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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대택 Sep 10. 2020

035 공식적으로 양분된
한반도의 두 올림픽위원회

47.6.20-63.10.19. 16년 4개월, 그리고 한국문제의 종결


1963년 7월 26일 홍콩에서의 두 번째 남북 회담을 앞두고 남한 대표단은 북한의 남한에 대한 명예 훼손을 빌미로 회담 무산의 책임을 북한으로 돌리고 회담에 불참합니다. 


홍콩에서의 회담 결과를 전해 들은 브런디지 IOC 위원장은 1963년 8월 19일 로젠에서 KOC, IOC, 북한올림픽위원회, 이렇게 삼자가 만날 것을 제안합니다. 


스위스로 달려간 KOC 대표단은 약속된 19일 하루 전날, 브런디지와 개별적으로 접촉하여 자신들이 본국으로부터 회담의 대표성을 부여받지 못했기에 이번 만남에 참석할 수 없음을 말하고 떠납니다. 브런디지는 여하튼 8월 말까지 남한 측의 공식적 입장을 알려 달라 합니다. 


KOC는 8월 27일, 시간을 더 달라며, 회담의 연기 필요성을 설명하는 편지를 보냅니다. 


브런디지는 9월 9일, 더 이상의 시간 여유가 없으며, 이번 단일팀 구성 결렬의 모든 책임은 KOC에 있음과 10월에 IOC 총회에서 결정될 사안에 책임져야 함을 알립니다. 


이제 KOC, IOC, 북한올림픽위원회는 10월에 바덴바덴에서 있을 IOC 총회만을 기다리게 됩니다. 



남한을 제외한 북한만의 올림픽 참가라는 IOC 총회 결정을 막고자 했던 남한 정부



브런디지가 삼자 회동을 요청한 8월 19일, 남한 측은 단일팀 구성을 포기하는 것으로 결론 내립니다. 그리고 지체 없이 후속적인 외교활동에 돌입합니다. 


1963년 9월 5일 외무부 장관은 32개 대사관과 영사관에 ‘7.26 홍콩회담 결렬 후의 전한단일팀구성문제 진전사항’이라는 제목의 활동 지시 사항을 발송합니다 (35-1). 7월 26일 2차 홍콩회담 결렬 이후 진전사항을 알리니 이를 참고하여 활동 지시사항을 활발히 전개하라는 내용입니다. 아래에 그 내용을 그대로 적어 봅니다. 


‘1. 2차 홍콩회담 결렬 이후 IOC는 북한 올림픽위원회로부터의 보고를 받은 후 KOC에 전한단일팀 구성을 종용하여옴과 동시에 8. 19. 로잔에서 브런디지 IOC 위원장과 같이 남북한 올림픽위원회의 대표가 동석하여 전한단일팀 구성 문제를 토의도록 제의하여왔음.  2. 이와 같은 제의에 대하여 KOC에서는 황엽 KOC 부위원장, 조동채, ○○○을 로잔에 파견하여 8.17과 8.18 양일에 각각 오토 마이어 IOC 사무국장과 브런디지 IOC 위원장과 면접, 2차 홍콩회담이 아마추어 스포츠 정신을 망각하고 스포츠를 정치목적 달성의 수단으로 이용하며 선전과 허위 날조를 일삼는 북괴 측의 언사로 인한 것이며, 공산당과의 전한단일팀 구성을 반대하는 악화된 국민감정과 언론을 완화시키기 위해선 6개월 또는 1년의 시간적 냉각기가 필요하며 동 문제의 중요성을 고려하여 오는 10월의 IOC 총회에서 신중히 고려하고 북괴의 처사에 대하여 IOC에서 응분의 조치가 취해짐으로서만 전한단일팀 구성이 가능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였음. 3. 브런디지 IOC 위원장은 전한단일팀 구성에 KOC 가 반대할 시는 북괴의 독립 출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과 북괴의 독립 출전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전한단일팀을 구성해야 하고 또한 이것이 한국 국민을 위한 최선의 이익이 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이상의 시간적 여유를 허용할 수 없으며 전한단일팀 구성 여부에 대한 KOC의 최종적인 태도를 63. 8. 31까지 회신토록 KOC 대표에게 요청하였음. 4. 상기와 같이 아 대표단은 8.19 회담에는 참가하지 않고 동 회담 개최 전에 사전 교섭을 통해 KOC의 태도를 밝힌 후 귀국하였든 것이며, 단일팀 구성 여부에 대한 KOC의 태도를 63. 8. 31까지 IOC에 회신토록 요구받은데 대하여 KOC에서는 별첨과 같은 서한을 IOC에 발송함으로써 KOC의 입장을 명백히 하였음. 5. 다년간에 걸친 IOC의 이념인 전한단일팀 구성을 실현하려던 IOC의 노력이 실패로 돌아간 만큼 IOC는 오는 10월 독일의 바덴바덴에서 개최되는 IOC 총회에서 한국문제에 대하여 최종적인 결정을 내릴 것이며, IOC에서는 현재 동 문제에 대하여 애매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 같이 관측되며 총회에서의 결정 방향을 현재로서 예측키 곤란함. 특히 IOC의 결정사항을 무조건 준수하며 전한단일팀 구성을 주장하여 전단 단일팀 구성에 있어서 KOC가 무성의하다는 인상을 IOC 위원들에게 주어 그들의 명분을 세우려는 북괴의 술책과 아울러 공산국가의 IOC 위원들이 오는 10월 총회에서 KOC에 불리한 술책을 책동할 것이 예측되며 이와 같은 공산 측의 책동을 봉쇄하기 위하여서는 IOC 위원들에게 사전에 전한단일팀 구성을 위해 KOC가 취한 노력 및 성의와 북괴의 처사를 주지 시켜야 할 것이 요망됨.’


