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회담을 북한의 이득으로 평가한 미국 정보국
미국은 1963년 5월 홍콩에서의 남북체육회담을 어떻게 봤을까요?
지금까지의 글에서는 회담이 요청되고, 준비되고, 성사되고, 최종적으로 결렬되는 과정까지를 시계 별로 살펴봤으니, 여기서 잠시 이 모든 과정을 총체적으로 평가한 미국의 관점을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아래 글은, 1963년 5월 23일 미국 정보국 US Information Agency에서 ‘한국의 올림픽 협상의 문제들 Problems of Korean Olympic Negotiations’라는 제목으로 작성한 초록 포함 총 11개 문단의 3쪽짜리 보고서를 그대로 번역한 것입니다 (33-1).
이미 소개된 글들의 요약정리한 것으로 보시면 될 정도이며, 남한의 배경이 되어주는 미국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본 평가라고 이해하면 될 듯합니다. 이 보고서는 홍콩 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작성되었으며, 최종 결론으로는, 이번 홍콩 회담이 북한에게 득이 되는 회담이었으며, 이 회담이 북한의 대남선전과 통일전략으로 연결될 수 있는 상황으로 해석했습니다.
이 보고서를 읽어보면 자연스레 드는 생각이겠지만, 올림픽이던, 단일팀이던, 더 나아가 북한이던, 통일이던, 이 모든 것들은 정부와 미국의 철저한 분석과 전략 내에서 판단되고 진행되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올림픽 또한 정치적 환경 내에서 평가되고 판단되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이 문건은 국립중앙도서관 해외기록물에서도 파일로 보실 수 있습니다. 한번 보시죠.
1964년 동경올림픽 남북단일팀 구성과 관련한 회담은 남북 대표가 5월 17일 홍콩의 페닌슐라 호텔 Peninsula Hotel에서 만나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교섭은 다가오는 올림픽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문제로 북한, 남한, 국제올림픽위원회 IOC 간의 오랜 줄다리기의 결과로써, 한국팀을 구성하고 재정 지원하며, 두 국가의 공동위원회 조직을 공식적으로 결정하는 임무 수행의 자리이다. IOC의 감독 없이 개최된 이 회담은 남한과 직접 접촉함과 동시에 남한을 이용해 국제무대에서 자신들의 위상을 향상하려는 북한의 노력의 성과로 볼 수 있다.
평양의 1월 승리
남한의 곤경은 1962년 6월 11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북한을 경쟁자로 인준하는 투표로부터 시작되었다. 이날부터 로젠의 IOC 사무국은 북한의 지속적인 로비에 노출되어 북한 대표자들과 만났고 단일팀 구성 건으로 남한에 압력을 가했다. IOC가 올림픽에 별도의 북한 팀을 참가시킬 수 있다는 것을 두려워한 대한올림픽위원회 KOC는 올해 1월 로젠에서 북한 대표단과 IOC 대표들과 마지못해 만났다. 1월 24일, 남한은 남북단일팀 구성에 합의하고, 대표 팀에 더 많은 선수가 선발된 쪽에서 선수단장을 지명하며, 2월 7일로 예정된 IOC 집행위원회에게 국기 선택을 맡기는 것으로 결정했다. 그러나 이때 남한 대표단은 현재 남한 국기로 사용하고 있는 한국의 전통 국기를 포기하거나 크게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계속되는 압력
로젠 회의 이후 추가 타협에 저항하려는 남한의 노력은 IOC의 추가 압력과 마주하게 되었다. IOC 회장인 에이버리 브런디지는 3월 5일 KOC에 서한을 보내, 타협된 깃발에 동의할 것과 함께 남한에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우리 규칙에 따른 단일팀이 아니라면, 우리는 북한을 인준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단호한 입장에 직면한 남한 정부는 마지못해 깃발에 대한 원래의 입장을 포기하기로 했다. 4월 2일까지 태극 문양에 올림픽 링을 새기는 깃발에 대해 노력하기로 결정하고 이것이 여의치 않으면, 올림픽 링에 “Korea”를 새긴 깃발을 수용하기로 했다.
이에 남한 정부는 로젠에 대표를 파견하여 국기에 대한 남한의 이유를 호소하기로 결정했다. 이 결정은 미국 대사관에 4월 2일 알려졌으며, 4월 11일 미국 대사관과 남한 정부의 대화에서도 확인되었다. 이 대화에서 남한 측 인사는 KOC가 단일팀 구성과 관련해 북측 대표와 홍콩에서 회담을 제의할 것을 잠정적으로 결정한 상태라고 밝혔다. KOC는 IOC 대표가 회의에 참석할 것을 촉구했지만 필요한 경우 IOC의 감독 없이도 만날 준비를 충분히 하고 있었다.
