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체육회 100년 역사를
새로이 써본다

삼등분으로 해석되는 한국 체육사

by 이대택


금년은 조선체육회 창립 100 주년 되는 해입니다. 대한체육회가 조선체육회 창립을 원년으로 생각하고 있으니 금년은 대한체육회 창립 100 주년이기도 합니다. 100년은 짧은 시간이 아닙니다. 많은 이야기가 있었고 우여곡절도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대한체육회의 역사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그리 높지 않죠. 전국체전이나 올림픽에서 빛났던 유명선수 몇 명 정도를 떠올리는 것이 전부 아닐까요.


대한민국 체육의 역사는 단순치 않습니다. 마치 지난 100년 간 한반도에서 일어났던 모든 역사적 사실들만큼이나 다양하다고 볼 수 있죠. 우리는 스포츠가 베푸는 사회적 문화적 영향을 익히 압니다. 그렇다면 100년이 되었다 하는 스포츠 역사를 한 번쯤 살펴보는 것도 도리라 생각합니다.


이 글은 조선체육회 100년의 흐름을 알아보고자 하는 정말 완전 저의 개인적 의도와 해석을 기반으로 작성된 것입니다. 제가 역사를 전공한 것도 아니고 기존의 학계에서 연구되고 설명된 해석을 소개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로지 저만의 다소 엉뚱하고 의외의 조금은 방자한 해석일 것입니다. 다만 우리에게 설명되는 스포츠 역사에 대한 일반적 해석이 오히려 제게는 불편하게 읽히기에, 조심스럽지만 감히 싹수없게 저질러 보는 것이기도 하죠. 평가는 여러분의 몫일 것입니다.



지금까지 대한체육회 100년 역사는 전개 형식으로 소개되었습니다


먼저 제 발칙한 해석을 소개하기 전에 현재 소개되는 역사의 흐름을 소개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금명간 ‘대한체육회100년사’가 출간될 것으로 알지만 현재의 가용한 자원으로 ‘대한체육회90년사’를 들여다보겠습니다. ‘대한체육회90년사’는 한국 체육 100년의 흐름을 다음과 같이 나눕니다. (1)


-1919 여명기

1920-1929 창립기

1930-1945 수난기

1946-1960 부활기

1961-1970 정착기

1971-1980 발전기

1981-1990 도약기


이 구분 방식은 몇 가지 특징과 성격을 갖습니다.


. 먼저, 역사적 사실들과 배경을 규정하고 평가하여 기계적 단계 구획 방식을 택합니다.

. 그래서 일제강점기, 해방, 4·19를 기점으로 하고 이후 10년 단위로 구획합니다.

. 그리고 현재를 기준으로 역술하여 현재에 도달하기까지 전개의 여정을 서술합니다.

. 이 방법은 모든 사실들을 포함시켜야 하는 이유로 시간적 빈 공간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 이 방법은 또한 드러난 사실과 사건들을 중심에 두고 역사를 설명하게 됩니다.

. 이는 체육인과 체육단체의 주체적 관점이 아니라는 말과 동일합니다.

. 이 방법은 현재를 기점으로 과거를 해설하기에 편리합니다.

. 그러나 미래에 다시 역사를 기술할 때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내게는 확연히 삼등분으로 보이는 100년 역사


‘대한체육회90년사’의 기간별 해설이 100년 사를 이해하는 유일한 방법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면 혹시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여기서 저는 조직된 단체, 그러니까 조선체육회와 대한체육회를 기준으로 한국에서 100년 스포츠 역사를 구획하는 방법을 도입해 보았습니다. 이 경우 한국 스포츠 역사는 크게 세 단락으로 나누어지며 그 기간과 명명은 다음과 같을 것입니다. 아래 [표 1]은 ‘대한체육회90년사’와의 기간과 대조하여 보여주고 있습니다.


