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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대택 Aug 23. 2020

030 북한에 책임을 돌리고
홍콩 회담을 결렬시켜라

외무부와 KOC의 상충된 견해, 그리고 월터 정의 사임 (63.3-5)


로젠에서 브런디지는 이상백과 월터 정에게, 남한에 돌아가서 당국과 협의하고, 두 개의 깃발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요구합니다. 이 날이 1963년 2월 6일입니다. 브런디지는 한 달의 기간을 줍니다 (30-1). 


남한은 여전히 빠른 결정을 알리지 않고 한 달이 지납니다. 


3월 5일, 브런디지는 깃발과 단일팀 구성을 다시 이해시키려는 편지를 KOC에 보냅니다 (30-2). 


여전히 남한은 반응이 없습니다. 


3월 15일, AP 통신은 오토 마이어의 인터뷰를 인용해, 남한이 한 주 안에 깃발을 선택하지 않으면 남측이 IOC의 제안을 거부한 것으로 이해하고 북한의 독립 출전을 허용할 것이라고 보도합니다. (30-3, 30-4). 


남한 정부는 갑작스러운 보도에 상황을 파악하고 분주해집니다. 


3월 21일 주한 미국 대사관은 외무부를 방문해 미국 국무부의 견해를 전달합니다. 


3월 23일, 이상백은 브런디지에게 편지합니다 (30-5). 이상백은 KOC가 노력하고 있으나 내부 상황으로 뜻하지 않게 지연되고 있음에 양해를 구합니다. 


4월 19일, 이상백과 월터 정은 스위스로 가서 오토 마이어를 만납니다. 여기서 깃발을 확정하고, 5월 15일 홍콩에서 북한과 만날 것에 동의합니다 (30-6). 


이 일련의 상황과 과정을 미국은 어떻게 보고 있었을까요? 이번에는 미국의 문서를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중앙정보부가 주관하였던 로젠 회담



1963년 3월 11일, 주한 미국 대사관은 미 국무부에 보고합니다 (30-7). 간략한 내용은 이렇습니다. 


‘외무부 국제기구과장 지연태가 3월 8일 대사관에 알리길, 일주일 내로 단일팀 깃발과 관련한 내용을 IOC에 편지할 것이라 함. 이 편지는 IOC가 제안한 두 선택을 그대로 받지 않을 것이라고 적는다 함. 대신 태극기를 주장하고 그 이유를 적는다 함.’


보고는 태극기를 주장하는 이유를 나열하고 있습니다. 보고는 계속됩니다.


‘지 과장은 태극기의 대폭 변형은 수용할 수 없음을 재차 강조함. 이는 남한 국민의 바람이며, 최근 내각에서 확정된 것이라 함. 지 과정은 최근 로젠에서 남한 대표단의 협상을 혹평함. 그는 재정을 포함해 이번 협상 모두를 남한 중앙정보부가 주관하였다 함. 그는 상황 변화로 앞으로는 외무부가 올림픽 문제에 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 함.’


이 보고는 단일팀 협상과 관련해 매우 중요한 내용을 보여줍니다. 박정희 정권의 단일팀 구성 동의와 로젠 회담에서의 협상은 중앙정보부가 주관하여 진행되었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외무부가 보다 비중 있게 이 문제를 들여다볼 것임을 예견시켜 줍니다. 이는 지금까지의 단일팀 문제를 결정하는 주체의 이동 또는 확장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사진 30-1] 지연태 (1928-2007). 1963년 당시 외무부 국제기구과장



태극기를 포기하기로 결심하는 남한 정부



남한에서 태극기를 고수해야 한다는 의견이 여전히 우세하게 유지되는 사이, 3월 15일 오토 마이어의 인터뷰 기사와 3월 21일 주한 미국 대사관의 미 국무부 견해 전달은 남한 정부를 당혹시킵니다. (30-8). 


3월 25일, 주한 미국 대사관 하비브 참사관이 미국 국무부에 보내는 보고에, 21일 있었던 하우원츠 서기관의 외무부 방문 내용이 보입니다 (30-9). 내용은 이렇습니다. 


