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호찌민에서 소프트웨어 회사 운영하기
4년 전 베트남에 처음 왔을 때부터 지금까지의 경험담을 기록합니다.
호찌민에서 사무실을 계약하고 있을 무렵. 한국에서 와이프가 날아왔다. 얼렁뚱땅 베트남에 살게 되어버린 상황인데 와이프도 한번 와서 살만한지 보는 게 당연한 절차이니까. 우선 그나마 환경이 가장 좋았던 7군 한인타운의 대장 아파트인 스카이가든에 에어비앤비로 숙소를 잡았다. 스카이가든은 상당히 큰 아파트 단지이고 한국인이 워낙 많이 살고 있어 한국인을 위한 상업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단지 내에 산책로도 잘 조성되어 있어서 밤에 산책하기에 무섭지 않은 곳이다. 지금은 스카이가든 아파트가 노후화로 인해 한국인들이 다른 아파트 단지들로 많이 이동한 상태이지만 4년 전만 해도 정말 많은 한국인들이 이곳에 살았다.
바로 옆에 있는 Vivo city라는 쇼핑몰도 상당히 크고 세련됐기 때문에 저녁에 Vivo city까지 천천히 산책하고, Vivo city 안에 있는 대형 마트에서 장을 보는 기분이 좋았다.
스카이가든은 호찌민 7군 안에서도 푸미흥이라고 부르는 신도시에 속해있는데, 이 푸미흥 지역만 놓고 보면 다른 베트남과는 전혀 다른 선진국 느낌이 난다. 신도시의 건설과 관리를 푸미흥 코퍼레이션이라고 하는 대만과 베트남 합작회사, 즉 사기업에서 하는 특이한 구조이다. 도시 기반 시설은 물론 도로 청소나 쓰레기 수거 같은 도시 서비스도 전부 이 회사에서 처리하기 때문에 이런 특별한 모습이 가능하다.
와이프도 며칠 같이 둘러보면서 생각보다 좋은 호찌민 주거 환경에 안심을 하는 눈치였다.
한국에 다시 돌아가 주변정리를 빠르게 하고 와이프와 함께 다시 호찌민으로 출발했다. 호찌민에 처음 온 지 두 달이 채 안된 상황이었다. 이번에 해야 할 일은 집 구하기, 법인 설립, 사무실 인테리어 계약, 직원 뽑기. 그중에서 오늘은 집을 구하던 경험을 공유해본다. 내 경험 중심으로 이야기해서 다른 사람들의 경우와는 다를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 호찌민에 온 주재원들이 거주하는 환경에 대해서는 따로 써놓은 글이 있으니 참고 바란다.
와이프와 함께 7군에 있는 저렴한 숙소에 짐을 풀었다. 이 저렴한 숙소가 구글맵에 엉뚱한 위치로 표시되는 바람에 비 오는 한밤중 거리에서 한참 헤매고 순찰 중이던 공안의 안내로 겨우 찾아갔다는 이야기는 베트남에서 워낙 흔하게 겪는 수준의 에피소드라 따로 이야기하지는 않겠다. 그렇게도 전화를 안 받더니 직원이 1층 로비에 이불 깔고 자고 있었다.
베트남에서 아파트를 임대할 때는 풀옵션과 노옵션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풀옵션은 가구와 전자제품이 완비된 상태로 임대하고, 노옵션은 그것들이 없는 상태로 임대한다. 같은 집이라면 풀옵션 월세가 100불 정도 비쌌다. 처음 베트남에 온 입장에서, 언제 다시 돌아갈지도 모르니 당연히 풀옵션만 봤다.
몇 개 더 있었는데 사진이 너무 많아지는 것 같아서 3개만 추려보았다. 월세에는 보통 관리비 미포함이고, 기본 관리비가 집에 따라 $50 ~ $100 정도였다. 전기세 수도세 같은 건 별도. 우리가 선택한 집은 후보 3번이었는데 당시 7군 푸미흥에 있는 아파트 치고는 한국인이 적은 편이었고, 주변에 다른 아파트 없이 홀로 동떨어져있는 아파트 단지였다. 사무실과 가까워서 걸어서 15분 정도 걸린다는 점 (이때까진 걸어서 출퇴근할 생각을 했다. 지금이라면 꿈도 안 꿨겠지). 수영장이 5층에 있어서 프라이빗 하다는 점. 37층의 고층이고 주변에 높은 빌딩이 없어 탁 트인 뷰 등의 이유로 선택을 했는데 물론 후에 많이 후회했다.
