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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대택 Sep 28. 2019

006 대한레슬링협회 대한육상연맹 연혁 바로 잡습니다

대한민국농구협회와 함께 국제연맹 가입일을 

올림픽 종목들은 물론 세계대회가 있는 종목들은 국제연맹이나 협회가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거의 모든 종목들이 다 그러합니다. 그래서 국내의 종목 단체들은 모두 해당 국제연맹에 가입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종목 단체들은 국제연맹에 언제부터 가입했을까요? 이는 올림픽과 밀접하게 관계있습니다. 그래야 올림픽에 참석할 수 있었거든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종목 단체들의 연혁을 들여다보는 사람들은 없죠. 그래서 그런가요. 종목 단체들의 국제연맹 가입일이 틀린 경우가 꽤 있습니다. 사실 국제연맹에 가입하기 시작한 때가 해방 후부터이고, 기록이 많지 않으니 일자를 정확히 아는 것도 쉽지는 않겠네요.


우리나라 종목 단체들 중에서 가장 먼저 국제연맹에 가입한 종목은 레슬링입니다. 육상이 그 뒤를 따릅니다. 이 두 종목의 국제연맹 가입일을 살펴볼까요?


대한레슬링협회


대한레슬링협회 홈페이지의 국제연맹(FILA; Fédération Internationale des Luttes Associées, 이 단체명은 2014년 9월 UWW로 개명함) 가입은 1948년 8월로 적혀있습니다. 확인해 본 결과 이는 옳지 않으며, 이보다 약 16개월 앞선 1947년 4월 11일이 옳습니다. 


United Press는 1947년 4월 11일 프라하에서 열린 총회에서 한국이 FILA에 가입했다고 보도하였습니다(6-1). 전경무가 IOC 회장 에드스트롬에게 보낸 편지에는 대한레슬링협회가 2월 18일에 가입신청서를 발송했고, FILA 회장의 답신에서 신청서는 프라하에서 4월 11일에 결정될 것임을 알려왔다고 적고 있습니다(6-2). 전경무가 브런디지에게 1947년 5월 26일 보낸 전신은, 대한레슬링협회가 프라하에서 4월 11일 정식으로 가입했음을 알리고 있습니다(사진 6-1). 그러니 대한레슬링협회의 FILA 가입일은 누가 봐도 1947년 4월 11일입니다. 



[사진 6-1]  전경무가 브런디지에게 보낸 전신 (1947. 5. 26.). 대한레슬링협회가 FILA에 가입되었다는 통신



대한육상연맹


이번엔 육상을 보죠. 대한육상연맹 홈페이지는 ‘1945. 10. 20. 국제아마추어육상경기연맹 (IAAF) 가입’으로 적고 있습니다. 이것도 틀렸습니다. 


1947년 6월 10일 New York Times를 보면 국제아마추어육상경기연맹 총회가 6월 9일에 영국에서 열렸습니다. 기사는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사진 6-2). 


‘The United States zone of Korea also was voted into the body with the proviso that its membership be reconsidered if the United States and Russian zones eventually should merge.’


번역하자면 대략 이렇습니다. ‘한반도의 미국 관할지역은 미국과 소련 구역이 최종적으로 합쳐질 때 다시 재심사될 것을 전제로 조건부 회원가입에 통과되었다’ 정도입니다. 이는 IAAF 회의록을 확인해봐야겠지만 최소한 조건부라 할지라도 가입되었음을 알려줍니다. 1947년 7월 10일 브런디지가 여운형에게 보낸 편지에도 런던에서 개최된 IAAF 총회에서 한국이 가입되었다고 적고 있습니다(6-3). 이원순이 IOC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사제 여권을 들고 영국 총영사관을 찾아가 입국 사증을 받고자 했던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IOC 총회 가는 길에 런던에 들러 IAAF 총회에서 대한육상연맹을 가입시켜야 했으니까요(6-4). 결국 대한육상연맹의 IAAF 가입일은 1947년 6월 9일이 됩니다. 



[사진 6-2] 뉴욕타임스 (1947. 6. 10.) 1947년 6월 9일 대한육상연맹이 IAAF에 조건부 가입되었다는 기사



대한민국농구협회


이번엔 농구를 볼까요. 대한민국농구협회 홈페이지에는 ‘1947.6.20–국제아마추어농구연맹(FIBA)가입’으로 적고 있습니다. 옳을까요? 


다시 전경무가 에드스트롬에게 보낸 편지를 보죠. FIBA에는 1947년 3월 12일 신청서를 발송했으며, 4월 24일에 답신이 왔는데, 답신은 가입 공식 결정은 1948년 런던에서 결정된다고 알려왔음을 적고 있습니다. 더 자료를 찾아봐야겠지만 지금 현재로 대한민국농구협회의 FIBA 가입은 1947년 6월 20일은 아닌 듯합니다. 


몇 가지 생각이 듭니다. 먼저, 뭐 별로 중요해 보이지는 않겠지만 각 종목 단체들이 국제연맹 가입일과 같은 기록은 근거와 확인을 통해 명확하게 했으면 합니다. 둘째, 1948 런던올림픽 참가에 대한 희망과 노력이 자연스럽게 종목 단체의 국제연맹 가입을 종용한 면이 없지 않으니 올림픽이 당시 한반도의 스포츠 체제 형성에 역할을 한 것이 분명합니다. 마지막으로 기록은 사방에 산재해 있고 스포츠 역사는 자료를 차곡차곡 모으는 것부터 시작해야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인용 자료


(6-1) South China Morning Post. 1947. 4. 13. 


(6-2) 전경무가 에드스트롬에게 보낸 편지 (1947년 5월 18일). Brundage Collection, KOC-01, Olympic Studies Center, 로젠, 스위스. 총3면.


(6-3) 브런디지가 여운형에게 보낸 편지 (1947년 7월 10일). Brundage Collection, KOC-01, Olympic Studies Center, 로젠, 스위스.


(6-4) 이원순 (1989). 세기를 넘어서. 신태양사.


(사진 6-1) 전경무가 브런디지에게 보낸 전신 (1947년 5월 26일). Brundage Collection, KOC-01, Olympic Studies Center, 로젠, 스위스.


(사진 6-2) New York Times. 1947. 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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