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 겨울,
전경무가 만난 사람들

전경무의 짧고도 굵었던 미국 여정

by 이대택

대한올림픽위원회 KOC를 국제올림픽위원회 IOC에 인준시키기 위해 전경무는 어떤 일을 해야 했을까요. 1946년 겨울은 전경무가 미국으로 건너간 때입니다. 그의 여정을 한번 따라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전경무의 여정


현재까지 우리 올림픽 역사에서 전경무는 올림픽대책위원회의 대표로서 1946년 겨울 미국으로 건너가 KOC가 IOC에 가입될 수 있도록 사전 정지작업을 한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왜 하필 미국이었을까요. 물론 당시가 미군정시대이기도 했지만 IOC 부위원장 브런디지가 미국 사람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동시에 미국의 도움이 IOC 인준에도 절대적으로 중요했을 것이고요. 아마도 그러한 다양한 이유로 올림픽대책위원회와 전경무는 브런디지의 우선적 도움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구체적 여정은 알려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브런디지 컬렉션에는 전경무가 에이버리 브런디지 (Avery Brundage)와 나눈 14편의 편지와 전신이 존재합니다. 비록 반년 정도의 짧은 기간 동안 이루어진 편지 왕래였지만 이 교신의 정보들은 전경무가 누구와 만났고 어떻게 움직였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 모든 활동의 가이드와 지원은 브런디지가 기꺼이 맡아주었습니다.


1946년 겨울


전경무가 브런디지에게 보낸 첫 편지는 1946년 11월 18일 자입니다(7-1). 편지 내용 상 전경무는 뉴욕에 머물었던 것으로 보이며, 발신 주소는 뉴욕 맨해튼 이스트 휴스턴가 105번지 (East Houston St. 105, NY)로 되어있습니다. 여기는 이원순의 자택 주소죠(7-2). 전경무가 이원순과 어느 정도 함께 했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전경무의 이동 경로를 유추하건대 최소한의 적극적 지원은 확실해 보입니다. 편지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제14회 올림픽에 참여하기 위해 올해 구성된 KOC를 소개하는 편지를 직접 가져왔으며 동봉함. 한국 선수단이 올림픽에 참여하는데 필요한 방법과 수단을 논의하기 위해 조만간 만나기를 원함. 금년이 가기 전에 뉴욕에 올 일이 있다면 알려주기 바람. 혹시 시카고로 내가 가야 한다면 알려주기 바람.’



KOC-01_페이지_199.jpg [사진 7-1] 전경무가 브런디지에게 보낸 편지 (1946. 11. 18)



여기서 동봉된, 직접 가져왔다는 편지는 아마도 올림픽대책위원회 위원장이던 유억겸이 브런디지에게 보내는 46년 8월 31일의 편지일 것입니다. 브런디지 컬렉션이 가지고 있는 대책위원회의 편지는 이것밖에 없기 때문이죠. 유억겸이 보내는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7-3).


‘조선체육회 대표들은 1946년 7월 15일 14회 런던올림픽대책위원회를 서울에서 조직하였음. 우리는 국제 스포츠와 올림픽에 참가할 열망을 가지고 있음. 대책위원회는 만장일치로 부위원장인 전경무에게 올림픽 참가와 관련한 대외협력과 스포츠 외교의 전권을 부여했음. 미국 국민과 정부가 적극적으로 한국을 독립시키려는 노력처럼 미국올림픽위원회가 한국의 아마추어 선수들을 양성하는데 지원해주기를 당신께 요청드림.’



KOC-01_페이지_198.jpg [사진 7-2] 유억겸이 브런디지에게 보낸 편지 (1946. 8. 31)



이 편지에 브런디지는 11월 22일 자로 답장하면서 뉴욕에 갈 예정은 없지만, 내용에 대해 논의하고자 하며, 시카고로 올 수 있다면 일정을 알려줄 것을 요청합니다(7-4). 이에 전경무는 12월 2일 전신을 보내 내일 시카고로 갈 것임을 알립니다(7-5).