1920-1938 조선체육회 창립부터 해산까지 (조선체육회기)

1945-1953 해방부터 한국전쟁까지 (혼란기)

1953-현재 한국전쟁부터 현재까지 (대한체육회기)



02 조선체육회 표1-1.jpg [표 1] 한국 스포츠 100년 역사 구획 방식 비교



삼등분된 각 구획의 명칭은 단체명을 따라 ‘조선체육회기’ ‘혼란기’ ‘대한체육회기’로 붙여보았습니다. 정체성을 가미하여 다르게 표현한다면 ‘민간단체기간’ ‘단체혼란기간’ ‘국가단체기간’으로도 대치할 수 있습니다. 서술하자면 조선체육회는 민간단체, 대한체육회는 국가단체이며, 해방 직후 다시 재건하려는 조선체육회는 그 향방이 매우 불안정했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입니다.


위 표에서는 기간에 포함되지 않은 구획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조선체육회 창립 이전이나 조선체육회가 해산되고 해방될 때까지의 기간이죠. 일단 삼등분의 해석에 혼동을 주지 않기 위해 빈 공간으로 두었고 ‘◯◯◯’ 처리했습니다.


삼등분 구획은 역사의 맥락을 찾고자 하는 의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는 다시 정부와 권력, 인물, 제도를 들여다보게 했고, 각 기간 동안의 단체 결사, 운영 주체, 운영 방식이 누구이며 어떠하였는가에 초점을 맞추게 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조선체육회와 대한체육회는 서로 성격이 다른 두 단체로 보이게 되었고, 앞의 단체가 뒤의 단체로 바뀌게 되는 기간이 보이게 되었습니다.


이 구분방식은 기존의 발전 단계식 구분방식과 다른 특성을 가집니다.


. 먼저, 구획 기간의 장단에 민감하지 않습니다.

. 그리고 100년을 ‘발전과정’으로 해석하기보다 지속적인 ‘변화과정’과 '정체성'으로 해석합니다.

. 특히 정치와 사회 환경에 연동되어 스포츠 역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합니다.

. 외적 결과물보다 그 결과를 창출하게 하는 주체와 원인을 파악할 수 있게 합니다.

. 스포츠의 사회적 효용성과 가치를 중심에 두고 해석할 수 있도록 합니다.

. 구획에 포함되지 않은 기간이 존재합니다.


물론 100년 역사를 삼등분화 시키는 것에는 충분한 근거와 논리는 존재합니다. 그 내용은 아래 글들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조선체육회와 대한체육회는 서로 다른 단체입니다


조선체육회와 대한체육회를 정부와 권력, 인물, 제도로 구분할 수 있다는 논리와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단체를 대표하는 회장들의 면면과 구성원들에서 보죠. 조선체육회는 창립부터 강제 해산까지의 기간에 모두 10명이 회장직을 수행했습니다. 발기인 90명을 비롯해 구성원들의 대부분은 지식인, 엘리트, 교육자, 기업인, 사회 리더 등이었습니다. 이에 비해 한국전쟁 이후 대한체육회 회장들은 거의 모두 정치인, 군인, 관료, 기업인으로 정부와 권력과 밀접한 관계였습니다. 아래 [표 2]는 100년 역사 동안 조선체육회와 대한체육회 회장 순서별 정권과 역사적 주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02 조선체육회 표2-2.jpg [표 2] 조선체육회와 대한체육회 시대별 환경 변화와 회장 임기 연표



여기서 일일이 각 회장의 특성과 활동 내역을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조선체육회 회장들의 대부분은 이후 친일 행위에 가담했으며 당시 사회적인 위치가 확보된 인물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2)


해방 이후 한국전쟁까지의 시기에 조선체육회와 대한체육회 회장은 여운형, 신익희, 조병옥으로 대표되는 정치적 진영과 유억겸, 신흥우 등으로 대표되는 인물들의 혼재를 볼 수 있습니다.




