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호찌민에서 소프트웨어 회사 운영하기
4년 전 베트남에 처음 왔을 때부터 지금까지의 경험담을 기록합니다.
처음 호찌민에 방문한 지 한 달 후, 회사의 호찌민 지사를 설립하기 위해 다시 호찌민에 돌아오게 되었다. 겨우 한 달 사이에 어떻게 이런 결정이 났는지 지금 생각해봐도 잘 모르겠다. 비즈니스 측면에서 이 일이 가성비가 있느냐를 논한다면 도저히 답이 안 나오는 일이었다. 조사한 바로는 생각만큼 개발자 급여가 싸지 않고, 이직률이 높으며, 관리 비용이 크고, 커뮤니케이션 비용이 크며, 결과물 품질이 낮을 가능성이 컸다. 이에 대한 대안은? 내가 가서 잘 관리하면 되는 거다. 맙소사.
지금도 베트남 진출을 생각하며 연락해오는 분들이 많다. 이런저런 질문들이 오고 가지만 보통 인건비가 얼마냐는 질문이 메인이다. 이런 건 별 거리낌 없이 말씀드린다. 경력에 따라 $500 ~ $2,000. 물론 인건비 외에 드는 비용들도 많지만 나는 꼭 한 가지를 덧붙인다. "그런데 한국에서 오실 분 계신가요? 그분 인건비와 체류비가 베트남 직원 10명 인건비와 비슷할 겁니다."
베트남에 들어오는 법인장급 인력들은 보통 결혼도 했고, 아이도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럴 경우 방 3개짜리 아파트 랜트, 출퇴근용 자동차 랜트, 아이들의 국제학교 학비, 가족들 왕복 항공료, 비자 비용 등등을 체류비로 줘야 한다. 물론 그전에 베트남에 갈 사람이 있어야 한다.
우리 회사는 내가 매우 저렴하게 들어왔으므로 이런 문제들이 자동으로 해결되었다. 맙소사.
아무튼 일반적인 회사의 경우 이 비용 다 지출하고도 가성비가 나오려면 최소한 개발자 20명은 채용해서 돌아가야 되는데, 그때쯤에는 법인장 한 명으로는 벅차서 추가로 주재원이 들어오게 된다. 우리 회사는 지금 50명인데 한국인이 나까지 4명 나와있다. 이런데도 가성비가 가능할까?
아, 이야기가 옆길로 샜다. 이런 이야기는 틈틈이 하기로 하고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보자.
어쨌든 나는 호찌민에 다시 돌아왔고, 법인 설립을 위한 작업을 시작한다. 베트남에서는 법인 설립할 때 사무실 임대 계약서를 같이 제출해야 하기 때문에 사무실 임대를 먼저 알아봐야 한다. 베트남에 먼저 나와계신 분들의 조언으로 사무실은 한국인이 많이 사는 7군에 얻기로 한다.
잠깐 호찌민 시의 행정구역을 살펴보면 위의 지도와 같다. 한국의 '구'에 해당하는 행정구역을 여기서는 '군'이라고 부른다. 1~12군까지 숫자로 표시된 군이 있고, 그 외에 Binh Thanh, Thu Duc, Go Vap 등등 따로 이름이 있는 군이 있다. 최근에는 Thu Duc 군과 2군, 9군이 합쳐 저 Thu Duc 시로 재편되었다. 그렇다고 호찌민과 별개로 분리된 것은 아니고, 호찌민 시 아래에 Thu Duc 시가 편성되었다. 1~12군처럼 이름 없이 숫자로만 표시하는 행정구역은 프랑스의 영향을 받은 것이고, 이름이 있는 군들은 프랑스 시대 전부터 있던 지역명이 남아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1군이 가장 중심지이고 1군에서 멀어질수록 가치가 떨어진다고 볼 수 있다. 7군은 그 당시 막 개발 중이던 신도시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7군에 처음 사무실을 오픈한 건 패착이었다. 한인타운이 잘 조성되어 있기 때문에 한국인이 정착하기 유리한 것은 맞지만 직원들 입장에서는 매일 변두리로 출퇴근해야 되는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개발자들은 콧대가 높아서 7군이면 우선 거르는 상황이었고, 이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심해졌다. 결국 7군 근무를 싫어하는 직원들을 잡기 위해 1군 근처에 코워킹 스페이스를 얻어 따로 운영해야 했고, 계약기간 2년을 채운 뒤 바로 1군으로 이전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서, 사무실을 구할 때 크게 세 가지 건물을 고려할 수 있었다. 첫 번째는 사무용 고층 건물, 두 번째는 사무용 저층 건물, 세 번째로는 샵 하우스 구조의 단독 건물이다. 베트남은 사무용 빌딩도 A등급, B등급과 같이 등급을 나누는데 거기까지 가면 너무 복잡해진다.