‘외무부를 통해 남한 정부에 국무부의 견해를 전달했음. 남한 정부는 단일팀 구성을 포기하지 않았지만, 사실상 태극기를 포기하기로 함. 남한이 일전에 IOC에 보내려던 편지는 중단됨. 남한은 ‘태극문양에 올림픽 링’ 깃발을 제안하고자 하나,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올림픽 링에 KOREA’를 수용하겠다 함. 이는 IOC 제안의 소폭 변형임.’


보고서는 대사관의 의견으로 계속됩니다. 


‘이제 남한은 태극기를 주장하는 것이 명확히 IOC를 거부하는 것이며, 북한이 독립적으로 또는 단독으로 올림픽에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태극기를 포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음. 남한은 극단적인 거부의 전략에서 선회하였으나, 태극기를 완전히 버리는 것은 여론에 부담임을 느끼고 있음.’


3월 5일 브런디지의 편지까지도 대수롭지 않게 여긴 남한은 3월 15일 오토 마이어의 인터뷰 기사로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합니다. 여기에 하우원츠 3등 서기관의 미 국무부 견해 전달은 남한 정부가 지금까지 가진 정보와 전략을 다시 돌아보는 계기로 작동했을 것입니다. 여하튼 남한 정부는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고 급히 이 문제의 접근방식을 바꾸기 시작합니다. 



올림픽 문제 해결 방식에 이견을 가진 외무부 



4월 4일 하비브 참사관은 미국 국무부에 보고합니다 (30-10). 


‘4월 2일 지연태의 보고에 의하면, 남한은 아직 IOC에 깃발에 대한 결정을 알리지 않음. 편지 대신 로젠에 대표를 보내 개인적으로 태극문양을 다시 제안할 것이라 함. 이를 IOC가 거부하면 ‘올림픽 링에 KOREA’를 제시할 것이라 함. 최근 평양방송이 선수 선발을 위해 4월 25일 만나자는 전신을 남한에 보냈다고 한 것을 물으니, 지 과장은 어떠한 경로로도 그러한 전신을 받지 못했으며, 답변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함.’


보고서는 대사관의 의견으로 이어집니다. 


‘지 과장의 직접 언급은 아니지만, 지 과장은 올림픽 문제를 갈수록 크게 걱정하고 있는 듯함. 걱정의 일부는 올림픽 정책을 구성하는데 외무부의 역할이 작다는 것임. 주요 결정은 가장 높은 위치에서 이루어진다 함. 지 과장은 현재의 정치 혼란 상황에서 단일팀 문제가 그 높은 위치에서 결정되는 구조가 무너졌다고 보고 있음. 결국 올림픽 문제에 대한 관심과 적정한 방향의 부재가 현재의 지연으로 나타나고 있음.’


3월 23일, 이상백이 브런디지에게 보내는 편지의 내용에서도 이러한 상황이 보입니다. 이상백은 KOC가 노력하고 있으나 내부 상황으로 뜻하지 않게 지연되고 있음에 양해를 구한다고 적었죠 (30-5). 


4월 15일, 하비브 참사관은 미국 국무부에 보고합니다 (30-11). 내용은 이렇습니다. 


‘4월 11일 지 과장은, KOC 생각과 남한 정부의 계획을 설명했음. 로젠에 파견되는 대표단은 깃발 논의 후, 홍콩에서 북한과 만나 선수 선발, 재정, 올림픽공동위원회 구성 문제 논의를 제안할 것이라고 잠정 결정했다 함. 홍콩 회담에 IOC가 꼭 참석할 것을 요구할 것이나, 필요에 따라 양자 간의 만남도 준비하고 있다 함. 이후 서울 또는 평양에서의 회담을 제안할 것을 고려한다 함.’


현재 KOC와 남한 정부의 IOC 대응을 설명한 지 과장은 자신의 의견을 내놓습니다. 


