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대수니 Mar 24. 2021

나의 방울토마토를 보며 위로를 받았다.

당신의 계절은 어디인가요.

지난 설 명절 집을 비웠던 여파로 방울토마토가 위중해졌다. 집에 돌아온 며칠간은 물도 더 정성스레 주고 계란 껍데기도 보약 삼아 올려놓았다. 마음이 더 쓰였던 이유는 작고 귀여운 방울토마토가 이제 막 자라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맺지 못하고 있는 나와 달라 보여 대견했다. 여전히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몰라 결과도 없는 나보다 보이지도 않는 햇빛으로 요렇게 열매를 만들어내다니 말이다. 따순 이불에 반찬에 밥을 먹는 나에 비하면 엄청난 효율이다. 방울토마토 열매가 커지길 응원하며 3~4일을 보냈다. 열매가 사라졌다. 그러더니 줄기가 하루가 다르게 노랗게 변하기 시작했다. 방울토마토가 떠나가는 중인 것 같았다.

방울토마토는 나와 지난 초여름부터 함께 했다. 10개월 정도. 코로나로 회사를 안나 간지 한 달이 지나갔을 때였고 유산으로 아가를 보낸 지 두 달째였다. 집에만 있다 보니 허전하고 적적했다. 그러던 차에 시들시들한 녀석이라 그냥 가져가도 된다는 꽃집 사장님의 말에 집으로 데려왔다. 공짜라서 데려오기도 했지만 매가리 없는 모습이 나 같아 보이기도 했다. 방울토마토가 잘 크면 나도 잘 클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한 일이라곤 매일 물을 주는 것뿐이었다. 햇빛은 자기가 알아서 섭취했는데 쑥쑥 자랐다. 내 키만큼이나 컸다. 얇고 길어서 덩굴처럼 되었는데 건강한 상태는 아닌 거 같았는데 한두번 열매도 맺었다. 10개 정도 수확해서 양가부모님께 1~2개씩 선물하기도 했다. 그렇게 여름을 보내고 가을에 이사를 하면서 현재 집으로 같이 데려왔다.

아아. 님은 갔습니다.
결국 이렇게 말라버렸다. 맺히지 못한 꽃까지.

방울토마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데리고 오지 말까도 고민했었다. 지금 집은 일조량이 적은편이다. 가을과 겨울을 적어지는 햇빛으로 견딜수 있을까 싶었다. 날도 추워지는데 볕까지 없어지면 추울텐데. 나눔을 할까도 생각했었지만 썩 내키진 않았다. 초록초록한것을 보니 생명력이 느껴졌다. 바람에 흔들리는 잎을 보니 매일 조금씩 달라지는 녀석의 변화가 떠올랐다. 결국 반포장 이사라 내힘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공간이 없는것도 아니니 일단 같이 살아보기로 했다.

방울토마토는 우리집 베란다에 놓여졌다. 안방과 연결된 베란다라 아침에 눈을 뜨고 커튼을 치면 나의 방울토마토가 보인다. 일어나자마자 방울토마토에게 물을 주었다. 잠시 곁에 스치기만 해도 방울토마토 특유의 풋내가 나의 잠을 깼다. 이름은 방울토마토인데 그 향만큼은 대저토마토 같은 덩치 큰 녀석들만큼이나 진했다.베란다는 가을과 겨울엔 냉장고 역할을 할만큼 시원함에 능했다. 방울토마토가 이런 저온을 견딜수 있을까 싶었는데 신기하게도 견뎌냈다. 다만 여름에 보여준 미친 성장은 없었고 일시정지 상태로 그저 초록초록 할 뿐이었다. 처음에는 산건지 죽는건지 혹은 언건지 몬지 모르겠다 싶었는데 아주아주 천천히 작은 잎들이 하나씩 나왔다. 여름에 하루동안 자란걸 겨울엔 한달 내내 자라는것 같은 속도였다. 


죽은줄 알았던 방울토마토에서 가지가 나오기 시작!
그럼 그렇지!

이렇게 겨울 내내 고군분투 하던 방울토마토가 돌아왔다. 이후 혹시나 하는 맘으로 물을 주었는데 저 밑둥에서부터 새로운 줄기가 나고 있은것이었다. 마치 나 다시 시작했어! 라는 것처럼. 기쁨 마음과 함께 방울토마토의 작은 잎파리를 보면서 성장이란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방울토마토가 자라기 좋은 환경의 여름에는 모든 것이 순조롭다. 여름의 토마토에게 열매는 성과다. 반면 흙위로 뿌려준 물이 얼어붙어 있을만큼 추운 겨울의 토마토에게 성과는 무엇일까? 생존 그 자체 아닐까. 목이 말라도 살얼음이 녹을 점심 햇살까지 기다렸을 것이다. 매일매일 아주 조금이라도 남는 에너지를 계속 모았기에 반나절이면 냈을 작은 잎파리를 한달이 걸리더라도 내놓을 수 있었을 것이다. 겉으론 열매도 없지만 방울 토마토는 여름보다 겨울인 지금 더 소란스럽고 더 에너지가 넘쳐보인다. 여름보다 어려운 겨울이니.


나도 그런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여름의 기억만을 가진채. 그때의 열매들만을 마음에 품은채. 초조하다고 지금은 겨울임을 모른채한 것이 아닐까. 삶의 온도에 따라 나의 계절이 바뀐다는 것을 지금 배우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나의 방울토마토도 어쩌면 첫 가을에 좌절했을지도 모른다. 얼떨결에 가을을 보내며 적응하던 찰나에 더한 겨울이 왔을 것이다. 하지만 맷집이 강해진 방울토마토는 겨울에 맞게 단련해왔을 것이다. 그래서 여유를 보이듯 작은 잎파리도 내놓은 것이다. 지금 나는 가을에 있구나. 아직 겨울이 아니라니 다행이면서 한편으로는 난이도 상승에 미리 고단함이 느껴진다. 한가지 다행인것은 내가 맺어야 하는것은 열매가 아니라 작은 잎파리란 것이 위로가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화장실을 다녀온 남편이 건넨 것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브런치 시작하기

카카오계정으로 간편하게 가입하고
좋은 글과 작가를 만나보세요

카카오계정으로 시작하기
다른 SNS로 가입하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