KOC 대 외무부
현재의 홍콩 회담으로 진행되는 동안, KOC는 외무부의 남한 올림픽 정책과 확연히 다른 생각이 명백했다. 외무부는 허술하게 준비한 북한과의 접촉으로 야기되는 장기적인 잠재 위험을 알고 있었으며, 이러한 접촉을 최소화하고자 했다. 그러나 KOC, 특히 이 조직의 몇몇 임원들은 단일팀을 구성하고 향후 북한과의 회의를 갖는 개념에 얽매인 것처럼 보였다.
KOC 회장대행인 이상백 박사의 4월 30일 (로젠에서 돌아온 후) 언론 발언에 의하면, 북한이 홍콩을 남북회담 장소로 거부하면 서울이 남한 측이 고려한 유일한 장소일 것이라 밝혔다. 이는 5월 2일 이박사의 미국 대사관 미팅에서 다시 확인되었다. 이 박사는 IOC 사무총장인 오토 마이어에게 서울이 앞으로의 올림픽 회담과 선수 선발에 적합한 장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했다.
KOC의 군사 및 민간 위원들은 서울에 대해 이박사와 동의하는 듯 보이지만, 서울 대신 홍콩으로 결정되었다. 그러나 외무부는 이 입장이 남한에 심각한 내외 정치적 문제를 야기할 것이라는 점에서 반대했다. 이 정책 대신에, 외무부는 향후 북한 대표들과의 회담을 중단하고, 선수 선발을 피하며, 북한에 책임감과 부담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협상을 중단시킬 수단을 찾도록 제안했다.
5월 13일에 이르러 남한 내각은 외무부가 제안한 것과 대략 유사한 정책을 지지하기로 결정했다. KOC는 1964년 동경올림픽에 북한이 독자적으로 참가할 위험성을 강조하며 북한과의 협상이 필요하고 유지해야 함을 주장했다 한다. 홍콩 회담이 시작되기 직전, 홍콩의 미국 총영사는 한국 관계자를 통해, KOC 대표단이 적절한 순간에 회담을 허둥대는 미리 정해진 전략을 따를 것이라고 확인시켜 주었다.
남한의 손실과 위험
현재까지 한국 올림픽 팀에 대한 문제는 남한에게는 거의 완전히 부정적이다. 남한 정부는 로젠에서 평양 대표들과 만나도록 강요받았으며, 심하게 훼손된 형식의 국기를 받아들이도록 (명백히) 강요당했으며, 현재 1964년 올림픽에 단일팀으로 참여하거나 북한을 단독적으로 허용해야 하는 입장에 놓이게 되었다. 많은 부분 IOC에 대한 북한의 로비의 결과이지만, 남한의 우왕좌왕하는 외교로도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으로 뒤틀린 것이었으며, 이는 분명히 외무부와 KOC 간의 협조와 협력의 부재임을 상징한다.
그러나 남한과 미국에 있어 더욱 중요한 것은 KOC의 특정 구성원에 대한 매우 모호한 사고방식이다. 북한과의 향후 접촉과 선수 선발을 남한 땅에서 허용한다는 생각은 심각한 예지의 부족을 말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교섭은 1960년 올림픽에서 한국 대표가 경험한 비교적 작은 문제를 훨씬 뛰어넘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격의 접촉이 허락된다면, 북한이 남한에서 선전하고 잠재적이지만 강한 한반도 통일의 감정 문제를 되살리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 기회를 가질 것이다. 평양의 선전은 남한의 경제적 불운이 북한과의 통일을 통해서만 치유될 수 있다는 지점에서 꾸준히 강조된다. 후자의 경우 집요하게, 특히 학생과 지식인과 같은 그룹과 접촉하는 기회를 열라고 압력을 구사할 것이다. 최근 몇 년 동안 다양한 통일 계획이 이들 그룹을 끌어들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330-1) M-130-63 Problems of Korean Olympic Negotiations (기록물명), RG 306 Records of the U.S. Information Agency (문서군명), Research Memoranda, 1963-82 (시리즈명). 국립중앙도서관 해외기록물. pp. 1-3.
미연방 정보국 United States Information Agency 엠블럼, 독립기관으로 2000년에 미 국무부로 기능이 이관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