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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대택 Aug 28. 2020

031 북한을 만나러
홍콩으로 향하는 남한 대표단

장소 선정에서부터 모든 것이 부담되는 남한 정부 (63.4-5)


1963년 4월 19일, 이상백과 월터 정은 스위스에서 IOC 사무총장 오토 마이어를 만납니다. 이 자리에서 이상백은 북한과 5월 15일 홍콩에서 만나라는 IOC의 요구에 동의하게 됩니다. 


회담은 한 달도 채 남지 않았죠. 일정이 잡힌 이상 양측은 모두 바빠집니다. 그러나 홍콩이 남한 정부나 주한 미국 대사관, 북한 모두에게 선호되는 장소는 아니었습니다. 남한은 남한대로 내부 합의가 없었고 북한은 한반도 안에서 하거나 또는 제3국을 선호했습니다. 


이번 글은 이상백과 오토 마이어가 홍콩으로 합의한 이후 양측이 회담 장소에 대해 어떠한 입장이었는지, 그리고 남한은 어떻게 사전 작업을 진행했는지를 설명해보고자 합니다. 



회담 장소로의 홍콩과 서울



4월 19일 KOC와 오토 마이어의 만남에서 홍콩 회담 합의한 직후 오토 마이어는 이 사실을 22일 북한올림픽위원회에 전신합니다 (31-1). 그리고 바로 다음 날은 4월 23일 오토 마이어는 다시 북한에 편지합니다 (31-2). 편지는 조만간 KOC가 회담 장소로 홍콩의 한 호텔을 정하게 되면 곧바로 알리겠다고 적습니다. 편지는 깃발 문제도 ‘올림픽 링에 KOREA’가 최종 확정되었음을 알립니다. 그리고 지난 2월 로젠에서 북한도 동의한 것처럼, 홍콩 이후에 열리게 되는 모든 회담은 서울일 것이라는 점을 남한위원회가 동의했다고도 적습니다. 


오토 마이어가 북한위원회에 언급한 홍콩 양자 회담과 이후의 서울에서의 개최 가능성에 대한 이상백의 동의는, 그러나 KOC, 남한 정부, 미국 대사관, 북한 모두에게 수 싸움의 계기가 됩니다. 



홍콩을 주저하는 북한



회담 장소로의 홍콩을 북한은 주저합니다. 오토 마이어의 편지를 받은 북한의 홍명희 위원장은 바로 전신합니다 (31-3). 홍명희는 회담 장소로 로젠, 랑군 (Rangoon, 미얀마의 수도 양곤의 옛 이름), 판문점을 역으로 제안합니다. 그러면서 홍콩은 적정한 장소가 아님을 강조합니다. 만약 아시아 지역에서 만나는 편리성의 문제라면 랑군일 것이고, 한반도 내에서라면 북한이 이미 제안했던 판문점을 다시 제안하고 싶다고도 적습니다. 그러나 결국 북한은 홍콩을 수학하고 맙니다. 



홍콩이 적합한 회담 장소가 아니라고 건의하는 홍콩 총영사



이상백이 오토 마이어와 홍콩에 동의했다고 남한 정부가 홍콩을 선호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남북한의 회담이 홍콩에서 열릴 것이라는 언론 보도에 대해 문덕주 주 홍콩총영사는 외무부에 홍콩이 적당한 장소가 아님을 건의합니다. 외무부 장관은 문 총영사의 4월 20일 건의 내용을 KOC 위원장, 문교부 장관, 중앙정보부장에게 4월 25일 알립니다 (31-4). 


총영사는 먼저 영국과 중공의 최근 긴밀한 관계를 설명합니다. 그리고 홍콩이 경비절약과 약간의 편익으로 좋은 장소일 수 있으나, 북한이 과거 15년 동안 원하던 홍콩 입성의 전례가 될 수 있고, 이후 정치적 활동을 할 수 있는 발판을 수립하는데 악용될 수 있음을 우려합니다. 또한 북한이 남한의 대 홍콩 무역에 훼방을 놓거나 홍콩의 공산계 및 좌익 언론을 통한 대외선전의 조건을 갖출 수 있음을 경계합니다. 마지막으로 가능하다면 홍콩이 아닌 다른 장소를 고려해 줄 것을 요청합니다. 




[사진 31-1] 문덕주 제5대 주 홍콩 한국 총영사 (1962.7.-1964.10.)