이러한 지시 이후에 외무부 장관은 주미대사를 통해 미국 국무성과 미국올림픽위원회 USOC가 KOC를 지지하고 도와줄 것을 요청하도록 지시합니다 (35-2, 35-3). 남한 측으로서는 10월에 열릴 IOC 총회에서 남한을 제외한 북한만이 한반도를 대표하여 올림픽에 출전하게 되는 최악의 상황은 막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9월 9일 브런디지의 편지에서 이미 그러한 가능성이 언급되었기 때문이었죠. 


외무부와 주한 미국 대사관도 이를 주시합니다. 9월 18일 주한 미국 대사관과 지연태 과장 간의 면담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35-4). 


‘외무부 지연태 과장이 전하길, 9월 18일 국무위원들이 브런디지 편지에 대해 논의했고, 결론에 이르지 못함. “한 정부 관료”는 왜 미국인인 브런디지가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는지 이해를 못했다고 했음. 총괄적으로 남한이 올림픽에서 제외되는 분위기는 피해야 함을 동의했음. 이것이 북한과의 새로운 흥정의 시작일지는 아직 결정되지 못함. 지 과장은 남한이 미국에 대표단을 보낼 것으로 보인다고 함.’


9월 20일 주 제네바 공사는 지난 17일 자신의 부임 인사를 위해 오토 마이어를 만났고, 대화 내용을 외무부 장관에게 보고합니다 (35-5). 내용은 이렇습니다. 


‘오토 마이어는 브런디지와 자신은 단일팀 구성을 위해 최선을 다했으나 남한 대표단이 이를 거절했기에 사실상 남한이 교섭을 결렬시킨 것에 유감으로 생각한다고 했음. 오토 마이어 자신은 KOC 자격을 중지시키려는 의도는 없으며, 다만 각 국제경기단체들은 한반도에서 두 개의 팀을 참가시키는 것이 불가하다는 주장이며, 이는 10월 14일 바덴바덴에서 열리는 총회에서 곤란한 문제로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음. 자신은 남한이 당연 참가해야 할 것으로 보지만, 북한을 막을 수도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했음. 지난 16일 미국 대표부 깁슨 Gibson 공사가 워싱턴 당국의 훈령에 의하여 자기를 찾아와서 IOC가 KOC의 자격을 정지시킬 것인지 문의했고 절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고 함. 우리는 북한이 이번 기회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음에 더 이상의 교섭이 필요 없다는 동아일보와 한국일보의 여론 사설을 강조했음. 오토 마이어는 북한의 올림픽 참가 문제에 관하여 소련 측으로부터 강한 압력이 있다는 점도 시인하였음. 마이어는 정부 관료를 자주 만나는 것이 좋지 않다고 했음.’



