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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대선 Sep 24. 2021

베트남의 첫인상

베트남에서 소프트웨어 회사 운영하기.

4년 전 베트남에 처음 왔을 때부터 지금까지의 경험담을 기록합니다. 



처음으로 가보는 해외 출장이었다. 당시 직장생활 14년 차였지만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살아오면서 해외 출장은커녕 국내 출장조차 흔치 않은 일이었으니까. 우리 회사의 투자사에서 진행한 베트남 투자 세미나에 빈자리가 생겨서 얼떨결에 따라가게 된 정말 우연한 해외 출장이었다. 2017년이었으니까 막 다낭이 휴가지로 알려지고 있었던 때였고, 내가 가진 베트남에 대한 이미지 역시 그 정도. 엄청 덥겠다는 생각 정도였다.


밤늦게 도착한 호찌민은 예상대로 공항을 나가자마자 더운 기운이 확 느껴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빽빽하게 서있는 와중에 택시 호객꾼들이 어리바리한 외국인들을 사냥하러 다니는 혼란한 모습이 호찌민에 대한 나의 첫인상이었다. 같이 온 모두들 가방을 끌어안고 (출국 전에 소매치기 조심하라는 소리를 귀가 따갑게 들었다) 인솔자를 따라 버스에 올라 탄 순간에서야 안도감을 느꼈다.


5성급이지만 낡은 호텔 (프랑스 식민지 시대 건물이라는 건 나중에 알았다)에 체크인을 하고 나서, 테이블에 놓인 웰컴 프루츠를 봤을 때 처음으로 이곳에 대한 긍정적인 감정을 느꼈던 것 같다. 빨간 용과 하나와 바나나 두 개가 놓여있었는데, 용과를 제대로 본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어떻게 까야할지 몰라 와이프에게 카톡을 보냈는데, 와이프가 반을 갈라 속을 퍼먹으면 된다고 알려주었다. 와이프는 이런 걸 어떻게 알았을까?

호텔의 웰컴 프루츠
용과는 반을 갈라 퍼먹는다


다음날 아침부터 호찌민시에 있는 여러 스타트업들과 관련 기관들을 둘러보는 투어 일정이 시작되었다. 낮이 되자 창밖의 풍경을 또렷하게 볼 수 있었는데, 정말 많이 놀랐다. 지금은 고백하기 부끄럽지만, 사실 베트남에 오기 전에 내 머릿속에 상상한 베트남의 이미지는 가난한 공산주의 국가였고, 자연스럽게 북한을 떠올렸다. 공안들이 곳곳에 지키고 있다가 사람들을 잡아간다거나, 사람들은 인민복을 입고 다니거나, 총으로 무장한 경비 (이건 필리핀 세부에 가봤던 경험이 겹친 것 같다)가 위협한다거나 하는 그런 이미지들이었다. 그래서 그때 창밖으로 보이던 건설 중인 고층 아파트, 넓은 도로, 터널에 누군가 그려놓은 그라피티, 커다란 쇼핑몰 들에 놀랐었다. 식사를 위해 새로 지은 쇼핑몰에 들어갔을 때 손님이 별로 없는 것을 보고 '역시 공산주의 국가라 정부가 관광객에게 보여주기 식으로 쇼핑몰을 번드르르하게 지어놨나 보다'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호찌민의 흔한 쇼핑몰
건설 중인 고층 아파트들
힙해 보이는 그라피티


베트남 스타트업들을 둘러볼 때도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대부분 한국 스타트업 뺨치게 꾸며놓았고, 탁구대나 게임기를 비치해놓거나 수면실을 만들어 놓은 회사도 있었다. 이 역시 북한 주민들을 생각하던 나로서는 놀랄 수밖에. 아직 우물 안에 있었던 나는 어떻게든 합리화시키기 위해서 노력했던 것 같다. 여기는 물가가 싸고 급여가 싸서 큰 사무실을 빌려서 실컷 꾸며놓아도 부담이 적겠구나, 투자를 많이 받아서 보여주기 식으로 해놓은 거구나, 그럴듯한 회사들만 보여주고 있는 거겠지. 이런 식의 생각들이었다. 한국의 콜센터 이미지처럼 수백 명이 빽빽하게 앉아서 기계처럼 일만 하는 모습일 줄 알았는데, 청바지에 반팔 티 입은 직원들이 떠들면서 일하는 환경을 보게 되니 그게 뭐 그리 신기한 일이라고 부끄러움도 모르고 사진을 찍어댔었다.

흔한 스타트업 분위기
흔한 스타트업 분위기 2


그리고 이어진 세미나들에서 들은 베트남의 상황들은 우리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하게 만들었다. 정말 베트남에 진출할 가치가 있을까?


한국의 소프트웨어 기업이 베트남에 진출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첫째는 베트남의 소비시장을 보고 한국의 서비스를 로컬라이징 해서 론칭하는 경우, 둘째는 베트남의 생산력을 보고 베트남 개발자들을 채용해서 한국의 R&D 센터로 활용하는 경우. 전자의 경우 베트남은 상당히 매력적인 시장으로 발전하기 시작하는 단계였다. 초기 시장을 선점해 그 효과를 노린다면 충분히 과실을 얻을 수 있지만 그 과실이 생길 때까지 버티는 게 가능할지는 미지수였다. 후자의 경우 생각보다 비싼 인건비와 운영비용, 그리고 커뮤니케이션 비용이 걸림돌이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베트남 노동자 월급이 300불이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소프트웨어 쪽 인건비는 전혀 달랐다. 사무실 임대 비용이나 행정처리비용, 주재원 비용, 한국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까지 생각하면 도저히 가성비가 나오지 않았다. 이런 건 이후 4년간 경험이 계속 쌓이게 되므로 차차 이야기를 풀어놓겠다.


3박 4일 정도의 짧은 일정으로 다녀온 호찌민이었지만 배운 점이 많았고, 이후 장문의 리포트를 써서 회사에 보고했다. 사실 이때까지도 내가 베트남에 다시 가게 될 거라고 생각을 못했다. 그저 알찬 시장조사였고, 시장조사 결과 우리 회사는 그곳에 진출해도 가성비가 안 나온다는 결과를 냈으니 이 정도로 마무리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한 달 뒤에 다시 호찌민 행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ps. 이때 배운 내용은 당시에 아래 글에 정리해 놓았습니다.
Medium - 베트남의 스타트업 탐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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