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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수니 Dec 06. 2020

80만원이 든 지갑을 잃어버렸고 난 백수일 뿐이고.

주말이라서 보관하고 계신 거 다 알아요. 월요일날 연락 기다릴게요~ 

내가 지갑을 잃어버린지 31시간하고 30분정도가 지났다. 충격으로 침대에 누워서 폰으로 지갑 분실 후기를 찾아본지 24시간이 지나기도 했다. 수없이 기억을 되감아 어제의 그때로 돌아가 보았지만 여전히 나의 지갑은 무소식이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외곽이다. 외국처럼 인적도 드물고 아파트도 아직 한참 올라가고 있는 중이다. 집에서 5분 이상 걸어야지만 편의점이 있는 상가가 처음으로 나온다. 산책 겸  남편과  30분 정도 떨어진 큰 마트에 걸어가기로 했다. 추워진 날씨 탓에 두툼하고 무거운 롱 패딩으로 무장했다. 장볼때 가지고 다니는 하늘색 천 가방 안에 지갑을 넣고 어깨에 총알을 장전했다.

편의점 부근에는 새로 생긴 분식집이 있었다. 설레는 맘으로 가게 밖에서 메뉴를 살펴보고 바로 옆 상가를 통과해서 나왔다. 끈을 잡아 올리려는데 아무것도 잡히지가 않았다. 황급히 오른쪽 어깨를 보았다. 있어야 할 가방끈이 없었다. 


남편! 나 오다가 가방 흘렸나 봐!

 

나는 얼음이 되어 남편을 멈춰 세웠다. 심장이 빨리 뛰기도 전에  떨어지는 걸 느꼈다. 남편은 날 빤히 보더니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남편은 나에게 말했다.


"가방 가지고 나온지 알았어?"


나는 어리둥절했다. 우리는 집을 나오면서 쓰레기를 버렸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손만 후다닥 씻고 나왔는데 그때 가방을 가지고 나온 것에 대한 기억이 흐릿했다.


"웅? 안 가지고 나왔었나? 나 오면서 가방끈을 몇 번 치켜올렸던 거 같은데 헛손질 한 건가"


남편은 다시 나올 때는 가방이 없었다고 했다. 두툼한 패딩 덕에 딸랑 작은 손지갑 하나 들어있는 가방의 무게가 흐릿했다. 다시 우리는 마트를 향해 걸었다. 발걸음을 뗄 때 마음속으로 혹시 집에 없으면 어쩌지? 란 걱정이 따끔했다. 아주 희미하게 가방끈이 떨어지는 느낌도 있었던 거 같았다. 그러다 안 가지고 나왔다고 생각하니 또 그냥 온 거 같기도 했다. 나의 기억에는 확신이 없었지만 남편의 목소리에는 분명함이 있었다. 안 가져왔었나 보지 하고는 느긋하게 장도 보고 만두도 포장해서 왔다. 백수면서 돈에 대해 왜 이렇게 안일했던걸까.

만두 먹을 생각에 부품 맘으로 집에 왔는데 가방이 안보였다. 굉장히 싸했다.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나가자!


우리는 지나간 경로를 빠른걸음으로 추적했다. 1시간 30분 정도 지나있었고 당연하다는 듯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분식집에 들어가 혹시 떨어진 가방을 보셨는지 물어보았다. 사장님께서는 안타까워하시면서 CCTV를 흔쾌히 확인해주셨다. 과거 속에는 나와 남편이 있었는데 가방이 나의 오른쪽 어깨에 있었다. 나의 왼쪽에서 걸었던 남편은 가방을 못 봤었던 것이다. 사장님은 이 큰 가방을 어쩌다 잃어버렸냐고 하셨다. 정말 그러게요.

여기서부터 내가 가방이 없어진 것 같다고 말한 곳까지는 느긋하게 걸어서 1분 거리였다. 알고 보니 정말 가까운 거리에서 알아챘던 것이다. 


