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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대택 Sep 06. 2020

034 브런디지의 마지막
부탁까지 뿌리친 KOC

회담 결렬에 매우 실망한 이상백과 브런디지 (63.7-8)


1963년 5월 16일부터 6월 1일까지 열린 홍콩 남북 체육회담에서 별반 결론을 내리지 못한 남북한 양측은 7월 26일 다시 홍콩에서 만나기로 합의합니다.


남한은 홍콩에서의 첫 번째 회담에 만족하면서 비교적 성공적인 회담이었던 것으로 평가합니다. 그러나 IOC는 기대와 달리 별 소득 없이 끝난 첫 번째 홍콩 회담이 남한의 소극적이고 불성실한 태도에 기인한 것으로 바라봅니다. 미국 정보국 US Information Agency 또한 회담이 진행되는 기간 중에 이미 북한의 한판승으로 평가하게 됩니다. 


남한과 북한은 홍콩에서의 두 번째 회담 준비에 들어갑니다. 이미 첫 번째 회담이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한 남한은 두 번째 회담에서도 유사한 전략을 구사할 것을 계획합니다. 빌미를 잡아 회담을 결렬시키고 그 책임을 북한에 돌리는 것이었죠. 


이번 글은 두 번째 회담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어떠한 일들이 있었는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첫 번째 홍콩 회담과 같은 전략으로 회담 결렬을 유도하려는 남한 



국립외교원 자료를 찾아보면 ‘1964년도 동경올림픽 남·북단일팀 구성문제. 1962-63 전 4권’이라는 제목의 파일이 있습니다. 제목대로 4 묶음의 자료인데, 각각 1962, 63.1-4, 63.5-6, 63.9-12로 시간 순으로 정리된 파일입니다. 보시다시피 63년 7, 8월의 자료는 없는 상태죠. 


그런데 외교부 홈페이지, 외교사료관에서 ‘대한민국외교사료해제집 대한민국정책브리핑 1963’을 보면 이 주제의 묶음 단위가 ‘전 5권’으로 명시되어 있고, 위 파일에서 빠진 7-8월 해당 자료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34-1). 물론 요약이라 구체적인 내용은 아니라도 대략적인 줄거리를 연결하는 것에는 무리가 없어 보입니다. 해제집은 다음과 같이 7-8월의 진행 내용을 정리합니다. 


먼저 두 번째 회담에 임하는 대표단에게 부과된 주요 훈령은 다음과 같습니다. 단일팀 구성에 성의를 표하면서도 북한의 의도를 파악하고 분쇄하여 남한만의 단독 출전 명분을 마련하도록 회담을 이끌 것, 회담의 결렬 책임이 북한에 있게 되는 순간 즉각 회담을 결렬시킬 것, 회담이 시작하기 전에, 첫 번째 홍콩 회담 후 북한 측 대표 김기수가 평양방송과 노동신문을 통해 남한을 비난하는 허위사실을 유포시킨 것을 지적할 것, 그리고 이에 대한 공개 사과가 없다면 이번 회담을 거부하겠다고 강조할 것 등이었습니다. 


이러한 회담 전략을 짠 남한은 북한 측 대표 김기수가 두 번째 홍콩 회담이 시작하기 하루 전인 7월 25일에 홍콩에 도착하여 발표한 성명에서, 시종일관 거짓말을 되풀이하고 National Union 이란 단어를 사용하며 사과도 없이 회담의 성패가 남한에 달려있다는 등의 정치적 선전을 지속하는 것 등을 지적하면서 회담의 불필요성을 통고한 후 회담을 결렬시킵니다. 홍콩에 도착한 남한은 아예 7월 26일 예정된 회담에 참석하지 않습니다. 


남한 정부는 회담을 결렬시키고 후속적인 외교 활동에 들어갑니다. 외무부는 1963년 8월 2일 전 재외공관장에게 7.26 홍콩회담의 경위 및 활동을 시달하고 10월 중순에 있을 IOC 총회에서 단일팀 구성 문제가 결정될 것이기에, 이 기회에 북한의 공작 전개가 확실시되니 아마추어 정신을 위배하는 북한의 체육인과 올림픽위원회를 믿을 수 없다는 우리의 입장을 주재국에 적극 이해시킬 것을 지시합니다. 


이상이 해제집에서 정리한 1963년 7-8월의 남한 정부 대응과 활동입니다. 