브런디지를 달래야 한다



10월 바덴바덴 총회의 결정은 아마도 표결로 이루어질 것이었고, 남한과 KOC의 가장 강력한 후견인은 IOC 위원장 브런디지였으며, 동구 공산권을 위시한 북한을 지원하는 국가들의 공세는 만만치 않았습니다. 여기에 남한의 불성실하고 의도적인 정치적 단일팀 회피는 IOC는 물론 브런디지로부터도 매우 유감인 상황이 되었죠. 남한 정부와 KOC는 남한을 제외한 북한만의 올림픽 참가는 막아야 했고, 이 순간 기댈 곳은 미국과 브런디지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실망한 브런디지를 되돌릴 수 있는 사람은 이상백과 월터 정이 전부였습니다. 


이상백은 9월 19일 브런디지에게 편지합니다 (35-6). 자신이 KOC로부터 사임했다고 편지한 7월 20일 이후 꼭 두 달 만에 다시 편지한 것입니다. 편지 내용은 이렇습니다. 


‘바로 어제 (9월 18일) 이효 KOC 위원장이 당신에게 받은 편지에 대해 얘기했음. 나는 아직 순수한 마음으로 단일팀을 생각하고 있음. 이효 위원장도 단일팀 해법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당신을 만날 계획이라고 함. 그러니 그에게 도움을 주기 바람. 우리는 당신이 1946년 전경무와 많이 만난 것을 알고 있고, 그때부터 한국위원회에 개인적으로 많은 애정을 쏟았으며, 그로써 47년에 인준된 것도 잘 알고 있음. 우리의 젊은이들이 계속 아마추어 스포츠맨십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함. 월터 정도 안부를 전하고 있음.’


비록 KOC에서 물러났지만, 이효 위원장으로부터의 상황을 전해 들은 이상백은 17년 전의 일까지 들추면서 브런디지의 KOC에 대한 애착과 그간의 노력의 기억을 끄집어내려고 했을 것입니다. 


브런디지의 위상과 역할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9월 17, 18 양일간 시카고에서 열린 USOC 총회 분위기와 결과를 설명한 주미 대사의 보고서에도 엿보입니다 (35-7). 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죠. 


‘장관에게, 금일 당 대사관 직원은 국무성 당국자와 시카고에서 개최된 USOC의 결과를 검토하였는바 그 요지를 아래와 같이 보고함. 미국 국무성의 비공식 입장문 Position paper에 의하면 KOC 문제를 검토한 USOC는 KOC 입장에 극히 동정적인 반응을 보임. USOC는 바덴바덴에 참석하는 미국 대표에게 KOC 입장을 지지할 것을 지시하였다 함. 동시에 USOC는 ‘KOC should go through notions of following Brundage suggestion 브런디지의 제안을 KOC가 따라야 할 것임'이라는 의견이 강하였다고 함. (이는 특히 현재 브런디지 씨에 대하여 KOC가 비협조적이라는 인상을 준 것을 불식토록 하라는 뜻임) 국무성 당국자에 의하면 KOC가 USOC와 긴밀한 협조와 상호 연락을 유지하는 것이 극히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함. 앞으로 바덴바덴 회의에서는 남북한 어느 팀이 한국을 대표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중요 의제로서 표결에 부치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함. 브런디지 위원장은 남북한 별개 팀의 출전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시사한 바 있다고 함. 국무성 측의 의견으로서는 KOC가 브런디지 씨의 9.9 일자 서신에 대한 화답 형식으로 정중한 전문을 발송하되 그 내용은 ‘월터 정이 직접 로젠에서 만나 이야기하기 위해 서울을 출발하였으며, KOC는 브런디지 씨와 협조하여 가능한 노력을 다할 성의를 가지고 있다’ 정도로 하면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함. (북괴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은 것이 좋겠다고 함) 또한 가능하면 이상백 씨도 갈 예정이었으나 신병으로 못 가게 된 것이 유감이라는 것도 언급하면 좋을 것이라 국무성 당국자는 첨언함. 브런디지 씨와 회담 시 취할 우리 대표의 구체적인 태도는 우리 대표가 USOC 대표들과 합의한 후 결정해 주기를 바란다고 함. 국무성 당국자는 내년 출전하는 단일팀이 시간적으로 늦어져 어려우니 이번엔 KOC에 맡겨주고 다음 기회에 꼭 단일팀 형성에 노력하겠다는 다짐을 주고 동의를 얻도록 노력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음. 국무성 당국자에 의하면 IOC 회의에 나갈 미국 대표는 현재 로비 Roby와 갈랜드 Garland 두 사람이 확정되었으며, 특히 한국문제를 위해 오쓰 Orth 씨도 가도록 종용하고 있다고 함.’


