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적 유산까지 9일간의 기록
짧았지만 9일 동안 나는 엄마였었다.
몇 달간의 고민 끝에 아기와 함께 하는 삶을 결정하자마자
바로 만나게 된 아기였었기에 부족함이 많았다.
엽산도 먹은 지 한 달 남짓이었고 풍진 접종도 안되어 있었다.
운전연수도 못 받았고 치과도 다녀오지 못했고 머리도 조치가 시급했다.
인생을 완벽한 준비로 방어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아기에 대해서만큼은 최선의 준비를 했어야 됐다고 자책했다.
이런 마음 때문이었는지 일적으로 스트레스받고 있었던 상황 때문이었는지
아기가 결국 떠났다.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만 해도 출산만 떠올렸던
나였고 우리였기에 황망하다.
DAY 01
아기는 통증으로 자신의 존재를 나에게 알려주었다.
원래 마법이 불규칙한 편이라서 시작일을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데
이상하다 싶었던 것은 가슴이 어느 때보다 더 커진 것 같단 것과
스치기만 해도 통증을 느끼는것이었다.
(솔직히 가슴이 매우커져서 좋아했었다.)
생리 예정일이 1주일이나 지나서야 임테기를 해보고 아기가 왔음을 알게 되었다.
DAY 02
마침 주말이라 병원 검진을 예약해놨는데 그만 놀랍게도 내가 마스크를 깜빡했다.
마스크 없이 병원에 가는 것은 민폐라고 남편이 집에 가서 마스크를 가져올 테니
혼자 진료를 받으라고 했다. 병원에서는 그냥 와도 된다고 하는데 괜히 이 상황이 섭섭했다.
병원 입구에서 진료를 받내 마네 싸우고는 집으로 돌아와서 점심을 먹었다.
DAY 03
첫 번째로 진료를 받게 되었는데, 의사 선생님께서는 아기집이 보여야 되는데
자궁벽만 두껍다고 하셨다.
임신이 진행 중인 건 맞는데 자궁외 임신일지도 모르겠다고 하셨다.
아직 정확히 진단 내릴 수 없으니 피검사를 하고 가라고 하셨다.
혈관이 원래 잘 안 보이는 타입이라서 세 번 만에 손등에서 뽑았다.
나와 남편은 확실해질 때까지 좋은 생각만 하자고 했다. 우리가 일찍 온 것일 수도 있다고.
DAY 05
피검사 결과를 전화로 전달받았는데 750이라서 임신상태가 맞다고 했다.
정상 속도대로라면 지금쯤엔 아기집이 보일 수도 있다고 병원을 방문하라고 하셨다.
이론적으로는 2000부터는 보일 수도 있다고 하지만 대부분은 3000 전후로
보인다고 한다. 이미 한번 안 좋은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병원에 가는 것이 망설여졌다.
좀 더 시간을 갖고 확실하게 보고 싶어서 주말 전후로 가기로 했다.
DAY 07
하루에도 수많은 생각들이 오고 갔다. 자꾸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객관적으로 상황을 바라보고 모든 가능성에 대해서 알고 있어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혹여 자궁외 임신일 경우에도 빨리 발견할수록 수술을 피할 수 있었다.
주말에 가려했던 검진을 하루 당기기로 했다.
DAY 08
지난번과 다른 의사 선생님께 상담을 받았다. 초음파 검진을 받았는데 역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고 아기집으로 추정되는 곳이 있긴 한데 진행속도가 너무 느리다고 하셨다.
그리고 피고임도 있다고. 지난번 차트를 보여주셨는데 그곳에는 유산 가능성 90%라는 메모가 적혀있었다.
선생님은 유산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하셨다. 물론 엄마의 마음은 다르겠지만 생물학적으로는
더 건강한 아기가 태어나려고 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요즘 같이 일교차가 심한 날씨에는 유산이 잘 된다고도
하셨다. 지금 이렇게 글을 적으면서는 너무도 분명하게 모든 팩트들이 유산이었는데 나는 이때까지도
으레 해주는 이야기겠거니라고 태연하게만 생각했다. 저녁을 먹고 나서부터 눈도 잘 못 뜰 정도로
두통이 심했지만 약을 먹고 억지로 잠을 잤다. 약은 되도록 먹지 않는 게 좋지만 타이레놀 1알 정도는
괜찮으니 너무 아프면 먹으라고 하셨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통증이 사랑스러웠다.
안쓰러워하는 남편에게 얼마든지 더 아파도 괜찮다고 했다.
DAY 09
그렇게 힘들게 잠든 다음날 일어나는데 이상하리만큼 몸이 가벼웠다.
잘 자서 그랬나 보다 하고 있었는데 점심 즈음 갈색 혈이 보이더니 붉은색 출혈로 이어졌다.
느낌이 좋지 않았고 이때부터는 나도 유산이 되고 있다는 걸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퇴근시간 즈음에는 나의 위장을 누군가 손으로 잡아서 끌어내리는 것 같이 통증이 왔다.
너무 아프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는데 잠시 통증이 멈췄을 때 느낌이 왔다.
아기가 떠나는구나. 나의 배를 꼭 쥐어 잡고 마음으로 아기에게 와주어서
고마웠다고 그리고 고생 많았다고 인사를 했다.
통증이 서서히 가라앉더니 몸에서 무언가 나왔다. 덩어리 같았다.
톡! 하고 물속으로 빠지는 맑고 청량한 소리가 너무 생생했다.
변기에 앉아있었던 나는 한동안 이 현실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이 상황이 너무 원초적이고 낯설어서 멍하기만 했다.
주변 지인들의 유산 소식을 들었을 때 슬픔은 느꼈지만 이런 과정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원치 않는 상황이라 더 그랬던 것 같다. 두리뭉실하게 나에게 유산은 자연스러운 소멸 같은 거였거늘,
현실의 나는 톡! 하고 덩어리가 변기 속으로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앉아있었다.
매일 배출하는 곳에서 누가 내 뱃속의 아기도 떨어뜨릴 것이라 상상이나 해보았겠는가.
눈길 한번 주지 못하는 건 기껏 밖으로 나온 아기에게 너무 잔인한 일이라 생각이 되었다.
온몸의 통증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려주던 아기가 지금은 물속에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다시 한번 아기에게 인사를 하고 나는 보내주었다. 오래 보고 있을 용기가 없었다.
버튼 하나로 또 다른 배출을 했다. 한 생명체를 이렇게 보낸다는 것이 기괴했다.
이상하고 원초적인 이 상황에 현타가 왔다. 지금도 너무 복잡한 감정이라 더 이상 설명이 안된다.
우리 아기의 태명은 '따사'였다.
따뜻한 사람으로 살라고.
한 번의 비교적 짧고 굵은 통증으로 떠난 우리 아기에게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