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의 만물은 하나의 생명 덩어리로다!
지난해 시월 대한체육회 뉴스레터는 조선체육회의 창립취지서와 창립 발기인을 새로이 알게 해 준 ‘조선체육계3권’을 소개하는 칼럼이 실렸습니다(1). 올해로 100주년을 맞는 조선체육회를 기념하여 한국 체육 100년 사를 편찬하는 위원들이 찾아낸 서적이었죠. 이전에도 창립취지서와 발기인의 정보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번 서적은 1925년 2월에 출간된 것으로, 조선체육회 창립 약 4년 반 후에 나온, 그러니까 창립 후 가장 근접된 시간의 기록으로 여겨지는 자료입니다.
역사를 찾아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매우 벅차고 흥미로운 일입니다. 더욱이 이번 자료는 기존에 우리가 알던 정보와는 사뭇 달라 더욱 그러합니다. 그래서 이 자료를 찾아낸 김에 저도 그 분위기에 편승하여 조선체육회 창립취지문을 다시 한번 읽어보고 나름의 해석을 해보고자 했습니다. 아래 글은 저의 소견입니다.
단체가 창립하게 되면 보통 ‘창립선언문’을 작성해서 공표합니다. 그런데 조선체육회는 ‘취지서’라고 씁니다. 왜 그랬을까요?
단어의 정의로 ‘취지’는 ‘목적과 의도’를 뜻합니다. ‘선언’은 ‘자신의 방침이나 주장’으로 정의됩니다. 그러니까 조선체육회 발기인들은 단체를 설립함에 주장과 입장을 공표하기보다는 단체의 목적을 알리는 것이 중요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주장하려면 문제의식이 명확하거나 기존의 유무형의 무엇과 다른 독특한 정체성을 보여야 할 것인데 그렇지 않았다는 것도 유추됩니다. 사실 취지서에도 밝혔듯 조선체육회 창립 한 해 전 이미 일본인들이 세운 조선체육협회가 있었기에 조선체육회는 선도적 선언을 제시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조선인만을 위한 체육회를 당위성으로 선언하는 것도 옹졸해 보였을 것이겠죠. 여하튼 단체를 만드니 다들 모입시다가 단체 설립의 취지였습니다.
취지서는 총 634자입니다.
여기서 물음표(?) 세 개, 바(-) 하나, 마침표(.) 8개를 제외하면
글자 수만은 622자입니다.
한글은 359자이며,
한자는 263자입니다.
취지서는 마침표를 근거로 총 8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문장들을 순서적으로 요약하여 글자 수와 총 글자 수 대비 비율을 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문장 1-4 (170 자, 27.3%) 생명과 자연에 대한 찬사
문장 5 (243 자, 39.1%) 생명 건강의 중요성
문장 6 (86 자, 13.8%) 생명 건강의 목적
문장 7 (81 자, 13.0%) 운동단체 조직의 필요성
문장 8 (42 자, 6.8%) 조선체육회 창립 알림
문장 1에서 5를 하나로 보면 약 66.4%이며,
문장 1에서 6까지를 하나로 보자면 약 80.2%를 차지합니다.
이번엔 주요 단어를 보도록 하죠.
복수로 등장한 단어와 그 반복 횟수는
생명 (10 회), 사회 (5 회), 천지 (4 회), 신체 (4 회)이며,
한 번씩 등장한 주요어는 5개로
국가, 행복, 운동단체, 운동, 조선체육회입니다.
단순히 문장 구성비와 주요 단어를 근거로 보자면 조선체육회 창립의 의도는 ‘생명으로의 가치와 목적을 위한 단체 설립의 중요성’ 정도로 해석됩니다. ‘생명’ 찬사와 중요성으로 전체 글의 2/3를 할애했으며 여기에 목적까지 포함하면 전체 글 길이의 4/5를 할당한 것입니다. 취지서는 하늘 아래 생명의 아름다움과 중요성, 강건한 신체가 행복과 사회를 위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강조했습니다. 단체를 통한 운동으로 생명의 원숙과 사회발전을 꾀하자는 의도였죠.
1919년 3·1 운동 이후 민족의 자주독립의식이 팽배해지면서 체육단체 조직의 필요성이 대두되었습니다. 같은 해 이미 일본인들을 중심으로 ‘조선체육협회’가 결성되어 이에 대응한 조선인들의 단체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정희준이 ‘스포츠코리아판다지’에서도 지적했듯(2), 조선체육회는 체육을 통해 조선인들을 강한 근대 국민으로 개조하는 것에 관심이 더 많았습니다. 취지서에서도 지적했지만 유독 ‘생명’과 ‘신체 강건’을 강조하고, 이로써 사회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음을 강조한 것도 모두 이러한 배경 때문일 것입니다. 실제로 조선체육회 설립 주역들은 ‘민족 근대화론자’였으며 ‘독립’을 추구하는 운동가들은 아니었습니다. 당대 지식인, 엘리트, 사회적 리더들이 그러했듯이 말입니다. 조선체육회 발기인 중 많은 인사들이 이후 친일로 돌아선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끝으로 조선체육회창립취지서 원문과 한글본을 붙입니다. 찬찬히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보라半空에솟슨푸른솔과 大地에니러선놉흔山을
그얼마나雄雄하며毅毅한고? 天地에흐르는生命은果然躍動하는도다.