이 건의에 방교국은 외무부 장관에게 홍콩의 대안으로 인도를 제안합니다 (31-5). 중공과 인도의 분쟁 이후 인도가 반공정책을 강화하고 있기에 남한의 활동이 유리하고 북한의 선전을 봉쇄할 수 있다는 것, 중립국으로 인도의 위상이 높다는 것, 손디 Sondi 의원이 인도인으로서 협조가 용이할 것이라는 것 등을 이유로 제시합니다. 그리고 회담 장소의 변경이 가능하다면 재고해 줄 곳을 요청합니다. 




[사진 31-2] 손디 Guru Dutt Sondhi 인도 IOC 위원 (1932-1964)



이후 4월 25일 이효 KOC 부위원장은 방교국장을 만나 협조를 의뢰합니다 (31-6). 홍콩 회담은 방교국장이 수행할 것이며, 홍콩 공관을 이용해 회담이 열릴 호텔을 예약하고, 판문점 통과 사용 가능성을 유엔군 당국과 협의하며, 북한의 홍콩 입국과 관련한 문제를 논의합니다. 


그리고 다음 날인 4월 26일, KOC 위원장 직무대리인 이상백은 외무부 장관에게 방교국장인 송광정을 이번 회담의 대표로 선출하였으니 해외파견 승인을 요청하게 됩니다 (31-7). 이상백과 대한체육회가 외무부에게 홍콩 선정의 이유를 설명하고 동의를 이끌었을 장면입니다. 관련 상황은 미국 대사관 보고에서도 나타납니다. 


1963년 5월 2일, 주한 미국 대사관 하비브 참사관이 작성한 국무부 보고서는 이원호 외무부 국제기구과장 대행과의 면담에 근거해, KOC가 북한의 대체 회담 장소 제안에 4월 29일 회의를 열어 회담 장소로 홍콩을 계속 주장할 것을 최종 결정하였다고 적고 있습니다 (31-8)




[사진 31-3] 이효, 대한체육회장 (1963.4-1964.1)



북한 대표단의 홍콩 입국이 마뜩지 않았던 남한 정부 



KOC가 홍콩을 최종으로 확정한 상황에서 외무부도 무엇이든 후속적인 작업을 진행해야 했습니다. 이미 남한의 공관이 설치된 홍콩에 북한을 들인다는 것이 외무부의 입장에서는 여러 가지로 편하지 않았죠. 대신 외무부는 북한 대표단을 홍콩에 들이되 여느 경우보다 순탄치 않도록 홍콩 정부에 협조를 요청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외무부 외방국은 홍콩 총영사에 전신합니다 (31-9). 문서는 홍콩 당국자에게 남한의 입장을 전달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남한의 입장은 북한 대표단에 정식 비자를 발급하지 말고 진술서 Affidavit로 대신해 줄 것과, 이번 북한의 홍콩 입국이 앞으로의 홍콩 진출의 선례로 이용되지 않도록 도와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내용 또한 주한 영국대사관에도 비공식적으로 알렸으며, 홍콩 총영사관은 이번 회담에 비공식적 자문만 담당하라고 지시합니다.


그런데 이 업무 지시는 바로 수정됩니다. 위 지시 직후 외무부 장관이 홍콩 총영사에게 보내는 전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31-10). 이번 회담이 IOC를 통해 결정된 민간 체육인 회의 일정이고, 우리 정부가 그 회담 자체를 환영하거나 거부할 입장이 아니니, 북한의 홍콩 입국 허가를 우리가 관여할 것도 아니라는 것이었죠. 만약 북한의 입국이 거부된다면 이는 회담의 순연으로 이어질 것이고, 그러니 홍콩 당국의 협력을 공식적으로나 비공식적으로 요청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후 주 홍콩 총영사는 홍콩 당국과의 면담과 북한의 입국 동향을 지속적으로 파악하여 보고합니다 (31-11). 



회담 결렬과 지연 사이에서 혼란스러운 외무부 



회담 일정이 다가오면서 외무부 외방국은 주 홍콩 총영사에게 이번 회담의 정부 방침을 통고합니다 (31-12). 회담에서 KOC의 제안에 북한이 동의하지 못하는 경우 회담 결렬을 불사하는 강경한 태도를 유지할 것이며, 결렬의 책임은 북한에 있도록 회의를 이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경우 언론을 통해 북한에게 책임이 있는 것으로 유도할 것을 지시합니다. 이어 외무부는 지연태 국제기구과장을 5월 14일 홍콩에 파견하여 총영사를 보좌하도록 합니다 (31-13). 


