생각한 방법이 화장품 파우치를 닮은 넓적하고 큰 내 필통 속에 살포시 넣어두고 몰래 먹는 것이었다. 기가 막히게 필통으로 쏙 들어간 걸 보면서 난관이 있으리라 예상치 못했다.

수업이 시작되자 선생님은 칠판에 열심히 적으셨다. 선생님의 뒷모습을 확인하자마자 필통으로 손을 집어 넣었다. 앗! 아직 뜨거웠다. 보글거리는 순두부찌개의 순두부를 손으로 만진 것 같았다. 손가락을 호~하고 불 수도 없어서 방정맞게 오른쪽 엄지와 검지를 맞부딪치면서 식혔다. 그 와중에 눈으로는 칠판을 보고 있었다. 선생님이 다시 앞을 보신다 싶으면 황급히 펜을 잡았다. 예상보다 선생님은 자주 뒤돌아 보셨다. 예측 안 되는 타이밍의 연속이었다. 문제를 푸시는듯하다 갑자기 지목해서 맞춰보라고도 하시고 문제를 적으시다가 까먹으셔서 다시 교탁 위의 책을 보시기도 했다.

그사이 호빵은 식었고 나는 여러 번의 작은 시도 끝에 호빵을 쪼개는데 마침내 성공했다. 내 손가락은 꽤 찐득거리고 있었다. 선생님이 등을 보이셨을 때 호빵을 입에 넣었다. 생각보다 크게 잘려서 당황했지만 일단 입에 넣고 열심히 오물거렸다. 선생님이 다시 앞을 보신다. 씹기를 멈추고 입안에 머금고 있었다. 새우깡이면 녹기라도 했을 텐데. 다시 뒤를 돌아보시자마자 나는 이번에는 삼키겠다는 신념으로 맹렬히 씹는데 무언가가 계속 씹혔다. 그때 선생님이랑 눈이 마주쳤다. 일시정지가 되었다. 씹는 것도 내 심장도. 선생님은 아무 말씀을 안 하셨다. 위기상황이었는데 들키지 않아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입안의 무언가는 씹을수록 질겨졌다. 그리고 길었다. 호빵에서 기대하지 못한 질감은 날 굉장히 찝찝하게 만들었다. 삼킬 수가 없었다. 선생님하고 또 눈이 마주쳤다. 이번에는 선생님이 날 지긋이 응시하셨다. "왜 계속 인상을 쓰고 있어?"라고 하셨다. 대답하고 싶었는데 그러려면 정체불명의 것을 삼켜야만 했다. 그럴 순 없었다. 나는 다급하게 교실 앞문을 가리키면서 화장실을 요청했다. 선생님은 어서 다녀오라고 하셨다. 매점을 갈 때보다 더 빠른 속도로 화장실을 향해갔다. 개수대에 냅다 뱉자 그것은 튀어나와 찰지게 바닥에 붙었다. 드러난 정체는 호빵의 바닥 종이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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