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대수니 Mar 29. 2021

30대 중반에 깨달은 인간관계 특징

친하든 안친하든 관계가 오래 유지되는 이유

다음 주면 퇴사를 하게 된다.

코로나로 인해 휴직과 출근을 반복한 지 딱 1년째다. 결국 희망퇴직을 하게 되었고 대부분의 동료들도 그러하다. 한 번씩은 인사를 나누고 싶은 마음과 달리 서로 겸연쩍은 침묵만 나누게 될까 연락을 못 하고 있다.

회사 동료들 얼굴을 떠올리며 안부를 혼자 전해 본다. 줄줄이 소세지처럼 최근 보지 못한 지인들의 얼굴까지 쭈욱 떠올리게 되었다. 한 명 한 명 좋았던 시간들을 떠올리다 보니 나의 좁은 인간관계조차 그룹이 나누어졌다.



CASE 1. 선명하고 빠르게 떠오른 이

비교적 꾸준히 연락하고 최근에 보았던 이들이다. 한결같은 사이들이다.

나의 근황과 고민을 스스럼없이 나누는 이들.


CASE 2. 선명하고 천천히 떠오른 이

가장 친한 이도 있고 좋은 관계로 오랫동안 알고 지낸 이들도 있다.

업데이트가 자주 되지는 않지만 멀어졌다고 여겨지지 않는 이들.


CASE 3. 흐릿하고 천천히 떠오른 이

알고 지낸 지 오래된 이들. 이는 선명하고 천천히 떠오른 사람들과 같지만

업데이트가 까마득하고 멀어졌다는 확신이 있는 이들. 서로 간 공통점이 별로 없다. 



궁금해졌다. 선명하고 천천히 떠오른 이들(CASE 2)과 흐릿하고 천천히 떠오른 이들(CASE 3) 모두 마지막으로 연락한 시기는 비슷한데 왜 서로의 거리는 다르게 느껴지는 건지 말이다. 그 답은 마지막 만남에 있다. 연락을 안 한 기간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연락했을 때 느꼈던 그 느낌은 서로의 거리에 대한 증표이다. 서로 생각하는 거리가 같은지 다른지를 말이다. 나는 흐릿한 이들 중 몇몇은 멀어져 가는 걸 보고 싶지 않아 노력했던 적이 있다. 노력이라는 인위성 때문일까. 이내 어색함만 더 확인하게 되었다. 한번 멀어진 거리는 한쪽의 노력만으로 좁혀지기 어렵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은  아쉽더라도 흐려지는 것을 가만히 지켜본다. 

반대로 선명한 이들 (CASE 1, CASE 2)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왜 선명한 것일까. 어떤 사람들이 나의 곁에 남아 있는 걸까. 선명하다고 해서 모두가 나와 깊은 친분이라고 할 순 없지만 좋은 인연으로 계속 연락하고 지내고 싶은 이들인 건 분명하다. 한 명 한 명 들여다보니 모두 제각각의 이유들이 있었지만 딱 한 가지 공통점이 있더라.

바로 배려심의 정도이다.

몇 해 전에 있었던 일이다. 지인 A와 B가 있다. A는 평소에 나와 잘 맞는 성향은 아니었다. A와는 한두 번 언짢은 일도 있었다. 비단 나하고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B라는 친구는 무난했다. 아주 친한 것도 아주 잘 맞는 것도 아니었지만 아주 싫은 것도 없었다. 때문에 난 B와 있을 때 더 마음이 편했다. 그러다 내가 건강이 안 좋았던 적이 있었는데 이때부터 A와 B에 대한 마음이 바뀌었다. A는 아픈 나를 위해 살뜰히 안부를 챙겨주고 음식과 장소를 고를 때도 먼저 나서서 많은 배려를 해 주었다. 예상치 못했던 이라 더 놀라웠던 것도 있었지만 A는 내 주변의 사람들 중에서 가장 다정하게 챙겨주었다. 반면에 B는 자신의 근황을 이야기하기 바빴다. 물론 나의 안부도 걱정해 주긴 했지만 헤어지기 전 인사 같은 거였다. 내가 당시 만났던 사람들 중에 가장 자신만을 보여주려 했던 사람이 B였다. 이때를 계기로 난 A와 B에 대한 마음이 바뀌었다. 사람 마음이 참 쉽기도 하구나 싶은 게 A와 잘 맞지 않다 느꼈던 것들이 크게 와 닿지 않게 된 것이다. 배려해주고 존중해 준다는 신뢰가 생기니 성향이나 관심사 등이 같지 않아도 되더라. 다르면 다른 데로 새로운 이야기들을 만들어 나가게 되었다. 


우리는 종종 자신을 생각하는 이기심과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배려심 사이를 오간다. 나도 이기적인 모습을 보인적이 있다. 솔직히 몇몇 순간들은 바로 떠오른다. 상대방이 날 이해해주기도 했고 반대로 어느 시점에서는 내가 상대방을 이해하기도 했다. 인간관계에서 배려심이란 공놀이 같은 것이 아닐까. 로의 배려심을 공처럼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이다. 자주 주거니 받거니 할 수록 서로의 거리는 가까워지고 마음이란 공은 왔다 갔다 하면서 비슷한 크기로 다져진다. 거리가 멀면 주거니 받거니 하는데 힘이 많이 들어가고 골프공과 농구공처럼 마음의 차이가 크면 안정적이지 않을테니 말이다. 점점 균형을 맞춰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나이를 먹을수록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존재인지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알게 되나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방울토마토를 보며 위로를 받았다.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브런치 시작하기

카카오계정으로 간편하게 가입하고
좋은 글과 작가를 만나보세요

카카오계정으로 시작하기
다른 SNS로 가입하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