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발 벗고 나선
한국의 IOC 인준

브런디지가 한국의 IOC 인준을 밀어붙일 수 있었던 배경

by 이대택

브런디지는 무엇을 믿고 대한올림픽위원회 KOC의 인준을 밀어붙였을까요? 국제올림픽위원회 IOC의 인준을 받기 위해서는 국가나 정부 존재 여부, 국제경기연맹 가입 여부, 그리고 해당 국가 선수들의 스포츠 경쟁력 수준, 마지막으로 IOC의 가치를 추구하고 규정을 준수할 의지 등이 평가되는데, 브런디지는 IOC 총회에서 위원들을 설득하기 전에 이에 대한 확신이 필요했습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사료들은 한국의 열망과 미국 사회의 적극적 자세가 브런디지로 하여금 결심하도록 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에서 한국의 IOC 가입의지 기자회견


전경무의 1946년 겨울부터 1947년 봄까지 미국 체류는 한국 체육계의 IOC 가입을 위한 노력의 본격적인 시동이었습니다. IOC 인준을 위해서는 분위기를 띄울 필요도 있었겠지요. 또는 IOC 인준을 위한 신청서 제출을 알리는 출정식 정도는 필요했을 것입니다. 스톡홀름 IOC 총회를 약 한 달여 앞둔 1947년 5월 1일 뉴욕타임스(New York Times)는 “한국이 처음으로 올림픽에 독립국 참가를 원한다. 미국의 지원을 확신하며, 스포츠를 통한 국제교류와 협력을 위해”라는 제목으로 긴 기사를 올립니다(8-1).


이 기사에는 ‘4월 30일 유엔(UN) 한국 대표인 임영신(미국명 Louise Yim)이 서윤복을 포함한 세 명의 보스턴 마라톤 선수들과 함께 호텔 펜실베이니아에서 한국이 독립국으로 올림픽에 출전할 것을 발표했으며, 미국아마추어육상연맹(Amateur Athletic Union)의 사무총장인 댄 페리스(Dan Ferris)씨가 미국 대표단의 IOC 총회에서의 지원을 확인해 주었다’고 쓰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 선수의 기량과 열정, 일제강점기 동안 3천만 국민의 열망을 소개하며, 최근 있었던 서윤복의 보스턴 마라톤 우승을 강조했습니다. 아울러 한국인들의 잠재성과 재정적 어려움까지 소개했죠.


미국의 적극적 지원 입장


또 다른 신문기사들도 미국 체육계의 분위기와 미국의 지원 의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South China Morning Post) 5월 13일 기사는 연합통신(UP)을 인용해 ‘미국은 한국이 내년 생모리츠와 런던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쓰며, ‘이는 미국무성과 육군의 주요 인사들을 비롯해 체육계 리더인 미국올림픽위원회 브런디지 회장과 미국아마추어육상연맹 댄 페리스 사무총장의 높은 관심’을 설명했습니다(8-2). 이 기사는 같은 일자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에도 ‘런던올림픽에 조선 참가시키려고 미 각계 적극 알선’이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습니다(8-3, 8-4).


5월 14일 뉴욕타임스는 미국아마추어육상연맹이 뉴욕 육상구락부에서 13일에 주최한 한국 마라톤 선수 환영 오찬을 소개합니다(8-5). 물론 서운복을 비롯한 보스턴 마라톤에 참가한 한국 선수들을 격려하는 자리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한국과의 친선, 한국 선수들의 내년 올림픽 참가에 대한 미국의 지지와 지원을 다짐하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이 기사는 마호니 판사(Judge Jeremiah T. Mahoney)가 사회를 맡았고, 임영신은 트루만 대통령 (President Truman)과 마샬 국무장관(George C. Marshall)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으며, 한국 선수들의 미국에 감사 표현, 전신을 통해 IOC에 신청서를 제출한 사실 등을 전했습니다(8-6). 이 밖에도 많은 미국 내 인사들이 참여하여 덕담과 지원 의사를 밝혔음을 자세히 적고 있습니다.


당시 구미위원부(Korean Commission) 위원장이었던 임병직은 5월 20일 브런디지에게 편지합니다. 편지는 브런디지가 5월 15일에 보낸 편지 잘 받았으며, 지난번 한국 마라톤 선수 환영 오찬에서 만난 분들에 대한 감사를 전하고, 한국이 IOC에 인준되도록 부탁함과 동시에 그 일을 위해 최선을 다해줄 것임을 믿는다는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8-7).


하지 장군과 브런디지 간의 확인


미국 내에서 한국의 올림픽 참가 분위기가 고조되는 동안, 브런디지와 하지 장군 간의 확인도 진행되었습니다. 하지 장군이 1947년 5월 17일 브런디지에게 보낸 전신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8-8).