‘지 과장은 이 계획을 심히 우려함. 외무부는 실제로 결정에 참여할 수 없다 함. 지 과장은 올림픽 문제를 다루는 관료들이 단일팀 구성 개념에만 완전히 골몰하고 있다고 보고 있음. 이러한 관점은 잠재적으로 북한과의 위험한 회담을 보장해 줄 것으로 보고 있음. 이는 올림픽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얻는 이득보다 훨씬 더 부정적 효과를 가져올 것임. 지 과장은 외무부 동료들도 북한과 동등한 입장에서 협상하는 계획이 더 진전되기 전에 올림픽 문제를 재검토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남한과 북한이 독립적으로 1964년 올림픽에 참가하는 것의 ‘진짜와 가짜 pro’s and con’s’가 평가되어야 함을 주장함.’


이 보고서에 주한 미국 대사관은 의견을 적습니다. 


‘올림픽 문제에 대한 남한 정부의 계획이 지과장이 말한 대로라면, 지 과장의 재평가 필요성 의견은 합당함. 지 과장이 설명한 의견의 동기를 묻지 않더라도, 현재 남한 내부 상황을 감안하면, 남한 정부 계획의 잠재적 결과는 단일팀 문제 이상이 될 것임. 서울이나 평양에서의 만남은 (이는 북한이 지속적으로 요구했던 것임) 올림픽 문제를 상대적으로 작게 만들 수도 있을 것임.’


그리고 4월 19일, 이상백과 월터 정은 스위스로 날아가 오토 마이어를 만나, 깃발을 결정하고, 홍콩에서 양자 회담을 동의하게 됩니다. 



월터 정의 사임



1963년 5월 2일, 주한 미국 대사관 하비브 참사관은 미국 국무부에 보고합니다 (30-12). 보고서는 최근 로젠에서 돌아온 이상백의 4월 30일 언론 인터뷰 내용을 적고, 같은 날 대사관은 외무부 국제기구과장 대행 Acting Chief 이원호에게 올림픽 문제를 거론했다고 씁니다. 이원호는 KOC가 북한으로부터 (경로는 확인되지 않음) 대체 회담 장소를 제안하는 전신을 받은 후, 4월 29일 회의를 통해 회담 장소로 홍콩을 계속 주장할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고 적습니다. 


그리고 이원호 자신은 앞으로 올림픽 문제에 있어 북한에 어떠한 전술을 구사할지 알지 못한다고 적습니다. 그러나 비밀유지를 전제로 “off the record” 본인은 고사하고 있지만 송광정 방교국장 Chief of the Foreign Office Bureau of International Relations 이 남한 대표로 고려되고 있으며, 자신은 KOC 생각이 ‘심각한’ 정치 문제임을 지연태와 공감하고 있다고 적습니다. 그리고 이번 협상에서 외무부의 역할은 적지만 외무부의 KOC에 대한 생각은 비판적임을 적습니다. 


보고서는 5월 1일 월터 정과의 대화도 보고하고 있습니다. 보고서는 월터 정이 최근 KOC에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적습니다. 월터 정은 KOC 지침을 기반으로 북한과 협조했던 자신의 무능력의 결과임을 설명했다고 적습니다. 정은 물과 기름이 섞일 수 없으며, 공산주의자와 함께 할 수 없다고 했음을 적습니다. 


이어 보고서는 대사관의 의견을 적습니다. 


미국 대사관은 조선일보가 보도한 남북회담의 장소로의 서울은 가능성이 높지 않지만 이는 KOC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며, 외무부와 월터 정은 이 생각에 유감을 표하는 것으로 적습니다. 그리고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KOC 임원으로 매우 유명한 월터 정의 사임은 KOC나 월터 정 자신에게 매우 중요하게 여겨짐을 적고 있습니다. 