외국 살기에 로망이 있는 많은 사람들이 되도록이면 한국인이 적은 곳에 살고 싶어 하는데, 나와 와이프도 마찬가지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건 한국인을 위한 편의시설이 없다는 것과 같은 이야기다. 한국 식재료를 구하기 위해 택시 타고 나가서 사 와야 하고 배달해주는 식당도 별로 없었다 (지금은 앱으로 배달하면 다 된다). 사무실까지 걸어서 15분 걸린다는 건 한국 기준으로는 가깝다는 의미이지만 여기 기준으로는 괜히 걷다가 타 죽는다는 의미이다. 도로도 걷기 좋은 환경이 아니고, 퇴근길에 동네 개에게 물린 적도 있다. 수영장은 거기 사는 2년 동안 10번은 가 봤을까? 그나마 너무 아까워서 갔던 거고, 지금 사는 아파트에서는 2년 넘도록 한 번도 안 갔다. 뷰는 항상 암막커튼을 쳐놓고 살아서 모르겠다. 37층까지 날벌레들이 날아오는 건 아직도 불가사의다.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나 홀로 아파트였기 때문에 커피숍이나 마트 한번 가려면 한참 걸어야 했다. 베트남은 누구나 바이크가 있고, 없으면 자전거라도 타고 다니기 때문에 걸어서 돌아다닌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인데 그때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었다.
아파트 구할 때도 사무실 구할 때와 마찬가지로 부동산을 컨텍해야 하는데, 내 전략은 살고 싶은 아파트 근처에 있는 부동산에 무작정 찾아가는 거였다. 지금도 이 전략은 맞다고 생각하는데 대신 그 부동산에 말이 통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한국어가 통한다면 금상첨화이겠지만 영어라도 통하면 다행이다. 베트남은 부동산들이 매물을 잘 공유하지 않기 때문에 부동산들마다 가지고 있는 물건이 다른 경우가 많다. 집주인이 여러 부동산에 등록해놓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겹치기도 한다. 이런 특성 때문에 아파트 근처에 있는 부동산이 그 아파트의 임대 물건을 많이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다. 부동산에 하루 이틀 전에 예약을 해놓으면 임대 물건을 보여주기 위해 준비를 해놓는데, 그냥 들어가도 당장 보여줄 수 있는 집들은 보여준다. 그 뒤에 Zalo (베트남의 카카오톡)를 통해 추가로 나온 임대 물건 사진을 보내주기도 한다. 부동산은 임대 후에도 집에 문제가 생겼거나 이런저런 문의사항이 있을 때 집주인 대신 처리해주기 때문에 말이 통하고 집에서 가까울수록 좋다. 특히 외국인 입장에서는 현지인의 도움이 필요할 때가 많고, 비자 처리할 때마다 임대 증빙 서류도 요청해야 하기 때문에 부동산과 소통할 일이 많다.
나는 여기서도 실수를 좀 했다. 내가 찾아갔던 부동산은 A 아파트의 부동산이었는데, 부동산 직원이 그 아파트 물건을 다 보여준 후 우리에게 B 아파트도 보여줄 수 있는데 보겠냐고 물어봤다. 물론 많이 볼수록 좋으니 승낙했고, 그곳에서 차로 10분쯤 거리에 있던 아파트를 보여줬다. 공교롭게도 그 아파트를 계약해버려서 우리 집과 부동산이 꽤 멀어져 버렸다. 우리에게 이 집을 보여준 상냥한 직원은 얼마 후 다른 부동산으로 옮겨버렸고.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부동산에서 B 아파트까지 택시로 이동했다. 부동산 직원이 택시를 잡아 앞좌석에 타고, 나와 와이프는 뒷좌석에 앉았다. B 아파트에 도착해서 내렸는데 부동산 아가씨는 멀뚱멀뚱 서있었고, 나는 뭔가 알 수 없는 눈치를 느끼며 10초 정도 정적이 흘렀던 것 같다. 그리고 주섬주섬 지갑을 꺼내서 택시비를 냈다. 아니, 자기가 택시 불러놓고...
계약하는 날 보증금 2달치 임대료와 첫 달 월세를 빳빳한 달러로 지불했다. 베트남은 아직도 큰돈이 오갈 땐 미국 달러로 표기하는 경우가 많다. 집세나 월급을 말할 때 보통 달러로 말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달러를 지불 수단으로 쓰는 건 아니다. 달러로 말하고 그때그때 환율 계산해서 베트남 동화 (VND)로 주고받는다. 아마도 자국 통화 가치에 대한 신뢰가 아직 부족한 것 같다.
처음 입주할 때는 부동산에서 집에 있는 모든 옵션에 대한 리스트를 가져와서 하나하나 실제 물건과 비교해준다. 가령 테이블 위에 데코용 꽃병이 있었다면 그런 것도 리스트에 일일이 다 적혀있다. 모두 확인하고 사인하면 나중에 이사 갈 때 다시 그 리스트와 비교해서 훼손되거나 없어진 게 있는지 확인하는 식이다. 입주하는 첫날 집안 구석구석을 휴대폰 동영상으로 촬영해놔야 한다. 그래야 원래 있던 흠집을 트집 잡아 물어내게 하는 상황에 대처할 수 있다. 그럼에도 나는 이사할 때 각종 트집으로 보증금의 반 정도를 떼이고 나왔다.
이렇게 또 집 계약을 후다닥 마치고, 우리는 들고 왔던 짐을 그대로 집 안에 밀어 넣고 나서 바로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왜 그리 급하게 왔다 갔다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정말 바쁘게 움직였었다.
ps. 외국 살면서 가장 좋은 건 쓰레기 버릴 때가 아닐까? 이전 집은 아래와 같이 층마다 쓰레기 투입구가 있었고, 지금 집에는 층마다 쓰레기 수거함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