(사진 8-1) KOC-01_페이지_183.jpg [사진 8-1] 하지 장군이 브런디지에게 보낸 전신 (1947년 5월 17일)



‘... 현재까지 보고된 한국의 48년 올림픽 참가에 대한 당신의 노력에 매우 감사드림. 서윤복의 세계기록 우승은 한국인의 자부심을 크게 자극하는데 도움을 주었음. 여기 미군의 서윤복 교통비 지원은 미국에 대한 한없는 좋은 인상을 심어주었음. 이와 유사하게 한국이 올림픽에 참가하는 것을 미국의 도와준다면 이 또한 미국이 도움의 희망을 명확하게 해주는 것이며,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구축하는 또 다른 자극이 될 것임. 심심한 감사들 드리며 한국 선수가 올림픽에서 경기하는 것에 대한 노력을 승인함.’


이 전신에 대해 브런디지는 하지 장군에게 5월 21일 다음과 같이 답신합니다(8-9).



(사진 8-2) KOC-01_페이지_172.jpg [사진 8-2] 브런디지가 하지 장군에게 보낸 편지 (1947년 5월 21일)



‘한국의 여러 아마추어 스포츠 관계자에게 말했듯 나는 한국의 인준에 긍정적이며 이로써 선수들이 올림픽에 갈 수 있을 것임. 몇 가지 문제는 한국이 지금 독립국이 아니라는 것임. 나는 이것이 해결되리라 믿음. 이는 다음 달 IOC에서 논의될 것임. 나는 당신이 승인해 준 것에 기쁘며 당신의 보증은 IOC가 주목할 것임.’


이 답신에 하지 장군은 브런디지에게 6월 4일 다시 다음과 같이 편지합니다(8-10).



(사진 8-3) KOC-01_페이지_171.jpg [사진 8-10] 하지 장군이 브런디지에게 보낸 편지 (1947년 6월 4일)



‘5월 21일 편지 감사함. IOC 총회에서 한국의 확실한 인준을 위해 당신이 모든 가능한 일을 할 것이라 믿음. 당신의 관심과 노력에 감사함.’


하지 장군과 브런디지 간의 의사 확인 소통은 미국에서 발행되던 신한민보 1947년 6월 12일 자에 ‘올림픽 참가에 관한 교섭 [6월 7일 공보부 발표]’라는 제목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8-11). 조선일보도 6월 8일 자 신문에서 ‘올림픽대회에 조선 참가될 터’라는 제목으로 인준 가능성에 대한 기사를 보내고 있습니다(8-12).


브런디지가 확인한, 한미 모두가 바라던 인준


브런디지가 KOC의 IOC 인준을 밀어붙일 수 있었던 확신은 그를 둘러싼 모든 사람과 환경이 그렇게 판단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임영신이 말한 미국 대통령과 국무장관에 대한 감사의 뜻이 무엇인지 확실치 않지만, 미국 체육계와 정치계, 한국 측과 체육계의 노력, 그리고 보스턴 마라톤 선수들의 쾌거, 마지막으로 하지 장군의 지원이 브런디지로 하여금 결심할 수 있도록 했을 것입니다. 한국의 IOC 가입에 대한 이러한 주위에서의 지원과 지지는 한반도에서의 독립정부가 형성되지 않는 것조차도 무력화할 수 있는 힘으로 작동되었을 것입니다. 추가적인 자료와 사료가 발굴되면 더 명료한 당시 상황이 연출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인용자료


(8-1) New York Times. 1947. 5. 1.


(8-2) South China Morning Post. 1947. 5. 13.


(8-3) 동아일보, 1947. 5. 13.


(8-4) 조선일보, 1947. 5. 13.


(8-5) New York Times, 1947. 5. 14.


(8-6) 실제로 KOC의 IOC 인준 신청서는 1947년 5월 18일, 전경무가 에드스트롬에게 보낸 편지로 보임. 임영신을 통한 미국에서 기자회견은 이미 보낸 것으로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이후에 신청서를 제출한 것으로 보임.


(8-7) 임병직이 브런디지에게 보낸 편지 (1947년 5월 20일). Brundage Collection, KOC-01, Olympic Studies Center, 로젠, 스위스.


(8-8) 하지 장군이 브런디지에게 보낸 전신 (1947년 5월 17일). Brundage Collection, KOC-01, Olympic Studies Center, 로젠, 스위스.


(8-9) 브런디지가 하지 장군에게 보낸 편지 (1947년 5월 21일). Brundage Collection, KOC-01, Olympic Studies Center, 로젠, 스위스.


(8-10) 하지 장군이 브런디지에게 보낸 편지 (1947년 6월 4일). Brundage Collection, KOC-01, Olympic Studies Center, 로젠, 스위스.


(8-11) 신한민보, 1947. 6. 12.


(8-12) 조선일보, 1947. 6. 8.


(사진 8-1) 하지 장군이 브런디지에게 보낸 전신 (1947년 5월 17일). Brundage Collection, KOC-01, Olympic Studies Center, 로젠, 스위스.


(사진 8-2) 브런디지가 하지 장군에게 보낸 편지 (1947년 5월 21일). Brundage Collection, KOC-01, Olympic Studies Center, 로젠, 스위스.


(사진 8-3) 하지 장군이 브런디지에게 보낸 편지 (1947년 6월 4일). Brundage Collection, KOC-01, Olympic Studies Center, 로젠, 스위스.



사진설명


하지 장군 (General John Reed Hodge) 출처: 구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