올림픽 문제원점에서의 재검토를 제안하는 주한 미국 대사관



지연태 과장과 이원호 과장대행의 의견, 그리고 월터 정의 KOC 사임을 근거로 주한 미국 대사관은 단일팀 문제를 새로 보고 있었습니다. 5월 6일 하비브 참사관이 미국 국무부로 보내는 대사관의 보고서에서 그러한 정황이 나타납니다 (30-13). 보고서는 먼저 대사관의 행적과 결정을 뒤돌아보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최근에 제출한 보고들에 근거하면, 대사관은 새로운 정치 환경을 전제로, 올림픽 문제를 다시 뒤돌아보고 재평가의 필요성을 믿음. 최초 대사관은 북한과 접촉할 필요성을 제거하면서 올림픽 문제 해결의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희망했지만, 특히 현재 한국의 상황 흐름에서는 이것이 잠재적으로 위험해 보임. 대사관은 남한 상황이 독일과 완전히 같지 않았고, 소위 독일 모델이 아닌 남한에 적합한 해법을 IOC가 제시하도록 IOC를 설득할 수 있기를 희망했음. 이 견해는 당시 남한 외무부와도 같이 했음. 그럼에도 다른 대안이 없었기에 대사관은 국무부의 의견을 따라 남한 정부에 독일 모델을 따를 것을 요구했었음.’


보고서는 남한 정부 측이 로젠 회담도 실패한 상황에서 계속 북한과의 접촉을 미국이 관조하고 있어야 할지 의문을 제기하는 내용으로 이어집니다. 


‘안타깝게 남한의 활동과 IOC와의 협상 결과는 대사관과 국무부의 기대에 매우 못 미쳤음. 먼저 남한은 IOC도 인정한 독일 사례의 전제조건도 명확히 하지 않은 채 북한과 로젠에서 선뜻 만났으며, 둘째로 한국 전통 문양 요소를 지키지도 못한 깃발의 선택을 요구받았음. 셋째로, 남한은 단일올림픽위원회나 행정에 대한 통제력을 IOC로부터 확인받지 못함. 마지막으로 국무부의 권고나 이후의 의견은 IOC 입회하에 제3 국에서의 회담을 강조했으나 (또는 아예 하지 않는 것으로) 남한은 동등한 입장에서 서울 또는 한반도 내에서 회담을 준비하고 있음. 이제 미국은, 처음 제안한 독일 사례가 올림픽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주는 만족이 현저히 낮음에도, 남한이 계속 북한과의 만남을 한반도에서 지속하도록 허용할 의사가 있는지를 봐야 함.’


보고서는 다시 올림픽 문제를 남한 정세와 연동하여 설명합니다. 


‘단일팀과는 별개로. 이 문제의 정치적 의미는 명확하며 심각하게 고려해야 함. 남한은 이것을 올림픽 문제로 생각하지만, 계속된다면, 현존하는 남북문제와 복잡하게 엮여 궁극적으로 통일 문제로 연결될 것임. 이러한 생각은 현재 남한이 외교에서 유연성과 선제성의 매력을 느끼며 ’ 새로운 접근‘을 찾는 것과 연동되어 있음. 마지막으로, 대사관은 군부정권과 가까운 좌편향 의견자의 단일팀 계획 영향을 배제하지 않음. 확실한 예로 이러한 의견자 중 한 명이 운영하는 신문사인 부산일보는 북한과 올림픽 합의를 주저하는 것을 매우 강력하게 비판하며, 태극기를 주장하는 것이 ’ 분리주의자의 타성에 지나지 않음‘이라고 주장했음. 따라서 남한이 올림픽 문제를 다루는 것에 대한 우리의 입장과 현재 남한의 정치적 요인 및 결과를 분리할 수 없음.’ (30-14).


이어 대사관이 국무부에 제안하는 내용을 마지막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현재 대사관은 남한에 요구할 수 있음. 1) 북한과 협상에서 가능한 최대로 IOC에 의존하고, 2) 북한과의 만남을 철저히 최대한 줄이며, 필요하다면, IOC 보호 아래 제3국에서, 3) 선제적으로 선수를 선발하도록 함. 동시에, 대사관은 국무부가 이 모든 올림픽 문제를 현재 남한의 생각과 정치적 문제를 연결하여 재평가하기를 요청함. 이러한 재평가는, IOC에 새롭게 미칠 수 있는 영향의 가능성 평가, 1964년 올림픽에 양쪽 모두가 제외되는 것의 장점 (한때 외무부의 대안이었음), 현재 진행 경과에 따른 남과 북의 독립적 참가의 진실과 거짓을 평가하는 것을 포함함.’ 