결국 남한은 회담 불참과 함께 회담 결렬을 선언하고 더 이상의 회담이나 협상의 여지를 남기지 않게 됩니다. 남한에게 두 번째 회담 불참은 앞으로도 남북의 만남이 없을 것임을 확인시키는 신호였습니다. 



주한 미국 대사관이 파악하고 있는 남한 정부의 전략그리고 국무부의 지원 요청 



남한의 두 번째 홍콩 회담 결렬은 주한 미국 대사관의 관심과 지원으로 가능해집니다. 


1963년 7월 8일, 주한 미국 대사관 관료는 지연태와 이효와 같이 장시간 대화한 내용을 정리하여 보고합니다 (34-2). 이 대화에서 미국 대사관은 단일팀 문제에 대한 한국 정부의 앞으로의 교섭전략을 알게 됩니다. 보고서에 의하면 현재까지의 정보를 근거로, 한국은 독일 사례를 만족스러워하지 않으며, 남한 정부에 미국 국무부가 더 많은 자료를 제공해야만 불리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을 것이며, 외무부와 KOC가 이 문제에 대해 보다 더 접근된 합의를 이룬 것으로 보이며, 다른 대안이 없다면 대사관으로서는 다른 방법을 권장하지 못할 것이라는 의견을 남깁니다. 


외무부로서는 두 번째 회담도 첫 번째와 같이 중요한 결정에 합의하지 않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고 (34-3), 동시에 회담 결렬로 인해 IOC로부터 남한의 위상이 손상되지 않기를 기대합니다 (34-4). 


그리고 7월 26일 로젠 회담을 위해 출국하는 남한 대표단의 면모에 대해 보고합니다. 7월 23일 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적습니다 (34-5). 


‘홍콩 올림픽 회담 남한 대표가 7월 23일 떠남. 대표단은 KOC 부회장 황엽 장군, 대한체육회 김동무, 민용식 (대령), 주석범, 남경근임. 황에 의하면 주석범, 남경근은 한국 정보국 요원이라 함. 대사관 관리에 의하면 황은 남측이 단일팀을 완벽하게 조정할 수 없다면 남측의 전략은 교섭을 결렬시키는 것이라고 반복적으로 말했다 함. 황과 지연태에 의하면 남한 대표단의 전술로는 최근 북한 언론과 방송에 근거하여 북측이 정치적이라는 점을 부각한다는 것임.’


두 번째 홍콩 남북 체육회담으로 향하는 남한 대표단은 이미 결렬로 회담을 결정내고 떠났던 것입니다. 그리고 회담은 결렬됩니다. 


이어 남한 정부는 미국 정부의 도움을 요청합니다. 1963년 8월 2일 주한 미국 대사관의 보고서가 이를 보여줍니다 (34-6). 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적습니다. 


‘8월 1일 대사관 관계자는 외무부 국제기구과 지연태 과장과 올림픽 교섭에 대해 논의함. 지연태는 홍콩 회담의 결렬을 설명함. 한국 정부의 앞으로의 전략은 도쿄올림픽에 남한만의 참석을 위한 IOC 투표의 우위를 위해 유럽과 미국에 대표단을 파견하겠다는 것임. 북한의 최근 비무장지대 도발에 대한 것을 강조한다 함. 이것이 단일팀을 구성하는데 어려운 점이라는 것을 말하려 한다 함. 지연태는 미 국무부가 미국올림픽위원회 USOC 지원을 요청하기를 바라고 있음.’


이 보고서는 말미에 대사관의 의견을 적습니다. ‘지연태의 요청처럼 국무부가 USOC를 설득하는 것이 10월에 있을 IOC 총회에서 남한을 지원하는 좋은 시작점인 것으로 보임.’


두 번째 홍콩 회담의 결렬과 이후 미국 국무성의 도움으로 USOC의 지원을 요청하는 장면입니다.  



단일팀 구성과 남북회담에 대한 이상백과 브런디지의 아쉬움 



그러나 주한 미국 대사관이 파악했다는 남한 정부와 KOC와의 단일팀 견해가 접근되었다는 정보는 최소한 이상백의 의견과는 달랐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상백은 남한 정부의 대응 방식과는 선이 달랐습니다. 이상백이 7월 20일, 그러니까 두 번째 홍콩회담이 있기 며칠 전 브런디지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의 생각이 엿보입니다  (34-7). 이상백은 다음과 같이 적습니다. 