홍콩 회담의 결렬까지 생각하는 외무부는, 그럼에도 IOC의 움직임과 동향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습니다. 외무부 장관이 주 제네바 공사에게 극비리에 정보를 수집해 보내라는 전문에 그 내용이 보입니다 (31-14). 외무부는 회담이 결렬될 경우 IOC가 어떤 입장을 보일지, 결렬의 경우 남북 양측의 올림픽 참가 문제가 어떻게 될 것인지, 이 경우 참가 문제를 결정할 IOC의 구성위원은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정보를 요청합니다. 그리고 남한이 회담에 성의가 없는 듯한 인상을 절대 보이지 말 것도 당부합니다. 외무부는 회담 결렬 시 발생할 수 있을 IOC 내의 동향에 촉각을 세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렬은 부담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결렬을 불사하라는 이전의 지시는 다시 바뀝니다. 주 홍콩 총영사에게 보내는 외무부의 전문은 이를 보여줍니다. 회담의 마지막 순간에는 회담의 결렬을 가급적 피하도록 지시하죠 (31-15). 전문은 회담 대표단에게 다음과 같이 자문하기를 지시합니다. 먼저, 회담은 가급적 결렬을 피할 것, 만약 결렬될 경우 우리에게 책임이 없도록 할 것, 이 경우 사전에 정부에게 이를 보고할 것, 결렬 대신 가급적 지연책을 쓰고 합의되지 않는 점은 다음 회의에서 토의하도록 지연할 것, 마지막으로 상대방의 무리한 주장은 즉시 이를 정부에 보고할 것으로 적고 있습니다. 



홍콩에 입국하는 양측 대표단 



홍명희가 오토 마이어에게 보내는 전신은 북한의 홍콩 입국이 편하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31-16). 


‘단일팀 구성을 위한 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우리 대표단이 떠난 것을 통보받았겠으나 홍콩 도착이 늦어지고 있음. 13일 현재까지 홍콩 입국비자나 나오지 않아 이에 대한 IOC의 적극 지원을 요청해 주기 바람.’


이 전신을 받은 오토 마이어는 바로 KOC에 전신합니다 (31-17). 


‘북한이 회담을 위해 떠났으나, 홍콩 입국 비자를 받지 못하여 도착이 늦어짐. 살레즈 Arnaldo de Oliveira Sales 위원에게 알려 적극 지원 요청 바람.’ 




[사진 31-4] 살레즈 홍콩 IOC 위원



1963년 5월 15일 한국대표단은 브런디지에게 전신합니다 (31-18). 전신은 오늘 14:40에 북한이 홍콩에 도착한 것으로 알고 있으며, 3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아직 회담 일정은 잡히지 않았으나 앞으로 홍콩 NOC 사무국을 통해 소통라인을 구축하겠다고 적습니다. 


홍콩에서 남북 양측의 회담 준비과정은 1963년 5월 16일, 홍콩 IOC 위원 살레즈가 브런디지를 참조로, 오토 마이어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보입니다 (31-19). 살레즈의 편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남한 대표단과의 미팅에 대한 나의 14일 편지에 연결하여, 언론을 통해 이미 알고 있겠으나, 어제 북한이 도착함. 북한은 광둥 Canton에서 14:28 기차 편을 이용한 것이라 들었음. 북한은 미라마 호텔 Miramar Hotel에 머물며, 페닌슐라 호텔에서 걸어가는 거리임. 북한은 김기수 부위원장을 대표로 하여 11명이라고 함. 어제 오후 KOC 부위원장 이효, 대표단장 정상윤, 총영사관 관료를 만나 홍콩에 오지 않은 이상백 위원장 대행의 편지를 받았음. 깃발에 대해서는 양측이 동의한 것을 확인받았음. 어제 22:00 양측 연락관이 소통을 구축하였고 오늘 아침 만나기로 했다고 들었고 오늘 10:30분에 페닌슐라 호텔에서 각각 대표 2명씩 만나기로 했음.’




[사진 31-5] 홍콩 미라마 호텔 Miramar Hotel, 남북체육회담 북한 대표단이 머문 호텔



홍콩 남북체육회담은 1963년 5월 16일부터 6월 1일까지 열립니다. 브런디지는 회담에 기대가 컸을 것입니다. 브런디지가 이상백에게 보내는 5월 15일 편지는 이를 보여줍니다 (31-20). 


‘깃발 합의가 이루어졌고, 인스브룩과 도쿄올림픽 단일팀을 위해 북한과 만난다니 기쁨. 스포츠와 한국민의 승리이며, 우리가 돕도록 하겠음.’ 