주한 미국 대사관은 남한의 정치 상황, 로젠 회담 실패와 무소득, 남한 정부와 KOC 생각의 위험성, 외무부의 다른 견해, 남한 내부에서의 일부 여론 등을 근거로 단일팀 문제가 정치 문제로 확장되는 것을 확실히 경계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모든 시나리오를 열어둔 채 새로운 전략의 구축이 필요함을 국무부에 설득하기 시작합니다. 



마지막까지 갈팡질팡하는 남한 정부와 대표단 



이러한 미국 대사관의 염려에도 불구하고 남한 정부와 KOC는 홍콩 회담을 준비합니다. 5월 10일 미국 대사관이 보내는 전신에서 이 내용이 나타납니다 (30-15). 


‘지연태 과장은 남한 정부가 홍콩 회담 전략을 짜고 있으며, KOC의 군인 및 민간위원들은 다음 회담과 선수 선발 장소로 서울을 선호한다고 전함. 외무부는 심각한 대내외 정치적 문제를 야기한다고 했다 함. 지연태에 의하면 외무부는 북한과 더 이상의 회담, 선수 선발, 북한에 책임을 묻고 단일팀 협상을 중지시키는 모든 수단을 찾을 것을 제안했다 함. 내각이 몇 일내 결정할 것이라 함. 지연태는 대사관의 의사를 물었으며, 대사관은 국무부의 의견을 기다리고 있다 했음.’


홍콩 회담이 열리기 며칠 전 남한 정부는 홍콩 회담을 결렬로 이끌기로 결정합니다. 5월 14일 미국 대사관이 국무부에 보내는 전신입니다 (30-16). 


‘지연태에 의하면, 이번 홍콩 회담은 원인을 북한으로 돌리고 회담을 결렬시키는 것으로 내각의 전략이 세워졌다고 함. 선수 선발과 다음 미팅을 피하는 노력이 기울어질 것임. 피할 수 없다면 한반도 땅에서는 불가능하게 할 것임.’


그러나 지연태 과장과 달리 KOC의 입장은 다름도 보고합니다. 


‘내각의 결정이라는 지과장과는 별개로, 같은 날, KOC 임원은 다른 의견을 말함. 이번 회담에 참가하는 중요한 KOC 임원인 황엽 소장과 이효 소장은 협상 유지의 필요성과 북한의 1964년 올림픽 독립 참가의 위험성을 강조함. 선수 선발과 회담이 한반도에서 열리는 것의 정치적 위험은 존재하나, 다른 방도가 없음을 강조함. 황 소장은 제3 국에서의 선수 선발 비용 문제를 언급함. 두 장군은 미국 견해에 동의하나 성공 여부가 모호하다고 했음.’



[사진 30-2] 이효, 로젠 남북체육회담의 남한 대표단,  대한체육회장 및 고문


보고서는 깃발 문제도 적습니다. 


‘깃발의 경우, 남한이 제안한 ‘올림픽 링에 KOREA’가 북한도 이미 유사한 디자인에 승인한 바 있기에 외무부는 이 문제가 완료된 것으로 보고 있음.‘


마지막으로 보고서는 대사관의 의견을 답니다. 


‘지연태가 내각의 결정이라 했지만, 이것이 KOC의 결심을 흔들지 못했음. KOC 의견이 우세하지 않아야 함. 남한 측에 확실한 이득이 아니라면, 대사관은 회담에서 어떠한 결정도 도달하면 안 될 것이 중요하다고 봄. 처음부터 회담에 동의한 남한은 결론 없이 끝낼 수도 있음. 국무부가 동의한다면 총영사의 지원을 요청함.’







인용 자료 



(30-1) 600.3 Amusement Sports, 1963 (기록물명), RG 84 Records of the Foreign Service Posts of the Department of State, 1788-1964 (문서군명), Korea, Seoul Embassy, Classified General Records, 1952-63 (시리즈명), 국립중앙도서관 해외기록물, p. 74. 


(30-2) 600.3 Amusement Sports, 1963 (기록물명), RG 84 Records of the Foreign Service Posts of the Department of State, 1788-1964 (문서군명), Korea, Seoul Embassy, Classified General Records, 1952-63 (시리즈명), 국립중앙도서관 해외기록물, p. 71. (브런디지가 KOC에 보내는 3월 5일 편지). 