‘최근 나는 KOC에서 맡았던 자리를 자발적으로 내려놨음. 두고 볼 일이지만 KOC 젊은 위원들이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임. 월터 정 또한 수년 동안 성공적으로 수행한 명예사무총장 자리에서 사임하고 위원회와의 모든 관계를 끊었음. 그가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음. 나중에 개인적으로 편지하겠음.’


그리고 두 번째 홍콩회담이 결렬된 후 브런디지는 8월 6일 이상백에게 답신합니다 (34-8). 


‘편지 잘 받았음. KOC에서 물러났다니 아쉬움. 월터 정의 사임이 영구적이지 않기를 바람. 나는 KOC가 당신과 월터 정의 오랜 올림픽 업무 경험에서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확신함. 홍콩 회담이 결렬되었다고 들었음. 좋지 않은 소식이며, 대표단은 이러한 회담 결과로 인해 북한이 인스브룩 Innsbruck과 도쿄 올림픽에 독립적으로 나갈 것임을 알고 있는지 모르겠음.’


이 두 편지 내용은 이상백과 브런디지의 입장을 잘 보여줍니다. 이상백과 브런디지는 최소한 상대적으로 남북단일팀 구성과 올림픽에 대한 확고한 입장을 취했습니다. 이상백은 회담을 결렬로 이끌려는 남한 정부나 미국의 결심에 대해 불편했을 것이고, 이러한 상황을 극복할 수 없음을 알았기에 사임했을 것이죠. 브런디지도 단일팀이 구성되지 못하는 경우 북한이 독립적으로 나갈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을 것이고, 여하튼 남한과 KOC가 이를 해결하는 지혜를 찾기를 기대했을 것입니다. 



남한 정부와 KOC 지원에 나선 미국 국무부 



1963년 8월 9일, KOC는 IOC로부터 오는 8월 19일 남북한 대표와 브런디지 IOC 위원장, 3자 간의 만남을 제안하니 로젠으로 오라는 전신을 받습니다. 이 전신과 관련하여 8월 10일, 주한 미국 대사관은 국무부에 다음과 같이 전신합니다 (34-9). 


‘KOC와 외무부는 답장을 고려하고 있음. KOC 회장에 의하면, 남한 정부는 북한과 만나는 것을 꺼려한다 함. 마이어를 통해 북한 부재한 상태에서 브런디지와 만나는 것을 타진할지 고려  중이라 함. 국무부 판단에 브런디지가 남한에 유리한 회의로 유도할 것이 확실치 않다면 이번 회의를 취소하거나 연기하는 것으로 대사관은 권장하고자 함. 남한은 이번 가을 총회에서 유리한 결정을 얻기 위한 모든 기초 작업이 제공되어야 함. 현재 남한은 도쿄올림픽조직위원회로부터 초청장을 받은 상태이며 북한은 10월 총회를 기다리고 있음.’


남한은 로젠에 대표단을 보냅니다. 그 내용은 8월 13일 주한 미국 대사관이 작성한 보고서에서 나타납니다 (34-10). 


‘지연태 국제기구과장이 8월 13일 대사관에 알려오길, 남한은 3명의 대표단을 보내며 IOC 대표를 만나되 북한 대표와는 어떠한 교섭도 하지 않을 것이라 함. 북한이 올림픽 문제에 정치를 끌어들임으로써 교섭이 불가능함을 강조한다고 함. 북한이 남한 영토에서 한국과 미국인을 살상하는 만행으로도 협상이 어려움을 지적할 것이라 함. 지 과장에 의하면, 잠정 대표는 황엽 소장이자 KOC 부회장, 조동채 KOC 위원, 한 명의 정보부 요원이라 함.’


이어 대사관은 다음과 같은 의견을 개진합니다. 


‘대사관은 남한 정부가 브런디지와 오토 마이어를 앞에 두고 북한과 협상하는 것을 피하는 선택밖에 없음을 믿고 있음. 두 사람은 단일팀에 완고하고 북한의 단일팀 욕구를 알기에 동등한 입장에서의 비정치적 문제 해결에 기대를 걸고 있음. 브런디지를 설득하는데 한계가 있음을 이해하나 로젠 회의의 불리함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북한이 정치적인 동기가 있음을 설득해야 함. 북한의 비무장지대 살인과 UN 헬리콥터 파일럿을 돌려보내지 않은 것을 강조해야 함. 현재 브런디지가 유럽에 있다 하니, 제네바 대표부 Geneva Mission를 통해 접근해야 할 것임.’ 