전경무는 시카고에서 12월 3일 브런디지를 만납니다. 어떠한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찾을 수 없지만 한국에서 보도된 언론사 기사를 통해 추론은 가능합니다. 1946년 12월 24일 자 조선일보를 보시죠(7-6).


[올림픽에 우리도 참가] 1948년 론돈에서 열리는 국제올림픽대회에 우리 조선도 참가할 수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 태평양을 건너서 19일 도착하였다. 이는 지난 구월 초에 도미한 올림픽대책위원회 부위원장 전경무 씨가 그 후 각 방면에 맹렬한 활약을 한 결과 국제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이며 미국 올림픽위원회 회장인 부런데지씨로부터 조선의 참가를 적극후원해주겠다는 확약을 얻고 12월5일 다음과 같은 전보를 올림픽대책위원장 유억겸씨에게 전해왔다.


브런디지와의 만남 후 전경무는 12월 27일 스웨덴에 있는 당시 IOC 위원장 에드스트롬(Edstrom)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합니다(7-7).


‘1946년 12월 3일, 브런디지와 면담했고, 한국의 IOC 가입 가능성을 문의하고자 함. 한국에는 아마추어 단체들이 해방 이전부터 존재했음. 단체들은 한국 젊은이들의 자발적 참여를 독려하는 기능과 아마추어리즘을 보존하고 있음. 1945년 11월 18일 현재 21개 경기단체가 구성되어 조선체육회에 참여하고 있음. 이 경기단체들은 국제단체에 가입을 준비하고 있음. 올림픽대책위원회는 1948년 올림픽을 위해 1946년 7월 15일 임원을 선출하였음. 우리는 1948년 올림픽에 참가하기 원함. 정치 상황은 조만간 독립국으로 될 국제적 합의가 있음. 올림픽에 참여하고 싶은 당위성은 다음과 같음. 1. 한국은 32년(3명, 마라톤 2명, 6위로 들어옴, 복싱 1명, 로스앤젤레스)과 36년(8명, 마라톤 2명, 복싱 1명, 축구 1명, 농구 4명, 마라톤 1명, 3위) 올림픽에 참가했음. 2. 일제강점기에 한국과 일본의 국제경기가 있었고 국가별로 따로 경기가 있었음. 3. 극동아시아경기에서는 한국이 단독 출전하였고, 특히 축구와 야구가 그러했음. 4. 한국 선수는 국제적 수준임. 5. 이제 독립국으로 참여하고 싶음.’


브런디지와의 만남 후 전경무는 IOC 인준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인물들을 만난 것으로 보입니다. 전경무가 1947년 1월 28일 워싱턴의 한 호텔에서 브런디지에게 보낸 편지는 그러한 내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7-8).


‘당신이 알려준 아마추어경기연맹 (Amateur Athletic Union; AAU)의 사무총장 제임스 심스 씨 (Mr. James Simms)와 국제아마추어연맹 (International Federation of Amateurs)의 리터 씨 (Mr. R. M. Ritter)를 만났음. 두 분 모두 친절히 지도해 주었음. 당신에게 나의 편지가 오면 워싱턴의 라파엣 호텔 (Hotel Lafayette)로 보내주길 바람. 나는 3월 초 다시 한국으로 들어감. 떠나기 전에 만나길 바람.’



KOC-01_페이지_195.jpg [사진 7-3] 전경무가 브런디지에게 보낸 편지 (1947. 1. 28)



이 편지에서 전경무는 자신의 이동에 따른 연락처의 불안정으로 자신에게 올지도 모를 편지의 수신처를 브런디지 사무실로 했던 것입니다. 이미 그 정도로 친해졌던 것일까요? 전경무는 워싱턴에서 2월 7일 브런디지에게 귀국 일정을 알리는 편지를 다음과 같이 보냅니다(7-9).