그러나 회담은 결렬되고 단일팀 구성을 위한 세부 합의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상백은 6월 11일 오토 마이어에게 홍콩에서 있었던 남북단일팀 구성 교섭회의 결과 보고서를 제출합니다. 북한은 6월 13일 자로 보고서를 제출합니다. 








인용 문헌



(31-1) 오토 마이어가 북한울림픽위원회에 보낸 전신 (1964. 4. 22.) Brundage Collection, North Korea Olympic Committee, Olympic Studies Center, 로젠, 스위스. 


(31-2) 오토 마이어가 북한울림픽위원회에 보낸 편지 (1964. 4. 23.) Brundage Collection, North Korea Olympic Committee, Olympic Studies Center, 로젠, 스위스. 


(31-3) 북한울림픽위원회가 IOC에 보낸 전신 (1964. 4.) Brundage Collection, North Korea Olympic Committee, Olympic Studies Center, 로젠, 스위스. 


(31-4) 국립외교원. [L-0002-05/1263/757.1] 1964년도 동경올림픽 남·북한단일팀 구성문제. 전4권 (V.2 1963. 1-4) pp. 138-141. 


(31-5) 국립외교원. [L-0002-05/1263/757.1] 1964년도 동경올림픽 남·북한단일팀 구성문제. 전4권 (V.2 1963. 1-4) p. 143.


(31-6) 국립외교원. [L-0002-05/1263/757.1] 1964년도 동경올림픽 남·북한단일팀 구성문제. 전4권 (V.2 1963. 1-4) p. 144. 


(31-7) 국립외교원. [L-0002-05/1263/757.1] 1964년도 동경올림픽 남·북한단일팀 구성문제. 전4권 (V.2 1963. 1-4) p. 145. 


(31-8) 600.3 Amusement Sports, 1963 (기록물명), RG 84 Records of the Foreign Service Posts of the Department of State, 1788-1964 (문서군명), Korea, Seoul Embassy, Classified General Records, 1952-63 (시리즈명), 국립중앙도서관 해외기록물, pp. 63-64.


(31-9) 국립외교원. [L-0002-06/1264/757.1] 1964년도 동경올림픽 남·북한단일팀 구성문제. 전4권 (V.3 1963. 5-6) p. 10.


(31-10) 국립외교원. [L-0002-06/1264/757.1] 1964년도 동경올림픽 남·북한단일팀 구성문제. 전4권 (V.3 1963. 5-6) p. 13.


(31-11) 국립외교원. [L-0002-06/1264/757.1] 1964년도 동경올림픽 남·북한단일팀 구성문제. 전4권 (V.3 1963. 5-6) pp. 14-15.


(31-12) 국립외교원. [L-0002-06/1264/757.1] 1964년도 동경올림픽 남·북한단일팀 구성문제. 전4권 (V.3 1963. 5-6) p. 17.


(31-13) 국립외교원. [L-0002-06/1264/757.1] 1964년도 동경올림픽 남·북한단일팀 구성문제. 전4권 (V.3 1963. 5-6) pp. 18, 20-23.


(31-14) 국립외교원. [L-0002-06/1264/757.1] 1964년도 동경올림픽 남·북한단일팀 구성문제. 전4권 (V.3 1963. 5-6) p. 25.


(31-15) 국립외교원. [L-0002-06/1264/757.1] 1964년도 동경올림픽 남·북한단일팀 구성문제. 전4권 (V.3 1963. 5-6) p. 26.


(31-16) 홍명희가 오토 마이어에게 보낸 전신 (1963. 5.) Brundage Collection, North Korea Olympic Committee, Olympic Studies Center, 로젠, 스위스. 


(31-17) 오토 마이어가 KOC에 보낸 전신 (1963. 5.) Brundage Collection, North Korea Olympic Committee, Olympic Studies Center, 로젠, 스위스. 


(31-18) KOC가 브런디지에게 보낸 전신 (1963. 5. 15.) Brundage Collection, North Korea Olympic Committee, Olympic Studies Center, 로젠, 스위스. 


(31-19) 살레스가 오토 마이어에게 보낸 편지 (1963. 5. 16.) Brundage Collection, North Korea Olympic Committee, Olympic Studies Center, 로젠, 스위스. 


(31-20) 브런디지가 이상백에게 보낸 편지 (1963. 5. 15.) Brundage Collection, Lee, Dr. Sang Beck, 1946-1966, Olympic Studies Center, 로젠, 스위스. 




[사진 설명]



홍콩 페닌슐라 호텔 Peninsula Hotel, 1963년 남북체육회담이 열린 장소이자 남한 대표단이 머문 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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