이어 9월 27일 주 제네바 공사는 장관에게 보고합니다. 이 보고서는 제네바 미국 대표부 수석과 만나는 자리에서 깁슨 Gibson 공사와 나눈 의견을 적습니다 (35-8). 보고서는 미국 대표부도 내년 올림픽에 관한 한국문제에 관심이 높으며, IOC 총회가 10월 14일로 얼마 남지 않았으니 이상백 씨와 월터 정과 같은 인사가 시카고로 가서 브런디지를 만나고, 로젠에서는 오토 마이어를 만나 사전에 이해를 구하도록 하는 것이 좋다는 깁슨의 의견을 전합니다. 



외교 활동에 주력하는 남한 정부 



미국 국무부의 의견 등을 바탕으로 남한 대표단은 미국으로 출발합니다. 1963년 9월 23일 주한 미국 대사관의 보고서는 이효 KOC 위원장과 월터 정이 9월 24일 떠나 26일에 워싱턴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적습니다 (35-9). 도착하면 국무부 오쓰 씨와 일정을 위해 통화할 것이라 적습니다. 원래 가려던 이상백은 심장 문제로 이번 여정에 참여하지 못함도 적습니다. 


10월 4일, 이효 KOC 위원장과 남궁근 정보부 파견관이 제2과장과 통화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35-10). 남궁근은 다음과 같이 얘기합니다. 


‘10월 1일, 필라델피아에서 오쓰를 만났음. 모든 문제를 브런디지와 타협하라고 말했음. 낙관적인 시사가 없었음. 10월 2일, 시카고에서 브런디지 만남 (이효, 정월터, 한○○, 이재학, 남궁근). 10월 3일, 브런디지 내외와 오찬. 브런디지는 ‘완전히 오해가 풀렸으며 별개 팀 출전에 대해 확약을 받았음’ 브런디지는 총회 개최까지는 아무런 말도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였음. 브런디지는 정월터와 한○○ 양자의 방문에 아주 좋은 인상을 받았음.’


1963년 10월 7일 주미대사가 장관에게 보내는 보고서에도 이효 회장의 동선이 나타납니다 (35-11).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효 회장이 시카고에서 브런디지를 만나고 장거리 전화로 대사관과 통화함. 이 회장은 브런디지로부터 희망적인 것이 없었다고 말하고, 브런디지가 바덴바덴에서 KOC 문제를 잘 보아주겠다는 말을 했다고 함. 브런디지는 이번 미팅을 일체 비밀로 해달라고 했다고 함. 한편 양유찬 전 주미대사는 예정대로 맥아더 장군을 만나 KOC 문제를 논의한 바 맥 장군은 브런디지에게 서한을 보내 KOC 문제를 잘 부탁하겠다고 말하였다 함.’




[사진 35-1] 양유찬 주미대사 (1951-1960)



남한 정부의 외교 활동은 미국에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이에 앞서 9월 26일에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실은 내각수반에게 IOC 총회에 대한 대책이란 제목의 지시를 내립니다 (35-12). 내용은 대략 이렇습니다. 


‘1963년 9월 3일 자 IOC 위원장 브런디지 씨의 ‘한국 측이 비협조적으로 나간다면 1964년도 동경 올림픽 대회에는 북괴팀만을 인정하겠다’는 (중략) 한일 회담이 추진되고 있는 현 단계에 있어서 일본의 사회당 공산당 조총련 계열 등의 사기만을 앙양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할 북괴팀만의 동경대회 출장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 정부 여당의 입장도 심히 곤란하게 할 것임을 감안하여 다음과 같은 방안 연구 검토 강구 바람. 1) 주일대사는 일본 ‘아주마’ IOC 위원 로비, 2) 자민당 인사와 접촉 IOC 위원 로비, 3) 필요하면 한국에서 필요한 체육계 인사 파견.’