(30-3) 국립외교원. [L-0002-05/1263/757.1] 1964년도 동경올림픽 남·북한단일팀 구성문제. 전4권 (V.2 1963. 1-4) p. 121.


(30-4) 동아일보 (1963. 3. 15.) “단일팀용 깃발 수용거부, 내주까지 결정토록. IOC 사무국 한국위에. 사무국장 오토 마이어는 한국이 국기안을 수용하지 않을 경우 북한으로 하여금 전한국을 대표하게끔 허용할 것이라고 부언하였다.”


(30-5) 이상백이 브런디지에게 보내는 편지 (1963. 3. 23.) Brundage Collection, Lee, Dr. Sang Beck, 1946-1966, Olympic Studies Center, 로젠, 스위스. 


(30-6) 이상백이 오토 마이어에게 보내는 편지 (1963. 4. 21.) Brundage Collection, Lee, Dr. Sang Beck, 1946-1966, Olympic Studies Center, 로젠, 스위스.  


(30-7) 600.3 Amusement Sports, 1963 (기록물명), RG 84 Records of the Foreign Service Posts of the Department of State, 1788-1964 (문서군명), Korea, Seoul Embassy, Classified General Records, 1952-63 (시리즈명), 국립중앙도서관 해외기록물, pp. 72-73. 


(30-8) 국립외교원. [L-0002-05/1263/757.1] 1964년도 동경올림픽 남·북한단일팀 구성문제. 전4권 (V.2 1963. 1-4) p. 123.


(30-9) 600.3 Amusement Sports, 1963 (기록물명), RG 84 Records of the Foreign Service Posts of the Department of State, 1788-1964 (문서군명), Korea, Seoul Embassy, Classified General Records, 1952-63 (시리즈명), 국립중앙도서관 해외기록물, p. 69. 


(30-10) 600.3 Amusement Sports, 1963 (기록물명), RG 84 Records of the Foreign Service Posts of the Department of State, 1788-1964 (문서군명), Korea, Seoul Embassy, Classified General Records, 1952-63 (시리즈명), 국립중앙도서관 해외기록물, pp. 67-68. 


(30-11) 600.3 Amusement Sports, 1963 (기록물명), RG 84 Records of the Foreign Service Posts of the Department of State, 1788-1964 (문서군명), Korea, Seoul Embassy, Classified General Records, 1952-63 (시리즈명), 국립중앙도서관 해외기록물, pp. 65-66. 


(30-12) 600.3 Amusement Sports, 1963 (기록물명), RG 84 Records of the Foreign Service Posts of the Department of State, 1788-1964 (문서군명), Korea, Seoul Embassy, Classified General Records, 1952-63 (시리즈명), 국립중앙도서관 해외기록물, pp. 63-64.


(30-13) 600.3 Amusement Sports, 1963 (기록물명), RG 84 Records of the Foreign Service Posts of the Department of State, 1788-1964 (문서군명), Korea, Seoul Embassy, Classified General Records, 1952-63 (시리즈명), 국립중앙도서관 해외기록물, pp. 60-62. 


(30-14) 남북 회의 IOC 회의록 (1963. 8. 19.) Brundage Collection, North Korea Olympic Committee, Olympic Studies Center, 로젠, 스위스. (로젠에서 남북 측의 회의에서 북한의 김기수는 부산일보의 1963년 1월 26일, 4월 23일, 5월 28일의 기사를 소개함)


(30-15) 600.3 Amusement Sports, 1963 (기록물명), RG 84 Records of the Foreign Service Posts of the Department of State, 1788-1964 (문서군명), Korea, Seoul Embassy, Classified General Records, 1952-63 (시리즈명), 국립중앙도서관 해외기록물, pp. 56-57.


(30-16) 600.3 Amusement Sports, 1963 (기록물명), RG 84 Records of the Foreign Service Posts of the Department of State, 1788-1964 (문서군명), Korea, Seoul Embassy, Classified General Records, 1952-63 (시리즈명), 국립중앙도서관 해외기록물, pp. 53-55. 



[사진 설명]


중앙청, 해방 후 정부청사로 사용되었으며 1960년대 외무부도 중앙청 내에 위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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