만약 혹시나 집에 없으면 어쩌지란 따금한 직감에 조금만 뒤로 돌아갔더라면. 집으로 돌아갈까 말까 생각하지말고 조금만 돌아 가보자고 했더라면. 그래도 혹시 모르니깐 확인해 보자고 했더라면. 찾으려고만 했다면 1분 안에 해결이 될 수 있었던 상황이었던 것이다. 안일하게만 생각하지 않았더라면 확실히 찾을 수 있었다. 이 사실이 날 너무 괴롭게 했다. 돈에 대해 안일했다는 것이. 차라리 집에 돌아왔을 때 알았더라면 체념했을 텐데. 분명히 기회가 있었는데 그냥 지나쳐버린 것이다. 그 1분을 너무나도 되돌리고 싶다. 이런 기억의 칼질로 충분히 속상했기에 더 큰 슬픔이 있을지 감히 짐작도 못했다. 


여기서부터가 찐아픔이다. 그 지갑에는 신분증과 명함이 같이 있었다. 가까운 파출소에 신고를 했다. 현장에서 경찰관분들을 만났고 조서를 작성했다. 현금이 얼마나 들어있었냐고 하셔서 늘 가지고 다니던 소액의 액수를 적었다. 조서라는 것을 보니 지갑을 잃어버린것이 더 분명해졌다.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야 약간 정신이 들었다. 다행히 집에 남아있던 서브 지갑을 보았는데 평소보다 훨씬 홀쭉했고 가벼웠다. 또 한번 싸했다.

아뿔싸! 

지난주에 집에 있는 현금을 통장에 넣어두어야겠다 생각하고는 잃어버린 지갑으로 옮겨 놓았던 것이다. 빈 액수를 세어보니 무려 80만원이었다. 5만원권 16장.


처음에는 남미에서 산 지갑만이라도 돌아오면 좋겠다고 빌었다. 하지만 그 안에 든 현금이 웬만한 명품지갑 2개 가격이었다니 돈만 돌려주셔도 충분하다는 마음이 망설임 없이 들었다. 추억도 소중하지만 백수인 나에게는 당장의 생활비가 더 컸다. 가벼운지 알았던 지갑은 묵직하게 내 마음을 쓰라리게 했다. 믿고 싶지 않아서 혹은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싫어서 눈물도 안났다. 내 몸이 바싹 마르는 것 같더니 미각까지 쪼그라들었다. 만두도 차갑게 굳어 있었다.



생각할수록 괴롭지만 1분 차이로 나의 80만 원이 증발한 것은 내가 자초한 현실이다. 나는 내일도 모레도 백수라서 매일 인컴이 0원인데 말이다. 80만원이란 액수 자체도 큰 돈이지만 백수가 되자 800만원처럼 느껴진다. 회사를 다닐 때에는 금전적인 손실이 있어도 마음의 상실이 지금보다는 적었다. 월급으로 메울 수는 있었으니깐. 오히려 카드값을 생각하는 것이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매일 일하면서 빚이 줄어드는 기쁨이라도 느꼈달까. 때문에 백수는 더욱더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없는 것이다. 수입이 없는 상황에서 갑자기 생긴 구멍에 리커버리란 없는 것이다. 동시에 혹시나 돈을 잃어버릴 수 있는 가능성을 가볍게 쯔려밟고 돈을 쓰러간 내가 찐백수는 아직 아니었구나 싶었다. 자고로 백수라 함은 돈을 무서워해야 되거늘. 꼭 안주머니에 넣어서 몸에 지니고 다니리라. 앞으로 이런 일은 무덤 갈때까지 다신 없도록 말이다.



아직 포기하고 싶진 않다. 선한 힘을 믿숩니돠! 주말이라서 연락이 없는 것이리라 위로하며 월요일만 기다려본다. 백수라서 달리 할 수 있는 것도 없으니.




PS. 한가지 웃긴건 내가 지갑 잃어버리기 전날 엄마에게 생신선물로 구X 지갑을 선물해드렸다.

       선물을 드리면서 잃어버리지 말고 잘 쓰시라고 했는데 다음날 내가 지갑을 잃어버렸다. 

       그것도 2개는 더 살 수 있었던 금액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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