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서 소프트웨어 회사 운영하기
개인적으로 집을 알아보러 다니는 동시에 업무적으로는 개발자 채용을 시작했다. 다행히 우리 회사에는 베트남인 직원이 한 명 있었다. 한국에서 대학원을 졸업하고 직장을 구하던 개발자였는데 우리 회사도 베트남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할 때였기 때문에 한국에서 채용해 같이 일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취업해 한국 장기 체류 비자를 받는 게 목표였던 친구였는데 어쩌다 보니 나와 함께 호찌민에 들어오게 되었다. 이 친구 집도 호찌민에 있어서 처음에 겪었을 많은 문제들을 해결해주었다. 만약 이 친구가 없었다면 통역을 구하거나 다른 회사의 도움을 받아야 했겠지.
채용은 우선 Facebook 광고부터 시작했다. 베트남에서 페이스북은 상당히 강력한 마케팅 도구이다. 한국인이 생각하는 페이스북에다가 메신저, 커뮤니티, 이커머스, 데이팅, 부동산, 채용 등등을 다 합쳐놨다고 생각하면 된다. 요즘은 그나마 인스타나 틱톡으로도 트래픽이 분산되지만 4년 전에는 오직 페이스북 원탑이었다. 물론 베트남에도 채용 전문 사이트들이 있기 때문에 이후로는 채용사이트들을 쓰게 되지만 처음 오픈하는 시점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하기 위해서는 페이스북 광고가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채용이 필요한 포지션은 모바일 Android, iOS 개발자와 웹 프런트 앤드, 웹 풀 스택, 그리고 HR 직원이었다. 사무실 오픈과 동시에 직원들이 출근해서 일을 시작해야 했고, 남은 시간은 보름 남짓. 거의 한 시간에 한 명씩 인터뷰를 봐야 했다. 사무실은 인테리어 중이었기 때문에 건물 1층 카페에서 음료수 한잔씩 사주며 인터뷰를 봤다.
처음에는 한국에서 만들어간 20문항짜리 간단한 테스트를 본다. 간단한 수학 문항과 컴퓨터 과학 문제들, 그리고 아주 단순한 코딩 테스트 문항이 들어있는 시험이다. 개발자라면 누구나 맞출만한 문제들이지만 생각보다 점수가 높지 않았다. 내가 예상한 평균점수가 18점이었다면 실제 평균점수는 13점 정도. 생각보다 컴퓨터 과학이나 개발 상식 관련 문제들이 오답률이 높다. 예를 들어 8진수 변환 같은.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베트남 대학교에서는 우리가 컴공에서 기초라고 생각하는 과목들을 그다지 중요하게 가르치지 않는다. 그래서 개발 경험은 좋지만 기초 지식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취업이 한국만큼 힘들지 않고 좋은 대학교 졸업하면 대부분 좋은 회사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취업을 위한 노력을 많이 하지도 않는다. 여러모로 한국처럼 채용을 하려고 했다가는 사람 뽑기 어렵다.
최근에는 호찌민 국립대에서 교육사업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학생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고, 어떻게 취업이 되는지, 그리고 어떤 경험을 쌓아가는지 조금씩 배워가고 있지만, 4년 전 당시에는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면접을 10명 보면 그나마 뽑을만한 사람이 1 ~ 2명 정도. 10명을 뽑으려면 50~100명은 면접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의 3년 동안 모든 면접에 들어갔기 때문에 정말 면접만 수백 번은 봤다.
베트남 개발자 실력에 대해서 물어보는 분들이 정말 많다. 나는 베트남 개발자 탑 레벨은 한국 개발자 탑 레벨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베트남 개발자 상위 10% 정도 수준은 한국 개발자 중간 정도 수준으로 보고, 절반 이상은 한국에서 상상하기 힘든 정도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자면 한국의 김연아는 세계 최고였지만 누군가 한국의 피겨스케이팅 선수들의 수준을 물어본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베트남에 진출했지만 실패하는 많은 소프트웨어 회사들이 같은 문제를 겪는다. 정말 괜찮은 개발자들만 고르고 골라서 써야 한국에서 만족할 만한 수준의 개발을 할 수 있는데, 외국인으로서 면접 한번 보고 좋은 개발자인지 판단하기란 정말 어렵다. 게다가 실력뿐만 아니라 인성이나 성실함, 거기에 영어 실력까지 봐야 하니까. 보통 기술면접 한 시간 정도를 진행하고 나면 기운이 쭉 빠지게 된다. 한국에서 온 관리자가 정말 회사에 애정이 있지 않으면 대강 경력 괜찮은 개발자 머릿수 맞춰놓고 세팅을 끝내기 때문에 그런 회사는 제대로 굴러갈 수가 없다.
결국 고르고 골라 뽑은 직원들과 함께 2017년 8월 1일에 첫 출근을 하게 되었다. 다른 회사에 다니고 있어서 며칠 뒤에 합류한 멤버들을 포함하면 나까지 총 9명으로 시작했다. 이 사진을 찍은 카페가 사무실 건물 1층에 있던 카페인데 모두 이곳에서 면접을 봤던 멤버들이다. 오픈 첫날이지만 사무실에 못 가고 카페에서 업무를 시작했는데, 이유는 인테리어가 아직 덜 끝났기 때문이다. 8월 1일이 오픈이니 무조건 그전에 인테리어가 끝나야 한다고 강조했었건만.