로젠에서 브런디지와 오토 마이어를 만난 남한 대표단은 8월 말까지 공식적인 KOC의 입장을 정리해서 알려달라는 브런디지의 요청을 받고 귀국합니다. 


1963년 8월 26일 대사관은 다음과 같은 보고서를 국무부에 발송합니다 (34-11). 


‘남한 정부는 지속적으로 단일팀을 반대해 왔고, 동등 또는 이 이하의 북한과의 단일팀은 실익이 없음을 미국도 확신했음. 남한은 북한을 지구에서 위법적 정권으로 여기며, 이것이 단일팀에 협조 의지가 없는 명확한 한 가지 이유임. (중략) 올림픽 문제를 오랜 기간 고민한 대사관은 남한에게 단일팀 우선 관점이 유지되는 동안 교섭을 계속하라고 종용했음. 이 접근으로 우리는 국무부와 같은 의견이었으며, 단일팀에서 남한이 주도권을 가진 상태라면 교섭을 지지했음. 국무부도 그러한 팀 구성이 어렵다면 독립된 팀이 유일한 해법임을 알고 있었음. 남한이 보기에 단일팀은 문제 해결 방법이라기보다 최악의 가능성임. 남은 문제는 북한의 개별적 참가 아니면 참가를 못 시키는 것임. 후자를 위해서는 남한은 IOC와 브런디지, 마이어의 결정을 변화시키는 압력을 가해야 한다는 것임.’ 



마지막까지 단일팀을 살려 보고자 한 브런디지 



이상백에게 편지를 쓴 8월 6일 같은 날, 브런디지는 오토 마이어를 참조로, 이효 KOC 위원장 앞으로 편지합니다 (34-12). 편지는 결렬된 홍콩 회담을 다시 한번 재고해 달라는 마지막 부탁이었습니다. 다음과 같습니다. 


‘홍콩에서 북한올림픽위원회와의 만남이 결실 없었음을 알리는 당신 연락을 받았음. 우리는 이 결과가 아쉬움. 이 결과로 인해 인스부룩과 도쿄에 북한이 독립적으로 출전할 수 있음을 알리라 생각함. 그러니 다시 한번 재고를 심히 바람. 유사한 어려움들이 있었지만, 독일은 네 번이나 단일팀을 구성했었고 선수단 분위기도 좋았음. 문제의 발단은 스포츠인이 아닌 정치인들임. 그러니 단일팀의 가치를 포기하지 말기 바람. 이는 한국민 전체의 최상의 관심일 것이라 생각함.’


8월 8일 오토 마이어는 북한올림픽위원회에 전신합니다 (34-13). 전신은 다음과 같이 적습니다. 


‘IOC는 남북단일팀을 주장하고 있음. 브런디지 회장은 8월 19일 로젠에서 양측과 만나기를 요청함. 확인 바람.’


이러한 브런디지의 요청에 남북 양측은 로젠으로 향합니다. 그러나 로젠으로 향한 남한 측 대표는 만남 전에 개별적으로 브런디지를 만나고 정작 삼자의 만남에는 불참합니다. 


결국 8월 19일, 로젠 펠리스 호텔 Lausanne Palace Hotel에서는 브런디지와 북한의 김기수 부위원장을 단장으로 하는 세 명의 대표단만 만납니다. 만남 후 김기수는 당일 회의록을 작성하여 브런디지에 제출합니다 (34-14). 회의록은 브런디지와 김기수의 대화 형식으로 정리합니다. 


이 보고서에는 남한이 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것, 전날 남한 대표들이 브런디지를 만나 자신들이 회의 참석 승인을 받지 않은 상태라 회의에 참석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로젠에 머물 이유도 없기에 돌아간다는 것, 떠나면서 8월 31일까지 문서로 단일팀 구성을 위한 대화를 재개할 의향을 말하겠다는 것 등으로 브런디지의 말을 기록합니다. 브런디지는 남한이 여론을 두려워하니 이를 감안해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적습니다. 김기수는, 반대로, 년 초부터 남한 언론에서는 단일팀을 지지하기도 한다며, 1963년 1월 26일 자 부산일보 사설, 4월 23일 자 남북의 로젠 회의에 대한 비판, 5월 28일 자 홍콩회담에 대한 비판을 소개했다는 것, 브런디지가 8월 31일까지 기다렸다가 필요한 대처를 할 것이라는 내용을 적습니다. 