여운형-구글이미지-02.jpg 여운형, 조선체육회 제11대 회장



신익희-구글이미지.jpg 신익희, 대한체육회 제14대 회장



조병옥-구글-02.jpg 조병옥, 대한체육회 제16대 회장




한국전쟁 이후 이기붕의 등장과 회장직 수행은 한국의 새로운 스포츠 역사의 서막이었습니다. 이기붕의 등장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의미가 있었는데, 먼저 기존의 조선체육회를 주도하는 세력으로부터 주도권이 바뀌었다는 것이며, 두 번째로는 대한체육회를 민간 주도로부터 정권과 밀접하게 연계시키는 방식으로 바꾸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후 정권에 따른 회장들의 성향은 각양각색이지만 명확한 사실 하나는 비중 있는 정치인, 군인, 관료들이 회장직을 수행했다는 것입니다. 이기붕과 한국전쟁을 기점으로 대한체육회를, 조금 더 나가서는 스포츠를 정부가 접수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유억겸-구글-02.jpg 유억겸, 조선체육회 8대, 10대, 12대 회장



신흥우.png 신흥우, 조선체육회 7대, 15대 회장




회장의 임기로 단체의 특성이 보입니다


한국 체육의 삼등분 역사의 근거는 시대적 환경과 맞물린 회장의 임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조선체육회는 약 18년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 모두 10명의 회장이 직무를 수행했지만 윤치호는 9년간 임기를 수행했습니다. 전체의 반을 윤치호가 맡았던 것입니다. 조선체육회는 재정적 환경과 더불어 운영에도 어려움이 있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구성원들의 친일행위에도 영향을 받았습니다. 민간단체로의 한계가 분명하게 존재했던 것이죠. 결국 조선체육협회에 병합되고 맙니다.


해방 후 한국전쟁까지 약 8년간 모두 6명의 회장이 임기를 수행했지만 특별히 장기간의 회장직을 맡은 사람을 없었습니다. 누구도 주도권을 쥐지 않았거나 못했다는 것이고 시대적 상황이 모든 것을 불안정하게 했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해방 후 조선체육회라고 피해 갈 수는 없었죠.


한국전쟁 이후 대한체육회는 크게 다음의 기간과 인물로 구분되어 대표될 수 있습니다. 물론 정권과도 연계되어 있는 인물들입니다. 이 기간 동안 정권의 변화는 많았으나 권력의 승인과 지원을 통해 대한체육회가 운영되었죠. 아래 기간과 회장은 해당 기간 동안 특별히 오랜 기간 회장직을 수행한 인물들이며 이들은 정부의 체육정책을 구현하는데 역할을 했습니다.



. 한국전쟁 이후 4.19까지 : 이기붕 (7년 재임, 동 기간 총 7년 동안 회장 1명)

. 5·16부터 유신헌법 제정까지 : 민관식 (7년 재임, 동 기간 총 12년 동안 회장 5명)

. 유신헌법 제정부터 박정희 정권 종료까지 : 김택수 (7년 재임, 동 기간 총 8년 동안 회장 2명)

. 올림픽 유치부터 현재까지 : 김운용 (10년 재임, 동 기간 총 40년 동안 회장 14명)



회장의 임기는 당시 정권들이 대한체육회를 어떻게 활용하고 지원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기붕은 우리나라 초대 IOC 위원으로 냉전시대 북한의 국제 스포츠 진입을 막는 막후 결정권자였습니다. 민관식은 5·16 직후 1962년 국민체육진흥법을 제정하게 되면서 체육과 대한체육회를 국가가 관리하는 체계로 만든 주역입니다. 김택수는 1971년 국민체육진흥법을 개정하면서 엘리트 체육을 통한 국위선양을 본격적으로 지원했습니다. 김운용은 1983년 국민체육진흥법이 개정되면서부터 올림픽을 개최하고 국제 스포츠에서 우리의 위상을 확보하는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이기붕-구글-02.jpg 이기붕, 대한체육회 17대 회장



민관식-구글이미지.jpg 민관식, 대한체육회 22대 회장



김택수-구글이미지.jpg 김택수, 대한체육회 24대 회장



김운용-구글이미지.jpg 김운용, 대한체육회 31대, 32대, 33대 회장



대한체육회는 정부 정책을 수행하는 단체입니다


한국 체육의 삼등분 역사의 근거는 법과 제도로 이끌어지는 단체의 규정과 위상에서도 존재합니다.