베트남에서 제일 믿지 말아야 할게 인테리어 업체다. 그것도 모르고 돈 좀 아끼겠다고 프리랜서를 썼으니 내 발등을 찍은 거나 마찬가지.
아무튼 인테리어가 덜 끝난 이유로 카페에서 첫 업무를 시작했다. 맥북프로를 한 대씩 중고로 사다가 지급했고, 서먹서먹하게 카페에 앉아있다가 인근 쇼핑몰로 식사를 하러 갔다.
베트남은 남자들이 (특히 개발자는) 군대를 잘 가지 않고, 대학교 졸업하기 전에 인턴쉽을 시작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하기 때문에 연령대가 어린 편이다. 신입은 만으로 22세 전후이고 25세 정도 되면 자기가 최고라고 생각하고 28세 정도 되면 슬슬 코딩은 손 놓고 관리직으로 전향할까 생각하기 시작한다.
이때 사진들을 보면 좀 슬퍼지기도 하는데, 이들 중 한국에서 같이 왔던 직원을 제외한 나머지 5명 중 1명만 지금까지 남아있고, 나머지는 1년 전후로 퇴사하고 말았다. 앞에서 좋은 직원을 뽑기 어렵다는 것을 강조했지만 사실 더 어려운 게 좋은 직원들을 유지하는 것이다.
베트남은 개발자를 뽑을 때 2달간의 Probation 기간을 가진다. 이때에는 회사도 직원을 해고할 수 있고, 직원도 마음대로 그만둘 수 있다. 서로 상대방에 대해 관찰하는 기간이기 때문에 면접 때 거르지 못한 직원은 이 시기에 걸러내야 한다. 직원 입장에서도 회사 근무 환경이 안 좋거나 멤버 구성이 안 좋다면 바로 내일부터 출근하지 않겠다고 하고 그만둔다.
호찌민 사람들은 성격이 정말 사교적이다. 한국사람들, 특히 나 같은 개발자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성격들이다. 오토바이 탄 사람들이 교차로 앞 신호대기 때 옆사람에게 길을 물어보더니 마음이 맞았는지 페이스북 친구 등록을 한다. 그러고서 그 사람의 페이스북에 들어가 그의 친구들에게도 친구 신청을 보낸다. 그렇게 만들어진 친구들 중에 직업이 개발자인 사람이 있으면 자기네 회사 오라고 메시지를 보낸다. 그렇게 오퍼를 받은 직원은 자기 친구네 회사로 옮기게 됐다고 퇴사 통보를 한다.
반대의 경우도 겪어봤다. 어떤 개발자가 자기 친구가 우리 회사에 오고 싶어 한다고 해서 면접을 봤다. 별로 마음에 들지 않지만 괜찮은 직원이 소개해준 친구이기 때문에 합격시켰다. 나중에 알고 보니 서로 잘 모르는 사이였다.
사교적인 특성은 새로 온 직원이 회사에 적응하는 시간을 많이 줄여준다. 입사한 지 며칠 안됐는데도 모든 직원들과 두루두루 친하게 지낸다. 하지만 그만큼 다른 회사에 가는 두려움 같은 게 없다. 한국의 많은 개발자들이 맨날 야근하면서 퇴사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서 적응하고 친해지는 게 보통 내성적인 개발자들에게는 끔찍한 일이다. 그래서 직장을 옮기지 못하고 하루하루 참아가며 버티는 개발자들이 많다. 하지만 호찌민 사람들에게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내가 본 가장 소심하고 내성적인 호찌민 개발자도 한국사람 눈에는 평범한 정도의 사람이었다.
내가 베트남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고 호찌민 사람이라고 말했는데, 정확히는 남부 베트남 사람들은 그랬다. 중부 사람들은 남부 사람만큼은 아니지만 한국사람 눈에는 충분히 사교적이고, 북부 사람들은 한국사람과 비슷한 정도라고 생각한다. 베트남은 남북으로 긴 나라이고, 북부와 남부가 통일된 게 그리 오래 전이 아니기 때문에 많은 부분에서 차이가 난다.
내가 다른 블로그에도 글을 썼었지만 브런치를 시작하게 된 건 이런 베트남 사람들, 특히 우리 직원들에 좀 더 집중해서 글을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조금 더 사적인 경험 속에서 그들과 우리가 어떻게 다른지, 왜 다르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좀 더 공유하고 싶다. 4년 살아놓고 다 안다 할 수는 없는 거고, 아직도 모르던걸 새로 발견하는 일이 많다. 단지 베트남 개발자들에 대해서는 좀 더 많이 관찰하고 고민했기 때문에 이야기할 거리가 많을 것 같다. 글을 쓸수록 자꾸 주제와 다르게 옆길로 새는 경우도 많고, 빼먹는 것들도 많다. 업무적인 글쓰기처럼 미리 기획하고 쓰는 게 아니라 의식의 흐름대로 쓰는 거고, 이번에 빼먹은 내용은 나중에 쓰면 되겠지. 그전에는 자꾸 힘주고 글 쓰다 보니 글 한편 완성하는데 6개월씩 걸리기도 했다. 브런치에서는 부담을 좀 내려놓고 친구에게 썰을 풀듯 적어나갈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