보라空中에나는빠른새와 地上에기는날낸김생을
그얼마나剛健하며敏捷한고? 天地에흐르는生命은果然充實하도다.
보라蒼空에빗나는붉은해와 虛空에도는크고넓은따을
그얼마나壯烈하며健健한고? 천지에흐르는生命은果然雄壯하도다.
噫라天地의萬物은그오즉生命의한덩어리로다.
사람은元来이躍動의生命과充實의生命과雄壯의生命을受하여生한지라 그身體만다시솔나무와갓치雄健하매 그精神만다시日月과갓치明快할것이어날 이제그러하지못하야 그顔色은茶色갓치아무光彩가無하며 그身體는細柳의마른가지갓하야아무氣力이無하고精神이오즉昏迷함은何故오이는安逸한生活에떠러지며倏理업는處身에빠져서天理를거사려生命의暢達을圖謀치못함이니 이 個個一人의不幸을作할뿐아니라國家社會의衰頹를招來하며現在에止할뿐아니라또한將來에遺傳하야써子孫에及할지니正히滅亡의途를自取함이라그엇지吾人의寒心할바-아니리오.
此를回復하여雄壯한氣風을作興하며剛健한身體를養育하야써社會의發展을圖謀하며個人의幸福을 企望할진대그途오즉天賦의生命을身體에暢達케함에在하니그運動을獎勵하는外에他道가無하도다.
우리朝鮮社會에個個의運動團體가無함은아니나그러나이를後援하며獎勵하야써朝鮮人民의生命을圓熟暢達케하는社會的統一的機關의欽如함은實노各人의遺憾이요또한民族의羞恥로다.
吾人은玆에鑑한바有하야朝鮮體育會를發起하노니朝鮮社會의同志諸君子는그來하야贊할진뎌.
(출처: 조선체육계 3호, 1925. 표기 편의상 빨간 글씨 자음은 ‘ㅼ’ 또는 ‘ㅽ’을 대신함)
보라 반공에 솟은 푸른 솔과 대지에 일어선 높은 산을
그 얼마나 웅웅하며 의의한고? 천지에 흐르는 생명은 과연 약동하는도다.
보라 공중에 나는 빠른 새와 지상에 기는 날랜 짐승을
그 얼마나 강건하며 민첩한고? 천지에 흐르는 생명은 과연 충실하도다.
보라 창공에 빛나는 붉은 해와 허공에 도는 크고 넓은 땅을
그 얼마나 장렬하며 건건한고? 천지에 흐르는 생명은 과연 웅장하도다.
희라 천지에 만물은 그 오직 생명의 한 덩어리로다.
사람은 원래 약동의 생명과 충실의 생명과 웅장의 생명을 수하야 생한지라 그 신체만 다시 솔 나무와 같이 웅건하매 그 정신만 다시 일월과 같이 명쾌할 것이거늘 이제 그러하지 못하여 그 안색은 채색같이 아무 광채가 무하며 그 신체는 세류의 마른 가지 같아서 아무 기력이 무하고 정신이 오직 혼미함은 하고오 이는 안일한 생활에 떨어지며 조리 없는 처신에 빠져서 천리를 거사려 생명의 창달을 도모치 못함이니 이 개개일인의 불행을 작 할뿐 아니라 국가사회의 쇠퇴를 초래하며 현재에 지 할뿐 아니라 또한 장래에 유전하여서 자손에 급할지니 정히 멸망의 도를 자취함이라 그 어찌 오인의 한심할 바 아니리오.
차를 회복하여 웅장한 기풍을 작흥하며 강건한 신체를 양육하여서 사회의 발전을 도모하며 개인의 행복을 기망할진대 그 도 오직 천부의 생명을 신체에 창달케 함에 있으니 그 운동을 권장하는 외에 타도가 무하도다.
우리 조선사회에 개개의 운동단체가 무함은 아니나 그러나 이를 후원하며 권장하여서 조선인민의 생명을 원숙 창달케 하는 사회적 통일적 기관의 결여함은 실로 각인의 유감이요 또한 민족의 수치로다.
오인은 자에 감한바 유하야 조선체육회를 발기하노니 조선 전사회의 동지 제군자는 그 래하야 찬하기를.
(1) 정태화. 조선체육회 창립취지서 새로 발굴 창립 발기인도 기존과 많이 틀려. 대한체육회 뉴스레터. 2019. 10. 31.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sports_7330&logNo=221694293558
(2) 정희준. 스포츠코리아판타지. 개마고원. 2009. pp. 32-35
표지 : 조선체육계 3권. (1925). 대한체육회100년사 편찬위원회. 대한체육회
[사진] 조선체육계 제3호 (1925)에 실린 조선체육회 창립 취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