‘3월 초순 한국으로 떠남. 2월 19일 기차를 타고 워싱턴을 떠나 기차 환승을 위해 20일에 시카고에 정차함. 환승 때 전화하겠음. 사무실에 있다면 아침 10-11시쯤에 전화하겠음.’


전경무는 47년 2월 19일 워싱턴을 떠났을 것이며, 시카고에 들러 브런디지와 통화했을 것입니다. 보도에 의하면 전경무는 귀국 길에 하와이에 들렀다가 3월 14일 한국으로 출발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7-10).


짧았지만 굵었던 그해 겨울


전경무는 약 4 개월 동안 뉴욕과 워싱턴, 시카고를 다니며 브런디지는 물론 미국 내 스포츠계 영향력을 가진 인물들과 만났습니다. 미국에서 핵심적인 인물을 만날 수 있도록 주선한 것도 브런디지일 것이고요. 그리고 이러한 노력과 경과를 IOC 위원장인 에드스트롬에게도 알리고 그의 조언도 들었던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이원순은 전경무를 지원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1946년 겨울, 전경무의 활동이 이제 조금 더 상세하게 알려지게 되었네요.





인용 자료


(7-1) 전경무가 브런디지에게 보낸 편지 (1946년 11월 18일). Brundage Collection, KOC-01, Olympic Studies Center, 로젠, 스위스.


(7-2) 이원순 (1989). 세기를 넘어서. 321쪽, 신태양사. (이원순은 47년 봄 전경무가 찾아왔다고 회고한다. 그러나 편지에 의하면 이원순과 전경무는 46년 11월에 만났을 것으로 보인다. 이원순은 재미한족연합위원회 활동을 전경무는 대한인국민회 쪽의 독립운동을 한 동지들이었다. 이원순의 회고록에서 전경무는 여운형의 편지를 가지고 왔다고 쓰고 있다. 그러나 편지는 유억겸의 편지로 추정된다.)


(7-3) 유억겸이 브런디지에게 보낸 편지 (1946년 8월 31일). Brundage Collection, KOC-01, Olympic Studies Center, 로젠, 스위스.


(7-4) 브런디지가 전경무에게 보낸 편지 (1946년 11월 22일). Brundage Collection, KOC-01, Olympic Studies Center, 로젠, 스위스.


(7-5) 전경무가 브런디지에게 보낸 전신 (1946년 12월 2일). Brundage Collection, KOC-01, Olympic Studies Center, 로젠, 스위스.


(7-6) 조선일보, 1946. 12. 24.


(7-7) 전경무가 에드스트롬에게 보낸 편지 (1946년 12월 27일). Brundage Collection, KOC-01, Olympic Studies Center, 로젠, 스위스.


(7-8) 전경무가 브런디지에게 보낸 편지 (1947년 1월 28일). Brundage Collection, KOC-01, Olympic Studies Center, 로젠, 스위스.


(7-9) 전경무가 브런디지에게 보낸 편지 (1947년 2월 7일). Brundage Collection, KOC-01, Olympic Studies Center, 로젠, 스위스.


(7-10) 조선일보, 1947. 3. 16.


(사진 7-1) 전경무가 브런디지에게 보낸 편지 (1946. 11. 18). Brundage Collection, KOC-01, Olympic Studies Center, 로젠, 스위스.


(사진 7-2) 유억겸이 브런디지에게 보낸 편지 (1946. 8. 31). Brundage Collection, KOC-01, Olympic Studies Center, 로젠, 스위스.


(사진 7-3) 전경무가 브런디지에게 보낸 편지 (1947. 1. 28). Brundage Collection, KOC-01, Olympic Studies Center, 로젠, 스위스.


사진 설명


이원순 인터뷰 영상 캡처. KBS 100회 전국체전 특집, '서울, 운동장' 2019. 10. 방영. 다시 보기. http://vod.kbs.co.kr/index.html?source=episode&sname=vod&stype=vod&program_code=T2019-0268&program_id=PS-2019142343-01-000&section_code=05&broadcast_complete_yn=N&local_station_code=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