로젠에서 브런디지를 만난 남한 대표단이 설명한 것과 같이 이효 KOC 위원장은 8월 27일 오토 마이어를 수신으로 IOC에게 2쪽의 편지로 KOC 입장을 설명합니다 (34-15). 


편지에서 이효는 북한의 보고서가 사실을 왜곡하고 있기에 대화를 계속 진행하는 것에 문제가 발생했으며, 우리의 단일팀 바람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정치적 목적과 선동으로 올림픽 정신이 훼손됨을 적습니다. 이렇게 상한 감정이 식기까지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으며, 북한의 공식적 사과가 필요함도 적습니다. 한반도가 전쟁을 경험했기에 시간이 필요하고 독일과 경우가 다름도 설명하면서, 여전히 단일팀에 대해 생각하고 있음을 강조합니다. 그러면서 IOC가 시간을 더 준다면 이후 다시 분위기가 형성되겠지만 시간이 허용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희망이 종료될 것임도 설명합니다. 이는 IOC 총회에서의 논의 안건으로 상정될 수 있을 것이며, 이 경우 누가 단일팀에 대해 더 진지할 것인지 판단이 가능할 것이라고도 적습니다. 마지막으로 이효는 브런디지의 한국 방문을 요청합니다. 


한 마디로, 더 이상 만날 분위기가 아니며 시간이 필요하니 IOC와 브런디지의 남북 재회를 거절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이효의 편지를 받은 브런디지는 9월 9일, 아르망 마사르 Armand Massard (프랑스 위원, IOC 부위원장), 엑스터 후작 Marquess of Exeter (영국 위원, IOC 부위원장), 오토 마이어 (IOC 사무총장), 모하메드 타허 Mohammed Taher (이집트 위원)를 참조로 KOC에 답장합니다 (34-16). 여기서 참조 대상들은 남한에 호의적이고 브런디지의 측근들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당신의 8월 27일 편지를 받았고 솔직히 말해 우리는 매우 불만스러움. 지난달 로젠에서 당신 대표단에게 장시간 조심히 말씀드린 바와 같이 겨울 올림픽 팀은 11월까지 구성되어야 함. 단일팀 구성은 2-3개월이 소요됨. 지연은 어려움. KOC는 단일팀 원칙에 동의하면서 행동하지 않았음. 반대로 북한은 매우 협조적이었고 IOC의 모든 제안을 받아들였음. 한반도에 현안이 존재함을 감안해도 우리는 단일팀이 한국민 전체의 관심임을 진지하고 믿고 있음. 우리의 행동은 수년간 지연되었던 것이라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음. 단일팀을 구성하던 아니던, 한다면 지금 NOW 시작해야 함. 당신은 다음 달 총회까지 이 문제를 연기하기를 요청하고 있음. 그럴 수 없음. 이 사안은 이미 수차례 총회에서 다루어졌었고, KOC의 협조가 없으므로, 10월 총회에서 북한만을 인준하는 안건이 상정되었음을 알릴 수밖에 없음. 당신은 나의 태도를 잘 알고 있을 것이며 지금까지 진행된 모든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임. 이 상황은 이상백, 월터 정, 그 외 다른 대표들에게 수차례 조심스레 설명되었던 것임. 나는 더 이상 할 수 없음. 불쾌한 결과에 대한 책임은 모두 당신들의 것임.’


브런디지의 이러한 강력하고 직설적이며 절실한 표현의 편지를, 이 글을 쓰는 저는 지금까지 본 적이 없습니다. 



남한의 불성실한 태도와 단일팀 구성의 의지를 비난하는 북한 



남한과 KOC가 두 번째 홍콩 회담에 불참하고, 브런디지가 요청한 삼자 간의 로젠 만남도 불참하는 사이, 그리고 이를 두고 브런디지와 KOC가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북한은 자신들이 임하는 회담에서의 성실성과 남한의 태도를 IOC에 알립니다. 


북한은 그간 남북 간의 회담 진행 경과보고와 KOC의 단일팀 논의 태도를 7 쪽에 걸친 장문의 글로 IOC에 제출합니다 (34-17). 내용은 남한의 여론이 단일팀을 지지하는 경우도 있으며, 회담에 임하는 남한의 태도가 불성실했던 사례, 언론을 향한 사실 왜곡의 사례, 결렬된 두 번째 회담이 사전에 남한 정부와 이미 결론이 내려진 상태였다는 것, 남한이 단일팀을 지연시키며 정치적 목적을 추구하면서 IOC 정신을 위배하고 있다는 등의 내용이었습니다. 