이러한 한국 대표단의 미국 내 유력인사 방문의 결과들은 주한 미국 대사관으로도 공유됩니다. 1963년 10월 8일 대사관 보고서입니다 (35-13). 


‘외무부 국제기구과장 지연태가 10월 8일 말하길, KOC 대표단이 10월 2일 브런디지를 만났다 함. 브런디지는 한국에 아쉬움을 표하며 동경올림픽에 누가 한국을 대표할지 바덴바덴에서 결정될 것이라 했다 함. 지 과장은 브런디지의 결정이 완전하지 않으나 약간 희망적이라고 함.  보고에 의하면 맥아더 장군이 브런디지에게 KOC를 지지해 달라고 브런디지에게 편지할 것이라 함. 브런디지, 오쓰, 미국올림픽위원 등 국무성 자료를 공유 바람.’



남한과 KOC를 지원하는 미국올림픽위원회 USOC 



USOC 부회장 오쓰 Franklin L. Orth는 1963년 10월 8일, 프랑스 파리 리츠 호텔 Ritz Hotel에 머물고 있는 USOC 위원인 갈랜드 Jack Garland에게 편지합니다 (35-14). 편지는 미국 국무부의 레이놀즈 G. Edward Reynolds 에게도 복사본이 보내집니다. 편지는 두 쪽의 장문입니다. 


내용은 리츠 호텔에 머물고 있는 당신에게 남한 대표단이 찾아가도록 했다는 것, 대표단에 이효 KOC 회장과 월터 정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 이상백은 심장 문제로 참석 못한다는 것, 9월 17일 시카고 USOC 총회에서 언급되었던, 남한이 어려운 입장이라는 것, 지난 기간 동안 남한의 협상이 부드럽지 못했다는 것, 바덴바덴에서 북한 팀만이 인준되는 제안이 상정되었다는 것, 아마도 이는 소련의 안드리아노프가 상정시킨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 그들이 바덴바덴에서 55 또는 60 명의 대표들을 설득하여 찬성을 이끌려고 시도할 것이라는 점을 적습니다. 


그리고 남한이 할 수 있는 두 단계를 제안합니다. 먼저, 남한이 브런디지와의 관계를 복구해야 하고, 두 번째 남한이 바덴바덴에서 소련의 제안을 물리치겠다는 희망으로 자국에 우호적인 대표들의 지원을 최대한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두 단계에서 USOC 대표단의 도움이 필요할 것임을 명시합니다. 자신이 지난주 필라델피아에서 이 회장과 월터 정과 함께 점심을 하면서 미국 대표들이 USOC로부터 남한을 지원하라는 지시를 받았음을 보증했음도 적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오쓰는 다음과 같이 적습니다. 


‘내가 이 장문의 편지를 당신에게 보내는 이유는 우리가 한국과 그들의 방어를 위해 싸운 미국인들에게 도덕적 의무가 있다고 느끼기 때문임. 나는 북한이 러시아로부터의 도움을 받는 만큼 최소한 USOC도 남한에 도움을 주어야 함을 당신이 동의할 것이라 생각함. 게다가 우리는 1964년 올림픽에서 북한이 한국을 대표하는 유일한 팀이 될 수 있다는 불리한 결정의 실질적인 영향을 생각해야만 함.’



[사진 35-2] 프랭클린 오쓰 Franklin Lewis Orth, 1963년 당시 미국올림픽위원회 USOC 부위원장, 이후 USOC 위원장, 미국총기협회 NRA 부회장.



1963년 10월 바덴바덴 IOC 총회와 ‘Korea’ ‘North Korea’로 나뉜 KOC 



이제 남북 양측 모두의 준비는 끝났습니다. 


남측은 1963년 10월 16일부터 20일간 서독의 바덴바덴에서 개최되는 IOC 총회에 참가하는 대표단에게 훈령을 시달합니다. 먼저 남한만의 출전을 제1 목표로 할 것, 만약 우리만의 단독출전이 불가능할 경우 양쪽 모두 참가하는 것까지 고려할 것, 그리고 남한을 제외한 북한만의 참가는 반드시 저지할 것이었습니다 (35-2). 