조선체육회의 경우 법이 따로 없었고 민간단체로의 성격이 짙었으니 조선체육회의 정체성은 그 창립 취지서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조선체육회창립취지서를 보면 조선체육회는 체육을 통해 조선인들을 강한 근대 국민으로 개조하는 것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취지서는 특별히 ‘생명’과 ‘신체 강건’을 강조했고 건강한 신체로 사회발전을 꾀할 수 있음을 주장했습니다. 실제로 조선체육회 설립 주역들은 ‘민족근대화론자’였습니다.


이에 반해 한국전쟁 이후 냉전이 시작되면서 국가는 스포츠가 국제무대와 환경에서 주요한 외교적 수단이 되었음에 주목했고 국가의 이득을 위해 스포츠가 활용되었습니다.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면서 1962년 국민체육진흥법이 제정되고 1971년 일부 개정되면서 엘리트 선수 양성을 통한 국가 중심의 체육정책은 그 면모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체육특기자 제도와 연금제도가 도입된 것도 이때부터입니다. 88 서울 올림픽을 유치하고 1983년 국민체육진흥법은 전문 개정을 거칩니다. 전문은 이전까지 유지된 법의 목적에 ‘국위선양’이라는 단어를 추가하게끔 합니다. 이후 이 법의 목적은 현재까지 바뀌지 않았습니다. 아래 표는 국민체육진흥법 목적의 변천사입니다.




02 조선체육회 표 3-2.jpg [표 3] 국민체육진흥법 제정 개정에 따른 목적의 변천



현재 대한체육회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어떻게 정하고 있을까요. 대한체육회 정관, 제3조, 목적 및 지위, 1항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체육회는 체육운동을 범국민화하여 학교체육 및 생활체육 진흥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함으로써 국민의 건강과 체력증진, 여가선용과 복지향상에 이바지하며 우수한 경기자 양성으로 국위선양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국민체육진흥법이 대한체육회를 어떻게 지배하고 있는지 잘 나타나 있죠.


한국전쟁이 멈춘 후 지금까지 약 67년 간 대한체육회는 국가의 정책적 기조를 수행하는 단체였습니다. 국민체육진흥법 제정 후 지금까지 58년이 흘렀고, 83년 개정 이후 37년이 흘렀습니다. 지금까지 국가 중심의 체육정책과 그 법에 근거한 대한체육회의 운영은 변함이 없었던 것입니다.



한국 스포츠 역사의 다시 쓰기는 미래를 찾기 위함입니다


일제강점기 민간체육단체에서, 해방 후 혼돈의 시대를 경험하고, 한국전쟁을 통과하면서 본격적인 국가 중심의 체육정책의 수단으로 대한체육회가 운영됩니다. 한국전쟁 이후 많은 외형적 내부적 변화가 있어 왔지만 국가의 체육정책과 대한체육회의 국가 중심적 기치는 변한 적이 없었습니다.


제가 지난 100년의 역사 줄거리 찾기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정확한 맥락의 이해가 우리에게 주어진 앞으로의 과제를 생성시키는데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스포츠 역사 100년을 보다 다양하게 이해하려는 노력은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에 대한 방향타를 제시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 믿습니다. 결과가 아닌 결과를 생산해 내는 기틀을 어떻게 구성하고 변화시킬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인용자료


(1) 대한체육회90년사, 대한체육회, 2010.


(2)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사진자료


표지 : 몽양 여운형. 1947년 전경무 장례식에서 추모하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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