이 건물이 우리가 입주해서 2년간 사용했던 건물이다. 상당히 큰 건물이고 5층까지 쇼핑몰로 개발되었다가 사무용으로 전환된 건물이었다. 우리는 10층에 100m2 정도 공간을 사용했다. 베트남 기준으로 B등급 정도의 건물이다.
저층 건물은 도심 속 여기저기 숨어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으로 숨어있는 건물들을 찾을 수 있다. 이 건물은 지금 현재 우리 회사가 사용하고 있는 건물이다. 그리고 샵 하우스 형태의 건물은 아래와 같이 생겼다.
각각의 형태들이 장단점이 있었는데 물론 좋은 건물일수록 비싸다. 임대료를 비교하자면 첫 번째 큰 건물의 100m2와 샵 하우스 형태 건물 전체가 비슷하다. 샵 하우스는 입구 쪽이 좁고 안으로 깊은 형태라 바닥 면적이 80m2는 나오니까 4층까지 합하면 320m2 정도라고 생각할 수 있다. 첫 번째 건물과 두 번째 건물을 비교하면 면적당 가격이 두배 정도 차이가 난다.
부동산에 컨택해서 하나하나 둘러보게 되는데, 베트남은 부동산들마다 보여줄 수 있는 물건들이 달라서 여러 부동산을 컨택해야 한다. 물론 저때는 그런 거 모르고 첫 번째 컨택한 부동산과 계약했다. 여러모로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이었다.
사무실을 보러 가면 대부분 이런 식으로 아무것도 없는 상태이다. 천장도 뜯어져 있는 경우도 있다. 사무실 임대를 하면 기본적으로 전기공사와 바닥공사부터 시작해야 하고 에어컨도 건물에서 관리하는 에어컨이 아니라면 모두 설치해야 한다. 그리고 계약이 종료될 때 다시 이 상태로 만들어놓고 나가야 한다.
한 층을 통째로 사용할 경우에는 엘리베이터 앞에 벽 만드는 것부터 모든 공간의 인테리어를 다 해야 한다. 임대 계약을 보통 2년 하는데 인테리어를 매번 처음부터 해야 되니 비용이 상당하다.
저런 벽걸이형 에어컨이 달려있다면, 나중에 에어컨 중고값을 별도로 치러야 할 수도 있다.
운이 좋게 전에 사무실을 사용하던 회사가 아직 나가지 않은 상황이라면, 그 회사와 어느 정도 딜을 할 수 있다. 바닥을 뜯지 말아 달라거나, 가벽을 철거하지 말라거나, 아니면 가구를 놓고 가달라고 요청할 수도 있다. 가구나 가전제품을 인수할 경우 중고 가격을 꽤 비싸게 부르는 편이다.
마음에 드는 사무실을 찾았으면 계약을 진행한다. 처음에는 법인이 없기 때문에 법인장 개인 명의로 계약서를 써야 한다. 법인 설립 이후에 계약서를 변경하는 절차가 한번 더 있다. 베트남의 계약서는 상당히 두툼한 편이다. 이 때는 36페이지 계약서가 베트남어와 영어로 각각 3부씩 인쇄되었다. 그리고 그 모든 페이지에 사인을 해야 했다. 베트남은 이런 서류 작업들이 많아서 싸인이 점점 빨라진다.
계약 기간과 별도로 인테리어를 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 사무실 사이즈에 따라 다른데 보름에서 2달까지 협의할 수 있다. 이 기간 동안 임대료는 안 나가고 전기세는 사용한 만큼 내야 한다. 계약금 3개월치이고, 월세를 3개월에 한 번씩 냈는데, 여기 함정이 있었다. 월세가 선불이기 때문에 계약할 때 계약금 내고, 인테리어 끝난 후 입주할 때 3개월치 월세를 내야 했다. 즉 사무실 오픈을 위해서 6개월치 월세 + 인테리어 비용이 미리 준비되어 있어야 했다.
이때는 체류 일정이 길지 않아서 사무실을 보러 다닐 시간이 하루밖에 없었고, 그중에서 골라서 계약을 해버렸다. 되게 중요한 결정들인데 왜 그렇게 급했었는지 모르겠다. 사무실은 나름 나쁘지 않았고, 좋은 추억들이 많이 남아있기 때문에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좀 더 시간과 경험이 있었다면 더 좋은 선택을 했을 것 같다. 뭐 처음부터 경험이 있는 사람은 없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