한국문제와 관련한 IOC 총회는 매우 격렬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10월 21일 대표단이 외무부 장관에게 보내는 전문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35-15).


‘19일 IOC 총회 제4일에 한국문제가 오전 중에 토의되었음. 한국문제에 대하여 상당한 논란이 있었으나 대한민국에 대하여는 종전대로 한국을 대표하는 KOREA로 인정되었으며, 북괴에 대하여는 지역 대표로서 출전하게 되었음. 북괴의 명칭은 NORTH KOREA로 되었음.’


다음날인 22일 대표단은 총회 폐회와 함께 북한 측의 이의제기 상황을 다음과 같이 전문합니다 (35-16).


‘20일 19시에 IOC 총회가 폐회되었음. 한국문제는 18시에 소련 대표 측에서 다시 문제를 제기하였으나 브런디지 및 엑스터 위원장으로 인하여 좌절되었음. 그러므로 한국문제를 전번 타전한 바와 같이 전한국을 대표하여 호칭은 KOREA, 북괴는 지역 대표로서 NORTH KOREA로 되었음.’ 


바덴바덴 IOC 총회 회의록 16번 안건은 이 결과를 다음과 같이 적습니다 (35-17). 


‘브런디지가 한국 질문의 경과를 설명하고, 많은 난제에 직면해 있으며, 따라서 도쿄에는 한반도에서 두 팀이 출전할 것이고, 명칭은 오래전부터 인준되어 온 ‘Korea’와 ‘North Korea’로 할 것이며, 이는 만장일치로 통과했음. 남한 대표단 Korean delegation이 기자회견에서 거부하였으나 결정사항은 번복되지 않고 도쿄에 두 팀이 나갈 것이 확정됨.’


또한 회의록의 안건 20번은 북한이 조건적 인준이 아닌 완전한 인준을 받은 것으로 적고 있습니다. 


여기서 잠시 확인할 것이 있습니다. 분명 총회 회의록은 ‘남한 대표단 Korean delegation’이라 적고 있지만, 사실은 이는 오타인 것으로 보이며, 남한 대신 북한 대표단인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남한 대표단은 총회 결과에 매우 만족했고 북한은 불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기 때문이죠. 


실제로 19일 총회에서 남북한이 각각 ‘Korea’와 ‘North Korea’로 명명되는 것에 대해 북한 측은 다음날인 20일 성명을 발표하는데 내용은 간략히 다음과 같이 정리됩니다 (35-18). 


‘이번 총회에서 북한이 완전한 위상으로 독립적으로 올림픽에 참가하도록 결정되었음. 그러나 우리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아닌 ‘북한'으로 명명되는 것은 부당함. 이는 올림픽 정신에 위배되는 정치적 차별임. 우리는 남한의 조직적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성실하게 단일팀 구성을 추진했음. 단일팀 구성의 결렬은 남한에 책임이 있으며, 우리는 독립된 명칭으로 올림픽에 참가해야 하며, 국가명은 완전한 인준을 받은 단체가 정하며, 이는 어떤 단체도 변형시킬 수 없음. 그러나 이번 총회가 그렇게 결정했고 이는 정치적 결과임. 따라서 우리는 명칭에 대한 정당한 요구에 반하는 부당한 결정에 전혀 제한되지 않을 것임.’


성명을 발표한 같은 날 북한올림픽위원회는 오토 마이어를 참조로 브런디지에게 편지합니다 (35-19). 성명과 같은 맥락의 내용입니다. 북한은 IOC 59회 총회에서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인준되었으며, IOC 소식지 bulletin 에도 그렇게 사용되었음을 주장합니다. 


그러나 북한의 이러한 요구는 번복되지 않습니다. 








인용자료


(35-1) 국립외교원. [L-0002-07/1265/757.1] 1964년도 동경올림픽 남·북한단일팀 구성문제. 전4권 (V.4 1963. 9-12) pp. 4-9.


(35-2) 외교부, 외교사료관. [대한민국외교사료해제집 대한민국정책브리핑 1963] 63-166 1964년도 동경올림픽 남북한 단일팀 구성문제, 전5권 v.4 1963.9-12. 생산년도, 1962-1963. 생산과, 국제기구과. p. 174.

http://diplomaticarchives.mofa.go.kr/dev/search_open_docus.do


(35-3) 국립외교원. [L-0002-07/1265/757.1] 1964년도 동경올림픽 남·북한단일팀 구성문제. 전4권 (V.4 1963. 9-12) pp. 10-11, 14-15.


