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청자격 못 채우고 인준된 KOC

IOC가 요구한 3 종목 국제연맹 가입을 못한 상태로

by 이대택

우리는 1947년 대한올림픽위원회 KOC가 국제올림픽위원회 IOC로부터 정상적으로 인준받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시 IOC의 인준은, 이를 희망하는 독립된 국가에서 국가올림픽위원회 NOC를 구성하고 일정 수의 국제종목 단체에 가입함으로써 신청 자격을 얻는 것으로 가능했습니다. 그러니까 독립된 국가임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자격 기준을 충족했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겠죠.


‘대한체육회 90년사’는 “올림픽에 나가고 싶은 나라는 NOC를 구성하고 올림픽 종목 경기단체가 5개 이상 국제경기연맹에 가맹하고 있어야 IOC의 승인을 받아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다.... 올림픽대책위원회는 국내 경기단체가 구성돼 있는 육상, 축구, 복싱, 역도, 농구, 사이클 등 6개 경기단체의 정관을 영문으로 번역해 국내 아마추어 규정과 함께 각각의 국제경기단체에 제출해 가입하도록 이끌었다.”로 적고 있습니다(5-1).


‘한국농구100년’도 “... 그 전제 조건이 NOC 산하에는 올림픽 경기종목 3개 이상이 종목별로 국제연맹에 가맹되어 있어야 했다. 이에 KOC는 서둘러 축구, 농구, 육상, 레슬링, 권투, 역도, 사이클링 등의 종목을 국제연맹에 가맹토록 권장함에 따라, 각 종목별로 국제연맹에 가입을 서둘렀다.”라고 적고 있습니다(5-2).


두 책은 서로 다르게 적고 있습니다. 사료를 살펴보니 이 내용들은 사실이 아니거나 정확하지 않습니다. 사실은 KOC가 종목별 국제연맹 가입을 기준에 충족하지 못한 상태로 IOC에 가입하게 됩니다.


1946년 12월 27일 전경무는 당시 IOC 위원장이었던 시그프리드 에드스트롬(Sigfrid Edstrom)에게 편지합니다. 이 편지에서 한국의 IOC 가입 희망을 설명하면서 한국이 올림픽에 참가할 충분한 자격과 능력이 있음을 설득하려 했습니다(사진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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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5-1] 전경무가 IOC 위원장 시그프리드 에드스트롬에게 보낸 편지. 한국의 올림픽 참가 희망 의지와 자격 및 능력을 설명하고 있다. (1946년 12월 27일)



이 편지를 받고 에드스트롬은 전경무에게 1947년 1월 8일 답신합니다.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죠(사진 5-2).


‘에드스트롬이 전경무에게,... 올림픽 국가로의 참여를 환영하지만, 정식 절차를 거쳐야 함. 한국의 종목 단체들이 국제연맹에 가입해야 하며, 특히 육상, 수영, 축구, 레슬링, 농구 종목이 그러함. 만약 한국이 위 국제연맹들 중 3개의 회원국이라면 충분히 신청 가능함. 이로써 한국의 NOC가 성립되며 스톡홀름에서 열리는 IOC 총회에서 인준될 것임. 시간이 없지만, 많은 일이 전신으로 가능할 것이고 당신 자신이 스톡홀름에 와서 설명할 수도 있음.’



KOC-01 192.jpg [[사진 5-2] 에드스트롬이 전경무에게 보낸 편지. IOC 인준 신청 기준을 적고 있다. (1947년 1월 8일)



전경무는 부랴부랴 위 5 종목들의 국제연맹 가입을 서둘렀습니다. 그러나 물리적으로 시간이 없었습니다. 에드스트롬의 1월 8일 편지를 전경무는 2월 17일이 돼서야 받았고 IOC 총회는 6월이니 종목별 국제연맹 가입은 거의 불가능했던 것이죠.


전경무는 IOC 총회에 참석차 떠나기 직전, 1947년 5월 18일 에드스트롬에게 마지막 편지를 합니다. 그리고 그간의 종목별 국제연맹 가입 신청서 제출 노력과 과정을 설명하면서 3개 종목에 아직 가입하지 못함을 알립니다(사진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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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5-3] 전경무가 에드스트롬에게 보낸 편지. IOC 총회까지 3개 좀목의 국제연맹 가입이 불가능할 것임을 알리고 있다. (1947년 5월 18일)



전경무의 편지를 요약하자면, 국제아마추어선수협회를 비롯해 수영, 레슬링, 축구, 농구, 체조, 육상, 스케이트, 7 종목에 신청한 상태이며, 이 중에 레슬링만이 가입이 완료된 것으로 설명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국제연맹 가입 여부는 IOC 총회 이후에 결정될 것임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추가적으로 1947년 7월 10일 브런디지가 여운형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런던에서 개최된 국제육상연맹 총회에서 한국이 가입되었다고 적고 있습니다(5-3). 이 총회는 IOC 스톡홀름 총회 바로 직전이었고 IOC 총회에 참석하려고 떠난 이원순이 런던에 들러 가입하게 됩니다. 결국 KOC는 2개 종목의 국제연맹에 가입한 상태로 IOC 총회를 맞았던 것입니다. KOC는 에드스트롬이 제시한 신청자격을 하나도 만족시키지 못하고 총회에서 인준을 받게 된 것이죠. 매우 예외적입니다.


여하튼, 우리가 지금껏 알고 있었던 KOC 인준 역사는 다시 쓰여야 합니다.




인용 자료


(5-1) 대한체육회 (2011). 대한체육회 90년사.


(5-2) 대한농구협회 (2008). 한국농구100년.


(5-3) 브런디지가 여운형에게 보낸 편지 (1947년 7월 10일). Brundage Collection, KOC-01, Olympic Studies Center, 로젠, 스위스.


(사진 5-1) 전경무가 에드스트롬에게 보낸 편지 (1946년 12월 27일). Brundage Collection, KOC-01, Olympic Studies Center, 로젠, 스위스. 총 3면


(사진 5-2) 에드스트롬이 전경무에게 보낸 편지 (1947년 1월 8일). Brundage Collection, KOC-01, Olympic Studies Center, 로젠, 스위스. 192


(사진 5-3) 전경무가 에드스트롬에게 보낸 편지 (1947년 5월 18일). Brundage Collection, KOC-01, Olympic Studies Center, 로젠, 스위스. 총 4면.


사진 설명


시그프리드 에드스트롬, 제4대 IOC 위원장 (1946-1952). 전경무는 에드스트롬에게 IOC 가입을 문의했고, 에드스트롬은 신청 자격을 알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