북한은 바덴바덴 총회에서 한국 질문에 대한 결론이 날 것에 대비합니다. 그리고 1963년 8월, ‘남북단일팀 구성 관련 현안 타결을 위한 북한올림픽위원회의 제안’이라는 제목의 3쪽 자리 제안서를 IOC에 보냅니다 (34-18). IOC 총회로 제안하는 단일팀 구성에 대한 북한의 입장인 것입니다. 


이 제안서에서 북한올림픽위원회는 여전히 단일팀에 대한 의지를 표명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남한과 합의된 사항과 합의되지 못한 사항을 적습니다. 북한은 앞으로 단일팀을 구성하는데 필요한 급박한 일정 제안을 합니다. 


1963년 9월 6일 오토 마이어는 김기수에게 편지합니다 (34-19). 오토 마이어는 최근, 8월 27일, KOC가 브런디지에게 보낸 편지를 언급합니다. 그러면서 단일팀 구성이 결렬되었고 새 협상이 있기 전까지 KOC가 시간이 필요함을 요구했다고 적습니다. 따라서 10월에 바덴바덴 Baden-Baden에서 있을 총회에서 이 문제가 상정되어 결정될 것이라 알립니다. 



입장 정리가 모두 완료된 KOC, IOC, 북한올림픽위원회 



이로써, 남한은 북한과 함께 단일팀으로 나갈 수 없다는 애초의 목표를 남북한 회담 결렬이라는 형태로 달성합니다. 이는 1963년 8월 27일 편지로 완결합니다. 


브런디지는 마지막까지 남한 측을 설득하려 했으나 남한의 8월 27일 편지를 마지막으로 이러한 노력이 더 이상 무의미함을 결론짓습니다. 브런디지가 KOC에 보내는, 그리고 자신들의 측근들에 공유했던 9월 9일 편지가 이를 확인합니다. 


북한 측은 단일팀을 끝까지 기다린다는 입장을 취함으로써 조만간 10월에 있을 바덴바덴 총회에서의 명분을 얻습니다. 오토 마이어의 9월 6일 편지가 이를 확인해 줍니다. 


이로써 바덴바덴으로 향하는 삼자의 입장은 모두 완료됩니다. 이제 총회에서의 결정만이 남게 됩니다. 








인용자료



(34-1) 외교부, 외교사료관. [대한민국외교사료해제집 대한민국정책브리핑 1963] 63-166 1964년도 동경올림픽 남북한 단일팀 구성문제, 전5권 v.4 1963.7-8. 생산년도, 1962-1963. 생산과, 국제기구과. p. 173.

http://diplomaticarchives.mofa.go.kr/dev/search_open_docus.do


(34-2) 600.3 Amusement Sports, 1963 (기록물명), RG 84 Records of the Foreign Service Posts of the Department of State, 1788-1964 (문서군명), Korea, Seoul Embassy, Classified General Records, 1952-63 (시리즈명), 국립중앙도서관 해외기록물, pp. 45-48. 


(34-3) 600.3 Amusement Sports, 1963 (기록물명), RG 84 Records of the Foreign Service Posts of the Department of State, 1788-1964 (문서군명), Korea, Seoul Embassy, Classified General Records, 1952-63 (시리즈명), 국립중앙도서관 해외기록물, p. 49. 


(34-4) 600.3 Amusement Sports, 1963 (기록물명), RG 84 Records of the Foreign Service Posts of the Department of State, 1788-1964 (문서군명), Korea, Seoul Embassy, Classified General Records, 1952-63 (시리즈명), 국립중앙도서관 해외기록물, p. 44. 


(34-5) 600.3 Amusement Sports, 1963 (기록물명), RG 84 Records of the Foreign Service Posts of the Department of State, 1788-1964 (문서군명), Korea, Seoul Embassy, Classified General Records, 1952-63 (시리즈명), 국립중앙도서관 해외기록물, pp. 42-43. 


(34-6) 600.3 Amusement Sports, 1963 (기록물명), RG 84 Records of the Foreign Service Posts of the Department of State, 1788-1964 (문서군명), Korea, Seoul Embassy, Classified General Records, 1952-63 (시리즈명), 국립중앙도서관 해외기록물, pp. 40-41.