(35-4) 600.3 Amusement Sports, 1963 (기록물명), RG 84 Records of the Foreign Service Posts of the Department of State, 1788-1964 (문서군명), Korea, Seoul Embassy, Classified General Records, 1952-63 (시리즈명), 국립중앙도서관 해외기록물, pp. 11-12.


(35-5) 국립외교원. [L-0002-07/1265/757.1] 1964년도 동경올림픽 남·북한단일팀 구성문제. 전4권 (V.4 1963. 9-12) pp. 18-20.


(35-6) 이상백이 브런디지에게 보내는 편지 (1963. 9. 19.) Brundage Collection, Lee, Dr. Sang Beck, 1946-1966, Olympic Studies Center, 로젠, 스위스. 


(35-7) 국립외교원. [L-0002-07/1265/757.1] 1964년도 동경올림픽 남·북한단일팀 구성문제. 전4권 (V.4 1963. 9-12) pp. 36-37. 


(35-8) 국립외교원. [L-0002-07/1265/757.1] 1964년도 동경올림픽 남·북한단일팀 구성문제. 전4권 (V.4 1963. 9-12) pp. 41.


(35-9) 600.3 Amusement Sports, 1963 (기록물명), RG 84 Records of the Foreign Service Posts of the Department of State, 1788-1964 (문서군명), Korea, Seoul Embassy, Classified General Records, 1952-63 (시리즈명), 국립중앙도서관 해외기록물, p. 10.


(35-10) 국립외교원. [L-0002-07/1265/757.1] 1964년도 동경올림픽 남·북한단일팀 구성문제. 전4권 (V.4 1963. 9-12) pp. 69-70. 


(35-11) 국립외교원. [L-0002-07/1265/757.1] 1964년도 동경올림픽 남·북한단일팀 구성문제. 전4권 (V.4 1963. 9-12) p. 90. 


(35-12) 국립외교원. [L-0002-07/1265/757.1] 1964년도 동경올림픽 남·북한단일팀 구성문제. 전4권 (V.4 1963. 9-12) p. 63. 


(35-13) 600.3 Amusement Sports, 1963 (기록물명), RG 84 Records of the Foreign Service Posts of the Department of State, 1788-1964 (문서군명), Korea, Seoul Embassy, Classified General Records, 1952-63 (시리즈명), 국립중앙도서관 해외기록물, pp. 8-9.


(35-14) Olympics, K-EDU 15-1 (기록물명), RG 59 General Records of the Department of State, 1756–1999 (문서군명), Bureau of Far Eastern Affairs - Central Files of the Office of East Asian Affairs, 1947-64 (시리즈명), 국립중앙도서관 해외기록물, pp. 20-21.


(35-15) 국립외교원. [L-0002-07/1265/757.1] 1964년도 동경올림픽 남·북한단일팀 구성문제. 전4권 (V.4 1963. 9-12) p. 150. 


(35-16) 국립외교원. [L-0002-07/1265/757.1] 1964년도 동경올림픽 남·북한단일팀 구성문제. 전4권 (V.4 1963. 9-12) p. 154. 


(35-17) Minutes of the 60th session of the IOC in Baden-Baden, CIO, Comité International Olympique-Session 1894-2013. 1963-Baden-Baden 61. 02-Procès-verbal-eng. pg. 7. OSC, IOC.


(35-18) Olympics, K-EDU 15-1 (기록물명), RG 59 General Records of the Department of State, 1756–1999 (문서군명), Bureau of Far Eastern Affairs - Central Files of the Office of East Asian Affairs, 1947-64 (시리즈명), 국립중앙도서관 해외기록물, p. 9.


(35-19) 북한올림픽위원회가 브런디지에게 보내는 편지 (1963. 10. 20.) Brundage Collection, North Korea Olympic Committee, Olympic Studies Center, 로젠, 스위스. 



[사진 설명]



Kurhaus Baden-Baden, 바덴바덴 쿠르하우스, 1963년 10월 IOC 총회가 열린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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