(34-7) 이상백이 브런디지에게 보내는 편지 (1963. 7. 2.) Brundage Collection, Lee, Dr. Sang Beck, 1946-1966, Olympic Studies Center, 로젠, 스위스. 


(34-8) 브런디지가 이상백에게 보내는 편지 (1963. 8. 6.) Brundage Collection, Lee, Dr. Sang Beck, 1946-1966, Olympic Studies Center, 로젠, 스위스. 


(34-9) 600.3 Amusement Sports, 1963 (기록물명), RG 84 Records of the Foreign Service Posts of the Department of State, 1788-1964 (문서군명), Korea, Seoul Embassy, Classified General Records, 1952-63 (시리즈명), 국립중앙도서관 해외기록물, pp. 38-39.


(34-10) 600.3 Amusement Sports, 1963 (기록물명), RG 84 Records of the Foreign Service Posts of the Department of State, 1788-1964 (문서군명), Korea, Seoul Embassy, Classified General Records, 1952-63 (시리즈명), 국립중앙도서관 해외기록물, pp. 36-37. 


(34-11) 600.3 Amusement Sports, 1963 (기록물명), RG 84 Records of the Foreign Service Posts of the Department of State, 1788-1964 (문서군명), Korea, Seoul Embassy, Classified General Records, 1952-63 (시리즈명), 국립중앙도서관 해외기록물, pp. 27-29. 


(34-12) 브런디지가 KOC 이효 위원장에게 보내는 편지 (1963. 8. 6.) 600.3 Amusement Sports, 1963; Foreign Service Posts of the Department of State 1963 (기록물명), RG 84 Records of the Foreign Service Posts of the Department of State, 1788-1964 (문서군명), Korea, Seoul Embassy, General Records, 1953-55 (시리즈명), 국립중앙도서관 해외기록물, p. 3. 


(34-13) 오토 마이어가 북한올림픽위원회에 보낸 전신 (1963. 8. 8.) Brundage Collection, North Korea Olympic Committee, Olympic Studies Center, 로젠, 스위스. 


(34-14) 김기수가 브런디지에게 보낸 회의록 (1963. 8. 19.) Brundage Collection, North Korea Olympic Committee, Olympic Studies Center, 로젠, 스위스. 


(34-15) 이효가 오토 마이어에게 보내는 편지 (1963. 8. 27.) 600.3 Amusement Sports, 1963; Foreign Service Posts of the Department of State 1963 (기록물명), RG 84 Records of the Foreign Service Posts of the Department of State, 1788-1964 (문서군명), Korea, Seoul Embassy, General Records, 1953-55 (시리즈명), 국립중앙도서관 해외기록물, pp. 4-5. 


(34-16) 브런디지가 KOC에 보내는 편지 (1963. 9. 9.) 600.3 Amusement Sports, 1963; Foreign Service Posts of the Department of State 1963 (기록물명), RG 84 Records of the Foreign Service Posts of the Department of State, 1788-1964 (문서군명), Korea, Seoul Embassy, General Records, 1953-55 (시리즈명), 국립중앙도서관 해외기록물, p. 1. 


(34-17) 북한올림픽위원회가 IOC에 보낸 보고서 (1963. 8.) Brundage Collection, North Korea Olympic Committee, Olympic Studies Center, 로젠, 스위스. 


(34-18) ‘남북단일팀 구성 관련 현안 타결을 위한 북한올림픽위원회의 제안 Proposals of the Delegation of the Olympic Committee of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for the settlement of the practical questions concerning the formation of the UNITED KOREAN TEAM’ (1963. 9.) Brundage Collection, North Korea Olympic Committee, Olympic Studies Center, 로젠, 스위스. 


(34-19) 오토 마이어가 김기수에 보내는 편지 (1963. 9. 6.) Brundage Collection, North Korea Olympic Committee, Olympic Studies Center, 로젠, 스위스. 



[사진 설명]



스위스 로젠 팰리스 호텔 Lausanne Palace Hotel, 1963년 7월 26일 홍콩에서 예정된 두 번째 남북한 회담이 남한의 불참으로 무산되자, 브런디지 IOC 위원장이 8월 19일 양측에게 만나자고 요청한 장소. 이 삼자의 만남 또한 남한은 불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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